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華藏娑婆 就相說異 以相從性 無礙圓融.
85) 사구(四句):존재에 대한 4종의 분류법이다. 즉 존재를 유(有), 무(無),
역유역무 (亦有亦無), 비유비무(非有非無)의 4종류로 나누어 고찰하는 것이다.
86) 염정사구(染淨四句)와 통국사구(通局四句)는
징관(澄觀)의『대방광불화엄경소 (大方廣佛華嚴經疏)』(권1 大35 p.505b13~20. 或唯染, 摩竭等覆淨相故.
或唯淨, 其地金剛染相盡故. 或俱, 隱顯無礙故. 或俱非, 各相形奪二相盡故.
次明通局交徹二四句者. 謂或局, 此一界故. 或通, 該十方故. 或俱,
卽此卽遍故. 或泯, 二相盡故. 又或局, 此界攝一切故. 或通, 此入一切故.
或俱, 卽攝卽入故. 或泯, 形奪相盡故.)의 내용과 유사하고, 의정사구
(依正四句) 또한 같은 책의 내용
(『大方廣佛華嚴經疏』 권1 大35 p.504b13~15.
有四句. 一或唯依, 佛卽剎故. 二或唯正, 剎卽佛故. 三俱. 四泯. 思之可知.)과
유사하다. 그런데 표원의 활동 연대가 740년 전후이므로 이 글을 저술할
당시에 징관의『대방광불화엄경소』를보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사구(四句)의 내용은
『화엄경탐현기』등에서 취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일치하는 문장은 보이지 않는다.
김천학, p.37 주 84) 참조.
問, 說此經處, 爲淨爲穢耶?
묻는다. 이 경전을 설하는 곳은 정토인가, 예토인가?
答, 設爾何失.
답한다 어디라고 한들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問, 二俱有過. 謂若是穢, 不現寶池寶樹, 亦不應言‘爾時華藏世界六種振動’. 若是淨者, 說九會處, 何故皆在娑婆人天?
묻는다. 둘 다 잘못이 있다. 만약 예토라고 한다면 보배연못과 보배나무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게다가 “이때에 화장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82)하였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만약 정토라면 설한 9회의 장소가 어찌하여모두 사바세계인 인간과 천상에 있는가?
.答, 慧苑師云,“ 華藏娑婆, 就相說異, 以相從說性, 無礙圓融也.”
답한다. 혜원(慧苑)83)스님은 말하기를, “화장세계와 사바세계는 그 모습으로 보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모습의 본성에서 본다면 걸림 없이원융하다.”84)라고 하였다.〈雖有此說, 無分明也.〉
〈비록 이러한 말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하지 않다.〉
法藏師云,“ 有數四句. 一染淨四句.
법장스님은 말하기를, “몇 가지 4구(四句)85)가 있다.
첫째, 염(染)과 정(淨)의 4구이다.
或染, 謂摩竭提國, 七處九會等, 覆淨相故.
첫째는 염이니, 마가다국의 7처 9회 등은 정상(淨相)을 덮기 때문이다.
或淨, 謂華藏海, 其地 金剛等, 染相盡故.
둘째는 정이니, 화장세계해는 그 자리가 금강처럼 견고하여
염상(染相)이 다 없어지기 때문이다.
或俱, 謂華藏內娑婆界, 染淨存泯, 隱顯無礙.
셋째는 둘 다 갖춤이니, 화장세계 안의 사바세계는
염과 정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여 숨고 나타남에 장애가없다.
或俱非, 謂染淨相盡, 同一法界, 各相形奪, 二相盡故.
넷째는 둘 다 갖추지 못함이니, 염과 정의 모습이 다한 동일한 법계
에서는 각각의 모습이 형태를 잃어 두 가지 모습이 다 없어지기 때문이다.
二通局四句. 或局, 謂此一界. 或通, 謂該於十方.
둘째 통은 이 세계가 일체 국토에 들어가고,
또 이 하나하나의 티끌 등이 모두
일체 모든 국토의 티끌 등에 통하는 것을말한다.
或俱, 謂要具前二.
셋째 둘 다 갖춤은 포섭하고 들어감이 함께 나타남을 말한다.
或俱非, 謂相盡歸性.
