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
어떤 분야에 대해 잘 모르면서 끝까지 오기와 아집을 부리며 자기 주장을 굽힐 줄 모르는 고집불통 그 자체인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사회적으로 이러한 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로는 정치극단주의와 음모론이 있다. 흔히 가장 위험한 상사의 유형으로 꼽히는 멍청하고 부지런한 상사도 여기에 해당하는 인물이 많다. 더닝 크루거 효과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라는 말과 통한다. 어찌되었던 책을 많이 읽은 지식인에 비해 단 한권의 책을 읽고 그게 세상의 전부인 양 떠드는 사람이 무섭다는 뜻이며, 코미디언 이경규와 강호동 씨가 방송에서 언급하여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한 권의 책만 읽어보신 분들께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7쪽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만우절이라 한들 그런 장난이나 유머가 오가는 집안도 아니었다. 유머라니. 유머는 우리 집안에서 일종의 금기였다. 그렇다고 유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유머일 수밖에 없고 유머여야 하는 순간에도 내 부모는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했고, 그게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29쪽
개 이름 같은 아리는 내 이름이다.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의 아,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 리,를 딴 이름 덕분에 나는 숱한 홍역을 치렀다(사실 아버지가 주로 활동한 곳은 백아산보다는 백운산이었다. 그런데도 백아산의 아를 따온 것은 백운산의 백이나 운이 여자아이 이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그러니까 제 아무리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한들 반봉건시대에 태어나 가부장제의 그늘을 아주 벗어나지는 못한 반봉건적 사유의 발로였던 것이다). 학교에서나 관공서에서나 고아리, 내 이름을 말하면 아유, 이름이 참 예쁘네, 얼굴도 참…… 하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이내 말줄임표가 뒤따랐다.
40쪽
탓을 하는 인생은 이미 루저다.
47쪽
“그래도 사람은 갸가 젤 낫아야.” 아버지에게는 사상과 사람이 다른 모양이었다. 예전에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광주교도소에서 함께 복역한동지 한 사람이 떠르르한 지주의 자식이었다. 그에게는늘 사식이 풍성하게 들어왔다. 그 사식을 벤소에 숨겨놓고 돼지처럼 저 혼자 먹었다고, 진짜배기 혁명가가 아니라고, 아버지는 두고두고 흉을 보았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한 감방에 있었는디 갸들은 지 혼차 묵들 않애야. 사식 넣어주는 사람 한나 없는 가난뱅이들헌티 다 노놔주드라 단 한명도 빠짐없이 글드랑게. 종교가 사상보담 한질 윈갑서야.”
68쪽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는 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는 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 물론 두시간의 노동도 참지 못했다.
94쪽
유물론자다운 대답이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럼 제사는?” “지사는 무신 지사. 헹제라도 많아서 핑계 김에 얼굴이나 볼라먼 모릴까 니 혼찬디 지사는 무신 지사.”
아버지는 뼛속까지 유물론자였다. 부모가 여든 넘도록 장지 마련은 고사하고 영정사진 찍어둘 생각조차 못한 불효자식이었으나 아버지의 유지가 그러하였으니 따르면 될 터였다. 역시 유물론은 산뜻해서 좋다.
102쪽
“오죽흐먼 나헌티 전화를 했겄어, 이 밤중에!”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한들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150쪽
“노동이…… 노동이…… 힘들어.” 그때까지 위태위태 잘 참고 있던 나는 노동이 힘들다는 빨치산의 고백에 그만 풉, 웃음을 뿜고 말았다. 스스로도 염치가 없었는지 그가 비식 웃으며 덧붙였다. “사흘 노가다 뛰고 석달 입원했네. 나는 암만해도 노동과 친해지질 않아.” “저놈의 부르주아 근성은 머리가 희캐져도 뿌리가 안 뽑히그마이. 그런 놈이 멀라고 뽈갱이는 돼가꼬……”
193쪽
월남전에서 다리를 잃었다고 했으니 아마도 육십년대 후반이나 칠십년대 초반, 원래의 다리보다 더 오래 다리 노릇을 해온 때문인지 노인은 지팡이를 능숙하게 움직여 비틀거리지도 않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따 조문은 무신…… 나랑 쐬주나 마시장게.” 다리 불편한 노인네를 확 낚아챌 수도 없는 노릇, 황사장이 어쩌지도 못하고 졸졸 뒤를 따르며 다그쳤다. “왜? 나는 베트콩 때려잡던 사램잉게 뽈갱이 조문하먼 안 된다는 것이여! 나가 고상욱이 때려잡았간디?”
243쪽
“넘의 딸이 담배 피우먼 못된 년이고, 내 딸이 담배 피우먼 호기심이여? 그거이 바로 소시민성의 본질이네! 소시민성 한나 극복 못헌 사램이 무신 헥명을 하겄다는 것이여!”
그때 어머니 나이 환갑을 넘었다. 환갑 넘은 빨갱이들이 자본주의 남한에서 무슨 혁명을 하겠다고 극복 운운하는 것인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블랙 코미디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자리를 떴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오직 담배를 태우기 위해 나는 동네 사람이 절대 다니지 않을 산중턱까지 올랐다. 담배 세대를 연달아 태우는 동안 바라본 우리 집은 성냥갑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