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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기록한 사람 : 사도 바울
·기록한 연대 : 주후 58년 경
·기록한 장소 : 고린도
로마서 1장
제 1 장 복음
(대 지)
一. 복음의 정의(1-4)
二. 성도 축복(5-7)
三. 복음 감사(8-15)
四. 복음 능력(16-17)
五. 이방인의 죄(18-32)
1. 대신 범죄(對神犯罪)(18-23)
2. 대기 범죄(對己犯罪)(24-27)
3. 대인 범죄(對人犯罪)(28-32)
(본문강해)
一. 복음의 정의(1-4)
.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언제나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였다. 종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자신을 위하지 않고 주인을 위해서 사는 자이다.
② 자기 뜻대로 살지 않고 주인의 뜻대로만 사는 자이다.
③ 자기의 소유권이 없고 모든 소유가 주인의 것이다.
사도 바울이 항상 그리스도의 종의 위치에서 살았다. 모든 교역자와 성도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놓고 하나님을 위하여 그 뜻대로 사용해야 한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도란 예수님께서 직접 불러서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하나님이 복음을 위하여 바울을 특별히 택하여 종으로 보내셨다. 갈라디아서 1:1에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자기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며 사람으로 말미암아 된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복음에 대한 특별한 사명과 그 직분에 대한 권위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택정함을 입었으니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는 뜻이다.
.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복음 원어 (유앙겔리온)의 뜻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이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소식이 제일 기쁜 소식이다. 그리스도 즉 메시야를 통한 구원 문제는 오래 전 구약시대부터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성도에게 미리 약속하신 것이 성취된 것이다. 그러므로 갑자기 만들어 낸 공교한 이야기가 아니다.
. 1: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여기서 복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곧 복음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영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믿는 우리에게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을 주시고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 놓은 것이야말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제일 기쁜 소식(복음)이다.
육신으로는 육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리킨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했는데 그 성구와 같은 내용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성을 입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 절의 육신도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리킨다.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하나님이 다윗에게 네 자손에게서 그리스도가 나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다. 마리아는 다윗의 혈통이었다.
.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성결의 영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리킨다. 앞절에서 예수님의 인성을 말했으므로 본 절에서는 신성을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행하신 의를 근거로 하여 그의 신성의 능력으로 부활하셨다.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께서 계시므로 그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에베소서 1:20에는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라고 하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한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사망을 이길 자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죄를 멸하고, 마귀를 이기고, 사망을 정복하고 부활하셨다. 이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것이다. 인정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완성한 것으로 인정된 것이고, 사람에게는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믿을 만한 증거를 주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선포한 것이다. 이로써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믿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요나의 표적의 중요성을 말씀한 것과 같은 것이다.
마태복음 16:4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사흘 동안 있다가 살아서 다시 나온 것인데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여 살아나실 것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요나의 표적밖에 다른 표적을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신 것은 십자가와 부활이 가장 큰 표적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많은 이적을 행하셨으나 그것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게 하는 보조적인 표적에 불과하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다른 표적을 아무리 많이 보여주어도 아무 유익이 없다. 누구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므로 사죄와 영생을 얻는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만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가 된 확실하고도 유일한 증거이다.
二. 성도의 축복(5-7)
.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불러 많은 은혜를 주시고 사도의 직분을 맡겨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다. 이것은 바울이 전파하는 그 복음을 택한 백성들이 듣고 믿어 하나님을 순종케 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원운동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것이요 바울은 그 일을 수종드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어 택한 백성이 복음을 순종하도록 감동시키실 때에 순종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그러므로 믿음은 곧 순종이다. 바울은 특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이었다.
. 1: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것이다(고전 6:20).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를 위해 살지 말고 주를 위해 살아야 한다(롬 14:7).
부르심을 입은 자 신자는 자기가 믿은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 부르심을 입은 자이다.
요한복음 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하였다. 에베소서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한 백성을 하나님의 것으로 예정해 놓으시고 때가 되매 불러 믿게 하신 것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므로 몸과 생명과 가족과 모든 소유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 인줄 알고 자기 소욕대로 이것들을 사용하지 말고 주를 위해서 주의 뜻대로 사용하여야 한다.
