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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믿음과 실천의 유일한 기준인 성경
I. 제칠일(第七日) 재림교인들은 (개인적) 개신교인의 입장을 유지함
1. 밀러주의자들은 성경만을 취급했다
제칠일 재림교회 운동의 개척자들은 여러 개신교회 배경에서 왔고 그들 중에 대부분은 밀러주의 재림신도 운동에서 활동해 왔다. 저들은 저들 자신을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충분한(완전한) 유전 혹은 사상을 받은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했다.
종전에 밀러 운동에서 William Miller는 그 이전의 모든 선입관념을 제쳐놓고 성경자체가 해석자가 되게 하겠다는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그의 성경연구를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교리와 예언을 모두 포함시켰다. 재림이 임박했다는 그의 설교 -1843년 혹은 그 때쯤- 는 성경 예언에 기초되었다. 그리고 그의 모든 보조자들은 그와 같이 성경을 저들의 설교의 온전한 기초로서 사용했다. 종교적인 진리를 위한 다른 어떤 권위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저들에게 용납될 수 없었다.
2. 우리도 역시 개신교회의 원칙을 유지 한다
그러므로 예언적 선물의 나타남-1844년 12월에 시작된 Ellen Harmon의 계시- 이 그 계시가 참으로 주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은 자들의 마음속에까지 그 관련성의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847년에 ‘적은 무리에게 보내는 한 말씀’ -White 부인의 3계시가 포함된 것임- 중에서 James White 목사는 종교적 권위에 관한 개신교의 역사적 원칙에 대한 충성심을 공중 앞에서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성경은 완전하고 온전한 계시이다. 그것은 우리의 유일한 신앙과 실천의 표준이다.” 그 때부터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인들은 저들의 기별이 성경에 기초된 것이며 저들은 성경 오직 성경만이 크리스챤의 의무와 실천을 위한 교리와 안내서의 기초라고 주장한 종교개혁의 지도자들과 온전히 조화된다는 것을 조직적으로 선포해 왔다. 입증하기 위해서 우리 교회의 역사적 기록을 주목하라. 먼저 년감을 읽어 보라.
Ⅱ. 신앙의 공중 고백은 변함없이 ‘오직 성경’을 강조함
S.D.A 년감 1889년 이후부터 -논쟁이었던 해 그리고 ‘기초적 원칙’들의 발언을 유지하던 때(그 후에 1931년 이후부터는 기본 신조가 변경되었음)-은 빗나가지 않는 증거를 준다. 모든 경우마다 저들은 ‘오직 성경’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참고해 보도록 약간 생략되었지만 이곳에 그 순서가 있다.
1. Smith의 1872년의 ‘기초(기본적) 원칙들’에 ‘오직’이란 말을 사용함
여기에 1872년에 Uriah Smith가 시초에 사용한 말에 기초된 것이 있다.
1889- “신구약 성경은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의 충분한 계시가 포함되어 있고 신구약 성경만이 신앙과 행함의 불변의 국책(표준)이다”-Fundamental Principles, Ⅲ권, p. 148
1889년 다음에 1890-1904년까지의 연감에는 ‘기본적 원칙들’이란 표현이 없다. 여기에 정확한 역사적 자료들이 있다.
1890-1904-연감에 ‘원칙들’이란 언급이 없다.
1905년- 연감-‘원칙들’에 ‘오직’이란 말을 읽을 수 있다. 믿음과 실천의 표준(p. 188)
1906년-‘원칙들’이란 말없다.
1907-1914-신앙과 실천의 표준-‘오직’이란 말 있음
1915-1930-원칙들이란 말없다.
2. Wilcox’s의 1931년 ‘기본적 신조들’-‘오직’이란 말 있다
1931년 이후부터 원칙들이란 말 대신 ‘신조들’이라고 변경됨-‘오직’이란 말은 계속 있음
1931-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인데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의 완전히 충분한 계시가 포함되었고 그것만이 신앙과 실천의 틀림없는 표준이다.-기본적 신조 p. 377
그러므로 1931년부터 F. M. Wilcox가 준비한 새로운 말, ‘기본적 신조들’이란 말이 지금까지 일치하게 신앙과 실천의(행위) 오직 틀림없는 표준이라고 기록됨. 이와 동일한 말이 우리 교회의 공식적 ‘교회요람’의 편찬에 불변으로 나타나 있고 그 말은 대총회에서 회기 동안에 결의 없이 변경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더 이상의 표준이나 더 충분한 권위나 공식적이 될 수 없다. 이리하여 출판된 연감이나 원칙들 혹은 신조들에 동일한 사상을 표현한 -오직 변할 수 없는 표준 혹은 유일한 틀림없는 표준이라고 기록됨.
