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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죄의 결과인 죽음의 진상
비평 훼케마
“안식일 교회는 역사적인 기독교가 가르쳐 온 지옥의 교리를 부인한다. 그러나 그들은 형별의 결과가 영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영원한 형벌, 곧 멸절(滅絶)을 믿는다.”23..
해 설
훼케마 씨가 대표하는 일반 개신교회들과 카톨릭교회가 믿는 바는, 구원받지 못한 죄인은 영원한 지옥불에서 불에 타 없어지지도 않고 산 채로 영원히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은 불멸이기 때문에 의인의 영혼이 영원한 것처럼 악인의 영혼도 소멸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안식일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다음과 같이 믿는다.
예수 재림시 의인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변화된 새 몸 입고 승천한 (살전4:15-18; 고전15:51-54),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하늘에서 악인을 심판하는 권세를 받고 왕노릇할 것이다(계20:4-6). 천년 후에 그리스도를 수반하여 새 예루살렘과 함께 이 땅에 내려올 때 모든 죽은 악인들이 참여하는 둘째 부활이 있을 것이며 그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 하여 영원히 멸절시키는 “둘째 사망 곧 불 못”이 있을 것임을 믿는다(계20:7-15). 결국 예수 재림 천년 후에 이 지구 자체가 불 못인 지옥이 될 것이며(계20:8.9) 죄와 죄인이 영원히 사루어진 후에는 지구가 새롭게 창조되어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원히 거할 새 땅이 될 것임을 믿는다(계21:1-5). 이러한 사실을 조목을 들어 아래에 변증한다.
죄의 결과인 죽음-둘째 사망
변 증
하나의 거짓을 합리화하기 위하여는 또 다른 연쇄적인 거짓이 필요하다. 사단이 에덴 동산에서 인간을 안심하고 죄짓도록 유혹할 때 사용한 첫 번째 거짓말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는 선언이었다. 하와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죽지 아니하리라”는 사단의 거짓말을 믿었다. 지금도 사람의 영혼은 불사불멸(不死不滅)이라고 믿는 것이 합리적으로 생각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단언하신다.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다음의 말씀들을 비교하며 죄의 결과는 사망임을 확인해 보자.
o 창2:7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o겔18:3 “범죄 하는 그 영혼(네페쉬)이 죽으리라”
o요3:16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o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o고전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조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o게20:14 “사망과 음부[무덤]도 불못에 던지 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죄의 값은 사망임을 일관적으로 확언하고 있다.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인 것처럼 영원히 죽는 것이 사망이다. 만약 죄인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당한다면. 그것이 고생이지 사망이 아니다. 그것은 “죄의 값은 사망”대신 “고생”이라는 뜻으로 성경을 바꾸어 놓는 일이다.
위에 인용된 계시록20:14절의 둘째 사망이란 무슨 뜻인가? 신, 구약 성경은 의인이건 악인이건 한번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게 마련인 생물학적 죽음을 무의식적인 “잠”이라고 했다. (신31:16; 왕상11:43) 등 열 왕기, 역대기에만 35회 이상 표현됨: 단12:2 ;욥14:12; 요11:11; 행7:60; 살전4:15, 16; 벧후3:4). 이처럼 의인이나 악인이나 부활의 날까지 무의식 상태로 무덤에 머무는 것을 첫째 사망이라고 한다.
자는 사람은 비록 이식은 없지만 분명히 깨어나는 것처럼 의인은 예수 재림 시에 “생명의 부활” 곧 “첫째 부활” 떼에 육신으로 부할 한다.(요5:29; 계20:5,6)그러나 악인은 예수 재림 천년후(계20:5) “심판의 부활”(요5:29)곧 둘째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한 죽음인“둘째 사망”(계20:6,14) 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이 “사망과 음부[무덤]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이 “둘째 사망”인 지옥불 인 것이며 이 둘째 사망 데에 사망도 사망(死亡)하여 사망의 영원한 끝이 이르는 것이다.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 당한다는 말은 아직도 사망이 끝나지 않았다는 비 성경 적인 주장이다.
지옥의 진상.
비평 훼케마.
