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 나사로의 부활
인류 역사상 지상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 가장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장이 바로 요한복음 11장입니다. 11장을 1차시에 공부하고, 2차시에는 예수님의 3년 반 공생애 중 마지막 일주일이 시작되는 예루살렘 입성 사건을 다루겠습니다.
요한복음은 총 21장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사실 12장부터 마지막까지는 예수님의 수난 주간부터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때까지의 기록입니다. 불과 며칠 혹은 몇 달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12장부터 21장까지 이어집니다. 그 배경을 오늘 1차시와 2차시에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요한복음의 절반을 넘어서는 이 시점에서 근본적인 구조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생애의 기록은 총 네 권의 책, 즉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복음서는 크게 '공관복음'과 '요한복음' 둘로 나뉩니다. 마태, 마가, 누가를 공관복음(Synoptic Gospels)이라 부르는데, '공관(共觀)'이란 같은(Syn) 관점(Optic)으로 보았다는 뜻입니다.
반면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에 포함되지 않는 대단히 독특한 특징을 지닙니다.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죽으심과 부활까지 시간 순서에 따라 기록되었으며, 예수께서 인간으로서 인류를 위해 어떤 역할과 신분을 지니셨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마태는 '유대인의 왕', 마가는 '인류를 위한 종', 누가는 '인류의 친구인 완전한 인간'을 강조합니다. 반면 요한복음은 그분이 참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합니다. 만약 요한복음이 없었다면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고백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성경적 증거가 크게 부족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전체 내용은 1장 1절부터 18절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이 서론 부분은 요한이 생전에 직접 목격한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하는 영원 전부터 계신 로고스(말씀)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1장 18절 끝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자동사(나타나셨다)가 아니라 타동사(나타내셨다)입니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 하나님을 독생하신 하나님(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드러내 보여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의 본론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제1부 (1장 19절~12장):표적의 책 (Book of Signs)
제2부 (13장~20장):영광의 책 (Book of Glory)
결론 (21장):에필로그
여기서 '표적(세메이온, Semeion)'은 단순한 기적이나 이적이 아니라, 예수께서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리키는 영적 표지판입니다. 요한복음에는 7대 표적이 등장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 (2장)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표적 (4장)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표적 (5장)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신 표적 (6장)
물 위를 걸으신 표적 (6장)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실로암에서 고치신 표적 (9장)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 (11장)
지난 시간 맹인을 고치실 때 흙에 침을 뱉어 이겨 눈에 바르신 것은 창세기 2장 7절의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창조 사건을 상기시키며 예수님의 '재창조의 권능'을 보여주신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살펴볼 요한복음 11장의 나사로 부활 사건은 요한복음 제1부 표적의 책의 절정이자 마지막 일곱 번째 표적입니다.
또한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7대 자기 선언("에고 에이미", 나는 ~이다)이 있습니다.
- 나는 생명의 떡이다 (6:35)
- 나는 세상의 빛이다 (8:12)
- 나는 양의 문이다 (10:7)
- 나는 선한 목자다 (10:11)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25)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6)
- 나는 참포도나무다 (15:1)
오늘 본문에서 다섯 번째 선언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를 만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11장 본문을 보겠습니다. 총 57절로 구성된 긴 이야기 속에는 전체 맥락을 관통하는 네 가지 핵심어(Keywords)가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자 (필로스/친구, 3절, 11절):예수님과 나사로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영광 (4절, 40절):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께서 함께 얻으실 영광입니다.
빛 (9~10절):생명의 빛 되신 주님과 영적 낮 시간을 의미합니다.
생명 (25절):사망을 이기는 영원한 부활 생명입니다.
이 핵심어들은 모두 요한복음 서론인 1장 1절~18절에 등장하는 중심 개념들입니다. 따라서 11장의 나사로 부활 사건은 1장에서 선포된 '생명이자 빛이시며 영광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 속에서 최종적으로 확증되는 결정적 표적입니다.
1절과 2절을 보면, 베다니 마을에 사는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남매가 소개됩니다.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긴 여인으로 묘사됩니다. 마태복음 26장에서는 머리에 부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요한복음에서는 발을 씻겼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모순이 아니라 향유를 머리와 발에 모두 부었으며 복음서 저자들이 각자의 강조점에 따라 기록한 것입니다.
3절에서 자매들은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전갈을 보냅니다. 오빠의 이름 대신 '사랑하시는 자'라고 표현하며 주님의 사랑에 호소합니다.
