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꽃피던 시절
― 그 시절, 마음속에도 꽃이 피었다
젊음이란 참 신기한 것입니다.어디서든 꽃처럼 피어나고, 향기처럼 퍼져나가 누구에게든 기분 좋은 설렘을 선물합니다. 그 시절, 나 역시 그러했습니다.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 진심 어린 도움 덕분에 내 젊음도 활짝 피어나 세상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퍼져갔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왜들 젊음을 찬미하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매일이 꽃길 같던 날들. 때로는 일상의 고단함도 있었지만, 마치 향긋한 꽃다발 속을 걷는 듯 기분 좋은 하루하루였습니다. 물론 가끔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마음을 상하게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시샘처럼 꽃을 꺾기도 하고, 애써 피운 향기를 무심코 밟고 지나가기도 했죠. 하지만 그것 또한 젊음의 일부였습니다. 잠깐 스쳐가는 계절의 바람처럼, 금세 지나갈 일시적인 흔들림일 뿐이었습니다.
그 시절, 나는 특별한 인연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분이었고, 그녀는 보육원에서 복지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만남이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게 될 줄은, 그땐 미처 몰랐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이웃들, 결식 아동, 홀몸 어르신들을 돌보는 복지사였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밥을 짓고, 잠자리를 챙기며, 마음까지 어루만지던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볼 때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만날 때마다 “봉사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마음의 일”이라 말하곤 했습니다. 봉사는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며,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는 길이라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봉사’라는 말이 지금처럼 흔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체계적으로 알려진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나에게 그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를 통해 나는 ‘살아야 할 이유’와 ‘살아가는 방식’을 동시에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그녀는 나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따라와요.”
나는 별생각 없이 따라나섰고, 그녀의 손끝이 향한 곳은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죠. 당시 우리 집안은 불교를 뼈속 깊이 믿는 집안이었기에, 교회라는 장소는 사실 낯설고 두려운 공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조용히 설교를 들었고, 신기하게도 마음이 잔잔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녀와의 만남이 계속 이어졌고, 나는 점점 그녀에게 이끌려 갔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아무리 가까워져도, 현실의 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결혼’이라는 말이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서로가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할 나이가 된 것이죠.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믿음이었습니다. 나는 불자였고, 그녀는 기독교 신자.
그 간극은 생각보다 깊고, 고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눈을 바라보던 그녀는 문득 말했습니다.
“결혼... 해요.”
그 말이 참 따뜻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싸늘한 겨울바람처럼 마음이 얼어붙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설레었지만, 그녀의 다음 말이 모든 것을 뒤집었습니다.
“사랑은 있지만, 믿음이 다르기에... 결혼은 할 수 없어요.”
그녀는 말했습니다.
“우리 둘만 좋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후대에게 불행이 이어질 수 있어요.”
진심으로 나를 아끼고 사랑했기에, 그녀는 단호했습니다. 몇 번이고 나를 설득했고, 결국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1년은 아름답게 시작되었다가, 아름답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녀는 내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봉사하며, 진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설 수 있을 때…
그때 내가 꼭 당신을 다시 찾아볼게요.”
그녀는 약속했고, 나도 약속했습니다. 그래, 이젠 나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자. 탐욕 없이,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자.
그 후 나는 삶의 가훈을 정했습니다. 근면, 성실, 겸허, 봉사 이 네 글자는 결혼 후에도 A4용지에 프린트해 현관에 붙여두었고, 지금까지도 빛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그 가훈은 자식들에게도 전해졌고, 나는 지금도 믿습니다. 그 가치는 우리 가족의 뿌리이자, 나의 삶의 등불이었다고.
첫댓글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