“신약 성경에 12회 나타나며, 보통 ‘지옥’(hell)으로 번역되고 있는 헬라어 ‘게헨나’(gehenna) 를 살펴보자. 안식일 교회는 이 말이 악인을 영원히 불살라 없앨 파멸의 불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마태복음 18장 9절의 ”영원한 불과 같은 표현으로 쓰였다. 그러므로 지옥불은 일시적인 불이 안이요 끝없이 영원한 불이다.”24
해 설
훼메마씨는 안식일 교회가 악인은 영원한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 당한다는 일반 교회들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악인은 격국 사루어 없어진다는 악인 소멸(消滅)을 믿는 것을 반박하는 근거로 “지옥”을 뜻한다는 성경의 “게헨나”가 영원한 지옥불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시 계시록14장의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 간다는 표현을 들어 지옥불 속에서의 악인의 고통도 영원하다는 논거를 삼고 있다.25
변 증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지옥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지옥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고, 언제 있을 것이며, 얼마나 오래 있을 것인가에 있는 것이다. 먼저 지옥(地獄)의 본래 뜻부터 확인하여 볼 필요가 있다. 지옥을 영어로는 “헬”(hell)이라고 하는데, 흠정역(KJV) 구약 성경에 31번 신약 성경에 23번 나타나는 말이다. 그런데 “지옥”으로 번역된 이상의 표현들은 아래와 같은 네 가지 말에서 나왔다. 그것들을 면밀히 점검하며 참으로 성경에 말하는 지옥의 진상을 확인 해 보자.
구약 셩경 의 음부-“스올”
구약 성경에 65변 쓰여진 “승올”(Sheol) 일라는 히브리어는 “보이지않는 세계”(the unseen world)를 뜻하는말인데,26 우리말 셩경에는 주로 “음부(陰部)” 로 번역하여 죽은ㄴㄴ사람의영혼이 가는 곳으로 잘못 샹각하는 “저승”을 연상시킨다. 17세기의 영어번역인 흠정역(1611년 , KJV)에는 걑은말을 자신들의 주관에 따라 31번은 “무덤”으로 31번은 “지옥”으로 3번은 “구덩이로”번역하여 혼란을 일으키고있다. 그러자 20세기에 들어와서 더많은 연구를 거쳐 번역된 영어 성경들은 “지옥”이 문맥과 신학에 맞지 않게 되자 미국 표준역(ASV)은 대부분“지옥”대신 “무덤”으로 전역하여 신학적 양심을 되찿고 있다. 성경의 본문을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음부”로 번역된 이 “스올”이란 곳은 사람이 죽으면 의인이나 악인이나 모두가게 마련인 유택(幽宅), 곧 “무덤”을 뜻했음을(욥7:9; 시30:3; 전9:10) 다음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o 신실하게산 야곱도 자신이 죽으면 갈 곳이라고 했고(창37:35; 42:38, 44:29,31)
o 의로운 욥도 죽으면 그리로 내려 간다고 했으며 (욥14:13; 17:13-16).
o 하나님이 사랑하시던 다윗도 죽으면 갈 곳으로 기대했고 (시18:4,5 ; 30:3; 49:15)
o 선한 히스기여 왕도 그리로 간다고 믿었을(사 38:10)뿐만 아니라,
o 예수 그리스도도 돌아가신 뒤 잠시 머무실 곳도 음불고 예언되었다(시16:10→행2:27,31)
o 또한 반역한 무리들도 음부에 삼키웠다고 했고(민 16:33).
o 애굽 사람과 앗시리아 사람도 죽으면 가는 곳이고(겔 32:18~23).
o 바벨론 왕도 가고(사 14:9).
o 결국은 모든 사람, 모든 악인이 가는 곳이다(시 9:7 ; 계 20:13).
“구약 성경에서의 “스올”을 주제로 박사 학위의 논문을 쓴 월터(Raalph Walter)는, 구약 성경에 쓰여진 “스올”(sheol)에 대한 거의 모든 묘사는 “무덤”과 정확하게 같은 뜻으로 적용할 수 있다.”27 고 연구의 결과를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스올”이 구약 성경에서 “지옥”이나“음부” 등으로 잘못 번역되기는 했지만, 그 곳이 악인이 죽은 뒤 불 속에서 고통 당하는 지옥의 뜻으로 쓰인 적는 다 한번도 없다.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에는 악인을 영원히 불태우는 그런 지옥은 용어마저도 없다,28. 신약 성경에는 어떠한가?
신약 성경의 음부- “하데스”
신약 성경에 지옥(hell)이라고 번역된 말이 모두23번 나오는데 그 가운데 10번은 “하데스”에서 ,12번은 “게헨나”(gehenna) 에서 , 1번은 “타르타르스”(tartatus) 등 세 가지 헬라어에서 나왔다.
