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15장 형식의 파괴시대의 위험
어쩌면 현대 사회는 형식파괴라는 혁신과 개혁이 역사를 드라이브 해가는 일종의 역사적, 사회적 빅뱅시대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껍데기는 무시하고 알맹이에 가치를 부여하며 의식과 형식을 허식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도 상술에서는 포장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디자인 산업이 날로 발전해 가는 매우 아이러니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간다. 겉과 속의 이 무질서하고 모호한 경계선에서 현대인들은 매우 당황해 하는 듯하다.
질소과자라고 해서 제과 업체들의 상술에 화가 난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할 정도로 내용물은 허접하게 넣고 포장 봉지에 질소를 빵빵하게 넣어 과대포장을 한 제품들이 진열대에 놓여 있다. 이럴 때는 정말 “껍데기는 가라”고 소리치고 싶다. 예수께서도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하시면서 제과업체 사주들과 같은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를 책망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끝에 분명히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하셨다는 사실을 읽게 된다. 내용물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껍데기를 버리라고 하지는 않았다. 형식은 내용물을 지키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형식과 규례를 지키는 것을 율법주의 혹은 형식주의라는 이름으로 정죄하고 율법 파괴 혹은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면을 위반하는 잘못된 주장일 뿐이다. 그러한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밑도 끝도 없고 실제로는 형식 뿐 아니라 내용도 없는 허황된 주장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십계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 구약의 가르침으로 치부하고 신약에는 새 계명이 있다고 우기지만 결국 새 계명과 옛 계명이 그 내용면에서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간과 하는 듯하다. 하나님의 십계명은 사실 “하나님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하신 사랑의 새 계명을 정리해 둔 내용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은 다른 계명이 아니라 왜곡되고 변질된 하나님의 사랑을 원래대로 다시 한 번 강조한 계명인 것이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사랑의 편지를 쓰면서 (요일 2:5-7, 개정)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라고 하였다.
역대상 15장에서 다윗은 다시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모셔 오려는 시도를 하였다. 지난 번 웃사의 죽음으로 크게 놀란 다윗은 무엇인 문제인지 파악했다. 그리고 이렇게 진술한다.
(대상 15:11)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대상 15:12)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대상 15: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다윗은 정확하게 문제를 지적하였다. 그것은 법궤는 반드시 제사장들이 메도록 정한 하나님의 규례를 어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법궤를 메고 오든, 지고 오든, 끌고 오든 정성을 드려서 모시고 오면 되지 뭐가 그렇게 중요해서 웃사가 죽음까지 당했느냐고 항변하겠지만 형식의 파괴는 또 다른 변질과 내용의 변형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기에 예수님도 사도들도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이다.
물론 전통적 관습을 형식이라는 포장으로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소중한 영적 자신들을 무작정 공격하고 파괴하여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하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혜는 인간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혁신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까지 파괴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절제와 변화의 균형을 잡는 지혜를 가지게 하소서
인간의 허례에 매달리지 않으며
소중한 가치를 또한 파괴하지 않으며
말씀의 레일 위에서 전진하는 믿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