3. 대총회장, 편집국장, 저자들, 대중 매체를 통한 오차 없는 증거
그러나 동일한 사상과 말은 1847년으로 돌아간다.-James White 목사가 우리의 최초의 소책자 A Ward to the ‘Little Flock’에 쓴 말에 있다. 그리고 James White에서 시작하여 이점에 관해서 기록한 모든 대총회장은 이 확실한 입장에 대하여 이와 같이 틀림없는 증거를 했다. White 목사에서 시작해서 이들 대총회장들 중에서 Andrews, Butler, Daniels, Spicer, Watson, McElhany, Branson, Figuhr와 Pierson등의 기록이 있다.
우리 교회의 일반 교회 기관지 Review and Herald의 편집국장으로 구성된 비슷한 명단(White, Andrews, Smith, Jones, Prescatt, F. M. Wilcox, Spicer, Nichol, Wood)이 같은 증거를 한다. 꼭 같이 우리의 지도적 선교잡지 ‘시조’에도 있다. 편집국장-White, Andrews, Smith, J. H. Waggoner, E. J. Waggonor, Jones, M. C. Wileox, Tait, Baker, Nichol, Maxwell. 이와 같이 우리 교회의 목사들을 위한 기관지 ‘The Ministry’ -3 편집자 Froom, Anderson, 그리고 Spangler 모두 더 이상 일치(一致)될 수가 없다.
그 같은 것이-우리의 지도적인 경 교사들과 수년간 뛰어난 저자들도 그렇다. 그리고 최근의 대중매체의 설교자 H. M. S. Richards(예언의 소리), W. A. Fagal(오늘을 위한 신앙), George Vandeman(It is Written) 그러므로 그것은 빗나가지 않는 지도적인 음성이 되어 왔다. 이 위에 우리는 살아왔고 서 있다. 참 개신교주의- 참으로 성경에 기초되어 있다.
Ⅲ. ‘오직’성경- 신앙의 기초와 틀림없는 지도
1. ‘오직’성경의 최상권
White부인은 비슷하게 끊임없이 ‘오직’성경 혹은 성경‘만’ 우리의 신앙의 기초로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 ‘하나의 불변의 인도와 틀림없는 권위로서 성경의 최상권을 강조했다. 그 여자가 기록한 이런 표현들은 신중하고 가장 중대하다. 그 누적적인 힘과 문맥을 주목하라.
“성경, 성경만이 우리의 신조가 되어야 하고 연합의 온전한 띠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이다.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기율의 표준이다라고 새겨진 깃발을 높이 쳐들어라”(1 SM 416, 1885 EW 78).
“성경은 모든 환영 하에서 불변의 지도서이다”(5 T 264, 1885 ML 25, 1906).
“그것은 불변(不變)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잘못할 수 없기 때문이다”(Ms 27, 1906).
‘불변의 지도서’라는 문구가 크리스챤 교육의 기초 p. 100(1886)과 pp. 394-5(1896)에도 있다. 이것은 대쟁투에-‘권위 있는, 불변의 하나님의 뜻의 계시- 교리들의 계시자’라고 발전되어 있다(p. ⅶ 1888).
2. 우리의 신앙의 틀림없는 기초
그 같은 의도의 다른 중대한 표현들이 ‘틀림이 없는 지도서’(4T 312, 1880), 그리고 ‘틀림없는 표준’(Er 256, 1890), 또한 ‘의심의 여지없는 권위’들이다. 모든 논쟁의 종결이요 모든 신앙의 기초로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씀(COL 39, 40, 1900) 훨씬 중요한 이 원칙은 과거 모든 시대에 그러했던 것 뿐 아니라 지금도 참된 말씀이다.
Ⅳ. 신앙의 ‘유일’한 규례로서 성경에 대한 오래전부터 내려온 강조
1. ‘유일한 규례(rule)'
각 시대에- 예언의 신의 성경을 생활의 유일한 규칙으로 삼은 각 시대에 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위한 증언들을 추천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4sp 66, 1885). 역사적인 건축이 인상적이다. 특별히 White 부인의 Waldonses를 ’성경을 신앙의 유일한 규칙으로 여긴(그 당시에) 자들이라고 말했다(4SP 68, 1885). 그리고 그녀는 대쟁투에서 ‘저들은 성경을 유일한 최고의 불변의 권위로서 여겼다는 기록을 강조했다(p. 68, 1888).