먼저 “하데스” 는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스올” 에 해당한 헬라어임을 시편16편 10절을 인용한 사도행전2장27절에서 곧바로 알 수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다윗이나 예수 님이 장사된 무덤임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행2:29,31). 소아시아 무덤들 앞에 『0 0의 무덤』이라고 쓴 묘비(墓碑)에도 무덤을 뜻하는 헬라어인 “하데스”를 썼음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자주 “지옥”으로 번역된 신약 성경의 “하데스”는 죽은 악인들의 영혼이 고통 당하는 불타는 지옥이 아니라. 죽으면 무두 가게 되는 “무덤”이나 “죽음” 자체를 뜻했음을 성경 본문만 주의 깊게 읽어보아도 쉽사리 아 수 있다.
그리하여 17세기 영어 번역 성경인 흠정역(KJV)emd "하데스“를 대부분 ”지옥“으로 번역했던 옛날 성경과는 달리 , 20세기 새 번역 성경들은 그것을 ”무덤” 혹은 원어 그대로 “하데스”를 써서 지옥으로 번역할 때 생기는 문맥과 신학 상의 혼란을 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 신학교를 대표하는 훼케마 씨는 칼빈의 가르침을 뒤바침 하기 위해 “스올”이나 “하데스”가 지옥도 아니고 무덤도 아닌 곳으로, 의인과 악인의 영혼들이 최후 심판이 있기까지 예비적인 평안이나 고통을 겪는 임시 휴게소 격의 준간 상태라는 무리한 주장을 펴고 있다. 이것은 칼빈주의 신앙의 교과서인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서의 정설(定說)에도 어긋나는 자체 모순임을 뒤에서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29
본래 영어의 지옥인 “헬(hell)”도 “덮다”(to cover), 혹은 “숨다”(to hide)라는 뜻의 앵글로-색슨어인 “헬란”(helan)에서 나온 것이다. 30 수백년 전에는 그 낱말이 앞에서 살펴본 히브리어“스올”이나 헬라어“하데스”처럼 죽으면 누구나 가는 “보이지 않는”(unseen) 곳인 무덤을 뜻했다.31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단어 [hepsn]는 악인들이 형벌 받는 곳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대 영어 ”지옥“은 성경의 단어 “스올”이나 헬라어“하데스”와는 다 른뜻이며,...그리스도 게서 죽으셧을때 그는 분명히 지옥으로 가시지 않았다.32.
어두운 구덩이 -“타르타루스”
지옥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는 또 다른 헬라어인 “타르타루스”(tar-tarus)는 신약 성경(벧후2:4)에 단 한번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는 말씀에서 “지옥에 던져”로 번역된 헬라어의 동사형(tartaeoo)으로 나타난다. 명사인 “타르타루스”는 “어두운 구덩이” (a daek adyss)의 뜻으로 쓰였는데 유다서 에도, “지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유1“6)다고 썼다.
그러면 범죄한 악한 천사들을 심판의 날까지 가두어 놓은 이 흑암의 구렁텅이는 어디인가? 요한계시록에 그 대답이 있다. 범죄 함으로 하늘에서 추방당한 사단과 그를 따르는 악한 천사들은 “하늘에서 있을곳을 얻지 못한지라...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어 좇기니라”(계12:8, 9, 12, 13).
실제로 이 땅이 재림 후 최후의 시판이 집행되기까지 쳔년동안 사단이 갇혀 있을 혼돈(混 沌)상태인 “무저갱”( 無低坑)으로도 묘사되었다(계20:1-3). 그러므로 비록 지옥으로 번역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악인이 영원히 불살라지는 그런 뜻의 지옥일 수 없음이 분명하다.
신약 성경의 지옥-“게헨나”
신약 성경에 “지옥” 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게헨나”(gehenna)는 12번이나 나타 나는데 헬라어로 는 “게엔나”로 불리운다. 히브리어로 골짜기를 뜻하는 “게”(ge)와 인명인 “힌놈”(Hinnom)이 합성된 “힌놈의 골짜기”란 뜻의 지명이다(수18:16) 12번 가운데 9번은 “지옥”이란 명사로, 3번은 형용사로 쓰였는데 한번(약3:6)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께서 친히 하용하신 특이한 표현이다. 이 “게헨나” 만이 불타고잇는 성경적인 백경의 “지옥”을 묘사하는 용어이다. 그렇다면 “게헨나”는 어디이며 타오르는 불은 언제 그리고 언제까지 타오를 불인가?
