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이 끝나고 이젠 뭘 보지?
했는데 시그널이 시작되고 뭔 얘기인지 한 번 보자는 심정으로 보았는데 본방을 찾아서 보게되었다.
독특한 판타지이다.
이런 구성을 가진 판타지는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세상의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모두 보지 못했으니 다른 곳에서 살짝 아이디어를 빌려왔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쳐도 무척 잘 기획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도구는 무전기.
실종된 형사와 현직 프로파일러의 무전은 미제 사건을 하나 둘 해결하는 통로가 된다.
첫번째 사건은 현재 프로파일러의 어린 시절이 관련된 미제사건.
사건 공소시효를 숨가쁘게 다투며 범인을 잡는다.
두번째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젊은 여성의 의문의 연쇄살인사건.
영화 마더에 버금가는 파더가 사건을 봉인하려했지만 결국 범인은 잡힌다.
여기까지는 범죄심리나 장기 미제 사건의 피해자와 범인에 대해서 주로 관심이 쏠린다.
장기미제사건이 가지는 여러가지 어려움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다음의 대도 사건은 좀 사건의 질이 달라진다.
권력이 개입된 사건이다.
공공의 적을 비롯하여 형사비리와 정관재계가 얽히고 설킨 비리와 음모, 살인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근래 대박이 난 베타랑이나 내부자들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이다.
대도사건을 통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억울한 희생자들 약자에 대한 발언을 담아내면서 이 드라마의 무게도 조금 달라진다.
한때 범죄영화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
레옹과 같은 킬러의 정서를 담고 있는 꽤 아름답고 강렬한 뒷맛을 남기는 영화말고는 다 그게 그거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범죄영화에 대해서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다.
범죄나 공포물은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알 수 없는 세계를 담는다.
정신과 신체가 온전하고 삶의 조건도 그만 그만하게 정상적인 가족과 이웃과 살아갈 이유가 있고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벽 너머의 세계이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세계의 모든 나라는 심각하다못해 섬뜩하기까지한 빈부격차를 가져오는 악마적인 자본주의 구조에서 신음하며 보통사람의 삶을 무참하게 파괴하고 있다.
보통의 삶의 가치를 소박하게 즐기던 사람들이 삶의 터전과 희망을 잃고 부유하기 시작하였다.
IMF 이후의 대한민국의 병증은 계속 심각하게 깊어져서 이제 그 대안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가야할지 모순이 태산처럼 쌓여있는 꼴이다.
이러한 우리 시대의 배경 속에서 범죄와 공포는 일상이 되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불안과 절망감은 자신을 공격하거나 타인을 공격하고 있다.
힘을 가진 자들의 야합은 정의사회 민주사회 법치사회 라는 헌정국가의 껍데기를 한 풀 벗기고 현실의 이해관계로 들어갔을때 이제 더 새로울 것도 없는 뻔뻔스럽고 악취나는 부당거래로 곪아터진 진창꼴이다.
이러한 시대 경찰은 무얼 할 수 있을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경찰이 되어서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정의수호를 위해서 개개인의 경찰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까?
젊은 프로파일러 경찰은 그 점에서 회의적이지만 자기의 몫을 하고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충분하게 행사하여 부패한 경찰의 숨통을 조여가고 있다.
이제 이번주와 다음주 4편으로 막을 내릴 시그널에서 화면에서나마 죽어가는 병자, 비리의 희생자들에게 신선한 샘물을 떠먹이듯 비리의 목줄을 쥐고 끊어내는 결말을 감상하게 될 것 같다.
부와 권력을 유산으로 상속받은 황태자는 살인자로 구속이 되었고 이제 죄를 뒤집어씌워 처리해버린 옛 형사의 뒷 이야기를 볼 차례이다.
무서운 시대이다.
본 것을 못 본 척, 알고 있어도 모르는 척 이 시대의 패도에 소극적 동조자로 살던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이야기...
정의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세상의 수많은 약자들에게는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아마도 드라마는 선물할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권력의 핏줄이 된 검찰과 경찰, 대기업의 오너와 간부, 고급 공무원, 국회의원과 각료, 대통령, 군수뇌부와 국가안전기획부.
책임의 적고 많음을 떠나서 이들이 자기 자리에서 해야할 바를 하지 못하면 국가는 암에 걸린 사람처럼 병이 들어버린다.
국가의 몸인 이 땅의 국민은 그 암덩어리로 인해서 평범한 삶을 잃어버릴 수 있다.
범죄와 공포물로 이러한 현실을 담을 수 밖에 없다.
판타지나 멜로를 통해 이 현실에서 받는 고통을 약간이나마 위로 받는다.
시그널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씻김굿과 같은 의미도 부여된다.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해결이 드라마에서나마 있다.
그렇지만 드라마도 알고 있다.
어느 선 이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건조하게 그 지점에서 멈춘다.
이제 우리는 상상 속에서도 통쾌하게 모든 것이 해결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 만큼 병이 깊다.
첫댓글 tv안보는데, 몰아볼까 생각이들게만드네요. ^^
네 웰메이드 드라마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