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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린바타(여인왕국)
<여인왕국의 명칭과 등장인물>
여인왕국: 여인왕국의 언어는 가야(伽倻)와 비슷하고, 가야는 동인국과 비슷하고, 동인국은 고구려와 닮고, 서인국은 조금 틀리고 부족도 매우 닮은 편이다.
여인왕국의 언어로 진녀를 부를 때 '무린', 여인은 '라관'. 왕국은 '바타'라고 불렀다.
가야인이 여인왕국을 부를 때에는 '아하란 바트', 여인왕국이 서현(경북 안동)에 정착한 후 15년째부터는 '라브리안 무린'이라 불렀다. 라브리안은 안드로메다 은하계에서 미완성 존재를 의미한다.
이 당시만 하여도 대사제는 언제나 구리로 된 거울을 보며 영사(靈査: 과거의 일을 비추어봄)를 하였는데, 영사로 얻어낸 지식에 의하면, 라브리안은 머나먼 은하계에서 출발할 당시 진녀의 본체인 '사파엘라 여신'이 자신의 자녀들을 완성시킨다는 작전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당시의 작전번호가 있으나 밝힐 수 없다.
라브리안은 여인국 당시의 언어로 번역하면 '고무운'이라는 표현이 된다.
라브리안=계획, 미완성
무린=진녀, 사라, 상라, 사파엘라
뜻은 진녀의 작전계획, 또는 미완성 여신들, 사파엘라와 자녀들, 상라의 꿈.
진 녀: 부족국의 수난받는 여인들을 이끌고 여인왕국을 세운 여인. BC 126년에 태어나 10세 때에 기른장을 만나서 20세까지 문무를 익힌 후에 부족국으로 들어온다. 키 174센티미터에 지덕을 겸비한 절세미인이며, 용병술에도 뛰어남.
당시에 '무린 하라'라고 불렀다. '무린'이란 그 당시에 흔히 쓰였으면서도 실제는 없던 말인데, 지금의 시대적인 상황으로 말한다면 은어와 같은 말이다. 그 뜻은 '팔방미인', '최고의 여인'이라 할 수 있다.
'하라'도 은어와 같은 말로서 '영원'이란 뜻도 되며, '처음과 끝', '알파와 오메가'란 의미가 있다. '무린하라'라고 하면 '영원한 최고의 여인'이란 뜻이며, 문자로는( ? )이다.
눔 스: 진녀의 생부. 동인국, 특히 무제골에서 활약했던 뛰어난 검객 중의 하나. 젊은 시절의 칼잡이 생활을 후회하고 숲속으로 들어간 뒤 태춘을 만나 여인왕국을 이끌어갈 진녀를 잉태케 한다.
태 춘: 진녀의 생모, 울사 부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현으로 팔려간다. 그 후 살파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탙출하여 눕스에게 구원받고 진녀를 잉태한다.
기른장: 천하를 주름잡던 당대의 최고의 검객, 여인 왕국을 세운 진녀의 스승이자, 훗날 여인왕국을 멸망으로 이끄는 울멍의 스승이기도 하다. 선군 왕검으로부터 내려온 검법의 전수자이며, 미래를 내다보는 신통술에도 매우 능하다. 당시의 언어로는 '아카나시아'라고 불렀는데, '선과 악의 기(氣)를 몸에 지닌 자'라는 뜻이다.
호 녀: 진녀가 왕국 초기에 그녀의 얕은 꾀를 보고 앞으로 왕국의 미래를 위하여 '지혜의 여인'이 되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이 여인은 훗날 지혜를 모두 색정에 쏟아부었고, 결국에는 진녀를 죽이는 일에 써먹는다.
'녀'란 번역하는 과정에서 들어간 글자이고, 당시에 불리던 이름은 '호'이며, '쏘부'라 하였다. 전생에서는 애틀랜티스 대륙의 공주였으나 무대륙의 초인인 '하(추봉)'라는 청년을 만나 누구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밤의 향연이 있고부터 혼인을 하게 된다. 현세에 인기연예인으로 환생하였으며, 분신도 여러 명 있다.