지옥의 주소로 소개된 “게헨나” 는 다름 아닌 예루살렘 남쪽 비탈 아래의 계곡이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져 타락이 극도에 달했을 때, 이곳에서 자식들을 몰렉 신에게 불살라 제사하기까지 한(대하28:1-3,33:1-6;왕하23:10) 배도의 현장 이였다. 예레미야는 이 골짜기를 “살육의 골 자기” 라 칭할 것임을 예고하고, 배도한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 가없을 것” 이며 “땅이 황폐하리”라고 예언했다(렘4; 19:2, 6; 32:25)
실제로 요시아 왕은 그 골짜기를 그렇게 만들었다(왕하23:10). 후에는 처형당한 죄수들의 시체와 죽은 짐승들의 사체를 바리고 온갖 오물을 버리는 곳이 되어, 이를 불태우는 연기가 밤낮 타오르고 있었으며. 구더기와 온갖 벌레들이 서식하고 악취가 풍기는 불쾌한 곳이 였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힌놈의 골짜기”, 곧 “게헨나”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악인들이 최후의 형벌을 받을 곳을 상징하기 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도 이러한 역사적, 지리작 배경을 적용하여 당신의 말슴을 한사코 거역하는 바리새인들과 완고한 인간들을 질책하새며, 그들이 마지막 심판 날에 “살육의 골짜기”곧 “게헨나” 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막9:43-47). 그러므로 예수께서 묘사하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이나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막9:43, 48)는 지옥블은 곧 “힌놈의 골짜기”의 쓰레기와 시체를 태우는 불이었다.
이 “게헨나”가 신약 성경에는 모두 “지옥”으로 번역되어 있다(마5:22, 29, 30; 19:8; 23:33). 그러나 이러한 지옥은 사람이 죽은 뒤 몸을 떠난 영혼이 불 가운데서 고통받는 곳으로 표현된 경우는 한번도 없고 , 장차 있을 재림과 연관된 심판의 때에(마5:22; 25:41) 몸이 함께 사루어 없어질 곳으로 분명히 언급되었다.(마10:28; 5:29,30) 그 대와 장소는 앞에서 밝힌 대로 예수 재림이 있은 지 천년 후에 볼 못으로 화할 이 땅인 것이다(계20:7-10, 13, 14; 벧후 3:10-13).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구약의 “스올”(65번), 신약의 “하데스”(11번), “타르타루스”(1번), “게헨나”(12번) 등 사람이 죽은 뒤 가는 곳으로 언급된 표현이 89변이나 나오지만 어느 한 곳도 죽은 뒤 몸을 떠난 영혼이 가서 영원히 고통 당하는 곳으로 소개된 곳은 없다. 단지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쓰레기를 태우는 불이 밤낮 타오르던 “힌놈의 골짜기”를 뜻하는 “게헨나”를 연상하여, 신약 성경은 마지막 심판 날에 악인을 태울 불을 “영원한 불”(마 25:41)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날의 힌놈의 골짜기의 쓰레기는 모두 타 버렸거나 치워지고, 시체들도 모두 썩어 버려서, 지옥을 상징했던 그 “게헨나”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더 이상 불도 타오르지 않고 벌레도 득실거리지 않는 아름다운 성지의 일부가 되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이러한 “힌놈의 골짜기”의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깨닫지 못하고, 이상과 같은 성경의 표현을 악인이 지옥불에서 당하는 고통은 영원하다는 영원지옥설(永遠地獄說)의 논거로 삼는 것은 학문적으로 신중하지 못한 가르침이다. 다음이 비평이 그런 것이다.
비 평 “만약 지옥불이 영원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불이 상징하는 형벌 또한 영원한 것이라는
훼케마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 사람이 그 불에 의해 타 없어진 후라면 무엇 때문에 지옥불이 계속 타고 있어야 하는가?33
이상과 같은 영원지옥설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18세기의 이름난 신학자요 설교 가인 요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설교의 한 토막을 들어보자.
