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경칩이 되면 농부들의 손길은 몹시 바빠진다.
음력 3월은 고추를 심는 때이기도 하며,
겨우내 밟아 복돋우었던 보리밭도 매주어야 한다.
5월 중순이 되면 보리가 한창 여무는 계절이다.
그리고 5월 말 망종이 되어 보리가 누렇게 익으면 거두고 모를 심는다.
예전에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쓰이던 '보릿고개'라는
말은 어느새 옛말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맥주를 만드는데 사용한다 하여 '맥주보리'라고 부른다.
보리 이삭은 밟아주어야 더 많은 결실을 거둔다.
보리 밟기는 보리를 죽이기 위한 게 아니라 고난의 과정을 통해 더 강인한 줄기를
만들어내고 더 많은 결실을 맺게 하기 위한 과정이다.
나무와 꽃들은 저마다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은 물을 많이 주어야 하고, 어떤 것은 물이 모자란 듯해서 갈증을
느끼게 해야 좋다.
산에 사는 나무나 풀들을 잘 살펴보면 그 속에 삶의 원리와 진리가 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을 가까이 하면 사람사는 도리가 어떠해야 하는지 배우게 된다.
자연이 말없이 들려주는 가르침이다.
옛날에 한 동네에 바보가 살았다고 한다.
병이 들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바보의 아버지는 숫자도 모르고
날짜 흘러가는 것도 모르는 아들이 어떻게 농사를 지을지 무척 걱정이 되었다.
어느 날 아들을 불러 앉혀놓고 일렀다.
"가죽나무 이파리가 개 발바닥만 해지면 못자리를 할 때니라.
그리고 대추 알이 열려 네 콧구멍이 들락날락할 정도의 크기가 되면
모심기는 늦었지만 그때라도 잡곡보다는 벼를 심거라.
비가 안와 못자리 때를 놓쳤더라도 밤송이를 겨드랑이에 대고 문질러도
따갑지 않을 때쯤이면 메밀이나 조보다 벼를 심는 게 더 낫다.
추수할 때 곡식으로는 아무래도 값나가는 쌀이 더 먹을게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날씨가 더워져 모내기할 때
대추가 열리지 않을 때도 있어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가르침이다.
더구나 모를 비닐하우스에서 키우기도 하기 때문에 그때만큼 햇볕과 비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게 되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오히려 날짜를 가르쳐주는 것보다 더 오리무중인
그 당부로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그 당시 사람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비록 그 겉모양새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환절기가 되면 겪는 몸의 변화는 아직도 여전하다.
이유 없이 나른해지고 피로감이 더해지는 늦봄, 제철을 맞은 쑥은 기력을
회복하는 데 그만이다.
예부터 쑥은 요긴한 민간요법 재료이자 보릿고개를 넘는 구황식물로
활용되어왔다.
그런데 예전에 구황식품으로 먹었던 음식의 대부분은 요즘 건강식품이다.
항암작용을 한다 해서 섭취를 권장하는 식품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경험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춘궁기에 아무리 배를 곯아도 쑥을 먹은 사람은 살가죽이 들떠서 붓고
누렇게 되는 부황浮黃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의 공자孔子도 오래된 병은 3년 묵힌 쑥으로 고치라고 했다.
북송시대의 재상 왕안석王安石은 100가지 질병을 치료하는 데 쑥만 한
약이 없다고 했다.
서양에서도 쑥은 히포크라테스가 활용했던 시대 이전부터 최고의
여성 질환 치료제로 이용되어왔다.
현대에 와서는 가정에서 쑥을 사용하는 일이 적어졌지만
쑥은 여전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별미이자 건강식이다.
쑥은 보통 음력 5월 단오 무렵에 채취한 것을 최고로 친다.
쑥잎에서 나는 독특한 향기는 해열작용을 하는 '치네올'이라는
정유精油 때문이다.
또 쑥의 '아르테미시닌'은 말라리아 치료제로 이용되어왔으며
최근에는 항암작용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식용에 적합한 쑥은 5월 무렵에 돋아나는 어린 잎이며 성숙한 것은 말려서
약용으로 사용한다.