. 1: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축복한다. 바울은 그들이 자신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요, 하나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한 형제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생명으로 살기 때문에 그들을 직접 보지 못했으나 사랑과 우애가 넘쳐흐르고 있다.
은혜와 평강 은혜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구속의 모든 선물인데 그 내용은 하나님의 선택, 구속, 사죄, 칭의, 새 생명, 양자, 영화 등이다. 평강은 영적 평강이며 은혜 가운데 사는 열매이다. 구속받은 성도가 그 은혜와 평강 가운데 사는 것이 큰 축복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참된 은혜와 평강에 대하여 그 근원과 출처를 말하고 있다. 성부와 성자로 말미암지 않는 은혜와 평강은 참된 것이 아니다. 성부, 성자로 말미암아 오는 은혜와 평강은 참되고 생명적이며 영원하다.
三. 복음 감사(8-15)
. 1: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첫째라고 한 것은 모든 것 중에 첫째가 될 만한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며 순서적으로 둘째, 세째를 열거하기 위함이 아니다. 바울은 로마에서도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것을 생각할 때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지로 정치와 권력과 향락의 도시요 기독교 핍박의 본거지였다. 그 곳에 성도가 생기고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은혜를 생각하며 더욱 큰 감사를 하게 되었다. 어디서나 택한 백성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다. 마귀의 종노릇하다가 영원히 멸망할 그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만큼 그들이 믿음을 잘 지키고 복음을 열심으로 전파한 것 같다. 이것이 또한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원인의 하나이다. 당시 온 세상은 로마제국의 판도와 그 부근 국가들을 가리킨다.
. 1: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란 뜻이며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킨다(1:2-4).
복음 안에서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의 세계 안에서라는 뜻이다.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심령의 원어 (프뉴마)는 영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으로 섬겨야 되고, 또 진리대로 섬겨야 된다(요 4:24). 하나님을 영으로 섬긴다는 것은 중생한 영이 성령을 힘입어 마음과 몸을 바쳐 섬기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가 육신의 감정과 지식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생명이 없다. 그러한 제사는 산 제사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이사야 29:13에"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하였다. 마음과 영으로 하지 아니하는 경배는 헛된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면 회개하여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켜 신령한 세계를 찾고 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기쁘시게 받으시고 하나님의 권고와 생명의 역사가 그 사람에게 오게 된다. 사도행전 20:22에 바울이 환난과 핍박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담대히 올라갈 때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올라갔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바울의 심령을 감동시켜 예루살렘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바울이 그 인도를 따르지 않을 수 없고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해도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워 그 심령에 매임을 받아서 전진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된다는 말은 그의 생활과 말이 진실하여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만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사람의 증거나 자기 양심의 증거보다 더욱 큰 증거이다.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바울이 쉬지 않고 로마 교인들을 위해서 항상 기도했다. 이것은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기도만 하고 있었다는 말이 아니고 기도할 때마다 중단하지 않고 로마교인을 기억하면서 위하여 기도해 주었다는 말이다. 교역자가 교인들의 신앙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 1: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바울이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로마에 가기를 오래 전부터 원하며 기도하였다. 복음전파도 자기의 생각과 뜻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고 이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바울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그의 인도를 받아서 하려고 힘썼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아무리 위태한 곳일지라도 갔다(행 20:22-24).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거절해야 되고 하나님의 뜻이면 생명이라도 내놓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은 마태복음 강해서 7:7-8해석 참조).
. 1:11-12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바울이 로마에 가서 로마교인들을 보고자 심히 원한 것은 인정으로 인간적 교제를 하기 위함이 아니고 신령한 은사를 그들에게 나눠주어 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의사가 어떤 곳에 가서 병들고 약한 환자들을 고쳐서 건강하게 해주고자 하는 것과 같다. 사도 바울은 어리고 연약한 성도들과 병든 성도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어서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도 받은 바 신령한 은사 즉 깨달은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어리고 연약하고 병든 성도들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 어디를 갈 때에도 신령한 복을 가지고 가서 나누어주는 자가 산 신앙을 가진 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는 자와 받는 자들이 피차 은혜를 받고 믿음이 자라나고 안위함을 얻게 된다.
