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레프리콘들이 떠난 뒤 , 나는 토스트를 쓰레기통에 버렸고 (레프리콘들이 음식의 정기를 다 흡수하고 남은 토스트라서)
접시들은 싱크대 안에 놓아 두었다.
이틀 전의 나 였다면 , 명상을 하기 위해 집에 있었겠지만 ,
이젠 아니었다.
나는 남은 일정을 정해진 목표 없이 쉬면서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 날은 그 해 여름 중 좀처럼 경험하기 힘들었던 , 비가 오지않는 날이었다.
좋은 날씨이기는 했지만 , 따듯하게 입기 위해선 청바지와 울 스웨터가 필수 였다.
체형이 마른 편인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 겹겹이 껴 입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 레프리콘이 나한테 지방을 조금만 이식해주면 몸이 따듯할 텐데 ... (타니스의 정말 솔직한 생각이자 뇌피셜 ..ㅋㅋ)
그럴 수 없다니 정말 아쉬운 걸
내 키는 160 센티 미터 정도고 , 그의 키는 내 어깨 높이 정도니까
우리가 오두막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내가 그에게 지방을 가져 온다면
그는 그 대가로 내 키를 달라고 할지도 모르겠어 !
(타니스의 키와 레프리콘의 지방을 서로 맞교환해보겠다는 타니스의 귀여운 생각 ㅋㅋ)
나는 다음 번에 그를 만나면 이 이야기를 해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목도리를 두르고 현관문을 나섰다.
그리고 바깥 대문을 지나 마을과는 반대 방향인 왼쪽 길로 들어섰다.
전 날 밤에 내린 비가 물줄기가 되어 길 양쪽에 있는 작은 배수로로 흘러 내리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몇 분 걷다 보니 ,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 내리막길은 내가 마을에 처음 도착해 버스에서 내린 지점과 이어져 있었고 ,
이 길을 쭉 따라가면 바위 해변으로 갈 수 있었다.
반면 , 왼쪽 오르막길은 음산한 분위기의 언덕을 향해 나 있는 구불 구불한 길이었다.
본래의 내 천성대로라면 ,
그다지 끌리지 않는 왼쪽 길 보다는 해변으로 이어지는 오른쪽 내리막길로 가는 것이 맞았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고 싶었다.
그동안 발전시켜 왔던 의식적 , 무의식적 행동 패턴을 모두 깨부수고
더욱 깨어있는 의식 상태가 되고 싶었다.
나는 내가 원할 때 , 먹고 자고 , 말하는 이런한 익숙한 패턴들이
의식 상태를 둔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 반복적으로 유지해오던 관습들을 바꾸어 보면 흥미로운 경험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 화가 나거나 , 우울해질까 ? `
` 아니면 새로운 관점이나 높은 차원의 깨달음을 얻게 될까 ? `
나는 혼자 생각했다.
의지력을 키우고 , 더 확실하게 몸을 통제하고 싶었다.
만약 내가 전생에 그리스에서 살았다면 ,
나는 엄격한 자기 절제와 자기 수양을 추구하는 스파르타인이 아닌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아테네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스파르타를 방문하는 기회를 잡고 싶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 천천히 구불 구불한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던 내게
한 가지 통찰이 보상처럼 찾아왔다.
내가 자기 억압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고 있다는 통찰이었다.
의식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 어느새 내 정신은 이 산책에 목표를 끼워 넣었다.
나는 모든 목적을 내려 놓고 , 나를 둘러싼 풍경의 아름다움에 집중하자고 다짐했다.
아일랜드의 시골에는 손으로 만져질 듯 생생한 마법이 존재하며
대부분의 민감한 사람들은 그 마법의 실체를 느낄 수 있다.
산들 바람이 나를 부드럽게 감싸며 , 노래할 때면
오라가 정화되고 상승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덕을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 길 위에 선 두 다리가 한층 가벼워졌다.
