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수업시간에 ‘우주의 질서’가 왜 나와?>
I. 들어가며: ‘우주의 질서’에 관한 우리의 통념
'우주의 질서'와 같은 얘기를 일상에서 진지하게 한다면 그 사람은 높은 확률로 정신 나간 사람이나 광대 취급 받을 것이다. 더구나 천문학 전공자도 아닌 사람이라면 그 가능성은 더 높아지며 단군, 무속, 도가 사상의 맥락에서 언급한다면 십중팔구 사이비 취급 받는다.
II. 우주의 질서를 담은 음악?
며칠 전 국악개론 강의에서 제례악을 공부하며 '우주의 질서'라는 단어를 오랫만에 들었다.
‘우주의 질서’와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상은 우리가 대학에서 배우는 음악이란 ‘수학적인 음의 질서 배열’이기 때문에 ‘4분의 4박자, 3연음표, 16분음표, 5도 화음’와 같은 용어로 이야기하는 게 자연스러운 만큼 ‘우주의 질서’와 같은 얘기엔 어색하고 신선하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음악에서, 특히 근대 서양음악에서 음의 수학적 질서는 매우 중요하고 큰 의미를 가지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음악이란 한 문화권의 중요한 가치와 의미체계를 드러내는 상징으로도 존재하는 만큼 국악 시간에 배우는 ‘종묘제례악이 담은 우주의 질서’ 파트가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수업이라 생각하며 이내 진지하게 임했다.
III. 제례악에서 드러나는 우주의 질서
1. 제례악의 뜻
요즘 시대에 음악을 들으면서 신, 종교, 제사 등을 떠올리는 건 이상하듯 더 이상 음악은 종교와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다. 오늘날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악곡이 가지고 있는 소리 패턴을 감상하는 것이다. 멜로디, 코드, 리듬, 음색 등 말이다.
물론 오늘날도 음악을 들으면서 영적 황홀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종교계에서 포교 목적으로 사용하는 음악, 예를 들어 개신교의 ccm또 종교의례에 사용하는 -가톨릭의 경우 미사곡, 불교의 범패, 개신교 코랄-을 보면 오늘날에도 종교와 음악의 관계가 아예 무관하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중음악은 매우 세속적인 사랑, 부, 사회현상에 관한 가사를 다루며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영적 황홀감'과 같은 느낌과 비유적 차원에서 음악과 종교의 관련성을 이야기하지 기성 종교의 메시지를 음악을 통해서 듣는 경우는 열렬한 그 종교의 신도가 아닌 이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과거에는 음악과 종교의 관련성이 매우 밀접했으며, 특히 많은 종교들이 자신의 종교적 의식에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에 따라서 특히 봉건 시대의 음악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그 음악의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데 그 종교의식과 연관성 속에서 반드시 이해될 필요가 있었다. 이는 서양의 개신교, 가톨릭뿐만 아니라 한국, 특히 조선조의 유교 제사의식에서도 마찬가지이기에 제례악은 매우 중요한 음악적 연구대상이다.
2. 음양
제례악을 악기로 연주하는 사람들의 집합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등가, 다른 하나는 헌가이다. 등가와 헌가는 서로 다른 성질인 음과 양의 조화 논리를 반영하여 배치한다. 등가(登歌)는 그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 오를 등(登)이라는 뜻에 맞게 계단 위에 올라서 연주하여 ‘양’의 기운이 강하고 헌가는 반대로 바닥에 놓여 연주하며 ‘음'에 해당한다고 본다.
한국 전통음악의 음률(音律)은 그것이 배열된 순서에 따라 홀수 번째 음은 양률(陽律)로 짝수번째 음은 음률(陰律)로 보는데 음과 양의 조화라는 원칙에 따라 양의 기운에 해당하는 등가에선 반대 성질인 음률의 소리를, 헌가에선 양률의 음을 연주한다.
3. 오행설
오행설은 가운데와 동서남북의 5가지 방위 각각에 해당하는 색과 상징을 설정한다. 종묘제례악은 해가 뜨는 방향인 동쪽에는 파란색 악기인 '축'으로 초반부를 연주하고, 지는 방향인 서쪽에는 하얀 호랑이 모양의 악기 '어'로 곡 마무리를 하여 오방색의 상징을 구현한다. 이러한 오방색은 추가적으로 천지인 사상과 연관지어 논의할 수 있다.