Wyclif에 관하여 그녀는 그는 ‘성경을 온전히 불변의 것’으로 가르쳤다고 기록했다(4SP, 90, 1885). Huss에 관해서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하심은 하나의 불변의 권위’(GC 177, 1888)라고 기록했다. 이와 같이 Zwingli에 관해서- ‘유일한 불변의 권위’(GC 177, 1888) 그리고 유일한, 충분한 불변의 규칙‘라고 기록했다(GC 173, 1888).
2. 반드시 개신교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White 부인은 루터에 와서 그는 저들(교황권의 논쟁자들)을 성경, 오직 성경으로서 대항했다(GC 132, 1888). 그리고 영국의 개혁자들에 관해서 그녀가 기록하기를 저들은 ‘성경의 불변의 권위로서 신앙과 행실의 규칙을 삼았다고 했다(GC 249, 1888).
White 부인은 D. A에서 말씀에 관해서 이 곳에 오직 오류가 섞이지 않은 진리가 있다고 선포했다(p. 398, 1898). 그리고 그 절정은 다음의 호소에 있다. 우리 시대에 있어서 위대한 개신교회의 원칙- 성경, 오직 성경만의 신앙과 의무의 규칙으로서 삼는 것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GC 204-5, 1888). ‘우리의 시대’란 특별히 오늘날 우리에게 적응된다. ‘유일한’에 대한 강조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Ellen White의 통일적인 증언이다.
Ⅴ. 성경만으로서의 입장을 유지하기 위하여(지속)
1. ‘성경만’이 불변의 강조
증거의 누적적인 사실을 주목하라. 그 반복한 것은 그것이 얼마나 필수적인 것인가를 가리킨다. Ellen White은 성경, 오직 성경만을 모든 교리와 모든 개혁의 기초로 삼기를 지속(계속)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한다(GC 595, 1888). 다시 “성경,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의 규범이다”(CSW 84, 1889). 역시 성경, 성경만이 우리의 신조, 연합의 온전한 띠가 되어야 한다(1SM 416, 1885).
그녀는 우리에게 성경, 성경만을 우리의 신앙의 기초로서 제시하라고 권고한다(2SM 85, 1894).
그녀는 더 나아가서 성경, 성경만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Letter138, 1897 That I may Know Him, 342)라고 선포했다. 그런 것이 그녀의 불변의 강조였다. 아무 것도 그녀 편에서 이 이상 더 명백하게 더 많이 강조할 수 없다.
2. 성경에서부터 신앙을 위한 답변을 하라
이 권고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들이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취한 모든 입장마다 성경에 의하여 비판적으로 시험받고 질문 받아야 한다. 지금은 우리가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같이 보이지만 항상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운동은 우리를 맨 앞에 내세우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의 진리의 이론들이 역사가들이나 세상의 가장 위대한 사람들에 의하여 상세히 검토될 수 있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EV 69, 1886).
“우리 백성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을 정도로 무가치하게 여겨져 왔다. 그러나 변화가 올 것이다. 우리 신앙의 모든 입장이 조사도리 것이며- 만일 우리가 철저한 성경 연구생들, 든든히 서 있고 강건케 되고 확정되지 않았다면 -세상의 위인들의 지혜를 우리는 너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2SM 386, 1886). 이것은 놀라운 도전이다. 다음의 권면을 주목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더욱 엄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성경을 펴서 구절, 구절마다 찾아서 우리가 지금 있는 위치에서 오게한 영원한 진리의 현관 위에 서 있게 된 기본적 교리들을 고수하는 강한 증거들을 연구해야 한다(2SM 393).
성경을 연구하라 왜냐하면 거기에서 우리의 신앙의 증거들을 발견되기 때문이다(5T 575 1889).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신앙의 기초요 완성자이다.“-(T 374, 1913).
3. 유일한 신앙의 기초를 형성함
우리는 그분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명백하고 연결되어 있으며 똑바른 성경 진리의 사슬을 주셨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많은 기도로 철저히 파헤쳐 왔다(3T 447, 1875). 더욱이 하나님의 신이 더 잘 알려지게 될 때 성경도 신앙의 유일한 기초로서 받아들여질 것이다(8T 192, 193, 1901). 그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이 많은 모든 권고에 덧붙여서 아무리 기독교 세계에 널리 받아들여졌을지라도 진리의 성경 위에 기초된 것이 아닌 모든 것은 배격하라는 권고를 주셨다(GC 354, 1888). 그리고 이 보다 먼저 우리는 명백한 성경 증언의 압도적인 양에 의하여 우리 입장들에서 충분히 유지된다(3T 253, 1873). 그리고 다음에 우리는 성경의 진리들로 말미암아 방책을 만들고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진리의 그늘만이 우리가 안전히 설 수 있는 유일한 그늘이다(MM 88, 1904).
