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1. 21
2008년 4월 19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던 SK 와이번스-두산 베어스 경기에서는 지켜보는 이들의 웃음보를 자극하는 재미난 장면이 ‘연출’ 됐다. 경기도중 선수의 지나친 플레이를 항의하는 과정에서 SK 김성근, 두산 김경문 감독이 차례로 그라운드에 나서 선수의 몸짓(발차기)을 흉내 내며 심판에게 따지는 모습이 한 폭의 ‘희화(戱畵)’를 연상시켰던 것이다.
그날, 5-0으로 앞서 있던 두산의 7회 공격 때 문제의 장면이 발생했다. 1사 1루에서 두산 오재원의 2루 앞 땅볼 때 1루 주자 김재호가 더블플레이를 막기 위해 2루 앞에서 오른 발을 치켜들고 1루로 공을 던지려던 SK 유격수 나주환의 왼 무릎을 걷어찼다. 나주환의 왼 무릎 유니폼이 찢긴 것이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 김재호의 2루 베이스 슬라이딩 장면 / OSEN
당연히 ‘수비방해냐, 아니면 정상적인 주루 플레이냐’를 놓고 시비가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냥 지켜보고 있을 김성근 감독이 아니었다. 후다닥 덕 아웃을 뛰쳐나온 김성근 감독은 나주환의 동작을 일일이 흉내 내며 임채섭 2루심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김성근 감독은 김재호의 동작을 처음부터 모사(模寫), 뒤로 엇비스듬히 드러누워서 슬라이딩을 시작해 발을 높이 치켜드는 장면까지 그대로 시늉 냈다. 김성근 감독은 “김재호의 슬라이딩은 수비방해 수준이 아닌 일부러 부상을 입히려는 의도가 짙다”며 따졌다.
김성근 감독이 덕 아웃으로 들어가는 도중 김광수 두산 주루코치와 언쟁이 붙었고, 이번에는 김경문 감독이 달려 나왔다. 김경문 감독은 “고의성이 있는 플레이가 아니라 실수였다”며 오히려 김성근 감독의 발차기를 흉내 냈다. 요지는 ‘김재호의 발차기’가 김성근 감독이 시범보인 것처럼 그렇게 높게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 김성근 감독(위)과 김경문 감독(아래)의 발차기 시전 현장 / OSEN
‘양 김’ 감독이 차례로 발차기 동작을 연출하며 심판에게 ‘몸짓 항의’를 하는 장면은 여태껏 우리나라 프로야구 판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삭막한 승부 세계에서 그런 장면은 보기에 따라선 ‘약방의 감초’처럼 경기의 윤활유 구실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태가 가라앉은 다음 타석에 들어선 두산 유재웅이 SK 투수 김준이 던진 초구에 어깨를 얻어맞자 그라운드에는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으나 유재웅이 두산 덕 아웃을 향해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 큰 충돌을 일어나지 않았다.
프로야구 초창기 OB 베어스에서 지도자와 선수로 인연을 맺었던 김성근-김경문 감독의 ‘기(氣)’의 충돌은 그전에도 있었다.
2007년 10월 23일 SK-두산의 한국시리즈 2차전 6회 두산 김동주가 SK 채병룡이 던진 공에 얻어맞아 양 선수단이 벤치 클리어링을 벌인 것이 그 시초였다. 이틀 뒤인 25일,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이번에는 두산 이혜천이 SK 김재현의 등 뒤로 날아가는 빈볼성 공을 던져 양 선수단이 6분간 어지러운 몸싸움을 벌였다. 이혜천은 고의성 있는 투구라는 판정을 받고 퇴장까지 당했다.
2008년 3월 18일에는 김성근 감독이 베이징올림픽 대표선수단에서 소집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SK 김광현, 정대현의 예를 들며 “대표팀에 나간 정대현, 김광현이 다쳐서 왔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다”며 김경문 대표팀 감독을 겨냥,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자 김경문 감독은 “최대한 관리했다. 대표팀 감독을 한번 맡아 보시라”며 반박, 감정의 앙금이 쌓였다.
급기야 ‘발차기 항의 소동’ 하루 전 날인 4월18일에는 SK 이진영이 2회 타석에서 두산 이승학이 던진 공을 몸에 맞자 양 선수단이 그라운드에서 몸싸움을 벌였다.
홍윤표 선임기자
자료출처 : O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