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권두언 시의 위기 혹은 시 정신의 결핍 --아가페 문학
김 송 배(시인. 한국문인협회 사무처장)
우리는 지금 문학의 위기를 맞고 있으며 그 위기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 문학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스스로 초라함을 느끼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첫째는 고도로 팽배해진 물질문명의 여파는 최첨단이라는 생활방식으로 바꾸어 놓았기에 거기에서 보다 안주하려는 인간의 단순한 욕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물질문명의 혜택으로 인한 단순 욕망은 인간의 사유방식을 흐리게 하고 나아가서는 정신세계의 황폐화를 가속화시켜 사회적인 문제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듯이 우리는 글을 써서 문학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왜일까. 그것은 우리 문인들의 책무이다. 막다른 곳 갈 데까지 가버린 정신의 피폐는 우리가 교정하고 치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극복의 의지를 버릴 수가 없다. 시는 영혼의 음악이라고 한다. 그 음악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안온하게 다독여야 한다. 이른바 인간의 좌절이나 갈증 또는 공허감을 시로써 건져내야 한다. 인간의 정신적인 성장과 직립을 위해 꾸준히 좋은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 그렇다. 우리는 이러한 시 정신의 발현으로 시의 목적과 시의 효용가치를 찾아야 한다. 정서적인 불안과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이미지의 창조적 세계를 제공함으로써 삶의 내용을 확충시켜서 그만큼 생활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문학잡지와 거기에서 양산되는 시인들, 그리고 일년에 수십 만 권씩 쏟아지는 시집에 비해서 우리는 시의 침체와 위기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양보다도 질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아진다. 왜냐하면,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지 못해서 시가 깊이 있게 읽히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단정은 매클리쉬가 그의 ‘시법’에서 ‘시는 감촉할 수 있고 묵묵해야 한다 / 구형의 사과처럼 / 무언(無言)이어야 한다 / 엄지손가락에 닿는 낡은 훈장처럼 /조용해야 한다 / 이낀 자란 창턱의 소매자락에 붙은 돌처럼 / 시는 말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시인들의 치열성 부족과 고뇌가 전혀 없는 작품으로 타성에 젖은 채 시를 양산하고 있어서 마치 자신의 독백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염려하게 된다. 프랑스의 사상가 가스통 바슐라르는 시인 가운데 가장 훌륭한 철학자이며 철학자 가운데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칭송을 받았는데 그는 평소에 시를 말하기를 ‘시는 순간의 형이상학(形而上學)이다. 하나의 짤막한 시편 속에서 우주의 비젼과 영혼의 비밀과 존재와 사물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시가 단순히 삶의 시간만 따라가기만 한다면 시는 삶만 못하다. 시는 오로지 삶을 정지시키고 기쁨과 아픔의 변증법을 즉석에서 삶으로써만 삶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때서야 시가 가장 산만하고 가장 이완된 존재가 그의 통일을 획득하는 근원적 동시성의 원칙이 된다.’고 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시의 위기나 정신세계의 결핍은 시인과 독자들 사이에 바로 이러한 시의 위의(威儀)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발단이 되고 있다. 존재와 소멸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의 부족과 진지한 고뇌와 성찰이 형상화하지 못한 글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요즘의 작품들에 대해서 하나의 경종이 될 것이다. 원래 형이상학은 학문적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형이상시(形而上詩)라 이름한다. 그것은 우리 신체에 결부된 오관(五官)을 통한 이미지, 즉 사물 이미지의 추출과 동시에 우리들 내면에 잠재하여 지적자양이 함유된 관념 이미지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시학적 논거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이 시대의 시인들이 염려하는 위기의식을 극복하고 시의 위의를 바르게 정립하는 지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출발하도록 고무하고 그 삶의 원류로 되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 원동력의 마력은 시인이나 독자에게 무한의 그리움이며 가장 소중한 기원이다. 이러하듯이 그 그리움과 기원의 원천을 탐색하는 ‘아가페문학회’ 회원 여러분들의 소임 또한 막중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좋은 시로써 정신적 풍요로 위기의식의 순화와 존재의 의미를 재창조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