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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시집/염소와 꽃잎
2019-10-24 09:11:35
<염소와 꽃잎>, 푸른사상, 2019년 4월
염소와 꽃잎
유진택 지음|푸른사상 시선 102|128×205×8mm|116쪽|9,000원
ISBN 979-11-308-1435-3 03810 | 2019.5.30
■ 도서 소개
경물을 바라보다 하나가 되다
유진택 시인의 시집 『염소와 꽃잎』이 <푸른사상 시선 102>로 출간되었다. 경물과 친밀하고 조화로운 서정성을 띠면서 가족과 연인은 물론 자신이 살아가는 이 세계를 사랑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인의 세계인식은 사랑의 본질을 회복하고 사랑의 의의를 인식하고 사랑의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에 주목된다.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사랑과 흑심 사이
붉은 감잎 / 봄밤 / 나비 1 / 흰 배 / 선풍기 / 노랑부리저어새 / 나비 2 / 투계 / 외계인 아내 / 멸치 / 소문 / 군무 / 사랑과 흑심 사이 / 백일홍에서 혁명을 떠올리다 / 계급장 / 산불 / 유행
제2부 고향집은 슬프다
나비 3 / 고향집은 슬프다 / 나비 4 / 혈서 / 염소와 꽃잎 / 고백 / 폭우 / 꽃 짐 / 물푸레나무가 쓰는 편지 / 동백꽃 엽서 / 시집살이 / 단풍 / 엉겅퀴꽃 / 무꽃
제3부 붉은 오지
벌촛길 / 나비 5 / 고향 / 구제역 / 위험한 사랑 / 골똘 / 보쌈 이야기 / 홍등가 여자 / 침묵하는 자들을 위해 / 붉은 오지 / 폐공 / 효자손 / 만월 / 기계 앞의 경배 / 지게 / 노숙자
제4부 노승과 휘파람새
염탐 / 개복숭아꽃 필 때 / 노모의 평생직장 / 풀과의 열애 / 금잔화 / 성난 황소 / 막춤 / 꽃구경 / 엄마 신발 / 첫사랑 / 중매 / 탐욕 / 노승과 휘파람새 / 서어나무 숲으로 난 길 / 고로쇠나무 할머니 / 폐가 / 그리움의 길 / 봄날 잔치 / 대쪽 같은 사랑
■ 작품 해설:경물(景物)의 시학 - 맹문재
■ 저자 소개
유진택(兪鎭澤)
충북 영동군 황간면 안화리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30년 가까이 대전에 정착하였다. 1996년『문학과사회』 가을호에 시「달의 투신」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텅 빈 겨울 숲으로 갔다』『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날다람쥐가 찾는 달빛』『환한 꽃의 상처』『달콤한 세월』『붉은 밥』이 있다. 2013년, 2016년, 2019년 대전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고, 2018년 대전문학관 시 확산 시민운동 작가로 선정되어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에 시화가 걸렸다. 현재 한국작가회의와 좌도시 회원이며 대전작가회의 이사를 거쳐 무천문학 회장이다. 서대전 세무서 운영지원과에서 일하고 있다.
■ 시인의 말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파울로 코엘료의 장편소설인 『연금술사』에 나오는 구절이다. 살렘의 늙은 왕이 산티아고에게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인 줄 알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나도 간절히 원해 시집을 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집을 낼 때마다 나무에게 미안하다. 나무는 한 개인의 탐욕을 위해 얼마나 중노동에 시달렸는가.
종이를 대주느라 밤낮없이 고생했을 나무에게 졸지에 죄인이 되었다.
내 시집을 위해 쓰러진 나무의 제단에 바칠 흰 꽃 대신 시집을 놓고 용서를 빈다.
■ 추천의 글
꽃을 탐하지 않을 나이. 나비의 팔랑거림에 귀를 기울일 나이. 넘기고 넘긴 시간들 속에 눈에 무엇도 걸리지 않고 들어올 나이. 시인의 나이다. 이런 나이가 있어 애절함도 간절함도 질퍽함도 육화시키고 꽃이며, 나비며, 거미며, 어머니의 주름살도 온전히 본다.
