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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김기곤목사 10 신학여행 로마서1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아버지 저희들을 위해 진리를 아는 백성으로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녀로 삼아주셔서 그 크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또 이번에 신약 성경 27권을 차례차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바울이 쓴 첫 번째 책인 서신인 로마서를 공부하겠습니다.
이 아름다운 서신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는 삶을 살고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올립니다.
오늘은 바울의 편지 중에서 로마서를 공부하겠습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쓴 14권의 서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서신 중에 하나입니다.
또 바울의 4대 서신 중에 첫 번째 가는 편지가 바로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던 방문하지 못했던 교회에 그 당시 세계의 중심 로마에 세워진 그리스도 교회에게 보내는 중요한 편지입니다. 먼저 우리 로마서의 주제되는 성경 글을 한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과 17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로마서를 로마에 보내는 로마 교회에 보낸 이 편지를 고린도에서 3차 전도여행 때 3개월 머물면서 썼습니다.
로마서보다 먼저 쓴 편지가 바로 갈라디아서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큰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에 큰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갈라디아서를 써보낸 써보내고,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는 못했지만 이 문제가 분명히 세계의 중심이 되는 로마에 있는 교회에도 이런 문제가 생기고 이런 이단설이 있을 것이다 생각해서
갈라디아서를 좀 더 확대하고 보충해서 써서 보낸 것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우리는 로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그 구원이 얼마나 확실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그리고 그것을 전파하는 것이 왜 복음인가를 우리가 로마서에서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로마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일일이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마틴 루터의 삶도 변화시키고 그것 때문에 그 유명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었죠.
마르틴 루터는 마음에 많은 갈등을 가지고 그 당시 카톨릭 교회가 행하는 것, 면죄부를 판다든지 신부한테 죄를 고백한다든지 성경과 다른 여러 가지 것에 대해서 많은 갈등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로마에서 구원받을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한다는 빌라도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는 고행을 하다가 갑자기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때 말테루터는 깨달았죠.
내가 구원받는 것은
어떤 착한 행동이나 빌라도의 계단을 올라가는 것 같은 고행이나 예수님처럼 째찌개 맞아보는 것이나 그런 것이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구원받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걸 깨닫고 마침내 유명한 종교개혁의 선두주자가 됩니다.
또 로마서를 읽고 삶이 변화된 사람 중에 하나 우리 감리교회를 창시한 요한 웨슬리 도 그중에 한 사람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성경에 통달한 사람이고 경건한 사람이었지만 웬일인지 그리스도인의 삶에 활기가 없는 것이 자꾸 느껴지고 기쁨과 감사가 자기 삶에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신앙생활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고민하던 어느 날, 조그마한 시골 모라비아 신도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로마서 설교를 듣고 있다가 그가 깨달았습니다.
그가 구원을 받는 것은 자기 자신의 어떤 괴로움이나 고통이나 고행이나 경건의 행동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요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죠.
그때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때까지의 그의 경건, 그의 모든 것들이 의무적인 것이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난 다음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깨닫고 난 다음 그의 삶은 완전히 역동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감동을 받고 큰 경건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또 유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로마사가 변화시킨 사람 중에 중세 교부 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 그가 만이 교회에 빠지고, 어머니의 어머니 모니카의 많은 기도에도 불구하고 당황할 때, 그가 어느 날 로마서 13장을 읽다가 12절서부터 14절을 읽다가 그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방탕한 삶을 청산하고 완전히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돼서 마침내 그리스도교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됩니다.
로마서는 1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로마서를 상당히 어려운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우리가 로마서의 구조를 한번 분석해서 알게 되면 그렇게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로마서를 둘러 가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1절을 중심으로 그 전과 후로 가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로마서 3장 21절이 무엇니까?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
그전까지 온갖 죄인의 모습,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고, 한 사람도 죄인이 아닌 사람이 없다.
그렇게 비참한 죄인의 모습을 설파한 다음에 바울은 3장 21절에서 그런데 이제는 율법 외 만일 율법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라면 왜 한 사람도 예외없이 모두가 죄인이겠느냐 율법을 다 지키고 구원받는 사람이 있지.
그러나 율법이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인 것이다.
그 말입니다. 이제는 율법에 우리를 구원한 우리는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이제는 율법에 하나님의 한 의가 우리에게 나타났다.
이것으로 로마서는 둘로 갈라진다. 그렇게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들의 로마서뿐만 아니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로마서 3장 21절 이전의 삶, 율법이나 어떤 행위나 자신의 어떤 것으로 하나님의 선물에다 그걸 플러스해서 구원받으려고 애쓰는 많은 사람.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 거기에는 비참한 실망만 절망만 남을 뿐이다.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율법, 코리스 노무라는 헬라어는 율법과 상관없다는 말도 됩니다.