. 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바울이 여러번 로마에 가고자 했으나 하나님이 허락치 않아서 가지 못했다. 그 사실을 로마교인들이 알기를 바울이 원한 것은 바울과 로마 교우들 사이에 사랑의 교통을 위함이요 앞으로 만날 때에 더욱 큰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함이다.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열매는 믿음의 열매이며 의와 진리와 거룩의 열매요(엡 4:24), 하나님과 진리 지식의 열매요(골 3:10), 영이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열매이다(갈 4:19). 사람에게 신령한 복을 나누어주므로 그들이 신령한 도리를 깨달아 알게 되고 그 진리대로 순종하면 신령한 열매가 맺혀 나간다.
. 1:14-15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헬라인은 문명인, 야만인은 미개인을 가리킨다. 바울은 문명인이나 미개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복음의 빛을 졌다고 했다.
빚진 자라 빚진 자가 그 빚을 갚을 의무가 있는 것처럼 복음을 받은 자는 복음의 빚을 갚을 의무가 있다. 복음의 빚을 갚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기가 받은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다. 빚진 자는 빚을 갚으면 마음이 평안하고 갚지 않으면 무거운 죄책을 느낀다. 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지 않고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은 마치 국가에서 동민에게 나누어주라고 동장에게 배급한 밀가루를 동장이 자기 혼자서 착복하고 나누어주지 않는 것과 같다. 그 동장은 마땅히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도 자기 혼자만 구원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가 자기 혼자만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 복음을 전해주기 않으면 하나님이 노하신다. 고린도전서 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니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하였다. 로마서 15:27에 보면 이방인들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신령한 것(복음)을 받았으니 육신의 것으로 보답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이것도 빛을 갚는 원리이다. 잠언 22:7에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라고 했다.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빛을 갚고자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전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에스겔 3:11에는 듣든지 아니 듣든지 이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다. 복음을 받고도 전하지 않는 자는 빛을 갚지 않는 자이므로 반드시 화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복음을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어야 한다. 우리 나라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전해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
四. 복음의 능력(16-17)
.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하였다(고전1:18). 믿지 않는 자들은 복음을 아주 멸시하고 미련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고 도리어 자랑하며 담대하게 전했다. 그 이유는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유명하고 지식 있는 사람들은 인간의 지혜를 구하고 철학을 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들에게는 나사렛 예수가 사형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 것과 저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 아주 어리석게 보여 멸시하고 비웃는 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한 환경에서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온 세상을 향해 담대히 전하였다. 아무리 훌륭한 철학을 논하고 그것을 통달했다 하여도 그것으로는 자신이나 남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또 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하여 새로운 지식과 발명을 했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사람의 영혼을 살려낼 수 없다. 철학은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것인데 대부분이 추상적으로 나온 헛된 말이 많다. 과학은 자연의 원리나 물질에 대한 이치와 법칙을 찾아내어 논증하고 적용하는데 지나지 않고 창조주나 창조의 원리 및 그 목적은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인생의 근본 문제인 영혼이 사는 것과 하나님과 내세에 대하여는 알지 못한다. 복음의 내용을 바로 알면 복음을 부끄러워 하기는 보다 도리어 그 복음을 자랑하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이 복음을 전하는 직분도 영광스러운 직분이다(고후 3:9). 복음 자체가 아름답고 귀하므로 복음을 전하는 직분도 세상의 어떤 직분보다 고귀하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복음을 귀히 여기고 힘써 전하는 생활을 하자.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은 ①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고 ②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여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한다.