나이를 그냥 먹는 것이 아니다. 오늘 자고 내일 일어나면 나이를 밥그릇 세듯이 먹으면 좋겠는데 그런 나이는 시인의 나이일 수 없다. 시인의 나이는 자연의 나이와 닮아 있다. 몸에 쌓여 생긴 나이를 벗어내고 마음에 쌓인 나이로 자연과 연애하듯 말을 건다. 이야기를 듣는다.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다. 시인의 나이가 참 곱다. 그래서 그런지 유진택 시인의 시가 사물들에게 향하는 마음이 따듯하고 순하게 읽힌다. 부럽다!
— 김희정(시인)
■ 작품 해설
유진택 시인은 경물을 바라보면서 가족과 연인은 물론 자신이 살아가는 이 세계를 사랑하고 있다. 주관적인 감정이나 관념으로 대상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경물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랑을 의미화하는 것이다. 경물시는 대상에 대한 묘사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영미의 이미지즘 시와 유사한 면이 있다. 작품의 자아가 중심이 되지 않고 대상 스스로 존재성을 드러낸다는 차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지즘 시에서의 시적 대상은 자아의 가시적인 범주로 한정된 것으로서 단순화되고 객체화된다. 객관의 기준을 시인의 눈앞에 드러난 형상 그 자체에 두기 때문에 대상은 고유한 속성을 나타내지 못한다. 시적 대상은 시적 자아에 의해 사물화된 객체, 즉 시적 자아가 주도하는 타율적인 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형상 너머에 존재하는 대상의 의의를 자율적으로 환기하는 경물시와는 차이를 보인다.
경물시는 작품의 자아와 대상의 관계가 유연하고 자율적이다. 상호 독립성을 지니면서 자아가 보지 못한 대상의 의미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물의 형상 너머에 존재하는 본질을 비추어보며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다. 자아와 대상이 통합이나 융합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서로 친밀하고 조화로운 서정성을 띠는 것이다. 동화나 투사를 통한 자아와 대상의 동일화를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게 자아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서 대상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중략)
작품의 화자와 대상은 주체와 객체로 구분할 수 없다. 화자는 자신의 욕구를 위해 경물을 도구화하거나 목적화하지 않고 이물관물의 태도로 바라본다. 자아의 인위적인 개입 없이 경물의 실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경물은 화자가 바라보는 형상 그 너머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실재 앞에서 화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화자의 침묵이 경물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고, 경물의 침묵이 자기 존재를 숨기는 것도 아니다. 침묵이 기의를 고착시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경물의 기의를 다양하게 인정함으로써 사랑의 의미가 확대되고 심화된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오늘의 상황에서 경물을 통한 사랑의 변주는 큰 의미를 갖는다. 자본가는 자기 자본의 확장과 권력 유지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분업화되고 기계화되고 자동화된 노동 과정에서 노동자는 공장의 소모품으로 전락되어 개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상품으로 취급받는 노동자는 자신으로부터도, 사람들로부터도, 그리고 자연으로부터도 소외되고 있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문화생활을 영위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많은 정보를 소유하고 있지만 자아의 상실로 말미암아 피상적인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경물을 통해 가족애와 이성애와 사회애를 추구하는 시인의 세계인식은 주목된다. 사랑의 본질을 회복하고 사랑의 의의를 인식하고 사랑의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 맹문재(문학평론가, 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염소와 꽃잎
둑에 매여 있는
염소의 콧등에 꽃잎이 내려앉는다
허공 어디쯤에서 날아왔는지
꽃잎이 거뭇거뭇 시들었다
붉은 꽃이 거뭇하게 변할 때까지
세상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영영 시들 것 같지 않는 꽃잎에
파르르 떠는 염소의 눈꺼풀
염소도 외눈으로
시든 꽃잎을 슬쩍 보았을 것이다
침묵하는 자들을 위해
촛불을 쳐들지 못하는 너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겠다
차라리 나무에게서 배워라
꽃에게서 배워라
그들은 촛불을 쳐들지 못해도 단풍을 쳐들었고
전단을 뿌리지 못해도 꽃잎을 날렸다
사지 멀쩡한 사람들보다
침묵하는 그들에게서 배워라
그들은 꽃을 촛불처럼 켜서 세상을 밝혔고
단풍을 빨간 띠처럼 둘러 세상을 깨웠다
그들의 침묵 속엔
용암처럼 끓어 넘치는 함성이 있다
봄날 잔치
버드나무가 머리칼 풀어 강둑에 늘어지면
산비탈 앵도화도 화르르 피었지요
벌 떼들 부릉거리며 꿀샘 찾아다니면
강 언덕 산도화도 뺨 붉어졌지요
봄날이면 산골짝 따라 쑥꾹새 소리 어지럽고
벌들은 달콤하게 울었지요
온종일 풀밭 위에 벌렁 드러누워
강물 같은 구름 한 점 목메어 바라보네요
(평론)
경물(景物)의 시학
맹문재
1.