율법 없이라는 말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율법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를 통한 우리의 구원, 갑 없는 구원 그것으로 이제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게 3장 21절이에요. 그래서 로마서는 3장 21절을 중심으로 그리스도 없는 삶과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는 삶 둘로 갈라진다.
그렇게 로마서를 둘러 가려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로마서가 좀 더 분명해지죠. 또 니그렌 같은 유명한 로마서 학자는 로마서 1장 17절로 둘로 갈라진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로마서 1장 17절이 뭡니까? 로마서의 주제절인데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거 아닙니까?
그래서 니그레는 이렇게 말했어요. 로마서는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거기까지가 1장부터 4장까지고 살리라. 이제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이렇게 살리라 하고 살리라를 기록한 것이 5장부터 16장까지다.
5장은 무엇이냐 5장은 하나님의 이제 구원받은 사람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벗어나 살리라.
그것이 5장이고 6장은 뭐냐 이제 구원받은 사람은 죄의 속박으로부터 죄의 노예로부터 벗어나 살리라 그게 6장이다.
7장은 뭐냐 이제는 율법에 얽매임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벗어나 살리라 그렇게 말을 한 것 7장이다.
8장은 뭐냐? 8장은 이제 구원받은 사람은 죄에서 악신 사망으로부터 벗어나 살리라 이렇게 살리라를 말하는 것이 5장부터 쭉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까지가 1장부터 4장까지고, 살리라가 5장부터 16장까지다.
그렇게 니그레는 로마서를 둘로 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도 참 좋죠. 그러면 제가 여러분 로마서를 한번 읽을 테니까 이것이 몇 장인지 한번 여러분이 알아맞춰보십시오.
제가 읽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고 살리라 몇 장입니까?
5장입니다. 여러분 5장부터 살리라가 시작되니까요.
제가 또 읽겠습니다. 이제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몇 장입니까?
해방되어 살리라 6장입니다. 또 여러분 맞주치는가 보겠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게 몇 장이겠습니까?
율법에서 벗어나 살리라 칠장입니다. 7장입니다.
또 제가 읽겠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습니다.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살리라 몇 장입니까? 팔장입니다.
이렇게 로마서를 둘로 가르는 사람이 니그레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다음에 로마서를 조금 더 자세하게 넷으로 가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건 제가 좋아하는 방법인데요. 로마서가 16장까지 되어 있지 않습니까?
1장부터 2장까지는 죄인의 비참한 처지입니다.
죄인이 얼마나 그리스도 없는 죄인이 처지가 얼마나 비참한가 그것이 1장부터 2장입니다.
1장은 이방인들의 비참함이고 이장은 유대인들의 비참함이죠.
그리스도 없으면 누구나 다 비참한 죄인이니까요.
그다음에 3장부터 8장까지는 이 비참한 죄인이 얼마나 확실하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가?
그것이 3장부터 8장까지입니다. 여기에
바울이 말하고 싶은 온갖 구원의 방법과 구원의 기쁨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모든 일들이 3장부터 8장까지 나오게 됩니다.
그다음에 9장부터 11장까지는 여러분 뭘까요?
9장부터 11장까지는 바울의 동적, 즉 이스라엘 사람들 택한 민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왜 이렇게 확실한 구원을 못 받았는가 그거예요.
바울이 아주 탄식합니다. 내가 내 동족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
그렇게 탄식하고 있어요. 9장에서 9장부터 11장까지는 왜 이렇게 확실한 구원을 내 동적인 유대인은 못 봤는가 그게 11장까지입니다.
그러면 뭐 남았습니까? 12장부터 16장까지는 이제 구원받은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
어떻게 살아야 되나 이렇게 살아야 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12장부터 16장까지입니다.
그래서 또 어떤 학자는 로마서를 둘로 가르는 학자는 또 이렇게 가르기도 해요.
1장부터 11장까지는 교리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렇게 구원을 받았다라는 이렇게 구원을 받는 교리편이고, 12장부터 16장까지는 실천편이다.
이제 구원받은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 실천적인 삶을 말하는 것이 12장 보도다.
이렇게 둘로 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금방 우리는 넷으로 갈라집니다.
그러면 여러분 로마서의 내용을 조금 더 잘 알게 되셨죠?
그러면 로마서 1장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로마서 1장에서 배울 영적 교훈이 어떤 것인가 로마서 1장은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이 그겁니다.
