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법소 망종치성 도훈 : “내 마음의 깊이를 먼저 갖춰야“
2016년 6월 5일(음력 5월 1일)
봄부터 그동안 미세먼지가 계속 되었었는데 그저께는 동풍이 불면서 미세먼지가 해소가 되었다고 그러더라구요. 동풍이 미세먼지를 해소하듯이 음력 사월에 부는 손사풍이 맑은 상생의 기운으로 태을풍을 불려서 선천 상극기운을 해소해 가기를 기원해 봅니다.
제가 초등학교때 축구를 하곤했었습니다. 제가 축구를 잘 하는 편은 아닌데 그렇다고 아주 못해서 헛발질을 하고 그런 수준은 아니었는데, 공이 오면 킾핑(keeping)능력이 안되고 시야도 좁으니까 패스할데가 잘 마땅치 않으면 안 빼앗길려고 뒤쪽에 있는 우리편한테 패스를 하거든요. 그러면 어떤 애들은 너는 앞쪽으로 공을 차야지 왜 우리 골대쪽으로 공을 차느냐고 막 뭐라고 하는 거에요. 너는 편도 모르냐면서 뭐라고 하는 거지요. 축구를 잘하진 못해도 편을 몰라서 뒤로 찬 건 아닌데 참 억울하더라구요. 그런적이 몇번 있었던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사회생활이나 뉴스를 보면서 문득 그 축구생각이 났습니다. 다른 비유를 하나 더 하자면 버스기사가 승객들을 싣고 충주에서 서울로 간다고 치면 충주에서 서북쪽으로 가야 서울이 나오잖아요. 방향은 서북쪽이지만 버스기사 입장에선 가다보면 앞에 산이 있고 강이 있고 하면 동쪽으로 갈 수도 있고 남쪽으로 갈때도 있는 것이거든요. 정치든 사회에서든 조직에서든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평등, 자유, 번영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야겠지만 상황을 잘 모르면서 단편적으로 생각해서, 또는 이해관계에 따라 필요에 따라 일부러 그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현실적인 부분을 감안해서 속깊은 생각을 하는, 남의 입장도 배려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이 모택동 시절에 대약진운동이라는 것을 했었습니다. 농업생산량을 늘리겠다고 집에 있는 그릇과 솥을 전부 징발해 농기구를 만들고 전체 인민들이 전부 같이 농사를 짓고 동네마다 전부 공공식당에 모여서 같이 밥을 먹었다는 거에요. 풍년이 들때는 그렇게 굶는 사람 하나 없이 다들 같이 모여서 참 아름답게 먹고 살았는데 어느 해에 한번 흉년이 온거에요. 흉년이 오게 된 것이 또 기가 막힌데 새가 곡식을 못먹게 사람들이 전부나와서 꽹가리를 쳐대서 새들이 굶어죽다 보니까 벌레들이 창궐해서 흉년이 들었다는 거에요. 흉년이 드니 식량이 없어 공공식당에서 밥을 해 먹을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다 같이 농사를 짓다 보니까 따로 자기 농사 짓는 것도 없지 집에 밥해 먹을 솥도 그릇도 없으니 3천만명이 굶어죽었다는 거에요. 그당시 우리나라 인구만큼이 아사한 것이지요.
우리가 평등하게 고르게 먹고 사는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는데에 있어서도 섣불리 자연적인 결을 무시하고 하면 위험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나무를 가공할때도 결을 봐가며 해야지 결을 무시하고 하다 보면 부러져서 못쓰게 되어 버리는 것이 거든요.
우리가 증산상제님을 만나서 신앙을 하면서 꿈꾸는 세상이 있지 않습니다. 그런 이상을 향해서 가면서도 우리가 이 현실과의 조화를 고려를 잘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 증산신앙의 역사를 보면 그런 타산지석의 사례가 많지 않습니까? 때가 되면 상제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거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가정 버리고 직장 버리고 있는 재산 다 털어 넣고 대출받아 털어 넣고 빨리 사람들에게 알려서 사람들을 모으면 무조건 된다하는 이런 식의 포교를 한 거지요. 말하자면 뻥축구지요. 무조건 앞쪽으로 공을 질러 넣기만 하는 거지요. 대책도 없이 방향은 저쪽이니까 저쪽으로만 가면 된다는 거죠. 증산신앙 105년의 시간동안 그렇게 증산을 외치고 알렸지만 과연 그 결과가 어떠한지, 증산신앙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냉철하게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축구도 상황을 봐가면서 호흡을 맞춰가면서 때로는 여의치 않으면 뒤로도 패스해 가면서 그렇게 차근차근 기회를 만들어 가야 골을 넣을 것 아니에요. 막무가내로 앞으로만 전진해서는 원하는 결과를 이루기가 어렵겠지요. 우리가 상제님을 일을 알리고 상제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되겠지만 그 이전에, 앞으로 나아가기 이전에, 우리가 과연 상제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그 정신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내면으로 돌이켜 성찰하는 연습이 필요하겠습니다.