유진택 시인은 경물을 바라보면서 가족과 연인은 물론 자신이 살아가는 이 세계를 사랑하고 있다. 주관적인 감정이나 관념으로 대상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경물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랑을 의미화하는 것이다.
경물시는 대상에 대한 묘사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영미의 이미지즘 시와 유사한 면이 있다. 작품의 자아가 중심이 되지 않고 대상 스스로 존재성을 드러낸다는 차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지즘 시에서의 시적 대상은 자아의 가시적인 범주로 한정된 것으로서 단순화되고 객체화된다. 객관의 기준을 시인의 눈앞에 드러난 형상 그 자체에 두기 때문에 대상은 고유한 속성을 나타내지 못한다. 시적 대상은 시적 자아에 의해 사물화된 객체, 즉 시적 자아가 주도하는 타율적인 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형상 너머에 존재하는 대상의 의의를 자율적으로 환기하는 경물시와는 차이를 보인다.
경물시는 작품의 자아와 대상의 관계가 유연하고 자율적이다. 상호 독립성을 지니면서 자아가 보지 못한 대상의 의미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물의 형상 너머에 존재하는 본질을 비추어보며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다. 자아와 대상이 통합이나 융합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서로 친밀하고 조화로운 서정성을 띠는 것이다. 동화나 투사를 통한 자아와 대상의 동일화를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게 자아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서 대상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버드나무가 머리칼 풀어 강둑에 늘어지면
산비탈 앵도화도 화르르 피었지요
벌 떼들 부릉거리며 꿀샘 찾아다니면
강 언덕 산도화도 뺨 붉어졌지요
봄날이면 산골짝 따라 쑥꾹새 소리 어지럽고
벌들은 달콤하게 울었지요
온종일 풀밭 위에 벌렁 드러누워
강물 같은 구름 한 점 목매어 바라보네요
―「봄날 잔치」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버드나무가 머리칼 풀어 강둑에 늘어지면/산비탈 앵도화도 화르르 피”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벌 떼들 부릉거리며 꿀샘 찾아다니면/강 언덕 산도화도 뺨 붉어”지는 모습이나, “봄날이면 산골짝 따라 쑥꾹새 소리 어지럽고/벌들은 달콤하게” 우는 모습을 그린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화자는 “온종일 풀밭 위에 벌렁 드러누워/강물 같은 구름 한 점 목매어 바라”본다. 버드나무며 앵도화며 벌 떼며 산도화며 쑥국새를 관조적인 태도로 향하여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화자는 대상들을 단순히 바라보지 않고 표상 너머의 의의를 추구한다. “봄날 잔치”를, 봄날의 아름다움과 생명력과 평화로움을 의미화하는 것이다.
