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문 엘레지
내 유럽 여행은 치부를 덮는 것처럼 조용조용 이루어졌다. 내가 세상의 바다에 나가 풍랑과 파도, 일방적으로 받는 상처에 휘둘리며 힘들어할 때 세상의 모든 사람은 여행사 이름표를 달고 유럽으로 유럽으로 몰려나갔다. 동유럽, 북유럽, 서유럽, 벌써 10년 20년 전 이야기다. 난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담담했다. 때때로 개선문을 그리워했고 주인공 라빅이 마시던 깔바도스, 베르무트, 압생트 같은 술들이 궁금해서 잠깐씩 우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쓰라린 현실은 그것마저 마냥 놔두진 않았다. 무엇 보다 비워 둘 수 없는 매장 일이나 내가 쉬면 안 되는 각박한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결국, 여행이란, 결핍이 많고 여유가 없는 사람은 엄두도 못 내는 일이었다. 그게 돈이든 시간이든 같은 이유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지 못하는 건 사실 이었다.
북유럽의 뭉크와 백야
동유럽의 야경과 현실감 없는 지명들
서유럽의 오래된 도시와 낡은 낭만의 장소들
나의 유럽 여행의 설렘은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이었다. 라빅과 조앙 마두우, 카페 푸케와 깔바도스였다. 노르망디 사과로 빚은 깔바도스의 색깔은 꼭 황금빛이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읽은 20대부터 줄곧 했던 것 같다. 내 바다도 이제 잠잠해졌고 꼭, 그 바다와 맞서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이즈막 인 것 같았다. 오랜 생각 끝에 내 인생의 마지막 베이스캠프를 꾸려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 아니어도 매장은 2주쯤 비워도 안전 할 수 있었고 위태롭지 않았다. 캠프가 꾸려졌을 때 내가 제일 먼저 계획했던 게 유럽 여행이었다. 남들은 젊고 활기 있을 때 떵떵거리며 갔다 왔던 다소 낡은 듯한 서유럽 나라들이었다. 나이 든 체력이 부담스러웠지만 내 안의 개선문과 깔바도스가 부추기며 위로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바로크 건축양식, 조각들과 성당은 웅장함과 감각적인 풍요를 주는 생동감으로 경이롭고 불가사의했지만 비슷비슷한 건축물 들은 때때로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피렌체 단테의 생가, 트레비 분수에 던졌던 동전, 스페인 계단에서 생각했던 오드리 헵번, 그리고 젤라토 아이스크림, 몽마르트르언덕에서 마셨던 뱅쇼, 센강 크루즈 위에서 본, 라이트 업이 시작된 에펠탑은 오렌지빛 신비함에 모두를 침몰시켰다.
꿈의 개선문.
나의 유럽 여행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파리의 개선문에서 난 드디어 칼바도스를 맛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거대한 석조 건물은 웅장함과 슬픔을 같이 떠받들고 서 있었다. 전투에 참여했던 600명의 장군의 이름들은 현실감이 없었고 개선문 바닥의 무명용사 묘에 타오르는 불꽃에서 느껴지는 슬픔이 차라리 더 진실의 시간에 가까웠다. 누군가 날 놀렸던 걸까. 깔바도스 파는 가게를 물었더니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가이드의 표정은 거의 경멸 그 자체였다. 아차! 싶었다. 레마르크가 「개선문」을 발표한 해가 1946년. 벌써 77년이 지났는데 주인공이 마셨던 술 따위를 누가 기억하겠는가. 카페에서 판다는 깔바도스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었다. 뭔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것도 잠깐, 개선문이 떠받들고 있는 하늘은 너무 맑고 파랬고 관광객이 넘쳐나서 그곳에 라빅의 절망은 그림자도 없는 듯했다. 나도 개선문의 꿈에서 그만 깨어나야 할 듯했다. 고독하고 절망적이던 라빅도, 공허해서 유리 같던 조앙 마두우의 눈동자도, 깔바도스의 허영도 이제 그만 다 잊어야 할 것 같다. 루브르박물관은 압도적이고 끝없이 감탄스럽고 징글징글하고 염치가 없어 보였다. 유럽을 야만의 땅이라고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도 같았다.
유럽에서의 한식은 재앙과도 같았다. 그 개통 없이 맵고 느끼하기만 했던 한식. 식기까지 똑같은 디자인을 쓰면서 모양내서 차려 내는 식탁을 보니 먼 이국땅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는 민족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여기가 어디라고, 이런 쓸데없는 정성으로 진을 빼는가. 눈물겹고 안쓰러웠다. 커피와 함께라면 그 많은 나라의 음식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 맛이었으나 한식은 나의 위장을 향한 테러와도 같았다. 물론 나의 예민함도 한몫했겠지만 말이다.
돌아오니, 벚꽃은 자취도 없고 푸른 잎만 무성했다. 벚꽃의 풍장을 말하던 「벚꽃 지느러미」를 보고 싶었던 건 시집의 제목에 매료됐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파리의 개선문과 꽃이 떨어진 벚나무가 배반처럼 쓰라렸다.
첫댓글
그때 우리 인천공항에서 만났지요?.
나도 처음 가본 유렵입니다. 나이로 따지면 누가 먼저 다녀온 셈일까요.
아직은 기회가 많습니다요.
화경씨 개선문 엘레지를 읽고 나도 이제 그만 환상에서 깨어나기로 했어요
개선문을 두번인가 읽고 꼭 가서 그곳의 낭만과 분위기를 느껴 봐야지 했는데
그렇군요 그 낭만과 분위기는 그 시대에 맞는 것이었지 이 글로벌 시대에는....
번번히 몸이 말썽을 부려 못가면서도 개선문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는데 훠이 훠이 호호하하
화경씨의 귀여운? 글을 읽고 속이 후련하요 나도 갔더라면 가이드한테 화경씨처럼 굴었을텐데,
샤녤의 말처럼 시대는 가도 패션은 영원하다고 했던가 어쨌던가 하여간 조앙인가의
자주색 외투와 자주색 가방인가만 기억하려고요
그러나 서유럽과 동유럽은 꿈속에서라도 가보고 싶은곳인데 이번 생은 망했어요
화경씨의 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