유 림: 본래 이름은 '이디'이다. 여인왕국 12년, 이디는 학문에 학문을 탐구하던 중 한밤중에 왕국에 가까운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새벽 무렵 궁정에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듣고서 잠에서 깨어났는데, 쉽게 말해서 '숲에서 깨우친 여자'라는 뜻이다. 왕국 말기에 진녀와의 사랑행위는 깨우침보다도 진지하였다. 그 뒤로 유림이라 불렸다.
여인왕국 언어로는 '후우부르'이다.
추 봉: 부족국이나 살파에서는 3∼4세만 되면 예쁜 아이와 못생긴 아이를 구분하였다. 예쁜 아이는 후에 미루나기가 되도록 교육시키나 못생긴 아이는… 쓸데없는 여인이 되는데, 이것은 '못생긴 그룹'을 뜻한다. 지금의 관점에서 추봉의 외모를 살펴본다면 키 195센티미터, 팔둘레 30인치, 가슴은 60인치, 허벅지도 40인치에 육박하였으니 이보다 더 못생긴 여인이 어디에 있을까, 더구나 추봉은 무월경의 여인이니 귀찮을 것 없었다. 여인왕국의 장수가 되고 난 후에 '수장'이라 불렸다. 당시의 이름은 '쿠라'이다.
현생에 추봉이 환생한 여인을 만났는데, 남자문제로 모진 고통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슈 카: 당시에 부르던 이름 그대로이다. 지금의 언어로 번역하면 '여기사'
우 신: 왕국 초기에 진녀가 지어준 이름. 우신은 지덕을 겸비한 여걸로서 진녀를 도와 신령스러울 정도로 싸움질을 잘하였다. 당시의 이름은 '알무운'.
고 봉: 기른장이 지어준 이름으로 '높은 학문을 지닌 여인들'이라는 뜻. 일종의 호칭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언어로는 '춤부'라 하였다.
울 멍: BC 109년 100세의 노파 몸을 빌려 태어난 자. 울멍은 당시에 부르던 이름 그대로이며, '심판자'란 뜻이다. 기른장의 맥을 이은 천하의 무인으로서 여인왕국을 멸망으로 이끌며, 후에 신라가 탄생되는 기틀을 만든다. 여색을 좋아하기로는 역사상 최고의 인물.
신과의 대화 속에서 역사를 열어간 자이며, 미래를 약속한 인물 중의 하나이다. 은어로는 '인켈'이라 부른다.
지위리: 한인들의 세대에 존재하였던 신인간. 일곱 신 중 유일하게 인간세상에 뛰어들어 3000여 년 동안 한인을 이끌어왔다.
<프롤로그>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경북 안동지역에 여인들만 모여 사는 작은 왕국이 있었다. 이 작은 왕국은 당시 언어로 '무린바타' 또는 '무린하라'라고 불렀었다. 여인들의 작은 나라는 그 시작부터가 형언할 수 없는 슬픔속에서 개국하였고, 최후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우여곡절의 역사였다. 인간의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하나의 수치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정녕 땅속에 묻어버리기에는 안타깝고 값진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무린바타의 여인들은 여느 여인들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았고, 고귀한 문화를 영위하면서 종교적인 사랑의 삶을 이룩하며 살았다. 그녀들은 주위의 온갖 외침(外侵)에도 굴하지 않고 용감히 싸웠다. 무엇보다고 그녀들에겐 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삶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이 작은 왕국을 이룩하고 잠시나마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기까지에는 값진 희생을 치러야 했다. 자유스런 삶- 웃고 싶을 때 마음껏 웃고 슬플 때 목놓아 울며 소리지르고 외쳐볼 수 있는 자유… 이같은 대자유를 얻기 위하여 무린바타 여인들은 기나긴 세월동안 몸부림을 쳐야 했다.