어제 TV에서 영화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니 ‘하늘을 걷는 사람’이라는 영화가 있더라구요. 고공에서 외줄타기하는 사람을 그린 영화인데 9.11테러 났던 400미터 높이가 넘는 WTC 쌍동이 건물의 옥상을 외줄로 연결해서 아무 안전장비 없이 거길 건너는 거에요. 우리가 10센티미터 높이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은 쉬워도 400미터 높이에 있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은 다른 문제잖아요. 흔히들 우리가 평범하게 살아오면서 내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고 하니 언론에서 누가 큰 뉴스거리로 지탄을 받으면 쉽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습니까? 남의 얘기할때는 그걸 제대로 못해 하지만 내가 수많은 시선을 받고 부담감을 받는 위치가 되어 보면 3자의 입장에서 보던것과 다르거든요. 훈수둘때는 10센티높이 외나무다리로 보이지만 내가 그 입장이 되고 보면 400미터 높이의 외나무 다리가 되는 거지요. 내 마음이 그 부담을 견뎌내느냐 하는 거에요. 우리가 먼저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공부를 강조하는 것은 그런 준비인 것이거든요. 내 마음에 공포가 완전히 사라져야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에 흔들림 없을 수 있지 공포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결국 언젠가는 마음이 흔들리고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상제님은 제생의세하는 성인의 도로써 후천을 열어간다고 하셨듯이 성인의 도라는 것은 내 마음으로 들어가서 나부터 안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 거든요. 어떻게 보면 내가 살아있는 것 자체, 숨쉬고 있는 것 자체로 순간순간 행복을 느끼고 만족하고 안정이 될 수가 있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탐진치의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항상 뭔가 불안하고 불만족하고 적대감을 가지게 되고 하는 것이 거든요. 내 존재 자체로서의 행복함과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결국 탐진치를 떨쳐내야 하는 것이고 그런 마음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남들도 안정을 시켜줄 수가 있고 세상의 중심을 잡아 줄 수가 있는 것이 거든요. 이 내 마음에 탐진치가 남아있으면 결국 어느 상황에 이르면 욕심을 내고 분노를 일으키고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 거든요.
앞으로 상생세상에서는 상생의 언행으로 모두들 살아가게 되기에 지금과는 많이 달라지겠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상극세상속에서 우리부터 상극을 이겨내고 상생화되어서 상극의 사람들을 상생인간으로 이끌어 주어야 하는 역할이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상극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그래야 사람들을 설득할 수가 있고 또 내 마음이 반응하는 모습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공부는 결국 상극세상속에서 일상속에서 우리 마음을 반추해보고 이런 왜 이럴까 저건 왜 저럴까 생각하고 사색하면서 정리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증산상제님을 외치는게 대수가 아니라 내 내면이 이성적으로 스스로 정리가 되고 내 마음이 안정이 되어가야 그러고나서야 밖으로 주위사람들을 안정시켜줄 수가 있고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소화하고 내가 깊어져서 이야기를 해야 듣는 사람도 감동을 느끼고 깊이를 느끼고 변화되어 가는 것이지 매일 같은 이야기, 자극적인 이야기, 겉도는 이야기로 증산을 외치고 개벽을 외쳐봐야 듣는 사람은 또 그 소리하는구나, 아직 정신 못차리고 헤매는구나 생각할 거 아니에요. 자기 할일은 제대로도 간하면서. 예상했던 모습 그대로 또 하고 있으니 뭘 기대를 하겠어요. 듣는 사람에게 이미 폭을 잡히는 거죠.
말을 얼마나 열심히 많이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의 깊이, 깨달음의 깊이가 감동을 주는 것이 거든요. 태을도에서는 일상속에서 내 스스로를 바꿔나가면서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사람들을 바꿔나가게 하는 것이 우리의 할일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남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일신우일신이라고 얘기하듯이 내가 끊임없이 더 공부하고 생각하면서 내 깊이를 갖춰가야만 사람들을 상제님께로 안내를 해 줄 수 있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수 있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앞을 향해 무조건 차고 보는 뻥축구를 하기에 앞서서 항상 우리가 내 자신부터 충실하게 해서 깊어져가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저부터가 부족함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이상으로 도훈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