그렇게 모퉁이를 돌아서자 , 왼쪽 아랫길과 이어져 있는 작은 공동 묘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오늘 중요한 길은 다 다 왼쪽 (우리가 만들어둔 것을 부수거나 제거하는 방법) 길 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또 한 번 왼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 공동 묘지는 잡초로 무성하게 덮여 있었다.
그 곳은 차곡 차곡 쌓아 놓은 허리 높이의 돌벽에 둘러 싸여 있었으며
대략 50 여 기의 묘비가 세워져 있었다.
계속 앞으로 걸어가자 , 철문 하나가 나타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 녹슨 경첩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살면서 묘지를 좋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내 전 남자 친구 빌은 일시적인 호기심 이상으로 묘지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그와 사귀는 동안 ,
관이 땅 위로 층층이 쌓여 있는 멕시코 묘지에서부터 발리의 화장터까지 전 세계의 묘지를 방문했다.
(참으로 타니스의 전 남자 친구 빌은 기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던 듯 합니다. ㅎ
나는 고인이 된 영혼들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묘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막을 세워도
여전히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죽은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 친구를 선택할 때 나름의 기준이 있듯 ,
어떤 죽은 영혼과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해 까다로울 뿐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나 지인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나에게는 그다지 비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망자들의 메세지를 종종 전달 받곤 한다.
하지만 물질 세계에 미련을 가진 채 묘지를 떠나지 않고 있는 영혼과 대화하는 일은 전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타니스님이 다른 세계의 영혼들과 교신하는 메신저이자 , 영매임을 알려주는 대목이군요)
나는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신중하게 ,
그리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비석들에 다가갔다.
묘지는 황폐하기는 했지만 ,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몇몇 묘지에는 진짜 꽃이 심어져 있었고 ,
그 외의 다른 묘지들이 있는 땅에는 빛 바랜 플라스틱 꽃들이 꽂혀 있었다.
나는 묘비에 날짜도 이름도 쓰여 있지 않은 무덤들을 한 군데씩 걸어 다녔다.
묘지에는 100 년 전 쯤 어린 나이에 죽은 사람들이 많아서
감자 대기근 시기에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목적 없는 산책을 계속 이어 나가야만 했기에 질문을 다시 닫고 그 곳을 떠났다.
그 곳을 떠나자 마자 , 안도감이 들었다.
그 곳의 영혼들은 철과 돌로 만들어진 장벽 너머로는 나올 수 없었다.
공동 묘지 왼쪽으로는 골이 깊게 파인 길이 하나 있었는데 ,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었다.
나는 움푹 팬 웅덩이와 가시덤불을 요리 조리 피하며 , 정상을 향해 재빨리 올라갔다.
놀랍게도 , 그 곳에는 버려진 마을의 잔해가 있었다.
제대로 세워져 있는 건물은 전혀 없었고 ,
돌로 지은 작은 집들의 터만 남아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 공동 묘지에 묻힌 사람들이 살던 곳인가 ? `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사가 완만한 갈색빛 고원이 눈 앞에 펼쳐졌다.
고원에는 태양 볕 아래에서 말라가는 토탄이 한 무더기 있었다.
땅 아래로 깊고 날카롭게 파인 자국은 토탄 더미들이 어디서 채취 되었는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고원의 분위기는 조금 전에 떠난 공동 묘지와 상당히 비슷했다.
처음에는 고원에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잘 보니 네 가족이 멀리서 토탄 더미를 쌓으며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못 본 것 같았다.
` 조용히 있을까 ? `
` 아니면 저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볼까 ? `
나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다 후자를 선택했고 ,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은 내가 다가 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 멈추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내가 그들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두 아이는 네 살 ,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였고 ,
바닷가에서 모래 놀이를 하듯
작은 양동이와 삽을 이용해 토탄으로 성을 지으며 놀고 있었다.
아이들의 부모는 청바지에 두꺼운 아일랜드 산 울 스웨터를 입고 ,
긴 장화를 신고 있었다.
그들은 젖어 있는 토탄이 잘 건조될 수 있도록 다시 뒤집어서 쌓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첫댓글 🌻
산들 바람이 해바라기님을 감싸는 하루가 되시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