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역 대합실에서 / 교정 중
경산역 대합 실에 박ㅇㅇ작가님의 켈리그라피 작품이 전시 중이다. 시는 다른 분의 작품빌린 시서화 작품이다. 18. 11. 2.~11. 30일까지 한다. 넘버 하나랑 부산 나들이 길에 작품 감상을 했다. 보면서 저 그림은 검은색이 많고, 저 그림은 막대기처럼 선만 그려 놓아 잘못 그렸다고 지적처럼 말을 지적이라고 하고 있다. 그림의 의미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단다. 옆의 다른 작품 중에 채색된 그림과 글씨체는 멋있다 한다. 그림의 의미보다는 보는 순간 겉모습의 색상을 보고 내린 자기주장을 말해 버린다. 작품 그림 자체를 단순하게 평가해 버린 것이다. 자기 좋아하는 색이 있으면 좋은 것으로 본다. 그리고는 자신이 대단하게 점수 줄 수 있는 채점관인 것처럼 말을 한다.
면박을 줬다. 틀렸다 잘못됐다가 아니라 내 생각과 다르다는 표현이 맞다고 해 주었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약한 수준에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인 것이다. 작가라는 분도 작품 의미도 아는 것 아니면서다. 작품 심사하는 유명 작가분들도 그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 겉치레 단답형의 흑백논리의 점수 만들기 평가는 무식자임을 폭로하는 것이다. 하면 안 된다. 그냥 잘 보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다. 괜히 아는 체하다 망신살이 뻗친다. 자신의 지적 수준을 먼저 자질을 해 봐야 한다. 처음에는 음성을 좀 올라가다가 감정 추슬러서 조용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작품을 이해 못 하면 조용히 신중히 보기만 하라고 했다. 그러면 다른 분들이 우아하게 감상하는 줄 안다고 추가로 덧 부쳐 이야기해 주었다. 부끄러운지 민망인지 웃는 얼굴에 홍조까지 보인다.
켈리 그리피 글씨체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전시 중인 작가님도 아마 배우고 얼마 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처음보다는 아직 계속 공부 열공 중인 분의 작품처럼 보인다. 예쁘게 정성이 가득하다. 해 본다 하였다 라는 성취가 훨훨 나다. 꽃이 피고 출렁이는 파도에 하늘은 청명에 울타리 오손도손 뭇 풍경이 정나게 어우러져 있다. 붓글씨와 그림의 서화에 어느 시인의 풍성한 시심의 글이 마중하니 이상향이다. 나의 바람, 자작 시서화를 전시하고 책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켈리 그라피를 배운다. 수필로 등단도 했다. 곧 시분야도 등단 준비를 하고 있다. 선배님의 앞길을 미소 지우며 바라본다. 나 또한 아무것도 모를 무지 시절에 집 사람처럼 말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시건방이란 말의 의미도 모른 때다. 옆에 있는 이가 명색이 작가로서 버젓이 있는데 망발처럼 하였으니. 훈계질 아니할 수 없었다.
일반적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표현을 편하게 하며 살아간다. 일상이 그런 사고 의식이라 편하게 말을 하곤 아무렀치도 않게 생활한다. 삶의 생활에 푹 녹아 던 표현 방식이다. 곧잘 일상의 대화에서도 무심히 자신의 감평을 편하게 한다. 티브이에서 가수가 노래 부르면 제는 잘하는데 제는 어떻고 제는 옷이 왜 저래 제는 소문이 등등 자신의 입맛으로 말을 한다. 이게 일상으로 습관화가 되어 있다. 전문적으로 배우고 아는 분이라면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쉽게 말을 한다. 다른이 도 맞짱 치며 같이 보면서 즐긴다. 이는 끼리끼리 일 때는 통할 수 있다. 끼리 재미로 보고 이야기하고 즐기는 시간일 수이니. 하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가 같이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자신들은 전문가가 아니다.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각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자. 독고적 그릇된 잣대는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제는 조금씩 전문성을 가지는 품성을 키워야 한다. 독자와 작가의 간격. 독자는 작가로서 보아주는 미덕, 독자로서 관전하는 덕목으로 같은 선상으로 배려하자. 내 생각과 주장이 다르다고 싸울 듯 감정 넣는 성질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 행동이다. 자존심 세울 일이 아니라 못난이의 표본이다. 문화가 일취 성장하는 지금의 세대다. 개인의 문화 지식을 키워 사람됨을 만들어 가야 한다. 밋밋한 관람에서 호기의 배움을 배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예술면에 관심이 별로 없는 이는 그 자신을 알까? 여행길처럼 부산행 열차를 탄다. 이 또한 한 폭의 그림이고 예술인데 이를 어찌 알켜 줄 수 있을까? 먹을 만큼 먹은 나이인데 그래도 시간에 맡겨 보기롤 한다.