모습이 없어져 둘 다 사라짐을 말한다.
或局, 謂此處攝一切刹, 又此處一一塵等, 皆攝一切無邊刹海.
첫째 국은 이곳이 일체의 국토를 포섭하고,
또 이곳의 하나하나의 티끌 등이
모두 일체의 끝없는 국토의바다를 포섭한 것을 말한다.
或通, 謂此界入一切刹, 又此一一塵等,
둘째, 통(通)과 국(局)의 4구이다.
첫째는 국이니, 이 하나의 세계를 말한다.
皆通一切諸刹塵等.
둘째는 통이니, 시방의 세계 모두를 말한다.
하나와 시방의 세계를 다 갖춘 것을 말한다.
或俱,
셋째는 둘 다 갖춤이니,
謂攝入俱現.
넷째는 둘 다 갖추지 못함이니,
모습이 다하여 본성으로 돌아간 것을 말한다.
或俱非,
넷째둘 다 갖추지 못함은
謂形奪雙泯. 三依正四句.
셋째, 의(依)와정(正)의 4구이다.
或正在依,
첫째는 정이 의에 있는 것이다.
謂佛在坐等,
부처님께서 자리에 계시고,
又佛卽刹故.
또 부처님이 곧 국토이기 때문이다.
或依在正,
둘째는 의가 정에 있는 것이다.
謂刹居佛內, 又刹卽佛身故.
국토가 부처님 안에 있고, 또 국토가 곧 부처님의 몸이기 때문이다.
或俱.
셋째는둘 다 갖춤이고,
或非.”〈並准思之〉
넷째는 둘 다 갖추지 못함이다.〈아울러 준거하여 생각하라.〉”86)라고 하였다.
87) 이 부분의 문답은 법장의『화엄경지귀(華嚴經旨歸)』(大45 p.590a13~b11)에 있는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설한 바”의 의미는 본문의 사구(四句)에대한 것이 아니라『화엄경지귀』의 문장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즉『화엄경지귀』 에서는,『화엄경』은 일체의 모든 장소에서 동시에 설해졌다고 설명한 이후에
“만약 위에서 설한 바와 같다면 7처 9회가 모두 서로 뒤섞여 혼란할 것이다.”라 고 질문하고 있다.(김천학, p.40 주 93)
88) 어리석은 범부[毛道]: bāla-prthag-jana의 한역인 모도범부(毛道凡夫)의 줄임말로서 어리석은 범부라는 뜻이다.
89)『화엄경』의 7처 9회에서, 제3회에는 도리천궁에서 십주법을 설하였고,
제4회에는 야마천궁에서 십행법을 설하였는데, 그것을 말한다.
90) 진도(塵道):예토(穢土)와 같은 의미로서, 번뇌에 가득 차 있는 세계를 말한다.
問, 若如上說, 則七處九會, 皆悉雜亂.
묻는다. 만약 위에서 설한 바와 같다면87) 7처 9회가 모두 서로 뒤섞여 혼란스러울 것이다.
如忉利天說十住時, 旣遍虛空, 周側毛道. 未知夜摩等處亦說住不.
예를 들면, 도리천에서 십주를 설할 때 이미 허공에 편만하여
한 명의 어리석은 범부[毛道]88)에까지 이르렀다고 하였다. 그런데
야마천 등에서 십주를 설하였는지, 설하지 않았는지 알지 못하겠다.
答, 設爾何失.
답한다. 어느 쪽이라 한들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問, 二俱有過. 謂若彼不說, 則說處不遍, 若彼亦說, 何故, 經中唯云,“ 忉利說十住法, 夜摩等處說十行”等?
묻는다. 둘 다 잘못이 있다. 만약 그곳에서 설하지 않았다면 설한 곳이편만하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그 곳에서도 설했다면 무엇 때문에 『화엄경』에서 다만 “도리천에서는 십주법을 설하였고
야마천 등에서는 십행 등을 설하였다”89)고 하겠는가?
答, 此說十住, 忉利天處,旣遍十方一切塵道.是故夜摩等處,皆有忉利.
답한다. 여기서 십주를 설한 도리천은 이미 시방의 모든 진도(塵道)90)에
편만해 있다. 그러므로 야마천 등에는 모두 도리천이 있는 것이다.