1853년으로 돌아가서-우리가 이미 검토한 시대에- 그 때 Ellen White이 권고하기를 흑암이 짙어지고 오류가 증가됨에 따라서 우리는 더욱 철저한 진리의 지식을 가져야 하고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는 진리를 성경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준비되어야 한다(R & H 8, 11, 1853, p. 53).
그것은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경종을 울리는 하나님의 도전이다. 우리가 그것을 모르거나 등한시한다면 우리 개인과 교회에 멸망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이 White부인과 교파의 지도자들이 수년간 계속해서 명백히 표현해 왔지만, 한편 그 진부한 문구(my wife를 my better half라고 하는 따위), ‘성경, 오직 성경만’을 그 표현한 문자 그대로 꼭 같이 의미하지 않는다 라고 할 위험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교회의 오늘날의 입장에 관한 성구 안에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거라고 곧잘 질문할지도 모른다. 기초적인 개신교의 입장의 복습이 결론적으로 여기에서 가장 적합하다.
Ⅵ. 16세기의 개신교 입장
1. 성경과 유전 시대의 투쟁
개신교 종교개혁은 성경의 새로운 연구에서 발전되어 나왔다. Martin Luther와 그의 동료 개혁자들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행위는 성경과 일치(一致)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보았다. 그리고 말씀의 가르침에서 이탈함은 교회의 유전의 기초 위에 세운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투쟁이 계속됨에 따라서 그 교회는 부패에 관한 권면을 거절했고 종교의 권위에 관한 질문이 최고의 논점이 되었다. Martin Luther는 오직 성경에 의해서만 섰다. 한편 그 교회는 성경과 유전이 권위의 기초를 이룬다고 주장했다. 이 개신교회와 로마 가톨릭의 차이는 Vatican Ⅱ의 신실함을 위하여, 성경 연구의 가치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왔다.
2. 유전은 권위가 없는 것으로서 거부함
개혁자들이 뜻하는 것은 ‘성경 성경만’이라고 말할 때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리나 행위를 결정함에 있어서 교회의 유전은 여하한 권위도 가진 것이 아니라고 거부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해석으로서 어떤 방해도 받음이 없이- 직접 성경으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교훈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말로 말하면 모두 신실한 신자는 제사장(신부)과 성직자의 중재나 관리 없이 성경을 개인적으로 연구함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저들의 실제적 문서들이 나타내는 것을 더 엄밀히 살필 때 이것은 한 부분적인 말에 불과하다.
3. 영적 권위의 참된 근거
개혁자들의 권위 있는 교리의 주의 깊은 분류는 성서 주석 분야에서 잘 알려진 현대의 연구생 Dr. Bernard Ramm에 의해 만들어졌다. 의미 깊은 인용은 그 사실을 우리 앞에 간결하게 제시할 것이다.
“루터와 Calvin은 모두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위를 당신의 말씀에 두셨다는 데 일치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권위의 원칙이요 초대 기독교회의 권위의 원칙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과 신자 사이에 교회를 대리적인 권위로서 포함시키지 않으셨다.
Calvin은 로마 교회의 권위, 성경의 권위를 아래에 두려는 그 교회의 노력을 거부하고 인간의 이성을 성경의 권위를 드러내는 데에 돌렸다. 그러나 이 절차에서 주저하게 된 두 가지 일들이 있었다. ⑴ 인간 이성은 죄의 영향으로 어두운 영향받아 그 영향 아래에 있다는 것 ⑵ 인간의 이성에 의해 충분히 설복되면 그 신자는 아직도 인간적 믿음밖에 가지고 있지 못할 것이 아닌가, 신령한 일에 관해서는 신령한 확실성이 있어야 한다.
교회와 이성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하여 깊은 존경을 가진 Calvin은 그의 답변을 종교적 권위의 문제에 대한 답변을 내적 혹은 성경의 은밀한 증거에서 찾았다. 죄의 영향으로 어두워진 지성(지성에 의해서만 이해된)을 이해시킴에 있어 성령의 내적, 비추어주는 역사는 신자에게 성경의 신성을 증거 한다. 종교적 권위의 문제에서 성령과 말씀을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성령의 봉사에 있어서 성서의 기능과 말씀의 도구 안에 있어서의 성령의 기능, 이 성령과 성서의 중대한 관련성에 개혁자들은 저들의 종교적 권위의 교리를 기초했다.
