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신을 죽인 여자들
- 아나의 닫힌 관 옆에서 기도하기를 거부했을 때부터, 나는 어떤 종교든 간에 허구적으로 지어낸 이야기가 21세기에도 유일한 진리인 양 세상에 퍼져나가고 있는 현실을 문제 삼게 되었다. 수천 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어떤 진실성 검증조차 통과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확고한 믿음을 의심할 때 부수적으로 잃을 수 있는 이점이 두려워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19p)
- “‘종교는 수백만 명이 겪고 있는 망상이다.’ 내가 아니라 이 사람이 한 말이란다.” 할아버지는 방금 내게 선물한 책 표지의 저자 이름을 검지로 툭툭 치면서 도킨스의 말을 인용했다. (83p)
- “그것이 채택하는 방법(종교의 방법)은 삶의 가치를 끌어내리고 현실 세계의 모습을 망상으로 왜곡시키는데, 이것은 지성에 대한 위협을 전제 조건으로 삼는다.”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에서 이렇게 썼다. (85p)
- 누구든 아는 만큼 더 잘 물어볼 수 있을 테니까. (115p)
- 우리는 기억이 우리의 삶 전체를 구성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비록 그 일부라 할지라도 기억을 잃어야 했다. (···) 우리의 기억은 우리 존재의 통일성이자 우리의 이성이고 우리의 행동이자 우리의 감정이다. 루이스 부뉴엘, 《루이스 부뉴엘》 (123p)
- 한편 나는 연인으로서의 사랑이 나에게 결코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그 사이 내 기억이 모두 증발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려면 기억이 있어야 한다. (200p)
- 그런 자리에서 정장을 입는 것은 우리가 추정한 기본적인 정상성, 즉 우리가 “다른 이들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는 약속이다. (246p)
- 솔직히 말하면 내가 순진하기만 한 생각으로 신학교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사제가 되고 싶다면 그 대가로 성당이 내게 무엇을 요구할지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가장 큰 의심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 다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서도 집으로 돌아가서 여인을 만나 사랑의 밀어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나는 그 사제들이 여자와 사랑과 정을 나눌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누군가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다면 어떻게 우리에게 항상 즐겁고 인내심과 이해심이 많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걸까? 자기를 부드럽게 애무해 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데 그들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었던 걸까? 그들은 젊은이의 넘치는 기운과 욕망을 어디에 풀었던 걸까? 예수님은 성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예수님은 한 번도 연애를 하지 않았을까? 신학생들은 남들 모르게 연애를 하지 않을까? 사제들도 그렇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것 같아 두려움에 떨면서 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288p)
- 바로 거기에 함정이 있었다. 하느님의 선택을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다시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는 허영심. 그리고 카톨릭 신앙이라는 믿음과 사랑이라는 또 다른 믿음 사이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싸움. (296p)
- 정말 내가 지옥에 떨어지면 좀 억울할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죽고 난 다음에 치러야 할 대가만큼이나 내가 지은 죄를 속죄하며 살아야 하는, 최후의 심판 이전에 거쳐야 할 지옥이 더 무섭다. (299p)
- 나는 신부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 (316p)
하느님께서 그를 용서했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를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352p)
- 내가 그것을 무슨 수로 알겠는가? 내가 지고 있는 책임과 내가 짊어지고 있는 죄의 무게는 바로 거기까지다. 설령 우리가 그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아나가 죽는다는 사실이 바뀌었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아나의 죽음은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 임산부들의 수호성인인 성녀 안나도 그 죽음을 막지 못했다. 엄마가 동생을 잘 보살펴 달라는 뜻에서 이름을 아나라고 지었건만, 성녀 안나는 동생을 지켜주지 못했다. 성녀 안나도 못한 일을 왜 나더러 하라는 걸까? (356p)
아버지는 성경을 읽었지만 토론의 대상으로 삼았다. (363p)
- 무의미하고 잔인한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는 이미 다 아물었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자꾸 아문 상처를 후벼 파겠다고 고집을 부렸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365p)
- 사랑하는 무신론자 여러분, 만약 앞에 쓴 문장을 읽고 웃음이 나온다면 계속 웃도록 하렴. 진정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웃음이니까. (40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