한평생 독서삼매에 빠진 그를 존경한다
책장 활짝 펼쳐든 그를 보면 희망이 생긴다
그가 독서를 하기 위해
날아간 곳은 꽃들이 만발한 꽃밭
독서삼매에 빠지려면 꿀샘을 빨듯이 해야 한다며
눈은 찬찬히 분홍 꽃술을 읽는다
책장은 단 두 장이지만 달콤한 내용이라
한번 빠지면 좀체 헤어 나올 수 없다
개구쟁이의 손길에 깜짝 놀라
책장을 펄럭이며 날아가는
그의 목적지는 또 다른 꽃밭이다
―「나비 1」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한평생 독서삼매에 빠진” “나비”를 “존경”하면서 “책장 활짝 펼쳐든 그를 보면 희망이 생긴다”고 말한다. 자기중심의 세계관을 지양하고 “나비”와 상호 관계를 갖고 그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비”가 “독서삼매에 빠지려면 꿀샘을 빨듯이 해야 한다며/눈은 찬찬히 분홍 꽃술을 읽는” 모습이나 “책장은 단 두 장이지만 달콤한 내용이라/한번 빠지면 좀체 헤어 나올 수 없”는 모습을 묘사한 것도 그러하다. “나비”가 “날아간 곳은 꽃들이 만발한 꽃밭”인데, 그곳에서 “독서”하는 모습을 그린 것도 그의 존재성을 의미화한 모습이다. 화자는 이와 같은 자세로 사랑을 변주한다.
2.
느티나무 아래 평상이 부산하다
쉴 날도 아닌데
할마씨들 죄다 느린 손 내려놓았다
느티나무를 쓸고 오는 바람조차 끈적거려
할마씨들 늙은 닭처럼 퍼들고 앉아 수다를 떤다
노모는 외따로 돌아앉아 설레설레 부채질이다
부채 바람이 홑적삼 펄럭일 때마다
메마른 젖꼭지 홑적삼 빤히 열고 내다본다
황무지에 박혀 있는 폐공처럼
젖줄이 마를 나이
팔십 줄 노모에게 어떤 자식들이 반겨주리
자식 많아봐야 소용없다는 것 알면서도
눈길이 닿는 곳은 동구 밖 신작로
뿌연 먼지 날리며 버스가 설 때마다
외아들 놈 오는지 마음은 까치발이다
―「폐공」 전문
“할마씨들 죄다 느린 손 내려놓”은 “느티나무 아래 평상이 부산”한 정경을 화자는 묘사하고 있다. “쉴 날도 아닌데” 할머니들이 평상에 모인 것은 “느티나무를 쓸고 오는 바람조차 끈적거”리는 날이어서 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할마씨들 늙은 닭처럼 퍼들고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데, “노모는 외따로 돌아앉아 설레설레 부채질”을 한다. “부채 바람이 홑적삼 펄럭일 때마다/메마른 젖꼭지 홑적삼 빤히 열고 내다”보기도 한다. “황무지에 박혀 있는 폐공처럼/젖줄이 마를 나이”인 “팔십 줄 노모에게 어떤 자식들이 반겨”줄 것인가마는 “노모”는 자식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식 많아봐야 소용없다는 것 알면서도/눈길이 닿는 곳은 동구 밖 신작로/뿌연 먼지 날리며 버스가 설 때마다/외아들 놈 오는지 마음은 까치발”인 것이다. “노모”는 자식으로부터 어떤 사랑을 받기보다 자식에게 사랑을 주는 데에서 행복을 느낀다. “노모”의 그 사랑은 자식으로부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헌신하는 것이기에 숭고하다. 그리하여 “노모”의 얼굴은 지극히 도덕적인 힘을 지닌다.
어머니의 얼굴은 자식을 걱정하고 안쓰러워하고 희생하는 마음이 배어 있기에 어떤 강자의 얼굴보다 힘이 있다. 자식은 어머니의 얼굴을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로부터 이탈될 수 없음을 자각한다. 타자로부터 자신을 분리해서는 정체성을 확립할 수 없음을, 타인의 얼굴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진정한 자신의 얼굴을 만들 수 있음을, 어머니의 얼굴에서 깨닫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얼굴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의 얼굴을 최대한 품는다. 타자를 배척하기보다는 자신을 낮추어 품는 것이다.