“간략한 개신교 원칙(진리의 대부분 요소가 포함된 것)이 Chillingworth에 의하여 선포되었다.” 나는 ‘성경, 오직 성경만이 개신교의 종교이다’라고 말한다. 더욱 참된 개신교 원칙은 외적인 원칙(영감된 성서)과 내적 원칙(성령의 증거)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적 신령한 증거를 가진 객관적 신령한 계시의 원칙이다. 이 두 원칙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도록 항상 함께 취급해야 한다. ⑴ 우리의 권위는 성서 중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요, 혹은 ⑵ 우리의 권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인쳐진 성서이다(The Pattern of Religious Authority, Eerdmans, 1957, pp. 28, 29 허가받고 사용함). 이것은 잘 표현된 말이다.
4. 성령과 말씀은 함께 연합됨
Dr. Ramm은 계속해서 종교개혁의 신조들 중에 여럿을 인용하여 개신교회는 항상 저들의 권위의 기초로서 말씀과 함께 성령의 봉사를 결합시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여러 가지 인용 중에 하나만 들어도 이 사실을 예증함에 충분할 것이다. 최상의 재판관(심판장), 모든 종교의 논쟁을 결정지어야 할 분, 회의의 모든 신조들, 고대 저자들의 사상들, 인간의 교리들과 개인의 정신은 시험을 받아야 하고 그의 선고 안에서 우리가 쉬어야 할 분은 성서 중에서 말씀하시는 성령 외에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불변의 진리에 대한 충분한 설득과 확신, 그리고 그에 대한 신령한 권위는 우리의 맘속에 말씀으로 증거 하시는 성령의 내적 역사에서 온다(Westmineter Confession Chap 1, arts 10.5)
이리하여 충분히 선포된 개신교회의 원칙은 교회 안에 있는 가변성의 인간의 교리와 가르침 -영감 없는 ‘유전’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성서 중에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을 불변의 진리에 관해서 우리를 충분한 설득과 확신으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논리적이요 조직적이다. 그리고 간단한 개신교의 원칙인 ‘성경 오직 성경만’아란 말은 성경을 신실하게 연구하는 자들의 마음에 빛을 비추시는 성령의 작용을 제거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개혁자들은 아직 마지막 시대의 교회에 나타나야 할 예언의 신의 어떠한 부활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것을 이해하고 인식할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었다. 그런 시기는 재림 운동의 일어남과 함께 왔다.
Ⅶ. 제칠일 재림신도들은 개혁자들의 발자취를 따른다
제칠일 재림신도들의 입장은 개혁자들의 입장과 충분히 일치된다. 우리는 이미 화잇 부인이 우리 신앙의 기초로서 성경을 끊임없이 강조한 것에 대해 언급했다. 그녀는 초기 개혁자들이 성경 진리 대신 사람의 유전을 배격한 것을 자주 칭찬했다. 왜냐하면 이점에 있어서 저들의 가르침과 행위가 충분히 조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신령한 진리에 대하여 인간을 지도하시는 성령의 입장에 저들의 강조와 충분히 일치되었다.
1. 화잇 부인의 진리를 계시함에 있어서의 성령의 역사
화잇 부인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우리 생애에 적용하려면 성령의 비추어 주심이 전요아라고 항상 주장했다. 다음 예증을 주목하라.
“성경을 통해서 성령께서 마음에 말씀하시고 마음에 진리를 감화시키신다”(DA 671).
“말씀을 주신 성령의 비추어 주심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5T 703).
“아무도 성령의 비추어 주심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 없다”(R & H 7. 4. 1889).
“하나님의 신이 없이는 주의 말씀의 지식은 아무 유익이 없다. 성령의 수반이 없이는 진리의 지식(이론)은 영혼을 깨우치거나 마음을 성화 시킬 수 없다. ? 성령의 비춰 주심이 없이 인간은 진리와 오류를 분간할 수 없다. 그리고 저들은 사단의 강한 유혹하에서 타락할 것이다”(COL 408-411).
성령의 비추어 주심에 대해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자들은 말씀의 의미에 대하여 흑암 중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COL, 36).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언의 신은 가장 충분하고 가장 권위 있는 형태에 있어서 성령의 작용의 확장이라는 것이다.
