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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요본품(了本品)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라는 호칭이 보살이 되는 것입니까?
그 글 구절의 뜻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란 구절[句]의 뜻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도라는 것에는 구절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나라 할 것도 없는 것이다.
보살이라고 하는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새가 허공을 날지만 발자취가 있지 않은 것처럼
보살이란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꿈과 같고 환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여래가 변화한 것과 같아서 무소유이니,
보살의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법성과 진제(眞際)도 또한 무소유이다.
비유하면 환사(幻士)가 5음을 얻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처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마하살이란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환사가 내외에 공을 행하는 것과 같으니,
또한 무소유이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환사가 6바라밀과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행하는 것과 같아서 있는 것이 아니며,
보살의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부처님께서 5음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5음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지만
보살이란 글귀의 뜻은 볼 수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달살아갈(怛薩阿竭)·아라하(阿羅訶)·삼야삼불(三耶三佛)의
6정(情)이 무소유인 것처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부처님께서 내외공을 행하는 것과 같아서
그 끝[際]을 볼 수 없는 것이다.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행하는 것도 볼 수 없는 것이니,
보살이란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성품도
또한 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처럼
짓는 것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으며
단절하는 것도 없는 것이니, 그 뜻은 또한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고
있지도 않고 짓지도 않는 것입니까?”
“5음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또한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단절되지도 않으며,
또한 볼 수 없는 것이다.
18성·6정·6쇠·5음도 볼 수 없는 것이며,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집착할 것도 없으며
집착도 없고 끊어버릴 뜻도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의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은
본래 청정해서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란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아(我)가 청정한 것처럼
아에 변제(邊際)가 있지 않으므로
우리의 수명도 청정해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중생이 변제가 없으므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해가 뜰 때
모두 어두운 자취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천지겁(天地劫)이라 해서
불이 타오를 때에 세간에 있는 모든 것은 모두 다 타서
그 자취를 볼 수 없는 것처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세존께서 계(戒)를 구족하셨을 때에
악계(惡戒)의 자취는 다시 나타나지 않고,
삼매를 얻으면 어지러운 뜻의 자취는 다시 나타나지 않고,
지혜를 얻으면 어리석음[愚癡]의 자취는 없고,
해탈을 얻으면 해탈하지 못한 자취는 다시 볼 수 없고,
이미 해탈의 지혜를 보았으면 해탈하지 못한 지혜는
다시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불광(佛光)이 나올 때에
일월(日月)과 도리(忉利)의 모든 천왕과
아가니타천의 광명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그 글귀의 뜻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도라는 것과 보살·보살의 뜻은
또한 합하지도 않고 또 흩어지지도 않으며,
형상이 없어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상대[對]가 없는 한 가지 모양[一相]이며,
한 가지 모양은 곧 모양이 아니다.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모든 법에 집착하는 바가 없음을 배워야 하며,
또한 마땅히 모든 법을 깨달아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모든 법이며,
어떤 것이 보살이 모든 법에 집착함이 없음을 배우는 것이며,
어떤 것이 보살이 모든 법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란 이른바
선법(善法)·악법(惡法)·기법(記法)·미기법(未記法)·
속법(俗法)·도법(道法)∙유루법(有漏法)·
무루법(無漏法)·유위법·무위법이다.
이것을 보살이 마땅히
모든 법에 집착이 없음을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세속의 선법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세속의 선법이란 부모에게 효순(孝順)하고
사문과 도인에게 공양하고,
장로(長老)를 양육하고
모든 복을 베풀고 몸을 단속하여 수절하고,
정근하고 선한 뜻을 생각하고
방편으로 10선(善)을 수행하는 것,
속인의 내상(內想)·부패상(腐敗想)·청어상(靑瘀想)·
혈상(血想)·식불초상(食不消想)·어지러운 상(亂想)·
골상(骨想)·반초상(半燋想)·4선(禪)·4등(等)·
4무형선상(無形禪想)·불상(佛想)·법상(法想)·
비구승상(比丘僧想)·계상(戒想)·시상(施想)·천상(天想)·
정근상(精勤想)·안반상(安般想)·신상(身想)·사상(死想)을 말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을 세간의 선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세속의 악법입니까?”
“살생하는 것·도둑질·음욕·성내는 것·악구(惡口)·
망언(妄言)·기어(綺語)·질투·사견 등을 세속의 악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기법입니까?”
