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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국사는 조선 현종의 딸인 명혜(明慧)와 명선(明善) 두 공주가 병에 걸려 잇달아 세상을 떠나자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실 주도로 창건하였다.
각종 기록에 봉국사를 1674년 새로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데, 대광명전의 목재 연륜연대 조사에서 주요부재가 17세기 후반의 것으로 확인되어 봉국사 창건과 함께 세워진 불전임을 알 수 있다.
봉국사 대명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5량가 구조이며 공포는 익공(翼工, 기둥머리 위에서 보를 받치는 새의 날개 형상을 한 초각 부재로 공포 형식의 하나)계의 겹처마 박공지붕 집이다. 17세기에 흔하지 않은 출목익공식의 공포구성을 갖추고 있다. 출목익공은 17세기 초 종묘 정전에서 나타나지만, 불전에서는 흔한 사례가 아닌데, 현재 이 건물의 잔존 상황을 고려하면 17세기 후반 건립 시점에서는 출목익공(도리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 밖으로 돌출된 형태)의 팔작지붕 형태 건물로 조성되었다고 판단된다.
현재 공포의 모양과 장식은 19세기의 시대 특징을 보인다. 살미가 바깥으로 길게 뻗어 있고 살미 끝에 연꽃 장식이 올라있고 상부 제공은 용머리 조각을 두는 등 19세기 전형적인 장식적 모습을 취하였다. 또한 귀공포는 익공식이면서 다포식의 귀포 구성을 연상시키는 방식을 갖추고 있는데, 이런 형태들은 이 건물의 공포가 19세기에 와서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내부 닫집의 화려한 구성은 이 건물이 왕실의 지원 아래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며 불상을 중심으로 주변의 장엄을 돋보이게 치장한 방식은 조선후기 불전의 사례의 하나로 평가된다.
봉국사 대적광전, 보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09호
성남 봉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木造阿彌陀如來坐像)
이 불상은 높이가 112cm인 중·대형 불상이며,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손 모양은 통인(通印)을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나발(螺髮)이 있고, 정수리에는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肉髻)가 있다.이마 위에는 반원형의 중앙 계주(髻珠)가, 정수리 부위에는 낮은 원기둥 모양의 정상 계주가 장식되어 있다. 네모난 얼굴에 가늘게 뜬 눈, 원기둥 형태의 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입은 17세기 전반 불상의 전형적인 인상과 같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완만한 곡선으로 새겨져 있어 1600년부터 1630년대에 제작된 불상의 표현과 유사하다.불상의 얼굴에 비하여 신체가 크지만 얼굴과 신체 비율은 인체의 비율보다 균형 잡혀 있다.불상은 대의(大衣) 안쪽에 편삼(褊衫)을 입고 있으며, 오른쪽 어깨의 옷자락이 가슴까지 수직으로 늘어져 옆으로 펼쳐져 있다. 또한 나머지 대의 자락은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 있고, 하반신을 덮은 대의 자락은 복부에서 수직으로 늘어져 있으며 끝부분은 역삼각형 모양이다.불상의 옆면은 한 가닥의 옷 주름이 어깨선을 따라 수직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불상 뒷면의 목둘레에는 대의 끝단이 둘러져 있고, 왼쪽 어깨에는 앞에서 넘어온 옷자락이 대좌 위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가슴을 덮은 승각기(僧却崎)는 수평으로 묶여 있으며 윗부분은 연꽃잎 모양으로 접혀 있다.불상의 양식적인 특징으로 볼 때 17세기 전반에 활동한 조각승 수연이나 그 계보를 잇는 조각승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성남 봉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시대성, 희귀성, 예술성, 보존 상태의 측면에서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 연구에 대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7월 22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09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10호
성남 봉국사 아미타불회도(阿彌陀佛會圖)
성남 봉국사 아미타불회도는 현재 주불전인 대광명전의 후불도(後佛圖)로 걸려 있다.
