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혼을 찾아서
미리 정해놓은 것도 없는데, 05:00에 다들 기상하여 씻고, 아침 준비를 한다. 아침은 밥과 김치 그리고 라면이다.
바닷길이 열리리란 믿음 하나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무창포는 매월 음력 보름과 그믐을 전후한 3, 4일간 해변에서부터 석대도까지 폭 20여m, 길이 1.5km의 바닷길이 열린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 신비의 바닷길로 불리는 바다. 갈라짐은 썰물 때 주위보다 높은 해저지형이 일시적으로 바닷물 위로 드러나며 마치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게 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오늘은 오전 08시17분부터 10시42분까지 2시간 반 동안 무창포해수욕장의 바다가 바닥을 드러낼 예정인데 7시부터 바닷가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우리도 1층 슈퍼에서 장화와 장갑을 빌려 신고 바닷가로 향한다.
현재시간 07:20 아직 바닷길이 열리려면 1시간이나 남았는데, 조급한 마음은 이미 바다 속으로 풍덩 들어와 있다. 그냥 뻘 뿐이라 아무것도 없는데 몸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이 길을 따라 저기 끝난 지점까지 가서, 말뚝 표시된 저 길이 열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바닷가에 처음 나온 아이들 마냥 석화를 캐고 고동을 줍느라 다들 바쁘다.
물이 빠질려면 아직 10여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이 곳 주민으로 보이는 두사람이, 망태기를 옆구리에 끼고, 허리까지 오는 통장화를 입고 당당히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일행들에게 는 조금 있다가 들어오라고 하고는 고태화부터 그 뒤를 따라 들어간다. 장화를 신지 않은 등산화 속으로 차가운 바닷물이 들어온다. 발이 얼어버릴듯 차갑지만, 되돌아 갈 수도 없다. 무조건 전진이다. 뒤돌아보니 우리 일행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뒤따라 온다.
한참을 잡다보니 어느새 바닷길이 다 열려있다.
바위를 제끼고 들춰보니 주꾸미가 있다. 제일 먼저 안경원 형님이 한 마리를 수학하고, 뒤이어 총무도 한 마리 포획한다. 그래도 기대했던 게는 한 마리도 없다.
한참을 들쑤시고 다니던 고태화는 오늘 게잡는 수확의 재미는 없다면서 손을 놓는데, 다른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고동과 조개잡이에 정신이 없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다들 재미있게 놀아줘서 안내자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뒤에 보이는 저 섬, 석대도까지는 갔다 와야 할 것 같아, 모두들 섬을 향해 더 들어간다.
수확물을 들고 활짝 웃는 모습이 정말 보기에 좋다.
아름다운 동행에 함께한 선남선녀들이 석대도에 들어왔다. 자랑스런 모습이다.
나중에 확인된 일이지만, 주꾸미를 잡은 팀은 우리 뿐 이었고, 그것도 3마리나 된다.
어찌 아니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바케츠 가득히 고동과 굴, 바지락까지 담아 개선장군 마냥 뭍으로 되돌아 나온다.
밖에선 싸이렌을 울리며 어서 나오라고 성화인데, 이 시간에도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팀도 나가자는 소리를 수차레해서 겨우 나오는 길이다. 우리도 다음 스케쥴이 없었다면, 발목까지 물이 차 올라와야 나왔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바닷길이 열려 석대도까지 걸어서 다녀올 수 있었고, 비록 게는 못 잡았지만, 주꾸미를 잡아볼 수 있는 짜릿하고 즐거운 체험을 하였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출발할 시간인데, 수학한 해산물을 버릴 수도 없어, 해물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먼저 망둥어와 작은 방게를 씻어 끓이고, 라면을 넣은 뒤, 주꾸미는 제일 뒤에 넣는다.
성게는 따로 알을 골라내어 생으로 먹는다. 얼큰한 해물라면 맛은 이마에 땀이 맺히게 하고, 온 몸을 짜릿짜릿하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두 번째 일정은 마곡사이다. 마곡사가 있는 태화산은 택리지나 정감록 등 지리서(비기) 등에 삼재(三災=전쟁·질병·기근)와 팔난(八難=배고픔·목마름·추위·더위·물·불·칼·병란)이 들지 않는다는 십승지지(十勝之地=열 곳의 뛰어난 땅)로, 또는 몸을 지키기 좋고 오래 살 땅이며, 착한 정승과 좋은 장수가 나온다는 보신의 땅 열 곳 중 하나이다..
