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자료에 의하면 2023년 장기요양서비스 시장 규모는 14조 4948억 원이다. 5년 후에는 20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소위 시니어케어 시장은 씁쓸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다.
장기요양 서비스 시장 규모가 이토록 크니 2023년 기준으로 장기요양기관도 2만 8366개(재가 22,091개, 시설 6,269개)에 이른다. 종사 인력 역시 67만 3946명이나 된다.
또한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뛰어든 케어링, 케어닥, 케어네이션 등 재가요양서비스 스타트업 기업들도 급성장하고 있다.
케어링의 경우를 살펴보자.
케어링은 2019년에 설립된 재가요양 서비스 스타트업 기업이다. 현재 재가요양서비스 시장 점유율이 1위인데 매출액이 2021년 110억 원, 2022년 350억 원, 2023년 660억 원으로 매년 2배 이상 늘었고, 올해는 1,200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케어링은 올해 400억 원을 투자 유치했고, 지금까지 총 투자 유치한 돈이 750억 원에 이른다. 투자자들도 케어링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것이다.
케어링은 올해 ‘케어링 커뮤니티케어’라는 자회사를 세웠다. 2026년 3월부터 시행되는 지역돌봄법을 사업 기회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동네마다 구멍가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CU 등 프랜차이즈 대기업이 운영하는 편의점으로 모두 바뀌었다.
어쩌면 미래에는 케어링과 같은 재가요양 전문 대기업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케어센터가 읍면동마다 모두 들어서서 지역돌봄을 책임질지도 모른다.
그게 과연 바람직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피하다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봄은 다르다.
난 영리기업이 돌봄 사업을 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 시장이 돌봄을 주도할 수는 없다. 돌봄은 풀뿌리 지역공동체가 공공사업으로 시행해야 한다.
더군다나 장기요양기관들이 벌어들이는 총 14조 4948억 원의 돈 중 91%(13조 1923억 원)가 공단 부담금이다. 본인 부담금은 9%에 불과하다. 90%가 넘게 공적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에서 영리기업이 돈벌이를 하는 것이 정당한가?
혹자는 대안으로 국가와 지자체가 설립한 사회서비스원이 돌봄 사업을 100% 책임지게 하는 것을 제시한다. 글쎄? 실현 가능성도 의문이지만 실제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관료화로 인한 폐해가 상당하지 않을까? 국가와 지자체는 직접 돌봄 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지원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가장 이상적인 대안은 전국 3,500개 읍면동마다 비영리 돌봄기관인 돌봄사회적협동조합이 만들어져 주민 주도로 자치적인 지역 돌봄 사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읍면동 주민자치 토양이 척박한 현실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돌봄 사업은 이미 규모화ㆍ전문화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작은 단위에서 영세하고 비전문적으로 운영하다가는 경쟁에서 밀려나 망할 가능성이 높다. 동네 가게가 편의점으로 다 바뀌듯이 그렇게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이렇다.
첫째, 서울, 부산, 광주, 대전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주민자치와 마을돌봄을 통한 상생사회 실현’이라는 기치를 내건 상생돌봄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한다. 물론 여건이 된다면 시와 군 단위에서도 상생돌봄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둘째, 각 상생돌봄사회적협동조합 산하에 읍면동마다 주민 주도로 운영되는 상생돌봄센터를 설치한다. 읍면동 상생돌봄센터는 재정자립 확보를 위해 센터 당 장기요양등급 이용자 30명 이상, 일반 이용자 500명 이상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셋째, 전국적 사안에 대해 공동 대응하기 위해 각 상생돌봄사회적협동조합들이 협동하여 전국적인 연대기구를 결성한다.
그렇게 되면 시장 주도가 아닌 지역공동체 주도의 돌봄을 실현하면서도 케어링과 같은 대기업과도 경쟁할 수 있는 규모화와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일석이조의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형 커뮤니티케어가 성공하려면 제도와 실천이라는 두 바퀴가 잘 굴러가야 한다. <의료 ㆍ 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지역돌봄법)이 한국형 커뮤니티케어의 제도적 기반이라면 <상생돌봄사회적협동조합>은 실천적 기반이 된다.
우리나라는 저출생ㆍ고령화로 인한 돌봄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다. 고령화 속도가 아주 빠르고 노인 빈곤율도 높다. 지역돌봄의 기반인 주민자치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돌봄 위기가 아니라 돌봄 재앙이 닥칠 것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힘차게 일어나 국난을 극복했던 저력이 있다.
임진왜란 때도 관군은 지리멸렬했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의병들이 일어나 나라를 구했다.
내년이면 우리나라에서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를 넘게 된다.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가 되는 것이다. 전국민이 돌봄 위기를 더욱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전국 각지에서 돌봄 의병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국가적 재난인 돌봄 위기를 멋지게 극복하는 상상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