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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
대표작품 1 | 깨보생이 |
대표작품 2 | |
수상년도 | 2017년 |
수상횟수 | 제14회 |
출생지 |
*수상작품 : 깨보생이 김하영
깨보생이보다 더 고소한 향기가 또 있을까.
검정깨를 먹으면 머리가 희어지지 않는다고 하던데, 나는 그동안 흰색 검정색 상관없이 참깨라면 모두 즐겨왔다. 그런데 이젠 참께도 나의 나이를 이기지 못하는지 흰머리가 귀 밑과 관자놀이께 몇 개 보인다. 나는 그 흰머리를 새치라고 우겨본다.
나는 깨보생이를 모든 음식에 듬뿍 넣어서 먹는다. 나만의 요리에만 그리해서 먹는다. 깨보생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남편 머리엔 일찍부터 하얀 꽃이 방방곡곡에서 나부낀다. 남편은 요즘 들어 부쩍 나의 머리를 부러워한다. 아니 부러운 것이 지나쳐서 “자네는 흰 머리도 없어.”라며 불만 섞인 어조다. 깨보생이는 나의 삶에 보배로운 활력소다. 깨보생이 없는 세상은 생각조차하기 싫다면 너무 극한 말일까. 깨보생이가 조금 남으면 불안하다. 나는 어느 날을 잡아 종일 참깨를 볶아 빻는다. 병 두 개에 가득 채워 한 병은 예비군으로 냉동실에 잘 보관하고 한 병은 꺼내기 쉬운 곳에 놓는다.
하루는 TV를 보는데 노부부가 참깨 농사를 짓는다. 깨 나무를 베어 단을 만들어 서로 머리를 맞대어 세워놓고, 갑자기 비가 내리면 비닐을 덮어씌우고, 비가 그치면 비닐을 거두고 해에 마르기를 기다려 고투리가 열리면 막대기로 두들겨 털어서 키질한다. 노부부는 추수한 깨를 놓고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이 밝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오로지 가을 추수 풍경을 보여줬을 뿐이지만 알곡을 만들기 까지 더 많은 문제들이 있었으리라. 수고로움의 결실인 참깨. 깨보생이로 나의 식탁에서 미각을 즐겁게 하고 심지어 나의 머리에 까지 영향을 준 것 같아 매우 고맙게 여겨진다.
나는 어릴 때부터 깨보생이를 넣은 송편을 좋아한다. 쌀로 만든 겉은 끈적끈적 하고 밋밋한 맛이 싫어 속만 파서 먹을 때가 많았으므로, 고소한 속을 먹기 위해 송편을 좋아 한 것 같다. 요즘은 깨 송편의 참맛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밋밋한 맛의 송편을 한입 베면 겉의 맛과 전혀 다른 혀끝에 와 닿는 송편 속, 겉에서는 알 수 없는 맛과 향기가 숨어있다. 송편은 씹으면 씹을수록 느끼는 감칠맛이 있다. 밋밋한 맛과 고소한 맛의 조화. 송편 속과 겉의 맛이 판이하나 이빨에 꼭꼭 씹혀 섞이면서 어울려가는 맛, 튀던 고소함은 다소약해지고 밋밋하던 겉은 고소함을 덧입어 부드러운 느낌이 있는 오묘한 맛이 되어간다. 나는 그 중화된 맛을 꿀꺽 넘기며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삶을 보면, 너무 다른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서로 대끼는 과정이 필요하다. 서로의 단점을 일깨워주며 때때로 왱강댕강, 고통이 수반된 삶의 굴레를 함께 돌아가며 지칠 때 서로를 격려하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떠밀어주고, 슬플 땐 감싸 안아주며 다독이고 어느 덧 서로에게 꼭 있어야 할 존재가 된다. 주름진 얼굴도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세월이 준 훈장이라며 서로를 격려한다. 노부부는 지나온 시간들을 이야기하며 이것이 우리가 함께 걸어온 인생살이라고 만면의 미소를 보이며 마디 굵은 두 손을 꼭 잡고 아름다운 황혼을 누리게 된다. 노년의 미소에서는 부드럽고 오묘한 향기를 풍긴다.
