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1권 1-7
古風十九首 7 진秦 시황始皇의 헛된 야망을 노래함
7
시황병륙국始皇併六國 진시황秦始皇이 六國을 통일하니
시호위강진時號爲強秦 그때에는 강진强秦이라 이름 하였지만
분탕선왕서焚蕩先王書 선왕先王의 글들을 태워 버리니
사해개정신四海皆鼎新 사해四海가 모두들 새로워졌네.
자칭시황제自稱始皇帝 시황제始皇帝라 자칭하여 부르니
솔토개칭신率土皆稱臣 천하 백성 저마다 신하라 했네.
방호축장성防胡築長城 오랑캐 막는다고 長城 쌓고
망해로동순望海勞東巡 바다 바라보려고 東巡하였네.
려산궁궐장驪山宮闕壯 여산驪山의 궁궐 장할시고!
복과횡고민複過橫高旻 복도複道가 높은 하늘 가로질렀네(複過=複道)
초인일거후楚人一炬後 초楚나라 사람 횃불 한 번 든 뒤에는
공여원상진空餘原上塵 언덕 위에 티끌만이 남아 있었네.
진시황이 여섯 나라를 정복하고 병합하니
처음엔 국호를 강진이라 지었네.
선왕 때의 글을 불태웠으니
세상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었다오.
스스로 시황제라 부르고
넓은 영토를 거느리고 만백성을 신하처럼 부렸다오.
오랑캐를 막으려고 긴 성을 쌓았고
바다를 바라보며 수고로이 동쪽을 다녔네.
여산의 능궁은 웅장한 궁궐이어서
그 안에는 하늘 높이 2층 복도가 옆으로 뚫려 있었네.
초나라 사람 횃불 한 번 들고 일어난 뒤
여산 언덕 위에는 흙먼지만 날린다네.
►시황始皇 진秦 시황始皇(BC259-BC210)
BC221년 진秦나라가 BC230년부터 9년간
戰國七雄 한韓·조趙·위魏·초楚·연燕·제齊 6개국을 정복 중국대륙을 통일.
始皇帝 황제皇帝란 호칭을 秦始皇이 처음 썼음.
皇帝란 칭호는 중국 상고시대 전설의 三皇五帝에서 따왔음. 秦始皇이후로 중국의 왕들은 皇帝라 칭함
►분탕焚蕩 야단스런 분란이나 소동. 분서갱유焚書坑儒.
焚書坑儒는 진나라 통일 9년째 되던 BC213년에 전국의 儒生들이 중앙집권적 郡縣制를 반대하자
丞相인 이사李斯가 주도하여 진나라 발행서적 이외
諸子百家의 서책을 모두 불태우고 儒生들을 불구덩이에 넣어 학살虐殺한 일.
►정신鼎新 낡을 것을 새로이 고침. 혁신革新. 옛 제도와 습속을 고침
혁구정신革舊鼎新 옛 것을 버리고 새롭게 고침.
'솥 정鼎' 점괘占卦. 괘卦의 이름
►장성長城 만리장성萬里長城. 진나라 영토 밖인 중국 동북부와 몽골지역 境界를 따라 축조한 성곽城郭.
춘추전국시대의 조趙ㆍ연燕 등이 邊境 방어를 위해 축조한 것을 秦始皇이 확대 증축增築하여 완성.
현재 남아있는 萬里長城의 대부분은明나라가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약 2,700km의 大城壁.
►동순東巡 秦始皇의 동쪽 순례.
황제 등극 이후 진시황은 수시로 전국을 巡行하며 자신의 業績讚揚碑를 세웠다.
특히 山東省 중부의 泰山 쪽으로 자주 東巡에 나섰다.
그 이유는 여러 說이 있지만 통일된 진나라 도읍 西安의 동쪽의 강력한 土豪 세력을
견제牽制하고 무마撫摩하는 行次라는 것이 說得力이 있다.
5번째 마지막 東巡은 BC210년 아들 호해胡亥와 함께
揚子江을 따라 회계령會稽嶺을 거쳐 동해(우리의 서해)바다로 갔다.
낭야琅琊에서불로장 생약을 구하러간 方士 서복徐福 일행이 상어의 공격으로 몰살 당하자
바다로 나가 상어를 잡고 향연饗宴을 베풀지만 급격히 쇠약해져 죽음을 직감하고 귀환歸還을 명함.
귀환 도중인 BC210년 9월 세상을 뜬 秦始皇은 자신이 미리 만들어놓은 여산驪山의 무덤에 안장되었다.
►려산궁驪山宮 秦始皇의 능궁陵宮.
秦나라 자초子楚의 아들로 태어난 정政(秦始皇)은 12살 때인 BC247년
아버지 장양왕莊襄王으로부터 왕위王位를 물려받아 36대 진왕秦王이 됨.
즉위 직후부터 옹주雍州의 신풍현新豐縣 남쪽,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임동현臨潼縣 동남쪽의 驪山에 그가 死後에 묻히기 위해 지은 호화로운 宮廟.
►복도複道 궁전宮殿내부의 2층 복도로 윗길은 황제전용, 아랫길은 백성이 다님.
►민旻 하늘
►초인일거楚人一炬 초楚의 항우項羽가 든 횃불 하나.
‘초인楚人’ 항우項羽가 진秦나라 서울에 불질러 다 태웠는데 항우는 초나라 사람이었다.
두목杜牧이 지은 <아방궁부阿房宮賦>에 등장하는 구절句節에서 인용.
초인일거楚人一炬 가련초토可憐焦土 초나라 사람 횃불 한 자루에 아방궁이 초토화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