24. 03. 19.
잣대 / 초고
경산역 대합 실에 박ㅇㅇ작가님의 켈리그라피 작품이 전시 중이다. 18. 11. 2.~11. 30일까지 한다. 넘버 하나랑 부산 나들이 길에 작품 감상을 했다. 보면서 저 그림은 검은색이 많고, 저 그림은 막대기처럼 선만 그려 놓아 잘못 그렸다고 지적 같은 말을 한다. 그림의 의미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단다. 옆의 다른 작품 중에 채색된 그림과 글씨체는 멋있다 한다. 그림의 의미보다는 보는 순간 겉모습의 색상을 보고 내린 자기주장을 말해 버린다. 그림 자체를 단순하게 평가해 버린 것이다. 자기 좋아하는 색이 있으면 좋은 것으로만 보면서. 그리고는 자신이 점수 줄 수 있는 채점관인 것처럼 말을 한다.
면박을 줬다. 틀렸다 잘못됐다가 아니라 내 생각과 다르다는 표현이 맞다고 해 주었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약한 수준에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인 것이다. 작가라는 분도 그분의 작품 의미를 아는 것도 아니면 서다. 작품 심사하는 유명 작가분들도 그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 겉치레 단답형의 흑백논리의 점수 만들기 평가는 무식자임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다. 하면 안 된다.. 그냥 잘 보며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다. 괜히 아는 체하다 망신살이 뻗친다. 자신의 지적 수준 먼저 자질을 해 봐야 한다. 처음에는 음성을 좀 올라가다가 감정 추슬러서 조용히 설명을 해 주었다. 작품을 이해 못 하면 조용히 신중히 보기만 하라고. 그러면 다른 분들이 우아하게 감상하는 줄 안다고 추가로 이야기해 주었다. 부끄러운지 민망인지 웃는 얼굴에 홍조까지 보인다.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자. 독고의 그릇된 잣대는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과 주장이 다르다고 싸울 듯 감정 넣는 성질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 행동이다. 자존심 세우는 일이 아니라 못난이의 표본이다.
우물 안의 잣대를 내려놓자.
내 겉멋의 잣대를….
2023.
잣대 / 초안
경산역 대합 실에 박ㅇㅇ작가님의 켈리그라피 작품이 전시 중이다. 18. 11. 2.~11. 30일까지 한다. 넘버 하나랑 부산 나들이 길에 작품 감상을 했다. 보면서 저 그림은 검은색이 많고, 저 그림은 막대기처럼 선만 그려 놓아 잘못 그렸다고 지적 같은 말을 한다. 그림의 의미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단다. 옆의 다른 작품 중에 채색된 글씨 그림은 멋있다 한다. 그림의 의미보다는 보는 순간 겉모습 색상 보고 내린 자기주장으로 그림 자체를 단순하게 평가해 버린 것이다. 자신이 점수 줄 수 있는 채점관인 것처럼.
면박을 줬다. 틀렸다 잘못됐다가 아니라 내 생각과 다르다는 표현이 맞다고 해 주었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약한 수준에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발상인 것이다. 작가도 의미도 아니면서. 작가들도 그런 표현을 하지 않는데. 겉치레 단답형 점수 내기는 하면 안 된다. 자신의 지적 수준 폭로일 뿐이다.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자. 독고의 그릇된 잣대는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과 주장이 다르다고 싸울 듯 감정 넣는 성질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 행동이다. 자존심 세우는 일이 아니라 못난이의 표본이다.
우물 안의 잣대를 내려놓자.
내 겉멋의 잣대를….
2018.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