신라는 6부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6부족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경로와 과정속에서 이루어졌는지 우리는 전혀모르고 있다.
신라란 곧 '사랑'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신라란 '사랑의 나라'이다. 사랑의 나라가 이루어지기까지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여기 전한다.
선군 '아흘' 시대에 진한에는 '용장'이란 장수가 있었다.
젊고 용맹스러우며 기지가 뛰어난 장수였다. 그는 아버지 용평의 죽음에 얽힌 비화 때문에 삶에 회의를 느끼고 인생의 덧없음을 느꼇다. 그래서 가족을 이끌고 인간의 숨결이 닿지 않은 깊은 산속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지금의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리하여 정착한 곳이 지금의 안동지방이다.
용장의 가족은 자연과 함께 숨쉬며 어지러운 세상과는 외면한 채 살아갔다. 그로부터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자 번성한 그의 자녀들은 부족을 이루게 되었다. 그 이름하여 '알신'이라 부르게 되었고, 얼마 후 하나의 부족이 탄생되었으니 '공명'이라 부르게 되었다. 알신과 공명 부족은 모두가 용장의 피를 이어받은 자녀이며 한가족이었다. 이때의 사회는 매우 풍요한 삶을 누리는 여존남비의 시대였다. 여자가 부족의 우두머리이며, 부족의 운영과 사회체제가 전부 여자에 의해 움직였다. 그것은 시조인 용장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알신과 공명 2부족이 생긴 이후 인구수가 점차 늘어가자 자연 외부에 알려져 외부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2부족은 처음엔 외부인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씨족사회를 고집하였다. 그러나 몇 세대를 거치는 동안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면서 자연 삶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알신과 공명 부족은 여성중심사회였고, 시초부터 여존남비의 사상이 이루어진 사회였지만, 외부는 정반대로 이루어진 사회였다. 따라서 2부족의 남자들이 그들과 매우 근접해서 살아가고 있는 외부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용장의 후손인 2부족의 남자들은 점차로 자신들의 위치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부족을 벗어나기만 하면 여자에게 소리지르고 두들겨패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지만, 자신들의 부족으로 들어오면 남자들이 여자에게 억압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남자들의 마음에 변화를 불러일으켰고 차츰 감정을 터뜨리게끔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2부족의 남자들은 마침내 몽둥이를 들게 되었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어머니와 부인, 딸들에게 몽둥이를 휘둘러댔다. 여자들은 순식간에 굴복을 했다.
부족장이 죽어가고 수많은 여인들이 피 흘리며 절규했다. 여존남비는 잠깐 사이에 남존여비로 뒤바뀌고, 여성중심의 2부족은 남성중심의 사회로 바뀌어버렸다. 이들 알신과 공명 부족이 남성중심사회로 변화되자 외부 사람들도 끼리끼리 모여서 작은 부족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것이 신라 이전의 6부족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이다. 6부족의 이름은 서현·우징·울사·순측·각현·쟁고인데, 이 부족사회는 각기 작은 부족국가들을 탄생시킨다. 이때에 서현이 알신, 순측이 공명 부족의 바뀐 이름이다. 그러나 이때의 2부족은 상당수가 외부의 부족국으로 넘어가 살았고, 타부족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았으므로 용장의 순수혈통은 여기서 끝나고 만다.
부족국가가 시작되면서 여성들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누리던 인간적인 자유가 사라지고 참으로 가혹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여성이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수난을 당하게 된 것은 공명 부족의 사내들이 여성에게 억압된 삶을 살았었다는 데 대한 분풀이로 여성에게 학대를 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학대는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더욱 심화되어갔으며, 공명 부족의 여성학대는 가속화되어 6부족 전체로 번져갔다. 그 현상은 묘한 사회를 만들면서 여성말살현상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여성의 수난은 이렇게 시작되어 오랜 세월 지속되었다. 여러 세대가 지나면서 더욱 가열되는 수난사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여인들은 도저히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처절한 삶 속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구세주를 찾게 되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여인들의 구세주는 '사라'였다. 마침내 그녀들의 염원은 '진녀'의 출현으로 이루어지니, BC 126년의 일이다. 진녀는 성인이 되어 부족의 여인들을 사내들의 억압 속에서 해방시켰다. 그리고 여인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나라를 세운 여인들은 여인들만이 살아가는 자유스런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동백제라는 거대한 나라의 외침과 섬나라 일본의 침략 속에서도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하여 피를 흘리며 싸웠다.
