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이 남긴 노래 얼마나 좋은지 알릴 뿐"
김진령 jy@sisapress.com2010. 8. 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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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10월 EBS가 방영한 기획
프로그램 < 임동창이 말하는 우리 음악 > 16부작은 큰 화제를 모았다. 그의 음반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고 연장 방영 요청이 이어졌지만, 그는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중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고교 졸업 후에는 불교에 귀의했다가 나이 서른에 서울시립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졸업 뒤에는 사물놀이에 빠져 꽹과리를 배우고…. 장르 구분이 없는 그의 음악적인 만행은 사물놀이판의 뒷풀이 스타 장사익을 발굴해 대중에게 알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자신은 양악과 국악, 뽕짝과 재즈를 넘나들며 콘서트와 강연을 통해 대중의 열띤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딴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며 '스타덤의 정점'을 치는 순간 그는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10년. 지난 7월 초 임동창은 그의 부인인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씨가 서울 성북동에서 운영하는 한복집 효재 앞마당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지난 10년간 그가 화두로 붙잡고 공부하던 전통 음악의 성과물을 작곡집과 앨범으로 담아낸 것이다. 그는 자신이 공부한 음악을 '허튼가락'이라고 불렀다.
▶10년 전 EBS 강좌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EBS도 놀랄 정도의 시청률이 나왔다. 더 놀라운 것은 밤 10시40분에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시간에 텔레비전을 보는 어린아이들은 전부 다 봤다는 통계가 나오더라. 어린아이일수록 나와 대화가 더 잘된다. 그 전에도 음악캠프 같은 것을 하면 꼭 가족 단위로 오더라. 나는 각시와 떨어져서 비가족적인 삶을 사는데도 가족 단위 팬이 많다.(웃음)
▶그때 대중은 왜 임동창에게 환호했을까?
내가 한 음악이 요즘 말로 하면 퓨전 아닌가 싶다. 지금이야 내가 나름대로 답을 찾아 허튼가락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모를 때 내가 내키는 대로 공연을 했다. 다만, 공연을 하거나 강연을 하거나 최선을 다해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라졌다. 왜 그랬나?
열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그때부터 내 음악이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나이는 자꾸 먹고 17세 때 가졌던 화두는 답을 못 찾고…. 두려웠다. 더 나이 먹으면 답을 찾지 못할 것 같아서 과감히 들어가버렸다.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하늘이 나를 찍어서 음악으로 인도한 것 같다. 가난해서 음악을 할 형편이 아닌데도 어느 날 무당 되듯 갑자기 피아노 소리가 몸으로 들어왔다. 내가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때 그것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피아노 쳐라, 작곡해라, 중도 해봐라, 사랑도 해봐라. 4개의 화두를 하늘이 준 것 같다. 평범한 방법으로 준 것이 아니라 꼼짝 못하게 해놓고 그런 화두를 던져 줘서 이 나이 먹도록 숙제만 풀고 있다.
▶그동안 무엇을 했나?
처음에는 < 수제천 > 으로 두 시간짜리 피아노곡을 만들려고 했다. 처음 14개월간 쉬지 않고 일했는데, 만들고 보니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버렸다. 그리고 나서 < 수제천 > 을 다시 들으니 14개월 만에 음식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텅 빈 상태에서 느닷없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때부터 음악 속에서 조상을 보았다. 조상의 품 안에서 행복하게 놀았다. 전통의 오리지널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다른 불순물 없이 조상의 음악적 DNA로만 작업을 하자는 생각에 창작곡집 6권을 만들었다.
▶세 장의 앨범도 냈는데.
음반은, 우리 조상이 남겨준 곡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리고 싶어서 만들었다. 허튼가락으로 작곡한 창작곡의 원류가 정악인데, 그 정악의 오리지널 버전을 들려주고 싶었다. < 수제천 > < 영산회상 > 등 앨범 세 장은 연주 방법만 허튼가락을 적용했다. 프레이즈를 살짝 변화시키고 < 영산회상 > 의 경우 거문고 가락이 베이스인데, 멜로디가 약간 엇박자로 들어가게 연주했다.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하늘이 나를 찍어서 음악으로 인도한 것 같다. 가난해서 음악을 할 형편이 아닌데도 어느 날 무당 되듯 갑자기 피아노 소리가 몸으로 들어왔다. 내가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때 그것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피아노 쳐라, 작곡해라, 중도 해봐라, 사랑도 해봐라. 4개의 화두를 하늘이 준 것 같다. 평범한 방법으로 준 것이 아니라 꼼짝 못하게 해놓고 그런 화두를 던져 줘서 이 나이 먹도록 숙제만 풀고 있다.
▶그동안 무엇을 했나?
