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몸 밖의 일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내면에서 아버지와 하나 된 아들이 되는 것이다.
2) 공간 세상이 아닌 몸과 마음(코스모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둘 곳이 없다고 하신다.
3) 진리가 없어 취해서 비틀거리는 자녀의 마음 밭에 전쟁과 종말은 내면의 일이다.
4) 몸과 마음(코스모스)은 항상 밖의 사랑스러움에 목말라 있기 때문에 진리를 거부한다.
나. 본론
1) 몸 밖의 일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내면에서 아버지와 하나 된 아들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 다면 이 세상(코스모스)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번역이 크게 잘못 되었다.
‘행하신 일’로 번역한 ‘에포이에센’은 과거 능동태로 원형은 ‘포이에오’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 자녀들 안에서 행해지는 일로서 마음 밭을 옥토 밭으로 개간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몸 된 성전을 세우는 일(포이에오)이다. 성경말씀은 모두 몸 밖의 일이 아니라서 이 포이에오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 되어 있는 아버지의 뜻으로 온전한 아들로 씻어서 십일조(헌물)로 받기 위함이다.
2) 공간 세상이 아닌 몸과 마음(코스모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둘 곳이 없다고 하신다.
“~이 세상(코스모스)을 생각하면 이 기록되어진 책들을 두기에(수용하다) 결코 아니다.”이다. 어떻게 번역하였든 그 의미만 알면 된다.
‘이 세상이라도’로 번역한 ‘톤 코스톤’은 목적격으로 ‘이 세상을’이다. 공간 세상이 아니라 몸과 마음(코스모스)의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을 둘 곳이 없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가 없다고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쉬실 몸 된 처소가 없다고 하신다. 내면의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가 없다고 정의하신다.
3) 진리가 없어 취해서 비틀거리는 자녀의 마음 밭에 전쟁과 종말은 내면의 일이다.
그래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자녀의 마음 밭에 전쟁이 일어나고 종말이 와야 그 마음 밭에 개벽이 일어난다. 정말로 죽고 싶을 정도로 견디기 힘든 고통스런 고난이 마음 밭에 일어나야 정과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 밭, 희망으로 가득한 마음 밭이 망가져야 점차 옥토 밭으로 개간되어진다. 안 그러면 여전히 몸과 마음의 사랑스러움에 미혹되어 하이에나처럼 밖으로 향할 수밖에 없으며, 대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복을 받고 병도 낫고 영혼이 잘 되어 천국 간다고 할 것이다. 술에 취한 채로 한평생을 살게 된다.
세상(몸과 마음)에 길들어진 에고의 마음 밭은 칼과 불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가 내면에 나타나지 않으면 절대로 옥토 밭으로 개간되지 않는다. 밖에 나타난 역사적으로 위대하고 전지전능한 예수로는 종교적으로 치우칠 뿐 절대로 마음 밭이 개간되지 못한다.
4) 몸과 마음(코스모스)은 항상 밖의 사랑스러움에 목말라 있기 때문에 진리를 거부한다.
“현재 기록된 말씀들을 받아 지니기에 이 세상(몸과 마음)을 생각하면 결코 아니다.”로 해석하는 것이 원문의 말씀이다. 몸과 마음(코스모스)은 항상 밖의 사랑스러움에 목말라 있기 때문에 항상 진리를 거부한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왜곡된 말씀이 아닌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옛 시대나 지금이나 깨달아 소유하는 자가 없다고 하신다.
생명의 그 빛과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