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멸도 사성제를 제대로 알려면,
"3전 12행"으로 고집멸도 사성제를 볼 줄 알아야합니다.
초기경전인 니까야에,
고집멸도 사성제에 관한 부처님의 법문이 여러 곳에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담긴 경이 바로 "쌍윳다니까야 초전법륜 경(S56:11)"입니다.
바로 이곳에 고집멸도 사성제를 "3전 12행"으로 설명한 부처님의 법문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이걸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3전 12행"으로고집멸도 사성제를 이해해야 합니다.
"3전 12행"을 도표로 그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 3전 12행의 도표
구분 | 고성제 [결과] | 집성제 [원인] | 멸성제 [결과] | 도성제 [원인] |
1 | 이것이 괴로움이다. | 괴로움의 원인은 번뇌다. | 이것이 해탈이다. | 해탈에 이르는 길[원인]은 팔정도이다. |
2 | 괴로움을 알아야 한다. | 번뇌는 제거해야 한다. | 해탈은 성취되어야 한다. | 팔정도는 닦아야 한다. |
3 | 괴로움을 알았다. | 번뇌는 제거되었다. | 해탈은 성취되었다. | 팔정도를 닦았다. |
이제 "쌍윳다니까야 초전법륜 경(S56:11)"을 봅시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무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출가자는 이와 같은 두 가지 극단을 멀리해야 한다. 둘이란 무엇인가?
감각적 쾌락에 관련하여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닉은 하천하고, 비천하고, 범속하고, 거룩하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며, 자신에 대한 고행의 탐닉은 고통스럽고, 거룩하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들 두 가지 극단을 멀리하여 중도(中道)를 완전하게 깨달았다.
이러한 중도(中道)는
눈을 만들고,
지혜(智)를 만들고,
평안을 만들고,
철저한 앎(證智),
완전한 깨달음(正覺), 열반으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완전히 깨달은 바,
눈을 만들고,
지혜(智)를 만들고,
평안(寂靜.적정)·철저한 앎(證智) ·완전한 깨달음(正覺) ·
열반으로 이끈 중도란 무엇인가?
바로 이 여덟가지의 거룩한 길이다. 그것은 이와 같다.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바른 언어),
바른 행위,
바른 삶(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바른 새김),
바른 삼매(바른 집중)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러한 중도를 완전히 깨달은 바,
이러한 중도는 눈을 만들고,
지혜(智)를 만들고,
평안·철저한 앎(證智)·
완전한 깨달음(正覺)·열반으로 이끈다.
다시 비구들이여, 이러한 괴로움에 관한 거룩한 진리가 있다.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사랑하지 않은 이와의 만남은괴로움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헤어짐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五取蘊.오취온]은 괴로움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이러한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즉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게 하는 갈애로서,
기쁨과 탐냄과 더불어 여기저기서 즐거워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있음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있지 않음에 대한 갈애)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거룩한 진리가 있다.
즉 갈애로부터의
남김없는탐냄의 떠남,
소멸,
포기,
버림,
해탈,
집착 없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거룩한 진리가 있다.
이것은 곧 여덟 가지 거룩한 길로, 말하자면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것이 괴로움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라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혜[慧]가 생기고,
밝음[明]이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 괴로움에 관한 거룩한 진리는 완전히 알아야 한다.'라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들에 대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혜가 생기고,
밝음이 생기고,
광명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 괴로움에 관한 거룩한 진리는 완전히 알았다.'라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들에 대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혜가 생기고,
밝음이 생기고,
광명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라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들에 대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혜가 생기고,
밝음이 생기고,
광명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거룩한 진리는 버려져야 한다.'라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들에 대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혜가 생기고,
밝음이 생기고,
광명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거룩한 진리는 버려졌다.'라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들에 대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혜가 생기고,
밝음이 생기고,
광명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라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들에 대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혜가 생기고,
밝음이 생기고,
광명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거룩한 진리는 겪어 알아야 한다.'라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들에 대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혜가 생기고,
밝음이 생기고,
광명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거룩한 진리는 겪어 알았다.'라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들에 대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혜가 생기고,
밝음이 생기고,
광명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라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들에 대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혜가 생기고,
밝음이 생기고,
광명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거룩한 진리는 닦아야 한다.'라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들에 대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혜가 생기고,
밝음이 생기고,
광명이 생겼다. .
다시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거룩한 진리는 닦았다.'라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들에 대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혜가 생기고,
밝음이 생기고,
광명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세 번 굴린 열두 형태[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의 방법으로
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지(知)와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없었던 때까지는,
비구들이여, 나는 하늘(神)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브라흐마가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이 사는 인간의 세계, 하늘사람이 사는 세계에 대해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세 번 굴린 열두형태의 이런 방법으로
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지(知)와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었기 때문에,
비구들이여, 나는 나는 하늘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브라흐마가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이 사는
인간의 세계, 하늘사람이 사는 세계에 대해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지혜(智)와 봄(見)이 생겼다. ‘나의 마음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동요됨이 없다).
이것이 최후의 태어남이며, 이 이후의 있음은 없다’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다섯 비구는 즐거워하며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찬탄하였다.
또한 이러한 설법이 설해질 때, 꼰단냐 존자에게 더러움이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法眼]이 생겼다.
‘일어남(集)이 있는 모든 법은 그 일체가 소멸하는 법이다'라고.
이와 같이 세존께서 법륜(법의 바퀴)을 굴리실 때 땅에 거주하는 신(bhumma deva)이 소리쳤다.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서 세존께서 굴리신 이 법의 바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神)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등 세상의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라고.
땅에 거주하는 신의 소리를 듣고 사대왕천의 신(catumaharajika deva)들이 소리쳤다.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서 세존께서 굴리신 이 법의 바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등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라고.
사대왕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삼십삼천의 신(tavatimsa deva)들이 ···
야마천의 신(yama deva)들이 ···
도솔천의 신(tusita deva)들이 ···
화락천의 신(nimmanarati deva)들이 ···
타화자재천의 신(paranimmitavasavatti deva)들이 ···
범중천의 신(brahmakayika deva)들이 소리쳤다. “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서 세존께서 굴리신 이 법의 바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등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라고.
이렇게 그 순간,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범천의 세상까지 소리가 퍼져나갔다. 일만 세계가 흔들렸고,
거세게 흔들렸고,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신들의 신통력을 능가하는 한량없고 밝은 빛이 세상에 나타났다.
그때 세존은 이런 감흥을 읊었다. “벗들이여, 참으로 꼰단냐는 알았다. 벗들이여,
참으로 꼰단냐는 알았다.”라고. 이렇게 꼰단냐 존자에게 ‘안냐시꼰단냐’라는 이런 이름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