능력이라는 원어 (뒤나미스)는 자연적인 힘이나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힘을 가리킨다. 이 단어에서 다이나마이트(dynamite=화약)라는 말이 나왔다. 즉 복음의 능력은 폭탄과 같은 능력이라는 말이다. 복음 자체에 폭탄과 같은 위대한 능력이 있다. 폭탄을 던지면 강한 힘이 나와 그 위력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또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을 던져 놓으면 마귀의 세력이 깨져 나가고 강퍅한 마음이 녹아져서 택함 받은 자들이 구주를 믿어 구원을 얻게 된다. 이러한 능력이 복음 안에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죄인을 건져낼 수 없고 살려 낼 수도 없으나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큰 능력이 복음과 함께 역사하여 사람들을 살려내고 구원해 내는 것이다. 전도자는 이 능력을 믿고 나가서 전해야 한다. 이 복음의 능력 앞에 세상이 반드시 정복될 것이다. 이 복음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것은 마치 안전핀을 뽑아 던진 수류탄을 개들이 발로 밟고 물어 찢는 것과 같다. 수류탄이 "쾅"하고 터지면 개들이 다 죽고 정복당하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은 폭탄과 같은 능력이 있으므로 아무도 이길 수 없다. 우리가 복음을 세상에 던져 놓기만 하면 믿는 자는 살려낼 것이요, 끝까지 믿지 않고 반대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능력이 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 놓으면 하나님이 능력으로 일하셔서 건져낼 자를 건져내시고 심판할 자를 심판하신다. 또 성령이 역사하기 때문에 복음은 이기고 또 이기며 계속해서 이겨 나가는 것이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다는 뜻이다. 유대인은 조상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구약의 말씀)을 받았고 조상들을 통해서 내려오는 생활이 구약 성경화되어 있다. 또 유대인들은 외부적인 계명을 지키고 있었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받고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였으며(마 15:24 참조), 또 그 제자들이 유대인에게 먼저 전도했다(마 10:5-6).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게 되면 이미 받은 말씀이 있으므로 먼저 깨닫게 되고 그리스도를 먼저 영접하게 된다. 로마서 9:4에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외부적으로 언약에 참여하여 율법을 지키고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예수를 믿게 되면 더 빨리 영접하게 되고 더 많이 충성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는 유대인에게요"라고 했다.
또한 헬라인에게로라 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모든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주셨으며 그 복음을 믿으므로 구원받도록 축복하셨다.
.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의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 자신의 의로운 성품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행한 의도 아니고 하나님의 공의도 아니다. 또한 인간이 율법을 행한 의도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선물로 주신 의이다(3:21-22).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다고 간주(看做)되는 의,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언할 수 있은 의이다.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나타났으며(롬 1:17),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1:2-4해석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신구약 성경을 다 지키시고 하나님의 뜻을 죽기까지 순종하여 완전한 의를 이루어 놓았다. 이 의는 믿는 자에게 주기 위하여 행하신 의이다(고전1:30). 성도는 믿음으로 그 의를 받아 가졌으므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칭함을 받는다.
믿음으로 믿음에 믿음의 성장과 믿음의 진보를 말한다. 진리의 말씀을 많이 배워 믿음으로 화합하면 믿음이 점점 진보가 되고 자라난다. 처음 믿을 때도 그 믿음 자체는 완전하나 아직 어린 믿음인데 그 믿음이 점점 장성해 나가야 한다. 고린도전서 3:1-2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하셨다. 또 히브리서 5:13-14에 보면 어린 신앙을 가진 자는 젖을 먹고 장성한 자는 단단한 식물을 먹는다고 했다. 에베소서 4:15에는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앙과 영이 자라나야 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성경에 네 번 나온다(합 2:4, 갈 3:11, 히 10:38참조). 이 말씀은 로마서 전체에 대한 요절이요, 요한 복음 3:16과 같이 성경전체의 요절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야 참 믿는 사람이고 믿음으로 살지 않는 신자는 죽은 믿음이다. 학자는 학(學)으로 살고, 상인은 상업으로 살고 농민은 농사로 살고 기술자는 기술로 산다. 각각 자기의 것을 가지고 산다. 그러므로 신자는 당연히 믿음으로 살아야 된다.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 것을 가지고 사는데 성도가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참 신자가 아니다. 과거의 성도들을 보면 돈이 없어도 믿음으로 살았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귀향 살이 갔어도 믿음으로 살았고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사자굴과 풀무 불에서도 믿음으로 살았다. 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독자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살았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라 했다(요일 5:4). 그러나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지 않고 세상의 것으로 살려고 힘을 쓰고, 세상 것을 붙잡으려고 오히려 믿음을 버리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다는 뜻이다.