호박꽃이 색소폰처럼 벌어진 날이었다
산 녘에 산제비나비 날고 보름달이 만삭일 때였다
평상에 가족들이 제비 새끼처럼 모여 앉아
호박잎쌈 우격다짐으로 입속에 밀어 넣었다
콧김 푹푹 뿜으며 악다구니로 씹는 입들이
둑에 엎어져 되새김질하는 황소의 주둥이를 닮아간다
―「봄밤」 전문
위의 작품의 “봄밤” 이미지는 “호박꽃이 색소폰처럼 벌어”지고, “산녘에 산제비나비 날고 보름달이 만삭”인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작품의 화자가 대상들을 객관적으로 묘사해 모두 자족성을 지닌다. 대상들이 인과론적인 연관성이나 원근법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고유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봄밤”은 화자가 비추어본 질서나 범주를 넘어서는 의미를 생성한다. “평상에 가족들이 제비 새끼처럼 모여 앉아/호박잎쌈 우격다짐으로 입속에 밀어 넣”는 모습이나, “콧김 푹푹 뿜으며 악다구니로 씹는 입들이/둑에 엎어져 되새김질하는 황소의 주둥이를 닮”은 모습이 그러하다. 화자는 호박꽃, 산제비, 보름달, 가족, 황소 등을 통해 풍요롭고 생명력 넘치고 평화로운 가족 사랑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화자가 “노파가 배부른 암소를 몰고 가듯/구름장을 헤치며” 가는 “보름달”에서 “산달이 되어 친정에 몸 풀러” 가는 “엄마”(「만월」)를 떠올리는 것도, “달밤에 아내가 뜨개질을” 하는 모습에서 “언젠가 내 아내가 된 외계인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대바늘로 외계의 전파를 잡는”(「외계인 아내」) 자세로 여기는 것도 가족 사랑의 변주이다.
3.
고목 등걸에서 하트 잎새가 솟아올랐다
나에게 악수를 청하듯
잎은 뜨거운 심장을 갖고 있었다
그 옛날 여자와 사랑을 나누던 일을 기억한다
어쩌다 내 마누라가 되지 못했지만
그때 왜 그녀와 틀어졌는지를 후회한다
그때 내 몸속에서 불타는 심장을 꺼내주듯
여자에게 피 끓는 사랑을 고백했다면
누가 아느냐
지금쯤 내 마누라가 되어
고목 아래서 알콩달콩
지나간 사랑 얘기에 묻혀 있을 줄을
―「고백」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고목 등걸에서 하트 잎새가 솟아”오른 모습을 바라보면서 “악수를 청하듯/잎은 뜨거운 심장을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주관적인 감정을 지양한 채 수평적인 관계에서, “잎새”와 시선을 교환하면서 “사랑”의 고유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화자에 의해 설명되거나 확정되지 않고 “잎새”의 이미지를 통해 “뜨거운 심장을 갖”는 “사랑”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그 옛날 여자와 사랑을 나누던 일을 기억한다”. 또한 “그때 내 몸속에서 불타는 심장을 꺼내주듯/여자에게 피 끓는 사랑을 고백”할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후회하는 마음을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의의를 제시하는 것이다.
아내가 호박꼬지를 볕에 널어 말린다
채반에 촘촘히 배열하니 영락없는 상형문자다
아내가 호박꼬지를 볕에 널어 말리는 이유는 단 하나
첫사랑을 상형문자로 기록하고 싶다는 것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해독할 수 없는 문자를 만들어
가슴속에 숨겨 넣고 싶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그때 우리의 첫사랑은 벌들처럼 뜨거웠다
심심하면 꽃 덤불 속으로 날아와
꽃가루를 전해 주고 달아나던
벌들의 수줍은 꽁무니를 본 적이 있었다
세상의 눈길을 피해 맺은 우리의 사랑이
어쩌면 벌들의 사랑과 흡사할까
홍조 띤 아내의 얼굴을 보면 안다
아내가 널어놓은 상형문자엔
호박꼬지 같은 꼬들꼬들한 첫사랑 얘기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첫사랑」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아내가 호박꼬지를 볕에 널어 말”리는 장면에서 “영락없는 상형문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아내가 호박꼬지를 볕에 널어 말리는 이유는 단 하나/첫사랑을 상형문자로 기록하고 싶다는 것”으로, “세상 어느 누구도 해독할 수 없는 문자를 만들어/가슴속에 숨겨 넣고 싶다는 것”으로 여긴다. 화자가 호박꼬지를 바라보면서 상형문자를 연상하고, 상형문자를 바라보면서 첫사랑을 연상하는 것은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다. 주관적인 개입을 제어하고 대상들을 객관적으로 통찰한 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사랑”은 원근의 거리감으로는 밝힐 수 없는 고유성을 지닌다. 그리하여 화자는 “상형문자”를 통해 “그때 우리의 첫사랑은 벌들처럼 뜨거웠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심심하면 꽃 덤불 속으로 날아와/꽃가루를 전해주고 달아나던/벌들의 수줍은 꽁무니를” 되살린다. “세상의 눈길을 피해 맺은 우리의 사랑이/어쩌면 벌들의 사랑과 흡사”한 사실을 환기하는 것이다.