복음입니다. 복음은 이런 것이다. 복음을 정했어요.
사실 바울이 로마서 16장 전체에서 말하고 싶은 것도 역시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이런 것이다. 로마서 1장 2절에 보면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바울은 뭐라고 말합니까? 복음은 아들에 관한 약속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게 복음이다.
바울은 1장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유명한 그 누가복음 2장 10절 11절에 보면 목자들이 들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밤에 양을 치고 있는데 그때 천사가 나타나서 목자들에게 말합니다.
오늘날 너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 그랬어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뭡니까? 그게 복음입니다.
유앙겔리온 복음이에요. 큰 기쁨의 복음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
근데 그다음에 그 복음이 뭐라고 그랬어요? 오늘날 너를 위하여 구주관하셨다 그랬어요.
여러분 그러니까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오늘 너를 위하여 구주가 계시다.
이게 복음입니다. 너 지금 이대로 비참하게 살지 않아도 돼.
너 우주의 먼지처럼 살지 않아도 돼. 그냥 흙덩어리처럼 가치없게 오늘 살다가 사형수처럼 살다가 갑자기 죽어버린 그런 허전한 삶을 살지 않아도 돼.
오늘 너를 위하여 구주가 계시다. 그의 피로 너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신 구주가 오늘 너에게 계시다.
오늘 너에게 예수가 계시다. 하나님의 아들이 계시다.
그게 여러분 복음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로마서 1장에서 이 복음의 핵심을 한마디로 아주 명쾌하게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아들에 아들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아들에 관한 약속이다.
오늘 너를 위하여 구주가 계시다. 1장 17절을 보겠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16절에 보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여러분 왜 복음이 기쁜 소식입니까?
우리에게 믿는 우리에게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신다.
그랬기 때문에 그게 복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우리 로마서도 설명을 했지만 더 간단히 설명한 구절이 요한복음에 나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랬습니다.
여기에 믿음과 구원의 정의가 아주 명쾌하게 나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영접한다는 것이 무언가?
여러분 믿음 구원 완전히 이 모든 것들은 우리 그리스도교의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접도 이건 인격적인 관계죠. 기계를 영접하지는 않죠.
영접은 기쁨으로 어떤 인격적인 존재를 맞이하는 것이 영접입니다.
여러분 그게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깊은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 목숨 건 관계죠.
하나님께서 목숨을 걸으셨기 때문에 그런 깊은 관계 이 깊은 관계의 믿음 영접을 요한은 또 요한 계시록 3장 20절에 또 잘 말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내가 내 안에 내가 내 안에 같이 음식을 나누면서 깊은 인격적인 관계 이게 믿음입니다.
여러분 그럼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이런 관계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신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에 또 간단히 나와요.
거기에 보면 구원이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주는데 그 구원이 뭐예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만큼 큰 구원이 어디가 있습니까?
그보다 더 큰 특권이 어디가 있습니까? 영생 하나님의 자녀는 영생을 소유한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하나님의 자녀 그보다 더 친밀한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한테 너 구원받았냐 그렇게 물어보면 우물쭈물하지 말고 그 질문을 바꿔보시면 됩니다.
너 하나님의 자녀냐? 그렇게 물어보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소원하고 또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셨으니까 우리가 대답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1장의 전반부가 끝나고요. 그다음에 18절서부터는 1장 18절서부터는 분위기가 아주 바뀝니다.
17절까지는 복음의 기쁨과 즐거움 이 가득 차 있었는데 18절에서부터는 완전히 분위기가 바뀝니다.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요.
누구한테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가 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 복음을 막는 사람에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약속, 그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
그렇게 1장 후반부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들이 목숨을 걸고 구원한 것이 복음인데 그것을 거절한 그 값없이 준 은혜를 거절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을 가지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 로마서 1장의 후반부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 즉 복음 안에 살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진노 안에 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진노가 있을 뿐입니다.
가끔 젊은 대학생들이 저에게 말해요. 목사님 저는 아무래도 신학을 가는데 취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해요. 그때마다 제가 말해줍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취미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죽느냐 사느냐가 달린 문제다. 너 죽을래 살래 지금 결정해라.
제가 늘 그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건 엄숙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믿고 사는 것과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은 단순히 취미의 문제나 혹은 시간의 문제나 뭐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영생이냐 멸망이냐가 달린 문제죠.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하나님의 진노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왜 로마서 1장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복음이 나오다가 갑자기 진노가 나올까 싫어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진노도 없죠.
지금 우리에게 우리에게 있는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에게 오는 하나님의 진노는 그래도 자비가 섞인 진노입니다.