4. 천지인
조선시대에 거행한 제례악은 종묘제례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것도 있었다. 물론 종묘제례악처럼 조선 왕실의 역대 왕 혹은 그 선조를 기리는 제사도 있지만, 다른 한편 사직 제례악과 같이 땅의 신을 대상으로 풍년이 들기를 기도하는 제사, 문묘제례악처럼 공자와 유학자를 기리는 제사도 존재했다. 이들 제례악에 즉 문묘, 사직, 원구제는 각각 사람, 땅, 하늘을 향해 지내는 제사인데 이 자연물에는 상징하는 색깔과 기아학적 도형이 존재한다.
즉 하늘은 검은색 육각형, 땅은 노란색 팔각형, 사람은 빨간색 사각형 해당하는데, 이 제례악에서 타악기에 색깔과 기하학적 면수가 반영되어 있다. 하늘을 상징하는 원구제례에는 검은색 여섯 면의 타악기인 뇌도와 뇌고, 땅신을 제사 지내는 사직 제례악에는 8면을 가진 노란색 타악기 영고와 영도, 사람을 향해 제사 지내는 석전제는 빨간색 4면으로 이루어진 노도와 노고로 제사를 지낸다.
IV. 이상한가?: 음악에 관한 음악이론적 접근 뿐 아니라 문화적 접근도 활발해져야
이상으로 제례악에 담긴 한국의 전통적인 상징적 세계관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누군가는 음악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음에 관한 얘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흔히 음악 연구라고 하면 음과 음 사이의 관계가 어떤지, 화성, 리듬, 멜로디의 진행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일리가 있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음악은 한 문화권 내에서 중요한 상징 체계로 의사소통 체계로서 기능하는 점을 고려해보면, 실제로 그 사회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의미가 음악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분명히 연구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접근이 기존의 양식 중심적으로 접근했던 다양한 음악에 대해서도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서양의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도 기존과 같이 "고전주의 시대 음악은 삼화음 중심의 화성이 전개되었고, 조성적 대조를 특징으로 한 소나타 형식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와 같은 기술도 좋지만 "당시 시대는 음악가들이 교회나 궁정 체계에서 벗어나서 프리랜서 예술가로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기에 일반 대중 관객을 상대로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소나타 형식과 같이 조성적인 대조가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음악이 만들어지기도 하였으며 당시에 전용 콘서트 홀 많이 설립되면서 음악적 형식에 집중하여 감상하는 문화가 생겼다"와 같은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접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II. 음악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기: 음악도 한 사회 내에서 의미를 부여받는 상징이니깐 가능하다.
누군가는 국악 개론에서 음악보다는 인문학적 접근이 많은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서양 음악사를 공부할 때는 화성학, 대위법, 형식론, 작곡가 일화 등 보다 음악 본연에 충실하는 것 같은데 국악은 왜 그러지 못하느냐라는 불만이다.
나는 그 불만 안 가지려 한다. 국악 특유의 음악에 대한 인문학적 서술 방식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보아서다.
음악이 꼭 악보, 악기, 작곡가, 작품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문화권 내에서 구성원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행위하고 삶 속에서 수용하는 것'이기도 해서다.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그 음악이 탄생, 수용된 사회에 대한 고찰를 하기 위해서 인문학적인 접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난 역으로 서양 음악에서도 인문학적인 접근들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제안을 하고 싶다.
예컨대 소나타라고 했을 때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 제1주제, 제2주제, EEC 같은 형식 분석을 많이 한다.
혹은 통시적 접근으로서 소나타 형식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연속 순환 2부분 형식, 균형 2부분 형식과 관련이 있다라는 얘기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적 접근 뿐 아니라 당대 사회의 음악관에 관한 인문학적 접근, 예컨대 19세기 소나타가 계몽주의 사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소나타 형식이 형식 미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소나타 형식에 대해서 당대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소나타 형식으로 연주되는 오케스트라 음악인 교향곡이 당대의 후원 체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와 같은 접근을 하는 것도 중요한 만큼 음악 외적 방법론을 이용한 연구도 추가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