대숲에 갔다 온 뒤로
여자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대쪽 같은 사랑은 이럴 때 하고 싶은 말이다
북풍한설을 맞으면서도 휘어지지 않는 사랑
휘어지다가도 시퍼렇게 일어서는 사랑
그런 사랑이 여자를 까무러치게 한다
그래서 대숲은 늘 여자의 마음으로 운다
조막만 한 멧새 하나 앉아도
휘청 휘어지다가 시퍼렇게 일어서는 사랑
이런 사랑이 대숲에서는 우후죽순 일어난다
―「대쪽 같은 사랑」 전문
“대숲에 갔다 온 뒤로/여자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화자는 토로한다. “대쪽 같은 사랑은 이럴 때 하고 싶은 말”이라는 진리를 비로소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북풍한설을 맞으면서도 휘어지지 않는 사랑/휘어지다가도 시퍼렇게 일어서는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다. “조막만 한 멧새 하나 앉아도/휘청 휘어지다가 시퍼렇게 일어서는 사랑”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이런 사랑이 대숲에서는 우후죽순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그런 사랑이 여자를 까무러치게 한다”고 간파한다. “대숲은 늘 여자의 마음으로 운다”고, 사랑의 본질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사랑은 근본적으로 의지의 행위이다. 나의 생명을 다른 사람의 생명에 전적으로 맡기는 결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이 결혼은 서로 결코 갈라설 수 없다는 사상의 배경을 이루는 근거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강렬한 감정만이 아니라 결단이고 판단이고 그리고 약속이다. 만약 사랑이 감정에 불과하다면 서로 사랑하리라고 약속한 기반은 무너질 것이다. 감정은 몰려왔다 몰려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사랑에 의지와 위임이 결여되어 있다면 사랑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이성애는 배타적이지만 그를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4.
사랑은 본래 한정된 대상과의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랑은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전 세계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자세이다. 한 사람만 사랑하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랑은 팽창된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받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사랑의 열렬함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사랑은 잘못된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가족애도 이성애도 사회애로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혁명의 시대가 갔다고 말하지 말아라
만발한 백일홍 속에
혁명의 기운이 들끓고 있다
백일홍에서 혁명을 떠올린 것은
러시아 여행 때 보았던 붉은 광장 때문이다
그때 거리를 휩쓸었던 노동자들의 붉은 깃발이
백일홍처럼 무리무리 고개 쳐들고 혁명을 꿈꾸었으리라
연약한 백일홍이 어떻게 백일을 견디나 걱정도 했지만
붉은 기질로 핏대 세워 서 있으면
거뜬히 백일을 견디고도 남으리라
혁명의 시대가 갔다고 말하지 말아라
백일홍이 불타는 여름을 견뎌 보면 안다
얼마나 혁명이 힘들고 무서운지를 안다
―「백일홍에서 혁명을 떠올리다」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가 “혁명의 시대가 갔다고 말하지 말아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만발한 백일홍 속에”서 “혁명의 기운이 들끓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화자가 “백일홍에서 혁명을 떠올린 것” 또한 “러시아 여행 때 보았던 붉은 광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화자는 백일홍과 러시아의 붉은 광장을 통해 혁명을 꿈꾸는 것이다. 혁명의 기운이 화자의 의지나 이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상들에 의해 생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연약한 백일홍이 어떻게 백일을 견디나 걱정도 했지만/붉은 기질로 핏대 세워 서 있으면/거뜬히 백일을 견디고도 남으리라”고 믿고 “혁명의 시대가 갔다고 말하지 말아라”라고 말한다. “백일홍이 불타는 여름을 견뎌 보면” “얼마나 혁명이 힘들고 무서운지를 안다”고 자신하고 있는 것이다.
