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오컬트 영화를 만드는 감독 중의 한 사람인 장재현 감독이 새로운 작품을 내놓았다. 영화 <파묘>다.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연출한 감독이다. 오컬트(occult)는 '신비스러운' 혹은 '초자연적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오컬트 영화는 공포영화의 한 장르로, 초자연적인 사건이나 귀신과 악령 등을 소재로 다룬 영화다. <파묘>는 대물림되는 불치병으로 인해 집안의 화근이라고 의심되는 조상의 묘를 파서 무덤에 묻힌 관을 들어내는 일을 둘러싼 기이한 영화다. 신세대 남녀 무당과 땅의 기운을 보는 지관인 풍수사와 시체를 처리하는 장의사에게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담은 오컬트 영화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극장을 나서면서 좋은 영화를 봤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2시간을 훌쩍 넘긴 러닝타임에도 영화가 주는 몰입감이 대단했다. 대사 한 줄 들어가지 않는 씬들도 수준 높은 영상미와 음향효과만으로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상영시간 내내 관객을 빠져들게 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즐겨야 하는 이유다.
배우들의 연기는 10점 만점에 9.8점이었다. 풍수사로 나오는 최민식과 장의사로 나오는 유해진의 연기는 보증수표와 다름없지만, 젊은 남녀 무당으로 나오는 김고은과 이도현의 연기도 대선배들과 연기 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파묘직전에 벌이는 ‘화림’(김고은 역)의 대살굿 굿판 장면의 무당 연기는 지금까지 본 무당의 굿판씬 중에 최고였다. 베테랑 배우들과 젊은 배우들, 각각의 캐릭터를 모두 살려낸 감독의 연출력을 칭찬하고 싶다. 세 여자 무당이 남자 무당 이도현을 덮친 악귀를 쫓는 장면도 일품이었다.
<파묘>는 한국 특유의 무속신앙과 풍수지리, 구전설화 등을 적절히 배치하였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일제가 한반도의 기운을 꺾기 위해 백두대간 곳곳에 박아 넣었다는 철심(쇠말뚝) 이야기가 있다. 수년 전에 일본과는 상극인 이순신 장군과 가족의 묘소에 쇠말뚝과 식칼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해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백두대간에 80여 년 동안 박혀있던 2미터 정도의 쇠말뚝을 뽑아내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우리 국민들은 임진왜란과 식민통치를 당하면서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이 있다. 선배 무당 김선정이 김고은에게 경고한다. “일본귀신은 가까이만 가도 모두 죽여버리니 조심해야 한다.”라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일본귀신은 한국 귀신과 달리 아무런 원한이 없어도 수틀리면 무조건 죽여버리는 무도하고 야만적인 귀신으로 묘사하고 있음도 그런 연유다. 일본군을 맞아 24전 전승을 올린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그려져 있는 100원짜리 동전을 무덤에 던져 일본귀신을 제압하고자 하는 풍수사 최민식의 믿음도 그런 뿌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가 후반부에 이르러 일본 귀신이 압도적 비중으로 등장하면서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음을 직감했다. 아내도 이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 사람은 알 수 없는 대상에게 더 공포를 느낀다. 공포영화의 특성상 공포의 대상이 실체가 없는 대상이 아니라 화면에 드러나 실체가 있는 대상이 되면 더 이상 공포가 아닐 수 있다. 미스터리 영화에서 실체를 분명히 보여주는 일은 과잉 친절일 수 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느껴야 할 신비로움과 여운을 뺏기에 그렇다. 오컬트가 아니고 크리처 영화로 바뀌었다는 비난도 받을 수 있다. 이를 두고 <파묘>는 관객들에게 ‘그랬어야 했나?’와 ‘그랬어야 했다.’의 토론을 부른다.
분명 호불호가 갈리는 전개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관객이 극장을 나서고도 영화에 대한 잔상을 가지고 서로 이야기해 보는 영화이기를 원한다고 한다. 공포영화인 <잠>이 열린 결말로 인해 극장을 나선 관객들이 각자의 다른 해석으로 토론이 벌어졌다면 <파묘>는 닫힌 결말을 두고 토론을 벌어지게 한다. 그런 점에서 <파묘>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곱씹어보라는 감독의 의도대로 된 셈이다. 장재현 감독은 한국인의 정서와 구전설화를 작품에 녹여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이런 모험을 감수했을 터이다. 영화는 감독의 손에서 떠났다. 파묘에 숨겨진 코드의 해석과 평가는 이제 관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