矗立高樓
우뚝한 도서관
原頭矗立硏書樓
압량 원두에 우뚝 솟은 중앙도서관
二十二層雲上浮
22층 높은 건물 구름 위에 솟아 있네
磨琢之中時一望
책 읽다가 때때로 먼 곳을 바라보면
靑山斷處洛江流
푸른 산 다한 곳에 낙동강이 흘러가네
[더 멀리 바라보는 마음]
늦은 오후,
압량의 들 위로 빛이 기울고 있었다.
구름은 오래 머물 생각이 없다는 듯
천천히 하늘을 건너갔고,
들의 초록은 빛을 받아 잠시 더
깊어졌다.
그 한가운데,
도서관은 높고 희게 서 있었다.
유리창마다 흐린 하늘이 조금씩
들어가 있었고,
층층의 창은 멀리 있는 산들을 향해
조용히 열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 건물을 보면 먼저
높이를 말한다.
22층.
하늘 가까이 올라간 창들.
한 번 올려다보면 목이 조금
아파지는 건물.
그러나 내게 그 도서관은 높이로
기억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그 안의 창가를 먼저
떠올린다.
책 한 권을 펴 둔 채,
오래도록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하는
사람의 옆모습을.
책 위에 머물던 눈길이 어느 순간
창밖으로 빠져나가고,
그 눈길을 따라 산과 들과 도시가
한꺼번에 들어오던 순간을.
창밖에는 산이 있었다.
가까운 산 하나가 능선을 내어주면,
그 뒤로 더 먼 산이 나타났다.
산은 겹겹이 쌓인 것이 아니라,
서로의 등을 오래 바라보며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 어딘가로 강이 흘렀을 것이다.
눈에는 다 들어오지 않아도,
낮은 곳을 향해 제 길을 버리지 않는
물의 기척은 풍경 속에 늘 있었다.
책을 읽는 일은 대개 고개를 숙이는
일이다.
문장을 따라가려면 눈은 아래를
향하고,
손은 페이지의 모서리를 짚는다.
그러나 어떤 문장은 사람을 고개
들게 한다.
더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시 읽은 것을 자기 안에
가라앉히기 위해서다.
그때 창이 가까이 있다면,
책 속의 문장과 바깥의 풍경은 서로
낯선 것이 아니게 된다.
나는 한때 높은 곳에 가는 일이
삶의 중요한 일인 줄 알았다.
조금 더 나은 성적,
조금 더 넓은 자리,
조금 더 많은 이름.
계단은 위로만 나 있었고,
멈추는 일은 뒤처지는 일처럼
여겨졌다.
누군가 앞서가면 마음이 급해졌고,
내가 선 자리를 돌아볼 겨를 없이
다음 층을 생각했다.
그러나 높이 올라가 본 날들
가운데에는,
위로 올라갈수록 오히려 멀리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낮게 이어진 지붕들,
나무 사이의 길,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작은 사람들,
저녁이 오면 하나씩 켜지는 창문들.
가까이 있을 때는 서로 부딪치기만
하던 풍경이,
멀어지자 비로소 한 폭의 삶처럼
보였다.
높다는 것은 누군가보다 위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인지도 몰랐다.
절차탁마 (切磋琢磨)라는 말은
오래된 돌의 감촉을 지니고 있다.
자르고, 갈고, 쪼고, 닦는다.
거친 것을 견디며 제 모양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배움도 그와 같아서,
무엇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신 안의 거친 모서리를
오래 들여다보는 일에 가까운지
모른다.
어떤 지식은 우리를 말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지만,
어떤 배움은 우리를 오래 침묵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든다.
도서관의 창가에는 그런 침묵이 있다.
책을 덮어도 무엇 하나 끝난 것은
아니다.
다만 읽은 문장이 마음속에서 다른
모양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산은 말이 없고,
강은 자기 흐름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산은 오래 견디는 법을,
강은 낮아지며 멀어지는 법을 가르친다.
강은 높은 곳을 탐하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을 찾아 흐르지만,
마침내 가장 먼 곳에 닿는다.
물은 자신이 지나온 굽이를 자랑하지
않고,
돌을 만날 때마다 조금 돌아갈 뿐이다.
돌아간 길도 흐름 안에서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다.
창가에 앉아 있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삶에는 빨리 답해야 하는 물음도
있지만,
오래 바라보아야만 대답할 수 있는
물음도 있다고.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보다,
이제 무엇을 바라보게 되었는지가
더 중요한 때가 있다고.
해가 낮아질수록 도서관의 창은
조금씩 어두워진다.
들녘의 빛은 사라지기 전에
나무 꼭대기와 건물의
가장자리들을 한 번 더 쓰다듬는다.
그러면 창가의 책과 안경과
빈 의자에도 저녁의 색이 얹힌다.
누군가는 아직 책장을 넘기고,
누군가는 창밖을 바라본다.
그 둘은 어쩌면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읽는다는 것은 먼 곳을 향해
마음의 창을 여는 일이므로.
언젠가 우리가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게 될 때,
기억에 남는 것은 얼마나 높은
층까지 올라갔는가가 아닐 것이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덮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던 일.
산 너머의 산을 보았던 일.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도 끝내
멀어지던 강을 마음속에 품었던 일.
그때 우리는 조금 알게 될 것이다.
삶은 높아지는 데 있지 않고,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는 데 있다는 것을.
https://youtu.be/x-MMzlDA-V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