쑥에는 특수한 약용 성분 외에 비타민 A와 C가 많아 면역력을 키워주고
감기예방에도 좋다.
'애쑥국에 산촌 처자 속살 찐다'는 속담이 전해질 정도다.
쑥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자궁을 수축시키는 효능이 있어 여성에게 특히
좋은 음식이다.
쑥의 탁월한 지혈 효과는 손상된 장의 점막을 수렴시키는 역할을 한다.
장에는 특히 우리가 인진쑥이라고 부르는 사철쑥이 좋다.
인진쑥은 소장에서 영양분과 노폐물을 잘 분류하도록 도울뿐만 아니라,
분류되지 못해 간에 축척된 노폐물을 해독시키기까지 한다.
인진쑥이 간에 좋다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의학에서는 쑥이 우선 피를 맑게 해주고 해독작용과 혈압을 내리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해열과 진통작용, 구충작용, 소염작용은 물론 여성 냉대하증이나
생리불순에도 효험이 있다.
여성을 위한 약초라고 알려져 있는 이유도 임산부의 유산을 막아주고
월경주기를 고르게 해주며 냉증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 얼굴에 바르면 항균작용과 혈액순환을 해줘 피부미용 재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또한 봄에 어린 쑥을 뜯어서 생즙을 내어 마시면 고혈압과 신경통에 좋다.
쑥의 성분은 단백질, 지방, 당질, 칼슘, 인, 철분, 니아신과 비타민 A, B1, B2, C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쓰임새가 다양해 약용, 식용으로도 널리 사용된다.
어떤 사람은 쑥이 만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영초靈草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몸에 영험한 기운을 불어넣는다는 뜻일 것이다.
쑥은 민간요법에서 가장 많이 쓰는 약초로 예부터 모든 악기惡氣를 다스린다고
알려져왔다.
기는 존재를 활동하게 하는 힘을 말한다.
여러 가지 질병에 효험이 있어 심지어 사우나에도 쑥탕이 있고, 부인병에 좋아
쑥으로 좌욕을 하기도 한다.
야외에 나갔다가 다쳐서 피가 나면 들에 피는 삐비꽃이나 쑥을 비벼서 붙이면
지혈이 된다.
가까이에 그런 풀들이 없을 떄는 담뱃잎을 붙이기도 한다.
지천에 깔려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쑥은 길가, 풀밭, 논밭,
어디에나 없는 곳이 없다.
어떤 아이들은 쑥국을 보고서 "잔디 밭에서 뜯은 풀로 끓인 죽을 어떻게 먹느냐?"며
어리둥절해한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아파트 화단에 아무렇게나 난 쑥을 보고서는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쑥국 맛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릿한 쑥 향기와 몸을 씻어 내는 듯한
된장 국물 맛이 그 어떤 보약보다 좋다는 것을 안다.
차로 쓸 쑥을 구하기 위해서는 농약에 오염되지 않는 산이나 들판으로 가야 한다.
산속의 나무 틈새에서 자란 쑥은 깨끗하고 뜯기도 쉽다.
약쑥은 5월 단오날에 채취하여 말린 것을 으뜸으로 친다.
땅에서 30센티미터 이하로 자란 쑥은 아무 때나 상관없이 채취해도 괜찮다.
이렇게 채취한 쑥은 그늘에서 잘 말려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보관한다.
쑥차는 대용으로 우려 마셔도 좋고 쑥잎을 가루내어 찻잔에 두 숟가락 정도 넣은 뒤
물을 끓여 붓고 저으면서 마시면 더욱 향이 좋다.
쑥은 다양한 먹을거리의 재료로 활용할 수도 있는데,
쑥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로는 쑥된장국, 쑥떡, 쑥수제비, 나물 무침,
쑥튀김 등이 있다.
또 건조시킨 쑥을 진하게 끓여서 욕탕에 붓고 몸을 담그면 요통, 타박상, 신경통,
부인병, 습진, 피부미용에도 아주 효과적이다.
죽림의 향기 상화...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