그러나 진녀가 사라진 후 여인왕국은 그 힘을 점차 잃어만 갔다. 그와 함께 여인왕국 내에서는 서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파벌싸움이 시작되었다. 외침은 더욱더 거세어지고 권력투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가는데, 어느 날 동인국의 기사 '울멍'이라는 자가 여인왕국의 용병술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여인왕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부족의 사내들은 여병들에 의해 죽어갔고 사방으로 흩어지고 분열되었다. 따라서 부족국은 여자와 남자가 모두 분열되었고, 여인들이 무너지면서 남자들도 함께 무너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가야인의 도움으로 다시금 나라를 세웠는데 이것이 곧 신라이다. 신라는 이렇게 상처 속에서 시작된 나라이다. 사랑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 몸부림쳤던 부족 남녀들의 힘겨운 역사의 뒤안길에는 이렇게 가슴 아픈 추억의 시간이 있었다.
이 글은 진한국의 용장이라는 장수가 남하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용장이 삶의 터전을 잡아 부족의 시조가 되고, 씨족사회가 점차 부족국가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 및 진녀가 탄생하여 왕국을 일으켜 세운 뒤 최후를 맞기까지의 과정을 적었다. 아득하게 잊혀지고, 땅속에 묻혀져 있던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진실된 우리들의 영혼을 찾아 미지의 세계로 다 함께 여행을 보도록 하자.
● 6부족의 명칭
옛 6부족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우징 부족을 부를 때에는 '루찐인'이라 하며, 이를 지금의 말로 번역하면 '상인(上人)', 즉 '높은 사람'으로 풀이된다.
서현은 '쑤락'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애기집', 즉 '자궁'을 뜻한다. 자궁 외에 '보금자리'라는 뜻도 된다.
각현을 이름하여 '놋타'라 불렀다. 놋타란 '숨어 있는 나라'라는 뜻으로, '조용한 부족'을 가리킨다.
순측은 두 가지의 이름이 있었다. 외부에서 순측을 가리킬때에는 '토굘'이라 불렀고, 부족 내에서는 '토몰'이라고 불렀다. 토굘이란 '거지'를 뜻하며, 토몰이란 '귀인'을 뜻한다.
울사는 '뚜마구'라 불렀다. 뚜마구란 지금의 말로 '밑천'이란 뜻인데, 울사가 이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 부족에 유달리 걸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여인의 뚜마구를 팔아야 했다. 이에 붙여진 이름이다.
쟁고는 '퉁굿'이라 불렸다. 퉁굿이란 참으로 묘하고 번역할 수 없는 말이지만, 굳이 말한다면 '여벌'이란 뜻이다. 부족들 중에서 쟁고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정도로 매우 푸대접을 받던 부족이었다. 그렇다고 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소외시당하던 부족이었다.
우징·서현·각현·순측·울사·쟁고는 여인왕국의 고봉(학자)들이 표기했던 부족의 명칭들이며, 루찐인·쑤락·놋타·토굘·뚜마구·통굿이란 이름은 부족국가가 시작되면서부터 부르게 된 명칭들이다.
고봉들이 표기했던 부족의 명칭은 신라시대 초기까지도 불려졌다. 그 후 이같은 이름과 기록이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사라져버린 것은 신라시대의 법흥왕(法興王) 때부터이다.
첫댓글 어렵네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예전에 한번 책에서 본일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