“선법이든 선법이 아니든 이것을 기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미기법입니까?”
“신(身)·구(口)·의(意)가 있지 않고,
4대(大)가 있지 않고,
5음·18성(性)·12쇠(衰)가 있지 않은 것을 미기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세속법입니까?”
“5음·12쇠·18성·10선(善)·4선(禪)·4등·
4무형선을 세속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도법입니까?”
“37품·3해탈문·3근(根)·3삼매(三昧)·해탈섭의(解脫攝意)·
8해탈문·9차제선(次第禪)·18공(空)·부처님의 10력·
4무소외(無所畏)·부처님의 18법을 도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누법(漏法)입니까?”
“5음·12쇠·18성·12인연·4선·4무형선을 누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루법입니까?”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무루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위법입니까?”
“욕계(欲界)·형계(形界)·무형계의 37품,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을 유위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위법입니까?”
“무위법이란 생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멸하는 것도 아니며,
마침[終]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시작이 있는 것도 아니며,
상주(常住)하여 변화도 없고,
음욕·성냄·어리석음이 다하여
법성과 진제(眞際)와 같아 다름이 없는 것을
무위법이라고 한다.”
“보살마하살은 공상(空相)의 법에 집착함이 없으며,
경동(傾動)함이 없으며,
모든 법이 둘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마하살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대중들에는
반드시 상수(上首)가 있으므로 마하살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중생이 상수가 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대중이란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
처음 발심한 보살마하살에서
아유월치지에 머무는 자에 이르기까지가 대중의 모임이며,
이 가운데서 보살이 상수이며,
이 가운데서 마땅히 금강의 뜻[金剛意]을 발하여
곧 상수가 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금강의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다음과 같이 뜻을 발해야 한다.
‘나는 마땅히
한량없는 생사를 받는 동안 정진행을 지을 것이다.
나는 마땅히 중생을 위해서 일체의 소유(所有)를 버릴 것이다.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들에게 마음을 평등히 할 것이다.
나는 삼승으로써 중생을 제도하며 해탈케 하고,
반니원(般泥洹)에 이르게 할 것이며,
또한 중생이 반니원에 드는 것을 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모든 법이 어느 곳으로부터 와서
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항상 살운야혜(薩云若慧)의 뜻으로 6바라밀을 행할 것이다.
나는 마땅히 배워서 반드시 일체를 구할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이 금강의 뜻을 발한 것이라고 한다.
즉 대중을 위하는 최고의 상수가 되는 것이다.
보살이 다시 다음과 같이 뜻을 발해야 한다.
‘나는 마땅히 니리(泥犁:지옥)와
벽려(薜荔:축생)에서 죄인이 받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나는 마땅히 중생을 위해서
무량한 겁 동안 고통을 대신 받을 것이며,
중생으로 하여금 무여니원(無餘尼洹)과
반니원에 이르게 한 후에
나 자신 스스로 몸으로 선한 근본을 지어
억백천 겁 후에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이 금강의 뜻을 발한 것이며,
대중들 가운데 상수(上首)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보살은 마땅히 묘의(妙意)를 가지며 묘의로써
중생 가운데 상수가 되는 것이다.
처음 뜻을 발한 이래로
또한 음욕·성냄·어리석음의 뜻을 일으키지 않고,
또한 중생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고,
또한 성문·벽지불의 뜻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묘한 뜻을 가져서
대중 가운데서 상수가 되는 것이라고 하며,
또한 스스로 높이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보살은 마땅히 살운야의 뜻에서 동요하지 않고,
또한 스스로 높이지도 않는다.
보살은 항상 중생을 호념(護念)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또한 중생을 버리지 않는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법을 행하니,
응당 법락(法樂)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법락입니까?”
“그 아는 바를 따라서 외우고 수지하며,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법공(法空)에 머물고,
대중을 위해서 인도하지만 또한 의지하지도 않고,
또한 얻을 것도 없는 것이다.
보살은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머물고,
대중을 위해서 상수가 되지만 의지함도 없고,
어떠한 소견도 없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금강과 같은 삼매를 행함에 머물고
나아가 허공 끝이 다하도록 물들지 않는
해탈삼매를 체득하여
곧 대중 가운데 상수가 되지만 얻을 바도 없고,
또한 의지할 것도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이와 같은 법지(法地)에 머무므로
곧 능히 중생을 위해서 상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살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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