나의 삶 불광
보현1구 선학 종인 김 성
제가 이 글을 작성하기까지 많은 망설임으로 적지 않은 갈등을 겪고 겪었습니다. 그동안 한이 되어 가슴 속에 묻어 두고 눈물로 살아야만 했던 지옥 같던 과거를 밝힐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광법회에 와서 부처님과 큰스님을 뵙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을 말씀 드릴까 하여 용기를 내서 글을 씁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전농동 배봉산에 있는 돌산 근처에서 살고 있었었는데, 그 당시 이 배봉산 돌산에서 자살하는 많은 사람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고민과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며 학교 대신에 치료를 위해 성바오로병원과 동부시립병원을 전전했지만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밤이면 잠을 자지 못할 정도의 가위 눌림과 귀에 들리는 찡하는 소리에 견딜 수 없어 몸부림치다가 일어나곤 하는 생활이 매일 지속되었습니다. 결국은 귀의 이명과 소음성 난청이라는 장애로 큰 소음이 있는 곳은 피해야 했고 무릎에는 백납이 생기기 시작하며 몸은 형편없이 야위어 가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본격적인 치료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성바오로병원의 내과, 이비인후과, 피부과의 약 처방과 신경정신과에서는 정신적인 상담을 받고 약 처방을 받아 매일같이 약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직업이 지도를 만드는 제도사이기에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데, 오후만 되면 약에 취에 정신을 못 차리는 삶이 지속되고, 간 기능은 나빠지고 몸은 계속 악화되어 갔습니다.
너무나 힘들어 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저를 보다 못한 회사에서는 결국 권고사직을 종용하였고,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쉬면서 요양을 하면서 다른 직장을 구해야 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서 산에서는 절벽이, 지하철역에서는 플랫폼이 순간적으로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습니다. 결국은 이 충동을 실행으로 옮기려고 한 계기가 있었는데, 1989년 5월초에 어머니 회갑연을 했을때, 혼자만 결혼을 못한 죄스러움과 마음의 고통을 받고 있을 때, 10월 중순경 회사에서 강원도 강촌 구곡 폭포로 야유회를 가게 되었는데, 잠깐 휴식 시간에 옆 산길로 구곡 폭포 위쪽으로 올라가서 폭포에서 떨어져 죽을 결심으로 물길을 걸어 폭포 근처까지 갔다가 사람들의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산길로 해서 산 아래로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 와서는 고민을 하다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깊은 고민에 빠졌고, 며칠 동안 꼼짝을 않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간곡한 설득에 못 이겨 문을 열고 나와 ‘어머니 저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하고 하소연 하였습니다. ‘그래! 모두가 부모 잘 못 만나서 그런 것이다.’ 하시며 울먹이시는 어머니를 붙잡고 쓰러지기 전까지 통곡을 하였습니다.
극도의 우울함으로 극한 상황에 몰려있던 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주 신륵사와 영릉으로 평소에 좋아하던 역사 유적 답사를 갔습니다.
신륵사 경내를 모두 둘러보고 나올 무렵, 기와 불사 접수하는 곳에서 저도 모르게 발길이 멈췄고, 부모님 생각이 나서 부모님 앞으로기와 불사를 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절 입구까지 나왔지만, 그 발길은 다시 기와 불사 하는 곳으로 가고 있다가, 다시 절 입구로 나갔다가 다시 기와 불사 하는 곳으로 발길이 옮겨져 부모님 앞으로 기와 불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웅전에 가서 남들이 하는 대로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나오니 그제서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집에 와서 ‘내가 진정 의지할 곳은 어디일까?’를 골똘히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회사의 경리를 보시던 분이 불광사의 바라밀다 합창단에서 활동하고 계시다며 저를 불광사로 안내 해 주셨습니다. 1990년 여의도 연등 축제 날 처음으로 불광법회*불광사 보살님들께서 모여 있던 곳에 가서 연등 축제 법요식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5월2일, 부처님오신날 불광법회*불광사에 찾아 와서 봉축 법요식에 참석하고, 당시 금강법등 마하보살이셨던 혜은 이정민 전 법회장님을 만나 금강법등에 입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교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어 1박2일로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에도 다녀왔고, 정독 도서관에 가서 많은 불서를 탐독하고 좋은 자료가 있으면 복사를 해서 금강의 법우님들에게 나눠 드렸습니다.