②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산다는 뜻이다.
③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4:4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히 11:38).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혜와 축복을 받는 도구이며 그릇이다. 또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도구가 된다(약 2:22).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음으로 그 말씀을 순종하여 그 말씀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나간다. 하나님의 말씀은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과 그의 뜻을 나타내 보여준 것이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을 알게 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죄 사함과 하나님의 의(義)의 새 생명(양자의 영)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또한 하나님을 닮아가며 장차 하늘나라의 기업에 참여할 것이다. 또 말씀(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믿는 자에게는 위대한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 그 말씀을 이루어 나갈 수 있게 된다. 말씀(복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가 지혜 있게 되고, 약한 자가 강하게 되며, 멸시받는 자가 존귀하게 됨으로 지혜 있고 능한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고전 1:27). 소년 다윗이 약하였으나 믿음으로 사자와 곰을 이겼고 강한 골리앗을 이기었다(삼상 17:34-57). 고린도후서 6:9-10에"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하셨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다. 연약하고 벌레와 같은 우리 성도가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서 썩어질 것이 썩지 아니할 영광의 형체로 변화되어 진다.
살리라 영과 몸 전체가 산다는 것이나 영이 그 주체가 된다. 영이 사는 생활을 하지 못하면 몸은 살았으나 죽은 자와 같다.
五. 이방인의 죄(18-32)
1. 대신 범죄(對神犯罪)(18-23)
이것은 주로 이방인들이 범하는 죄이다. 이방인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 즉 성경 말씀을 받지 않았다.
.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불의로 진리를 막는 여기 진리는 19절 이하의 하나님을 알만하게 한 자연계시를 가리킨다. 즉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이는 것과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만물에 분명히 나타난 것(20절) 등이다.
불의는 양심을 어기는 것과 자기 욕심을 따라 사는 것,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하늘로 좇아 하늘은 신령한 영역(領域)을 가리킨다. 성도가 범죄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벌이 내린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벌은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께서 버려두는 것, ②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께서 떠나는 것, ③ 각종 징벌이 오는 것이다.
. 1: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양심과 영혼을 주어서 하나님을 알게 해주셨다. 짐승은 영혼도 없고 이성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알만하도록 이성과 영혼을 주어서 하나님을 알게 하였으나 범죄하여 영혼이 죽었고(엡 2:1), 이성이 어두워졌지 때문에 특별 계시가 아니면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되었다.
. 1:20 창세로 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았고 볼 수도 없는 신이시다(딤전 6:16). 그러나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자연 만물에 다 나타내 주셨다. 그것을 자연 계시라고 한다. 자연 만물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지식과 진실하심이 나타나 있으나 사람이 범죄하여 어두워졌으므로 특별 계시가 아니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신성은 하나님 자신 곧 그의 본질과 본성을 가리킨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은 천사가 하나님의 대행자로 나타나서 보여준 것이며 이것을 비의적 현상(秘儀的現象)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만물을 보고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해 놓으셨고, 사람 속에 영혼과 이성을 주셔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알게 해주셨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섬기지 않았다고 하나님 앞에서 핑계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더욱 핑계할 수 없다.
.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었다. 진실하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그 생각이 허망해졌고, 빛이요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마음이 미련해지고 어두워졌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알려고 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나 바로 찾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감사치도 못한다. 그들은 우상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긴다.
.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어
스스로 지혜있다 이 지혜는 하나님과 성경을 믿는 데서 나온 지혜가 아니고 인간 스스로의 지혜, 즉 인간의 지혜를 가리킨다.