깨 타작을 하게 되면 깨보다 티가 훨씬 많다. 나무쪼가리 잎사귀며 돌과 흙 등, 무수히 많은 잡동사니를 다 골라내야 비로소 탱글탱글 아기자기 깨알만 남는다. 참깨를 물에 깨끗이 씻어 불에 볶는다. ‘앗 뜨거워 못 살겠다’ 탁 탁 탁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야단법석이다. 돌절구에 찧는다. 절구 공이가 세차게 닿았다 올라올 때마다 폴싹폴싹 절정의 향기와 맛이 있다. 볶은 참깨가 절구 공이에 얻어맞으며 더욱 고소한 깨보생이로 탄생한다. 부서지는 아픔을 견디며 힘든 과정을 모두 통과한 깨보생이. 그렇기에 깨보생이는 어떤 요리에 들어가도 부드럽고 오묘한 제 맛을 살리는 힘이 있나보다
*깨보생이: 깨소금을 뜻하는 강원도 사투리
*수상소감
먼저 수필가 여러분들의 책 제출에도 불구하고 저의 책에 관심과 더불어 ‘해외 한국수필문학상’을 안겨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감사를 올립니다. 앞으로 더욱 글쓰기에 집중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엘에이에 터전을 마련하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엘에이 풀러턴은 북쪽으로 한 시간정도 가면 눈을 볼 수 있고, 또 30분쯤 가면 태평양 바다가 아주 넓게 펼쳐진 심심치 않은 곳입니다. 그 곳은 제 나이 절반이상을 보낸 곳입니다. 그리고 저의 할머니와 아버지를 엘에이 헐리웃 공원묘지에 모시기도 했습니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연륜 만큼 친구도 생겼습니다. 책을 내는 용기를 낸 것은 그 친구들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이민 생활에서 가족의 결집은 가장 중요했습니다. 한국말보다 영어가 우선인 아이들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일도 필요했고, 남편과 저는 모든 것이 생소한 곳에서 살아가고자 몸부림하며 서로 다독여야 했습니다. 7전 8기의 삶을 살다보니 이젠 많은 것이 익숙해져 자랑 할 것이 많아진 곳입니다.
태어나고 학창시절을 보내고 직장을 다닌 한국의 정서와, 제2의 삶이 펼쳐진 엘에이의 생활상을 틈틈이 적다보니 어느 덧 한권의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제가 책을 내고자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한걸음 한걸음 내 딛다 보니 책이 탄생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문학상 수상이라는 통보도 받으며 갑자기 전과 다른 힘이 생깁니다. 목표도 생겼습니다. 이 순간부터 ‘나의 삶의 불꽃놀이’는 시작 되었다고 봅니다. 불꽃놀이를 감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와 내안의 소용돌이와의 충돌로 일으키는 불꽃놀이를, 흔적으로 남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삶을 시작하려합니다.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작가프로필
본명: 이하영(미국 거주로 남편성 김하영이됨)
1963년 경기도
1987년 도미
한국수필가협회 운영이사
2012년 월간 순수문학 등단
(수필: 누렁이, 지금 내가 있기까지)
2015년 천년 숲 서정에 흘리다
(한국수필 젊은 작가 97인선)
2016년 미밀의 문(한국수필 대표선집)
2017년 사람, 집, 길(한국수필 대표선집)
저서: 에세이<엘에이 된장>
E-mail: hyk200977@yahoo.com
*작품심사평
2017 해외한국수필문학상 심사평
귀화하지 않은 토속적인 정서의 미학
LA 김하영 님을 올해의 해외한국수필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김하영 님은 에세이집 『엘에이 된장』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기에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수상자로 결정할 수 있었다. 이민자로서 체험을 통해 일상의 감성을 형상화하여 잊혀져가는 한국인의 정서를 일깨워주고 있다. 책의 제목‘엘에이 된장’처럼 토속적인 풍미와 함께 고향, 한국의 식물에서 생명률을 터득하여 생활철학과 가치관으로 이상적인 삶을 개척하고 있다. 「엘에이 된장」「송아지의 눈망울」「깨보생이 맛의 비밀」「민들레향기」등등 고국의 원형적인 정서를 미학으로 구축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모이사나이트」「케나다 록키에서의 만남」「내 마음의 불꽃놀이」등은 현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기행수필인데 삶과 시대의 흐름에서 해석하여 공감대를 넓힌 수필들이다. 이민생활의 문화충격을 고국의 인정과 향수 속에서 삭이고, 도피 아닌 승화로 이룬 수필, 다정한 감수성과 아름다운 마음, 넓은 인간애의 전범을 보여준다. 그리고 삶을 통한 인생의 해석과 깨달음이되 새롭고 참신한 의미를 모색하고 무겁지 않은 주제를 구현해 나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쉽게 읽히면서도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흡인력이 있다. 그리고 적절한 비유와 군더더기 없는 압축된 문장으로 수필의 문학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돋보이는 작품들도 있어서 흐뭇하다. 그러나 많이 알려져 있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 작가의 삶이 소재의 주체가 된 작품이 한계성을 지적 받을 수 있겠다. 한국의 토속적인 소재가 강점이기도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를 부르짖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기도 요구된다.
수상을 축하하며, 다양한 소재의 확충과 깊은 사유로 이성적인 작품도 요구하고 싶다. 섬세한 시각으로 깊은 사유에서 길어 올린 이성적인 작품으로 수필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심사위원 정목일 유혜자 지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