처음에는 < 수제천 > 으로 두 시간짜리 피아노곡을 만들려고 했다. 처음 14개월간 쉬지 않고 일했는데, 만들고 보니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버렸다. 그리고 나서 < 수제천 > 을 다시 들으니 14개월 만에 음식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텅 빈 상태에서 느닷없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때부터 음악 속에서 조상을 보았다. 조상의 품 안에서 행복하게 놀았다. 전통의 오리지널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다른 불순물 없이 조상의 음악적 DNA로만 작업을 하자는 생각에 창작곡집 6권을 만들었다.
▶세 장의 앨범도 냈는데.
음반은, 우리 조상이 남겨준 곡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리고 싶어서 만들었다. 허튼가락으로 작곡한 창작곡의 원류가 정악인데, 그 정악의 오리지널 버전을 들려주고 싶었다. < 수제천 > < 영산회상 > 등 앨범 세 장은 연주 방법만 허튼가락을 적용했다. 프레이즈를 살짝 변화시키고 < 영산회상 > 의 경우 거문고 가락이 베이스인데, 멜로디가 약간 엇박자로 들어가게 연주했다.
▶정악과 속악의 차이가 있나?
고려 시대에 중국에서 수입한 음악을 정악 또는 아악이라고 했다. 우리 민족의 오롯한 음악적 DNA로 이루어진 음악이 속악이다. 전통 음악 학자들은 최근 정악과 속악을 모두 정악이라고 부르자고 정했다. 수입된 음악이 모두 토속 음악화되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10년 전 작업을 시작하면서 정악을 전부 들어보았는데 DNA가 다른 것은 확실히 티가 난다.
▶확연히 다른 DNA를 가진 음악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
민속악은 100% 우리의 DNA이다. 가곡이나 < 수제천 > < 영산회상 > < 여민락 > < 대취타 > 등도 우리 것이다. 학문적으로는 좀 더 검증해봐야겠지만 내 감각으로는 종묘제례악은 우리 풍류, 우리 DNA가 아니다. 우리 조상은 그렇게 의도적이고, 지루하고, 폐쇄적이고 형식적이지 않다. 항상 신명이 넘친다. 정악은 신명이 숨어 있을 뿐이다. 속악처럼 신명난다. 그게 풍류성이다.
▶범패는 정악인가?
멜로디가 우리 민요인 메나리(산에서 신을 찬미하는 노래) 토리(음계)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는 수입되었음에도 음악은 우리 식으로 발전했다.
▶ < 수제천 > 도 정악인가?
< 악학궤범 > 에 < 수제천 > 이라고 부르는 음악이 백제 가요 < 정읍사 > 라고 나와 있다. 그것이 전해지다가 조선 시대에 와서 오케스트레이션을 하면서 '수제천'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 < 정읍사 > 의 가사와 < 수제천 > 의 가락이 맞아떨어지나?
< 정읍사 > 에는 애절함도 있지만 비통스럽게 표현하지 않고 기다리는 수용의 자세가 있다. 기다릴 줄 아는 것, 그게 수용이다. 우리 민족의 DNA이다. 은근과 끈기, 변함없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수용성. 사랑에 대한 정서 자체가 서양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다 잊어버렸다. 하지만 접하기만 하면, 우리 핏속에 있는 것이라 금방 찾아진다.
▶흔히들 우리 민족성이 은근과 끈기라는데, 그것은 흥이나 신명과 다르지 않나?
세상의 모든 것은 두 가지 양극을 갖고 있다. 기쁨과 슬픔처럼. 은근과 끈기의 반대편에 무엇이 있나. 빠르고 뜨겁고 진취적인 이런 요소는 은근과 끈기의 반대편이다. 은근과 끈기라는 말은 그 반대되는 열광적이고 진취적인 것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 둘을 모두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중심에 서는 것이 풍류이다. 급하게 가는 사람도 있고 느리게 가는 사람도 있고, 신명이 숨어 있는 정악과 빠르고 신명이 표출되는 속악으로 나뉘듯 음과 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DNA가 우리의 민족성이다. 뭐 우리 편끼리 하는 이야기이지만.(웃음)
▶풍류가 우리 일상의 중심으로 다시 설 수 있을까?
중심 정도가 아니라 우리 인류의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아름다울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신명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가장 적합한 답을 일러주는 것이 풍류이다.
▶정악을 정의한다면?
희로애락의 인생사를 저 높은 데서 지긋이 바라보는 관조의 음악이다. 인생의 질곡이 승화된 음악이다. 기회가 된다면 일반에게 알려주고 싶다. 한 몸에서 나온 양팔처럼 왼손이 정악이라면 오른손이 민속악이다.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로망은 임동창, 강남 아줌마의 로망은 효재'라는 말이 있더라.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로망이 어디 있나. '당신은 뭐야, 효재처럼 못해'라고 하는 남편에게 부인이 '너도 임동창처럼 해봐'라고 한다더라.(웃음)
▶부인이 옷도 만들어주나?
처음에는 만들어주기도 했는데, 신랑한테 어울리는 옷 만들어주는 게 제일 어렵다며 항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