고린도전서 3:19-20에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고 하셨다.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미련한 것이요 스스로 자기 궤계에 빠지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성도가 범죄할 때 가장 먼저 오는 징계는 하나님과 멀어지고, 영적 교통이 끊어지고, 심령이 우둔해지는 것이다. 사울 왕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감동이 풍성하였으나 그가 교만하여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졌다. 그리하여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므로 너무 안타까와서 신접한 여인(무당)을 찾아갔다. 그가 전에는 신접한 자들을 다 죽이도록 명령했으나 이제는 자신이 무당에게 찾아가 자기의 앞일을 물어볼 만큼 답답하고 캄캄한 자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캄캄하고 어리석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마귀의 속임수에 빠져 땅에서 올라온 사무엘의 형상을 실제인 줄 믿고 부복하여 그 마귀의 말을 듣게 되었고 나중에 비참하게 죽어 망하고 말았다.
.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을 떠난 다음에는 우상이 들어온다.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영광의 하나님 대신에 짐승과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섬기게 된 것이다. 우상의 형태가 시대와 사람을 따라 변한다. 돌이나 나무 혹은 금, 은 등으로 형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기도 하고 자연 만물을 숭배하기도 하며, 사람이나 돈이나 권력이나 세상 나라나 단체를 우상으로 섬기기도 한다.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사랑하거나, 하나님의 지배보다 그것들의 지배를 더 받거나, 그것들을 의지하고 살려고 하면 그것들이 우상이 되는 것이다. 골로새서 3:5에는 탐심이 우상이라고 하셨다. 자기 목숨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자기 목숨이 우상이요,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 고집을 더 앞세우면 그 고집이 우상이 된다(삼상 15:23). 또 요즈음 일부 신자들 가운데 새로운 우상이 많이 들어왔다.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듣고, 그것을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따라가는데 이것도 우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요 자기 주관적인 감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2. 대기 범죄(對己犯罪)(24-27)
.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대해 범죄한 자는 다음에 자기에게 대해서도 범죄한다.
내어 버려두사 하나님께서 사람을 정욕대로 나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크고 무서운 벌이다. 하나님이 버려두면 흑암 가운데 빠져 욕심으로 죄를 범하다가 망하고 만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정욕대로 살기를 좋아한다.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음란한 죄를 가리킨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은 음란한 죄이다. 음란죄는 가장 강한 것이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다(고전 6:18). 성도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인데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 멸하신다고 했다(고전 3:16-17). 마귀는 모든 사람을 음행으로 멸하고자 한다.
. 1: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 자신이 진실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참되시다(고전 1:9).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거짓되고, 사람이 만든 우상을 조물주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긴다. 그러나 우상과 우상 숭배자들은 다 망하고 주님은 영원히 찬송을 받게 될 것이다.
아멘 성취의 뜻으로 이상의 내용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찬양이다.
. 1: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를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함을 인하여 라는 뜻이다.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마침내 저열한 욕심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모든 음란한 죄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죄들이 부끄러운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인간의 변태적 동성애를 가리킨다.
. 1:27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정당하게 결혼을 하여 부부생활하며 자녀를 낳는 것은 순리대로 여자를 쓰는 것이다. 이 법칙을 넘어서 한 사람이 여러 여자와 음행 하는 것은 하나님께 상당한 보응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남성간의 변태성 동성애를 가리킨다(레 20:13).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죄가 곧 이 죄였다(창19장 참조).
상당한 보음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음행 죄에 대한 상당한 보응을 그 사람에게 받게 하신다. 예를 들면 성병이나 가정불화와 파탄은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며 그밖에 자녀와 사업에도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보응이 내려오게 된다.
3. 대인관계(對人犯罪)(28-32)
.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지켜주시지 않고 버려 두신다. 하나님의 보호가 떠난 사람에게는 마귀가 들어와서 각양 탐심을 일으켜 모든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합당치 못한 일 도덕적 이념에 합당하지 못한 일에도 사용되는 말이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못한 일들을 가리킨다.