4절에서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한 구절 안에서 성부 하나님의 영광과 성자 예수님의 영광이 동시에 언급된 곳은 성경 전체에서 이곳뿐입니다. 이는 곧 있을 십자가와 부활 사건, 즉 '영광의 책(13~20장)'을 미리 보여주는 복선(Foreshadowing)이며 성부와 성자의 동등한 신성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6절을 보면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십니다. 왜 즉시 가지 않고 이틀을 지체하셨을까요? 당시 팔레스타인의 덥고 습한 기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3일 이내에 장례를 치렀고, 3일이 지나면 시신이 완전히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 이틀을 지체하심으로써 나사로는 완전히 죽어 무덤에 있은 지 나흘(17절)이 되었습니다. 이는 기절했던 사람을 깨운 것이 아니라, 완전히 사망하여 부패가 진행된 시신을 살려내심으로써 예수님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도록 확증하기 위한 섭리였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유대로 가자고 하시자 제자들은 방금 전까지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했는데 왜 또 가시냐고 만류합니다(8절). 이에 예수님은 낮 12시의 비유를 들어 생명의 빛이신 주님이 함께 계실 때 사역을 감당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9~10절).
11절에서 주님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고 하십니다. 나사로는 '우리 모두의 친구(사랑의 대상)'이지만, 사망의 잠에서 그를 깨울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자신(내가 깨우러 가노라)'뿐임을 명확히 선언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육체적인 수면으로 오해했으나, 주님은 14절에서 "나사로가 죽었느니라"고 분명히 밝히십니다. 15절에서는 이 표적의 세 번째 목적으로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쌍둥이라는 뜻의 별명을 가진 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16절)고 외칩니다. 이는 비아냥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결단과 충정의 표현이었습니다.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 나사로는 이미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을 맞이하며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21절)라고 탄식합니다. 주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23절)고 위로하시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24절)라며 요한복음 6장에서 가르치셨던 종말론적 부활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위대한 다섯 번째 자기 선언을 선포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절).
이 말씀은 영생을 얻은 자는 육체적인 첫 번째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부활할 것이며, 결코 영원한 멸망인 '둘째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는 부활 생명의 절대적 약속입니다.
이 선포를 들은 마르다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27절).
이 고백은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요 20:31)과 정확히 일치하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온전한 신앙고백입니다.
이어 마리아도 달려와 엎드려 울었습니다. 33절에서 예수님은 마리아가 우는 것과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통분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여기서 '통분히 여기다(엠브리마오마이, Embrimaomai)'는 깊은 고통과 함께 맹렬한 분노를 느끼는 상태를 뜻합니다. 나사로를 잃고 슬퍼하는 유족들의 고통을 보시며 깊이 아파하셨고(고통), 생명의 주관자가 바로 앞에 있음에도 끝내 믿지 않고 거짓 눈물을 흘리며 비아냥거리는 자들의 영적 불신과 사망의 권세를 보시며 분노하신(통분) 것입니다.
35절에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는 성경에서 가장 짧은 구절(Jesus wept)이 등장합니다. 주님의 눈물은 사랑하는 자의 슬픔에 공감하시는 긍휼의 눈물이자, 죄와 사망의 세력에 짓눌린 인간을 향한 거룩한 분노의 눈물이었습니다.
무덤에 이르러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39절)고 명령하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전능하신 주님께서 돌문 하나를 직접 치우실 수 없어서 사람에게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기적의 현장에 인간이 믿음으로 순종하여 동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마르다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난다고 주저하자, 주님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40절)고 격려하십니다.
사람들이 순종하여 돌을 옮겨 놓자,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43절) 하고 부르십니다. 이는 죽은 나사로 들으라고 지른 소리가 아니라, 둘러선 무리에게 생명의 창조주이자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선포였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걸어 나왔습니다.
이 엄청난 표적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요한복음 12장 10절을 보면 대제사장들이 예수님뿐만 아니라 살아난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합니다. 증거가 부족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기로 완고하게 결심한 자들은 명백한 부활의 증거마저 없애려 한다는 인간의 완악함을 보여줍니다.
핵심 요약 정리
요한복음의 구조적 위치와 11장의 의의
표적의 책 결론:요한복음 1~12장(제1부 표적의 책)의 마지막이자 절정에 해당하는 '일곱 번째 표적'입니다.
요한복음 1장의 성취:서론(1:1~18)에 등장하는 핵심어(사랑, 영광, 빛, 생명)가 11장의 나사로 부활 사건을 통해 역사 속에서 완전히 확증됩니다.
나사로 부활 표적의 3대 목적
성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 (4절)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을 예표하기 위함 (4절)
제자들과 무리로 하여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 (15절)
주요 사건과 신학적 메시지
이틀을 지체하심:온전한 사망(나흘)을 확인하여 기절이 아닌 완전한 부활임을 확증하기 위한 섭리적 조치입니다.
부활과 생명의 선포:"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25절) 선언을 통해, 믿는 자에게 임할 부활과 둘째 사망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마르다의 신앙고백:"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27절)라는 고백은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20:31)과 완전히 일치하는 대표적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의 눈물과 통분:유족의 아픔을 함께 슬퍼하시는 긍휼(고통)과, 인간을 억누르는 사망 권세 및 불신앙을 향한 거룩한 분노(통분)의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하나님의 구원과 기적의 역사에 인간의 믿음과 순종으로 동참할 것을 요구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