회개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호소하면서 하는 진노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이 호소가 끝나고 마지막 재림 때 마지막 심판 때는 자비가 섞이지 않는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에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 그날 우리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것이 로마서 1장이 우리에게 주는 엄숙한 기별 중에 하나입니다.
로마서 2장으로 들어가 봅시다. 로마서 2장에서 배울 교훈도 많습니다.
로마서 2장은 심판이 이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고 마침내는 심판이 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로마서 2장인데요. 유대인들은 자기들은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늘 심판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2장에는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누구에게든지 심판이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2장 6절에 보면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 그렇게 말씀했고요.
11절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다.
심판하실 때 외모라는 것은 얼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을 말하죠.
좋은 민족, 뭐 좋은 가정 그런 것에 따라서 심판하지 않으신다.
그다음에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심판하신다.
율법을 가진 사람은 율법으로 심판을 받는다. 그런 말씀도 나옵니다.
그러나 여러분 율법으로 심판받는다고 해서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행함으로 심판받는다고 해서 두려워할 것이 없어요.
율법이나 행함은 다 믿음, 믿음의 행함이고 믿음의 율법이죠.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받아들인 사람은 거기에 있는 대로 아무리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시지만은 7절에 보면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종기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심판은 복음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모든 것이 여러분 복음이에요.
그거 아십니까? 예수님의 탄생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죠.
예수님의 부활도 복음이고, 승천도 복음이고, 재림도 복음입니다.
예수님과 관계된 것은 다 복음이죠. 따라서 예수님의 심판도 복음입니다.
그 말이 어디 있는가? 로마서 2장에 있습니다. 16절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예수님이 우리를 심판하시는 그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심판하시는 그날, 그게 복음이다.
여기 16절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심판이 복음인가?
첫 번째로 심판의 날은 우리의 무죄가 확정되는 날이기 때문에 복음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지만은 여전히 죄인처럼 살고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들로 딸로 보시지만은 온 우주의 거인들과 사단은 아직도 이 고통 속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를 죄인으로 보죠.
또 우리가 언제 또 죄를 지을지 모르는 사람, 불쌍한 가련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죄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판의 날은 완전한 무죄가 온 우주에 선포되고 우리가 완전히 거기에서 벗어난 그런 기쁜 날이죠.
또 심판의 날이 왜 기쁜 날인가? 심판하시는 분이 나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심판의 날은 기쁜 날입니다.
왜 심판의 날이 또 기쁜 날인가 그날 예수님을 영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한테는 영원한 생명이 주님과 함께 사는 영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복음은 여러분 기쁜 날입니다.
우리 찬미가
157장에 기쁜 날 그 기쁜 날 찬미가 있죠. 기쁜 날 그 기쁜 날 주 예수 속히옵소서.
주 예수 옵소서. 여러분 주님께서 오시는 날 그날은 기쁜 날입니다.
심판의 날은 복음입니다. 그것이 로마서 2장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로마서 3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로마서 3장 1절에서부터 20절까지는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9절 보시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했다.
10절에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이렇게 죄의 보편성과 죄의 무서움이 로마서 3장 1절에서부터 20절 전반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우리가 죄인이 되었나 불공평하지 않은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는데 왜 그 후손이 다 죄인이 되었나 죄인이 된다는 것은 창조주가 피조물이 창조주를 떠난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존재가 바뀌는 것입니다.
노예는요
그 부모가 노예이면은 그 자녀들도 동시에 노예입니다.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아도 노예 그것이 존재의 무서움이죠.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똑같이 다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건 너무나 불공평하지 않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서 벗어날 길이 없어야 불공평하지. 하나님께서 즉각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건 불공평이 아닙니다.
이렇게 무서운 죄의 굴레 속에 우리 죄인이 살고 있지만, 3장 21절서부터 이렇게 비참한 죄인에게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용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주셨다.
그것이 3장 21절서부터 나타나는 구원의 위대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3장 24절. 구속이란 무엇입니까?
살 속자입니다. 값으로 사서 값으로 사서 구원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사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의 구원은 절대로 값싼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으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값싼 것이다.
여러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그렇게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생명이 바쳐졌습니다.
너무나도 비싼 것이죠. 값 비싼 것이죠. 우리들의 구원은 엄청난 것이죠.
그런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여러분 저는 구원에 대해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구원하겠다는데 무슨 이론이 그렇게 많습니까?
우리 역사에 보면 청나라가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60만 명을 노예로 잡아갔어요.