卽於如是遍夜摩等忉利天處, 說十住法, 是故忉利無不普遍,
즉 이와같이 야마천 등에 편만한 도리천에서 십주법을
설하였으므로 도리천이널리 편만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仍非夜摩. 夜摩等處說十行等,皆亦遍於忉利等處,仍非忉利.
그러나 도리천이 그대로 야마천이 되는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야마천 등에서 십행 등을 설한 것도 모두 도리천등에 편만하나
야마천이 그대로 도리천이 되는 것은 아니다.
當知亦爾. 若約十住與十行等, 全位相攝,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만약 십주와 십행 등의
모든 계위가 상호 포섭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則彼此互無, 各遍法界, 若約諸位相資, 則此彼互有, 同遍法界.
피차가 없게 되어 각각 법계에 편만하고, 만약 모든 계위가
서로 돕는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피차가 있게 되어 함께 법계에 편만하다.
餘一一品一一處, 皆亦如是.
나머지 각각의 품에 있는 각각의 곳도 모두 이와 같다.
問, 餘佛說處, 與舍那說, 爲相見不?
묻는다. 다른 부처님이 설한 곳과
노사나불이 설한 곳은 서로 보는가? 보지 않는가?
答, 設爾何失
답한다. 어느 쪽인들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問, 二俱有過. 謂若相見, 卽乖相遍, 若不相見, 不成主伴.
묻는다. 둘 다 잘못이 있다. 만약에 서로 본다면 서로 편만함에
어그러지고, 서로 보지 못한다면 주인[主]과 손님[伴]91)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答, 互爲主伴, 通有四句.
답한다. 서로 주인이 되고 손님이 되는 것에는 통틀어 4구(四句)가 있다.
謂主主不相見, 伴伴亦爾, 各遍法界,彼此互無, 故無相見.
주인과 주인이 서로 보지 못하고, 손님과 손님도 또한 그러하니,
각각 법계에 편만하여 피차가 서로 없으므로 서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主之與伴, 其必相見, 伴主亦爾,
주인은 손님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서로 보고,
손님은 주인과의 관계에서 또한 그러하니,
共遍法界, 此彼互有, 故無不見.
모두 법계에 편만하여 피차가 서로 있으므로
서로 보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如舍那爲主, 證處爲伴,
예를 들면 노사나불이 주인이 되고 증득한 곳이 손님이 되어
無有主而不俱伴. 故舍那與證處, 同遍法界.
주인이없으면 손님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노사나불과 증득한 곳은 동시에 법계에 편만하다.
設於東方, 證法東處, 彼有舍那. 還有東方而來作證.
가령 동쪽에서 보면 법을 증득한 곳이 동쪽이니,
거기에는 노사나불이 있다.
즉 동쪽이 있고 노사나불이 그곳에 와서 증득한 것이다.
如是一一, 遍周法界, 一切塵道, 無障無礙. 思之可見.
이와 같이 하나하나가 법계에 편만하며 일체의 예토에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다. 생각하면 알수 있을 것이다.
91) 주인[主]과 손님[伴]:
주체와 그에 딸린 것. 주체와 종속. 화엄학에서 법계연기(法界緣起)를 말할 때
이것이 주(主)가 되면 저것이 반(伴)이 되고, 저것이 주가되면 이것이 반이 되어,
이와 같이 주와 반이 갖추어져 덕을 포섭함이 무진한 것을 주반구족(主伴具足)이라고 한다.
또 만유가 각각 주가 되고 반이 되어 상즉상입하여 중중무진한 것을 주반무진(主伴無盡)이라 한다.
이런 설명은 화엄 법계연기의 내용을 설하는 십현문(十玄門)의 하나인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을 가리킨다.
92)『화엄경』(60) 권3「노사나불품」大9 p.410b27~28. 一一微塵中,
佛國海安住. 佛雲遍護念, 彌綸覆一切.
93)『화엄경』(60) 권3「노사나불품」 大9 p.410c22~24. 一毛孔中, 無量佛剎, 莊嚴淸淨,
曠然安住, 彼一切處, 盧舍那佛, 於衆海中, 演說正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