2. 성령과 말씀이 결합됨
White부인은 성령의 비추임 없이 성경이 진리로 인도할 수 없는 것과 꼭 같이 말씀 없이 비추임만으로도 마찬가지로 무력하다는 것을 역시 명백히 하였다.
“성령의 비추임을 주장하면서 더 이상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필요 없다고 고백하는 부류의 잘못에 의하여 성령의 역사 위에 큰 비난을 초래해 하게 되었다”(GC ⅶ).
“놀라운 비추임은 말씀을 제쳐놓거나 그것을 대신하지도 않을 것이다”(2SM 48).
재림교의 사상에는 말씀의 해석자로서의 성경의 위치와 직무는 항상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아마 모든 사람이 모두 교리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권위에 대한 기초로써 성령이 말씀과 결합해야 함을 명백히 깨닫지는 못했다. 이 마지막 단계는 논리적이요 건전하다. 그리고 Ellen White의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된다. 우리가 성경, 오직 성경만의 신앙과 행실의 기초라고 말할 때 성령의 비추시는 역사를 제외한 것은 아니다.
3. 재림교회 개척자들과 예언의 신
이 운동의 기초를 놓은 자들-가장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개혁과 성경을 믿는 자들의 후계자들은 Ellen Harmon White의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기별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저들이 확신함에 있어서 연관된 문제에 당면하였다. 그러면 이것이 이 성경의 최상권에 관련해서 저들의 개신교적 확신과 어떻게 합치되는가? 면밀히 관찰하라.
저들은 이 문제를 위하여 즉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갔다. 1847년에 James White에 의하여 출판된 A Word to the Little Flock에 - 이 속에 White부인의 초기 3개의 계시가 실려 있음. 그는 말세에 계시와 꿈을 예언한 요엘 3:28, 29의 예언을 인용하여 그 계시를 믿는 것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그는 계속 이렇게 말했다.
꿈과 계시들은 주의 크고 두려운 날 전에 있을 징조들 중에 있다. 그리고 그날의 징조들이 이루어졌고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편견을 갖지 않은 모든 마음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께로부터 꿈과 계시를 기대할 때가 충분히 왔다는 것은 명백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page 13).
4. 계시는 기록된 말씀으로 인도한다
이 말 중에서 James White은 교리와 행실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에게 최상의 인도가 되는 성경에 대한 그의 신앙과 아무런 모순도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장 첫머리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그가 말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완전하고 온전한 계시이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규범이다. ? 참 계시들은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해 주신다. 그리고 그의 말씀으로 인도하기 위해(Ibid 9).
초기 재림신도들은 계 14:6-12의 절정으로써 3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함에 있어서 White 부인의 계시에 대한 저들의 신조에 대한 부가적인 성경적 근거를 곧 찾아냈다. 저들은 저들 자신을 이 기별을 선포하며 하나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로서 동일시했다.(14:!2) 저들은 또한 말세 백성의 이 같은 무리가 계 12:17에 그 여자(교회)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백성으로서 기록되었음을 발견했다.
저들의 정의와 동일시(同一視)는 계 19:10 곧 ‘예수의 증거는 대언(예언)의 영이라’는 말씀을 읽을 때 완전히 되었다. 그러므로 남은 교회에 있을 예언의 신은 명백히 성경 예언에 분명히 기록되었다.
5. ‘오직 성경’이란 말이 예언의 신을 제외(추방)하지 않는다
Ellen White의 사명과 행적 속에 예언의 신이 나타남에 대한 완전한 확신은 재림교회의 대다수를 항상 특징지었다. 그러므로 재림교인으로서 ‘성경, 오직 성경만이 우리 신앙과 행실의 기초’라는 표현을 교회에 대한 그의 지정된 봉사에서 Ellen White의 사업을 제외하는 것으로서 사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1854년으로 돌아가서 James White은 그것을 명백히 표현했다.
‘성경 오직 성경만’이 신앙과의 무의 규범이라는 입장을 하나님께서 교회에 정하신 선물 등을 추방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거부하는 것은 그것들을 제시하는 성경의 그 부분을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온전한 성경을 소유하자. 그리고 그것과 그것만을 우리의 믿음과 의무의 규범으로 삼자. 그 은사들을 제 위치에 두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조화된다(R & H 1854. 10. 3, 1851년 4. 21의 논쟁에서 재편된 주제에 관한 주석에서). 그 논리는 건전한 명백하고 역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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