그때 우리나라 인구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60만 명을 잡아갔다 하는 것은 각 집에 안 잡혀간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청나라가 아예 노예가 필요해서 의도적으로 전쟁을 일으켜서 60만 명을 노예로 끌고 갔어요.
그래가지고
상으로 각 귀족들에게 나누어주고 남는 워낙 많이 잡아갔기 때문에 남는 노예들을 60만 명 중에서 그 중에서 상당수는 죽었습니다.
가는 길에 얼어죽기도 하고 병들어 죽기도 하고 그래도 많이 남으니까 대규모로 노예 시장에다 팔았어요.
그래서 중국 심양 같은 데는 조선인 노예를 위한 큰 시장이 벌어졌습니다.
그 당시 우리 조선에는 큰 비극이 생겼어요. 각 집마다 눈물이 통곡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들 딸들이 잡혀갔으니 그때부터 부모가 사는 것은 사는 게 아닙니다.
이건 지옥이에요. 그래서 모든 재산을 다 팔고 전답을 팔고 친척들까지 돕고 해서 돈을 가지고 아들과 딸을 혹시 노예 시장에서 다시 사올 수 있을까 싶어서 청나라로 청나라로 우리 한국 부모들이 갑니다.
그것을 우리 역사에는 속환이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역시 살 속 구속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서 데려온다 환 데려온다는 거예요. 그 당시 심양시장에서 조선인 노예가 100냥쯤 갔기 때문에
부모들이 백냥을 어떻게 어떻게 큰 돈을 준비해 가지고 전부 청나라로 떠나는데 청나라 마적들이 가만둡니까?
이 두만강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돈 짊어지고 우는 조선인 부모들이 수없이 도만강가에서 목숨을 잃었죠.
자식들을 보지도 못하죠. 살아서 겨우 심양시장과 기타 시장에 도착한 부모들은 자기 아들 딸을 찾아 헤맸습니다.
다행히 어느 귀족 집에 가지 않고 시장에 낳은 아들 딸들을 만난 부모들은 대성통곡하고 돈을 주고 그 아들 딸들을 소환했습니다.
여러분 그게 구속입니다. 그런데 100냥을 가지고 갔는데 400냥으로 이미 올라올 점점 올라가지고 나중에 400년까지 됐어요.
역사에 나옵니다. 참 비극이죠. 100년밖에 가지고 가지 못했는데 아무리 사정해도 안 돼요.
그 주인이 팔겠습니까? 40년에 팔 수 있는데 100냥에 팔겠어요?
그러면 부모들은 할 수 없이 자기들이 대신 노예가 되고 아들과 딸을 구현했습니다.
이게 속한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구원한다는데 무슨 이론이 필요합니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려면 우리의 우리를 대신해서는 안 되고 우리 대표자가 돼야 된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 돼야 된다.
그렇게 말하는데 여러분 노예는 노예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아버지 아버지도 노예처럼 돼봐야 나를 구원합니다.
여러분 그 아버지는 딸이 노예로 잡혀간 그 순간부터 노예보다 더 지옥 같은 삶을 살았어요.
더 큰 고통을 여러분 살아서 당했습니다. 노예가 돼봐야 내 사정을 안다.
여러분 부모 앞에서 그게 할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노예는 노예를 구원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이 수많은 조선의 부모들이 대신 노예가 되고 구했어요.
구해냈습니다. 이게 엄청난 구원입니다. 값싼 구원이 아니죠.
하나님께서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거기에 무슨 이론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구원하겠다는데 무슨 이론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이 로마서 3장의 아름다운 구원입니다.
우리는 로마서 3장까지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다시 한 번 깊은 감동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음으로 갑없이 구원을 받기 때문에 율법은 이제 필요 없는가 아닙니다.
믿음을 최고로 높인 곳에 율법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다. 이렇게 믿음을 최고로 높인 곳에 3장 31절에 보면 믿음을 최고로 높인 곳에서 율법을 바울은 또 최고로 높입니다.
31절에 보세요. 그런 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괴하느냐 율법을 폐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그러니까 여러분 믿음이 최고로 높고 하나님의 은혜가 최고로 높아지는 곳에 하나님의 율법도 최고로 높아집니다.
그게 여러분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율법이 없다면 무슨 십자가가 필요 있겠습니까?
율법이 파기됐기 때문에 죄인이 됐기 때문에 십자가가 필요한 것이죠.
거기에 믿음이 최고로 높아지는 것도 십자가입니다.
은혜가 최고로 높아지는 것도 십자가입니다. 율법이 최고로 높아지는 것도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율법이 필요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최고로 아름다운 곳에 율법도 최고로 아름답게 그래서 우리가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재림교인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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