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진 강
주남저수지.
초겨울이 되자 국제적인 멸종 위기로 알려진 흰이마기러기가 창원 주남 저수지에서
앵글에 잡혔다는 보도를 듣고 한시간 거리를 단걸음에 도착했다. 근처서부터 와글거리는
새소리가 무딘 심장을 생동감 넘치게 한다. 하늘을 새까맣게 덮는 철새들의 곡예비행에
탄성이 터진다. 표적이 된 희귀한 흰이마기러기 핑계로 왔지만 그 새가 어디 있는지 그건
뒷전이다. 수 십 종의 새 때들이 어우러져 노는 것을 보니 아이 키울 때 놀이터 모래밭에서
흙투성이 되어 뒹굴며 노는 아이를 물그러미 바라보며 다칠세라 지켜보던 때가 생각난다.
제 집 앞에선 50점을 먹고 들어간다는 말처럼 눈에 익은 까무잡잡한 물 닭이 뭇 새들
사이로 유난히 바쁘게 오간다. 자연이란 참으로 묘하고 묘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거룩
하다, 어찌 알고 수많은 종류의 새들이 이곳까지 겨우살이 하러 왔단 말인가, 풍광 좋은
곳을 물어물어 돌아다니는 인간들처럼 해마다 어렵사리 찾아오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자연 재앙보다 인간이 저질러 놓은 황폐해진 땅이 많고 많은데 그나마 이곳까지 찾아 와
이리도 풍성한 눈요기를 시켜 주니 상부상조의 덕을 인간이 다 누리는가 싶네, 생활이
복잡해질수록 어디 한 곳 자연 그대로인 곳이있던가, 그나마 가까운 곳에 이름 모르는
철새들이 무리 지어 비상하는 것을 볼 수 있으니 흐뭇하다 못해 신나고 고맙다.
그들 가까이 가면 암팡스럽게 뒤 돌아보며 우루루 자리를 피한다, 생의 터전에서 살아
남으려면 그들 나름대로 경계를 게을리 하면 안되는 것을 아는 걸까, 살얼음위로 미끄러
지면서도 종횡으로 사열하며 규율도 대단하다, 물 위로 궁둥이만 내놓고 뒤뚱거리며 온갖
물장구로 게살스럽게 촐싹거리는 새들의 해작질이 너무 예쁘고 장난기 철철 흐른다,
저들끼리 간만에 만난 친구도 있을것이고 처음인 듯 낯선 눈짓도 있을 것이다,
반가워 주거니받거니 조잘재잘 꺼어억~켁 거리며 바글거리는 모습은 영낙 없는 우리네의
5일 장터다.
거하게 상 차리듯 모이 뿌려 놓고 수렵하는 인간들도 있다.못난 수법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면 그도 살기 위함이니 어찌하겠는가만 이건 아니다 싶다,낌새가 요상한지 뿌려 놓은
먹이들이 그대로 있다.철새들이 외면하는 곳에는 결국 우리도 살아남지 못함을 알면서도
당장 눈앞만 보니 돌이킬 수 없는 시행착오를 어찌 감당하리,
자연 늪은 새들의 안식처요 천혜의 요새다. 마음을 돌면 작은 물 섶에 옹기종기 모여 있고
둔덕을 돌면 오목조목한 물길이 멈춰진 곳에 또 한 무리들, 언덕을 돌아가면 강 같은 저수지
에 수없이 모여 있는 곳이 사람사는 동네처럼 새들의 융숭한 마을이 잠시 이루어 졌다.
살얼음판은 새들의 유격장이며 활주로다. 얇은 얼음장 위에 옹기종기 모여 웅크린 체 겨울
햇살을 쬔다고 졸고 있는 평온의 미물들의 연약한 발과 다리는 얼마나 시리고 추울까.
바닷가의 몽돌 굴러가듯 사방에서 끊이 않는 새소리,크고 작은 언덕을 돌면 마을 앞에 늪
지대가 열리고 그 주위 먼발치에 과수원과 젖소 농장들이 더 한가롭다.