열심히 정진하던 중 금강법등 교무 보리보살 부촉을 받았고, 토요법회 사회자와 인례가 없어 혼자서 사회자와 인례를 매주 토요일 오후4시에 담당하면서, 여름철 50일 기도, 겨울철 50일 기도, 구도 철야 정진에 동참하였고, 바라밀교육, 명교사 교육도 수료하였고, 큰스님께 종인이라는 법명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365일 불광법회와 법등 일에 몰두하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몸져 누워 있어야 하는데,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허약한 몸을 약에 의지하면서 살던 과거의 불행하던 나는 온데 간데 없고 밝고 쾌활한 모습으로 활동하는 불자로 변해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무릎에 손바닥만한 백납도 원래 색깔로 조금씩 돌아와서 너무 좋아 어머니에게 보여드렸더니, ‘그래 그게 다 부처님 공덕이다.’ 하시면서 너무도 좋아하셨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1994년 10월경 평소 소원대로 불광법회 바라밀다합창단에서 합창을 하던 제 평생 반쪽을 만나 보광당에서 지오 스님을 주례로 모시고, 많은 분들의 축복속에 결혼까지 하였으니 세상에 그 무엇이 부러울 것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그 행복도 1년을 넘지는 못했으니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일까요? 일요법회 사회자와 금강법등 마하보살을 맡아 법등 활성화에 열심히 노력을 하던중, 1995년 9월경 위암 3기 판정을 받고 서울 아산 병원 소화기 내과에 입원을 해야 했습니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 하염없이 울기만 하던 만삭의 아내는 제 옆에서 무거운 몸으로 간호에 매달렸습니다. 게다가 늙으신 부모님 충격 받으실까봐 집에는 장기 지방 출장 간 것으로 하여야 했기에 아내는 집에도 가지 못하고 무거운 몸으로 병원 보조 침대에서 쪽잠을 자야만 했습니다. 아마도 당시에 아내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 입니다.
그렇게 8개월간의 수술과 항암 치료의 긴 병원 생활을 끝내고, 이 후 5년 동안의 투병 생활이 또 시작 되었습니다.
위가 조금 밖에 남아 있지 않아 조금씩 하루 여섯 번을 나눠 먹어야 했고, 한 끼라도 놓치면 누런 위산이 거꾸로 역류하고 길바닥에 쓰러지는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한번은, 항암제를 여섯달째 다맞고 퇴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혈구, 적혈구 수치가 떨어져 있는데, 면역 기능이 없는 제가 냉방 버스를 탔다가 감기에 걸렸습니다. 열이 엄청 올라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아내는 밤새워 차가운 물수건으로 열이 내릴 때 까지 지극 정성으로 저의 온몸을 닦아주어 또다시 저를 살려 냈습니다.
5년이 지나자 먹는 것은 어느 정도 극복했는데, 이번에는 항암제 후유증으로 백납이 온몸으로 퍼져 대인 기피증이 생기게 되었고, 피부가 자외선에 조금만 노출되면 화상을 입기에 여름에도 긴 소매 옷을 입어야 하는 불편함에다 면역 기능이 약해져서 잦은 콧물 감기에 걸려 감기약과 소화제는 필수로 가지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까지 생겼습니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형님마저도 대장암에 걸려 입원하는 기막힌 일이 또 생겼습니다. 충격으로 상심하던 형수님은 종교를 천주교로 개종하고 모든 식구들을 성당으로 데리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까닭에 아버님 돌아 가셨을 때, 천주교식으로 장례식를 해드려야만 했던 안타까움과 혼자서 집과 영화사에서 기도를 49일 동안 해드릴 수밖에 없었던 일은 지금도 회한으로 남아 있답니다.
그때 저는 전법의 중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우리 아이들만큼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던 중 작은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자기를 만나려면 교회로 오라고 했다고 교회를 간다고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난감했지만, 당장 실천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사 어린이 법회에 가서 아이들이 적응 할 때까지 법회를 같이 봤고, 한 달 후에는 아이들만 보내도 다행히 아이들이 잘 적응하였습니다. 연등 축제 때 영화사 연희단에서 장구와 북을 들고 그렇게 환하고 행복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 무엇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이 어린이 법회를 마치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 불광사 청소년법회에 데리고 와서 직접 가입을 시켰고, 청소년 법회를 마치고 청년법회 활동과 청소년법회 교사로 열심히 활동 하였습니다.