화기(畵記)에 따르면 1873년에 삼각산 흥천사에서 제작하여 영장산 봉국사에 모셔진 것으로 보인다.크기는 가로 216.5cmm, 세로 176cm이며 가장자리는 흰색과 청색으로 꾸몄다. 이처럼 주불전 후불도가 가로로 길어지고 가장자리를 청색으로 마감하는 방식은 19세기 후반 불화의 특징이다.불화의 중앙에는 설법인(說法印)의 손 모양을 한 아미타불이 불단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여래 좌우로 6위의 보살이 있다. 이 중 존명을 알 수 있는 보살은 민머리에 육환장(六環杖)을 든 지장보살뿐이며, 그 외에는 존상의 형상이 명확하지 않아 존명을 단언하기 어렵다.이처럼 불화에서 주존 혹은 협시 보살의 모습이 모호해지는 경향은 19세기 불화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화기는 봉안 위치와 의례적 용도만을 의미하는 상단탱으로 기록되며, 이 아미타불회도 역시 화기에 상단탱이라 기록되어 있다. 한편, 아미타불의 광배(光背) 뒤로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있으며, 그 옆으로 10대 제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경전을 보거나 호랑이와 과일을 들고 있다.불화의 상단 및 하단에는 부처를 수호하는 호법신, 즉 검, 비파, 용과 여의주, 탑과 당을 든 사천왕과 사자관, 코끼리관을 쓴 야차와 건달바가 있다. 여래와 나한은 얼굴이 타원형이고, 눈을 가늘게 떴으며 코가 길고 입은 작은데, 이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 서울·경기권에서 유행하던 화풍이다.이에 반해 보살과 사천왕 등은 얼굴이 둥글고 눈이 커서 19세기 후반의 화풍도 나타난다. 즉, 봉국사 아미타불회도는 19세기 전반의 화풍을 따르면서도 1870년부터 새롭게 선호되었던 화풍을 수용하고 있으므로 19세기 경기 지역에서 유행하였던 화풍이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주존인 아미타불의 신광(身光)에는 금색이 칠해져 있어 화려하며, 불화의 주된 색인 붉은색과 녹색이 각 존상의 광배와 의복에 칠해져 있다.또 19세기 후반에 모든 불화에 사용되었던 채도와 명도가 높은 청색, 소위 코발트블루가 사용되었으며 보조색으로 황토색이 사용되었는데, 특히 황토색 바탕에 흰 연꽃이 그려진 탁의(卓衣)에는 당시의 대표적인 표현 기법이 나타난다.
이 불화는 화승 덕운긍윤이 책임을 맡아 제작한 유일한 불화로서 화면 구성이 안정되고 존상 묘사가 뛰어나며 세부 묘사가 정교하여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경기도 불화 중에서도 수준이 높다. 또한 독특한 인물 묘사 및 색채 사용 등에서 19세기 후반 경기 지방의 지역색이 드러난다.이처럼 봉국사 아미타불회도는 19세기 후반 경기도에서 제작된 불화 중 구성 및 표현 등이 우수하여 시대성, 희귀성, 예술성, 보존 상태의 측면에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7월 22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10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에서 22.12월
보물로 승격됨
주차장에서 바로 들어가면 휴휴당을
만나볼 수 있다.
바로 옆계단을 올러가면 봉국사 시야가
확트인다.
🎋회주스님 인사말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간절한 마음으로 외우면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태어나 성불을 하게 됩니다.
본 사찰은 1028년 고려 현종 때 창건되었으며, 1673년 조선 현종이 일찍 세상을 떠난 딸 명혜와 명선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창한 후 ‘봉국사’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봉국사는 성남시 유일의 건축문화재인 ‘대광명전’을 주법당으로 하고 있으며, 주불로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공주들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마음에서 중창되었기 때문에 아미타부처님을 모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명일 것입니다.
봉국사는 여러분들이 극락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뗏목이 되겠습니다.
극락세계를 노래하는 대표적인 경전인 무량수경에서는 누구든지 아미타불을 믿고 그 이름만 부르면 곧바로 정토에 태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선인과 악인, 현명한 이와 어리석은 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일심으로 염불만 하면 임종 때에 아미타불이 직접 정토로 인도해 간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봉국사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미타도량으로서의 중역을 맡는 사찰로 도약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봉국사 신도들은 물론 방문하여 기도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성불의 씨앗을 심어주는 대도량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불자님들도 신심으로 한 마음이 되어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불교조계종 봉국사
회주 혜일慧日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