상실한 마음 원어 (아도키몬)는 시험의 결과 불합격으로 인정된 것을 의미한다.
.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하나님이 버려 두면 사람이 모든 죄악을 범하게 된다.
모든 불의 모든 죄악의 총칭이며 의리를 버리고 자기 유익을 취하는 것을 가리킨다.
추악 도덕적 부패로 악이 나타나 남을 해하는 것이다.
탐욕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으로써 불의한 일을 해서라도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다. 골로새서 3:5에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다.
악의 속에 품은 악한 심사이다.
시기 남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나 더 나아가서 미워하는 것을 말한다. 가인은 시기로 아벨을 죽였고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시기로 예수님을 죽였다. 시기는 살인에 이른다.
살인 남을 죽이는 일이다. 마태복음 5:21-22에 예수님은 남을 미워하는 것과 사람에게 노하는 것과 라가라 하는 것,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하셨다. 마음으로 살인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요한일서 3:15에는 진정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고 했다.
분쟁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당파를 만들어 다른 사람이나 다른 당파와 싸우는 것이다.
사기 거짓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 거짓된 수법으로 남을 넘어뜨리고 자기 유익을 보려는 것이다.
악독이 가득한 자요 악독은 악한 성질을 가리키는데 자기 욕심대로 되지 않으면 악독이 나와서 남을 해하는 자이다.
수군수군하는 자요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 악평을 하는 자이다. 이것은 남을 해하는 죄이다.
.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 원어 (카타라로스)는 남을 대항하여 악평하는 자이다. 특히 하나님의 참된 종을 비방하는 것은 그 종에게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비방하는 것이 되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문둥병에 걸렸다.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원어 (데오스튀게이스)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로도,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로도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역성경 각주에 "혹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라고 했다. 그런데 이들은 이방인들로서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미워하는 자가 되었다고 해야 된다.
능욕하는 자 악의를 품고 남을 해하며 남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는 자를 가리킨다.
교만한 자 원어 (휘페레파노스)는 "높이 나타나는 자"라는 뜻으로 자기의 우월감을 나타내어 남을 멸시하는 자들이다. 잠언 18:12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했다. 개인이나 단체나 교만하면 반드시 망한다.
자랑하는 자 자기 육신의 것이나 세상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자기가 우상이 되어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수도 없다.
악을 도모하는 자요 악한 일을 발명(發明)하고 계획하고 다른 사람과 공모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하나님을 떠난 다음에는 극도로 자기 중심이 되어, 부모를 위하여야 할 시간에 자기를 위하고 부모를 위해 쓸 돈을 자기를 위해 쓰게 된다. 나아가서는 자기를 위하여 부모를 거역하고 불순종한다.
.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우매한 자요 이해력이 없고 사리를 바로 모르는 자이다.
배약하는 자요 약속을 배반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 약속을 헌 신짝처럼 내버린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고 그에게 반드시 화가 미칠 것이다. 성도는 한번 약속한 것은 자기에게 해로울지라도 지켜야 된다(시 15:4). 또 자기가 신세진 사람을 배신하고 배은 망덕하는 것은 그 사람을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이요, 큰 죄를 짓는 일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무정한 자 애정이 없는 자이다. 즉 부모 자식간, 부부간, 형제간의 애정이 없는 자를 가리킨다.
무자비한 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 자비로운 마음이 없는 자이다.
. 1:32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사형에 해당 원어 (앝시오이 다나투)는 "죽음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이방인들도 이상 여러 가지 죄를 지으면 죽음에 해당한다는 것을 양심을 통해서 안다. 공자도 죄악이 차면 하늘이 죽인다(惡 이 若滿이면 天必誅之니라)고 했다. 또 이방 종교도 죄를 지으면 죽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자기들만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범죄자들을 볼 때에 그들을 옳다 하고 찬성한다. 하나님을 떠난 세계는 죄를 범하게 되고 공범자를 찾게 되고 한 걸음 더 나가서 동조자를 찾는 것이다. 이러므로 다 같이 멸망으로 들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