그리고 2008년 금강법등, 바라밀다법등의 8,90년대 옛 법우님들이 다시 모여서 만든 보현구를 창 구할 때 보현2법등 반야보살 2년을 거쳐서 구 총무보살 4년, 명등보살 2년등 8년간의 모든 소임을 마치고, 2017년 명등보살 회향과 선학이 되면서 1년간의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8년 지홍 스님 사태로 다시 불광법회로 돌아와 밤새워 절을 지키고, 조계사 앞 시위, 법안정사 대각회 이사회 현장의 시위, 그리고 2020년 2월5일 무박 2일로 개최된 문도회의와 주지 진효 스님의 매주 일요일 불광법회를 온갖 방해를 서슴치 않는 추태를 지켜 보면서 그 절망감과 참담함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들이 큰스님의 제자들과 손상좌가 맞는지 묻고 또 묻고 싶었습니다.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뿐 아니라 스승의 그림자를 짓밟고, 스승의 흔적을 지우려고 하는 제자들의 작태를 지켜보면서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마음의 고향인 불광이 연등 축제때 조계사 다음으로 화려하고 웅장했던 불광이, 불교 방송 아나운서가 마하반야바라밀! 하고 인사를 하던 그 불광이 그 제자들의 사리사욕 때문에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너무도 가슴이 답답함을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불광사의 전각과 법당이 요즘은 왜 그리 낯설고 다른 사찰에 온 것처럼 혼란스럽기만 하는지 답답함을 숨길 수 없습니다.
언제쯤에나 화려했던 그 시절 불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자꾸 과거로 돌아가고픈, 아무리 힘들어도 오로지 불광의 번영만을 생각하면서, 법회와 법등 일에 매달리고 할 때의 좋았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이런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빌고 또 엎드려 빌어 봅니다.
제 인생의 반은 육체와 정신이 망가져버린 지옥 같은 생활이었다면 그 이후의 삶 즉, 불광법회*불광사에서 부처님을 뵙고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불광법회와 금강법등과 보현구에서의 생활은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불광법회*불광사는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마음의 고향이고, 의지처이자 수행처이자 행복을 꿈꾸는 곳입니다..
그리고, 귀의 이명으로 인해 24시간 찡하고 울리는 소리에 성격은 거칠어지고, 우울증과 불면증이 심해지고 밤이면 잠을 편히 못자고, 잠을 설치다 깨면서 하루가 피곤으로 쌓여있고, 끝나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부처님 전에 기도를 하면서 ‘부처님! 저의 시련이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요?’하고 답답함을 하소연 해보기도 했습니다. ‘사는 것이 너무 너무 고통이야!’ 라는 말을 힘들 때마다 습관처럼 되뇌이곤 하였습니다. 지쳐서 더 이상 견디기 힘들 때, ‘더 이상 살아서 뭐하나?’ 하고 이 세상을 등지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끼곤합니다. 그럴 때 마다 못난 남편 만나 많은 고생을 하면서도 제 곁을 떠나지 않고, 30여 년째 묵묵히 내조를 해준 아내와 항암제를 다 맞고 집에 왔을 때, 병든 자식 먹이겠다고 몇년 동안 몸에 좋다는 장어탕, 추어탕 등 보양식을 끓여다 주시고, 암 수술을 받은 두 아들 걱정으로 눈물로 세월을 살아 오시고, 뇌경색으로 투병을 하시다가 3년전에 한많은 눈을 감으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피끓는 눈물을 삼키곤 합니다.
저에게 소원이 있다면 첫째는 불광이 정상화 되어서 화려하고 웅장했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 언제나 편하게 기도하고 수행을 하고 공부를 할수 있는 불광의 모습입니다. 둘째는, ‘고통 없이 잠을 편하게 자보는 것’이고, 셋째는 ‘다음 생에는 육체와 정신적 고통이 없는 그저 남들하고 똑같은 평범한 삶을 살아 보는 것’입니다.
앞으로 저에게 또 어떠한 시련이 닥칠지 모르겠지만, 제 마음의 고 향인 불광에 처음 왔을 때의 초심만 생각하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수행하고 전법과 봉사하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며, 불광법회*불광사가 정상화 되는 그 날까지 열심히 홍보하고 전법하면서 살아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