동백 숲이 일몰을 맞고 있다
붉은 띠를 두르고 혁명을 꿈꾼 것도 잠시
비탈 같은 시절 위험스레 견뎌왔지만
한순간의 폭풍 앞에서 혁명은 끝날 조짐을 보였다
동박새가 무사의 심정으로 부리를 휘둘렀는지
바닥에는 핏물 낭자한 모가지가 뒹굴고 있다
모반을 꿈꾸던 혈서들이 바닥에 흥건하다
―「혈서」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동백 숲이 일몰을 맞고 있”는 장면 앞에서 “붉은 띠를 두르고 혁명을 꿈꾼 것도 잠시/비탈 같은 시절 위험스레 견뎌왔지만/한순간의 폭풍 앞에서 혁명은 끝날 조짐을” 우려한다. 화자의 선입견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통해서, 즉 저녁 무렵의 “동백 숲”을 바라보면서 떠올린 것이다. 그와 같은 모습은 “동박새가 무사의 심정으로 부리를 휘둘렀는지/바닥에는 핏물 낭자한 모가지가 뒹굴고 있다/모반을 꿈꾸던 혈서들이 바닥에 흥건하다”라는 표상에서도 확인된다. 혁명을 이루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면서 아울러 혁명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을 쳐들지 못하는 너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겠다
차라리 나무에게서 배워라
꽃에게서 배워라
그들은 촛불을 쳐들지 못해도 단풍을 쳐들었고
전단을 뿌리지 못해도 꽃잎을 날렸다
사지 멀쩡한 사람들보다
침묵 하는 그들에게서 배워라
그들은 꽃을 촛불처럼 켜서 세상을 밝혔고
단풍을 빨간 띠처럼 둘러 세상을 깨웠다
그들의 침묵 속엔
용암처럼 끓어 넘치는 함성이 있다
―「침묵하는 자들을 위해」 전문
“촛불”의 의미를 “차라리 나무에게서 배워라/꽃에게서 배워라”라고 화자는 제시하고 있다. 그 이유는 “나무”는 “촛불을 쳐들지 못해도 단풍을 쳐들었고”, “꽃”은 “전단을 뿌리지 못해도 꽃잎을 날렸”기 때문이다. 화자는 자신을 “촛불”의 중심에 두지 않는다. 자신이 이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자신의 시선으로는 대상의 본질을 간파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주체적인 사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상과 상호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사지 멀쩡한 사람들보다/침묵 하는 그들에게서 배”우려고 한다. “그들은 꽃을 촛불처럼 켜서 세상을 밝혔고/단풍을 빨간 띠처럼 둘러 세상을 깨웠”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침묵 속엔/용암처럼 끓어 넘치는 함성이 있”음을 들은 것이다.
이와 같이 작품의 화자와 대상은 주체와 객체로 구분할 수 없다. 화자는 자신의 욕구를 위해 경물을 도구화하거나 목적화하지 않고 이물관물의 태도로 바라본다. 자아의 인위적인 개입 없이 경물의 실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경물은 화자가 바라보는 형상 그 너머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실재 앞에서 화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화자의 침묵이 경물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고, 경물의 침묵이 자기 존재를 숨기는 것도 아니다. 침묵이 기의를 고착시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경물의 기의를 다양하게 인정함으로써 사랑의 의미가 확대되고 심화된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오늘의 상황에서 경물을 통한 사랑의 변주는 큰 의미를 갖는다. 자본가는 자기 자본의 확장과 권력 유지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고, 노동자는 거대한 자본에 맞서는 노동조합에 결탁되어 결국 자립심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분업화되고 기계화되고 자동화된 노동 과정에서 노동자는 공장의 소모품으로 전락되어 개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상품으로 취급받는 노동자는 자신으로부터도, 사람들로부터도, 그리고 자연으로부터도 소외되고 있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문화생활을 영위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많은 정보를 소유하고 있지만 자아의 상실로 말미암아 피상적인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경물을 통해 가족애와 이성애와 사회애를 추구하는 시인의 세계인식은 주목된다. 사랑의 본질을 회복하고 사랑의 의의를 인식하고 사랑의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孟文在 | 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