십승의 땅은 경치 좋은 명승지로 해석하기도 한다. 보신(保身)의 땅 열 곳은, 정감록에 기록된 풍기 예천, 안동의 화곡, 개령의 용궁, 가야, 단춘, 공주의 안산심마곡, 진목, 봉화, 운산봉 두류산, 풍기의 태백.소백산이다. 십승(十勝)의 땅 열 곳은, 도참설과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풍기 금계촌, 안동의 춘양, 보은 속리산, 운봉 두류산(지리산), 예천 금당동, 성주의 만수동, 공주의 유구와 마곡, 영월의 정동 상류, 무주의 무풍, 부안 변산이라 한다.... 실제로 임진왜란이나 6.25 한국전쟁때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한다. 한번씩 다 가본 곳일 수도 있지만, 울산에서 이 곳 마곡사는 오기 참 힘든 곳이라서 이번 일정에 꼭 들어가게 된 배경이다.
먼저 해탈문을 지난다. 해탈문은 마곡사의 정문으로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불교세계에 들어오게 되고,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마곡사5층석탑(보물 799호)이 반긴다. 오층석탑은 언제 건립되었는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고려시대에 중국 원나라의 라마교 영향을 받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전화로 탑이 도괴되면서 탑 속에 봉안했던 부장품이 없어졌다고 한다.
마곡사라는 명칭은 이 지역에 마(麻)가 많이 재배되던 골짜기(谷)란 뜻으로, 백제 의자왕 3년(서기 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할 때 그의 스승인 마곡 보철화상을 기려 이름을 붙였다 하기도 하고, 신라 보철화상이 법문을 열 때, 모인 대중이 삼밭의 삼대(麻) 같이 많다하여 이름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곳 대웅보전(보물801호) 법당은, 밖에서 보면 2층 구조이나 안에서 보면 하나로 된 구조다.
대웅보전 안에는 저승의 염라대왕이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 라고 물어 본다는 싸리나무 기둥이 4개가 서있다. 이 기둥을 한 번 돌면 6년을 더 살고, 극락길에 오늘 수 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둥을 잡고 돌아 기둥에 손때가 반질거린다고 한다.
또 하나의 민간 속설.이 있다. 대웅보전 싸리나무 기동을 잡고 돌면,‘아들을 낳는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또 하나, 이 곳이 유명한 것은, 임시정부 주석이셨던 김구선생이 청년시절인 구한말 명성왕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쓰치다(土田壞亮)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처단하고,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 백련암에 은거하여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출가 수도하였던 곳이다.
시간이 넉넉하지 못해, 백범 김구선생의 명상길 대신 소롯길을 한번 짧게 돌고 내려온다. 무창포에서 해물라면을 먹은지라, 늦은(14:30) 점심을 먹으려 이동한다. 이번 여행길에서 건진 최강 맛집이다. 상호(바람처럼 구름처럼) 041-841-9959 추천메뉴(산채 더덕정식) @15,000원이다.
미리 예약이 되어 있었지만, 따뜻한 음식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앉은 뒤 10분이 다 되어서야 하나씩 들어온다. 특산품이라는 밤막걸리를 한잔씩 치켜들고, 우리를 자축한다. 도토리묵무침과 더덕송이구이, 그리고 우리를 맛의 황홀함을 느끼게 해 주었던 밤파전이 나왔다.
어떤 맛이라고 해야할까? 더덕이나 도토리묵은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지만, 알밤파전은 소보레빵 같이 구수하고, 치즈가 없는데도 쫄깃한 피자 맛이 났고, 밤막걸리는 요구르트처럼 상큼하고 달작지근하여 그냥 목구멍을 술렁술렁 넘어가는 감칠 맛이 끝내주었다.
식사에 곁들여 나온 구수한 청국장이나, 나물류도 저염식으로 깔끔한 고유향을 가지고 있어, 입맛에 딱 들어맞았다.
그래도 양이 많아 다 못 먹고, 묵과 밤파전은 포장을 해 달라고 했다. 은박지로 예쁘게 포장해 준다. 음식 맛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식당 입구에 놓인, 저 봄꽃을 닮았다는게 딱 맞는 표현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