동네 발전에 지장을 준다고 여러 번 거론 된 세월도 만만찮다. 개발이 제한되어 발전 없는
주민이야 불편하고 불이익을 당하지만 어찌겠는가, 눈앞의 이익만 본다면 당장이라도
매립하겠지만 늪지대를 없앤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과 맞바꾸는 일이다. 미물과 사람이
다함께 잘사는 세상이라면 사람이 좀 불편해도 감내 해야 할 몫이다.
마른 풀 섶에 앉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어도 평화롭다. 우두머리의 작은 눈짓만으로
상하의 확연한 구분에 질서가 꽃핀다.큰고니의 하얀 자태가 무리와 떨어져 비련의 고독을
씹는 것도 진풍경이다. 귀밑을 차갑게 스치는 소한(小寒)의 냉기가 새들에게는 더 없는
최적의 기온이지만 추워서 어깨 움츠린 내 꼴을 보고 새들은 뭐라고 재잘될까. 찬바람에
깃털이 파르르 나부껴도 새들은 즐겁고 신난다, 헐벗은 빈 겨울 산이 포근하게 다가오고 흰
구름 아래 무리지어 나는 철새들은 하늘이라는 대형액자 속에서 살아 있는 명화다.
자연재해는 인간들에 대한 인과응보다,인근 마을에는 하등의 도움이 안되는 저수지지만
철새들 화합의 장은 뜨겁기만 하다,얼음 위에서 파르르 떨다 자빠지는 놈, 의기양양 걸어
다니는 놈,배고픈지 물 속에 거꾸로 처박혀 먹이를 찾는 놈, 사람이 뿌려 놓은 먹이를 물어
오는 약삭빠른 장돌뱅이 같은 놈,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리저리 살피는 것을 보니 영낙
없는 인간 세상이다,자유와 평온이 어우러져 가화만사 장이 열린 저수지 곳곳에 겨울
햇살도 드러눕는다.
인간과 필연의 관게가 이루어질 때 비로서 새들의 대이동이 이루어진다. 바스락 소리에
놀라 지상을 박차고 오르는 새들의 무리를 보면 예리한 방어의 촉각을 자신들을 위하여
늦추지 않고 있다.하기야 사람도 사람이 제일 무섭다.새들이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날은 우리들의 영원한 숙제다. 인간을 겁내지 않는 완전한 합일은 있을 수도 없고 문명이
발달 할수록 새들의 아름다운 비행은 서서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해운대 백사장에 가면 새우깡을 받아먹으려는 갈매기들이 사람들 앞에 우루루 모여드는
것을 본다.자신들을 헤치지 않을 것이라는 일단의 믿음 보다 먹이에 본능을 집중하기
때문이다.갈매기도 세월 따라 새우깡에 맛 들여지고 지하철 역 천장이 비둘기의 안식처가
되는 엄연한 현실을 보면 모두가 제자리를 잃어 갈 수도 있다.
저수지 가장자리에 뿌려 놓은 새들의 먹이가 물위에 둥둥 떠다닌다.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부모의 마음처럼 전망대의 도수 높은 대형 망원경으로 어떤 새들이 어느곳에서 먹이를
잘먹나 살피는 정성도 자연 사랑이다. 그러고 보면 결국 인간의 무리는 새들에게 경계의
대상일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너희들이 건강해야 우리도 산단다. 조류 독감으로 수천수만의 생명들이
나뒹구는 몇 년 전부터 감기든 철새들이 몰려오는 것도 달갑게 여기지 않아 철새도래지에
인적이 뜸해지는 것도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함이니 어쩌겠는가, 그래도 나는
너희들을 보러 가까이 갈것이다. 궥궥 거리며 반기는 그 마음을 때문에, 빈 논에 뿌려놓은
먹이를 먹다가 어느 한 마리가 휙 날아오르니 뭔 일 났나 하고 다 날아오른다.
참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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