“오래 전에 사망한 악인들의 영혼은 지옥에 가서 아직도 그 곳에 머물러.....끊임없는 고통 을 받아 왔다. 이 고통받는 일 외에는 그들이 그 곳에서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이 한 목적을 위하여 그 곳에 갇혀 있다.”34 “불의 큰 파도가 그들의 머리 위에 넘실대면 그 머리와 눈, 혀바닥, 손과 발과 허리와 그들의 활력이 영원히 벌겋게 녹아 흐르는 불꽃, 바 위라도 녹이는 불꽃 속에 휩싸여 가장 예민한 감각으로 괴로워할 것이다. 단 한 순간, 단 하루, 단 한 세대 혹은 두 세대, 혹은 일 백년, 아니 수억 년을 두고 영원히 끝도 없이 그 들은 결코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35
“꺼지지 아니하”고(막 9:43, 48). “세세토록”(계 14:11, 20:11) 타오르는 “영원한 불(마 18:8)등의 몇 가지 표현을 근거로 이상에 묘사된 것과 같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영원 지옥설을 함부로 주장할 수 있을까?
신약 성경의 “영원”과 “영원한 불”
변 증 먼저 신, 구약 성경에 쓰여진 “영원한”(everlasting)이라든지 “세세토록”(for ever)이라는 말이 보통 생각하는 그런 끝없는 영원을 뜻하는 말이 아님을 어학적으로, 성경 적으로 확인하여야 한다. 신약 성경에 “영원한”, 혹은 “세세토록”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이오니오스”라는 형용사인데, “아이온”이라는 명사에서 나왔다. 이 말은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쓰여지고 있다.
“추수 때는 세상[아이온] 끝이요”(마 13:39)
“이 세상[아이온]뿐 아니라”(엡 1:21)
“너희는 이 세대[아이온]를 본받지 말고”(롬 12:2)
“하나님이....만세[아이온]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아이온]의 관원이 하 나도 알지 못하였 나니...”(고전 2:7,8)
“네가 영원히[아이온]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히 5:6).
이상에서 본 대로 보통 “영원”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이온”은 분명히 시작과 끝을 가진 이 “세상” 이나 한 “세대”나 “시대”를 표현했음을 단번에 알게 된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2장 7절에서는 “아이온”을 “만세”(萬歲)로 번역했다가, 8절에서는 “세대”로 바꾸어 번역했다. 히브리서 5장 6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실제로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최후의 심판으로 세상에서 죄가 소멸되면 제사장 직분도 그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경이 뜻하는 “영원”은 끝이 없는 그런 영원히 아니라, 한 “세상”이나, 한 “세대”를 뜻할 수 있음을 다음의 실례에서 확증할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영원한[아이오니오스]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 었느니라”(유 7).
구약의 아브라함 당시 남색(藍色)으로 특징이 된 호모섹스(同性愛)를 공공연히 자행하던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벧후 2:6) 한 사실을 “영원한 불의 형벌”이라고 했다. 그 때의 유황불은 그 도시들을 재로 만든 후 꺼져 버렸으며 형벌도 함께 끝났다.
구약 성경의 “영원”과 “영원한 불”
신약 성경 헬라어의 “영원”인 “아이온”에 해당하는 구약 성경 히브리어의 “영원”은 “올람”이다.36 그런데 출애굽기 12장 24절에 보면 유월절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올람] 지킬 것”이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유월절은 십자가와 함께 끝났다.(히 9:24~26). 또한 아론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부어 “영원히 제사장이 되게 하”(출 40:15)며 “영원토록” 분향하며 섬기게 되었다고 했지만(대상 23:13), 이 모든 것 역시 십자가로 끝이 났다(히 7:11~14). 히브리인 출신의 남종은 자신이 선택하면, “영원히[올람] 그 상전을 섬기”(출 21:6)게 했다. 제한된 수명을 가진 종이 어떻게 제한된 수명을 가진 상전을 끝없이 영원히 섬길 수 있는가?
권위 있는 헬라어 표준 사전들과 성서 주석 학자들은 일치하게 “영원”, 혹은 “영원히”를 뜻하는 헬라어 “아이온”, “아이오니오스”. 히브리어 “올람”이 모두 “인간의 한 평생”, “세상의 한 시대”를 가리키는 데도 쓰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 말들이 실제의 “영원”을 가리킬 때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그것이 수식하는 주어(主語)가 영원하신 하나님이거나 하나님의 속성처럼 영원한 것일 때만 그렇다. 즉 “ ‘영원한’이라는 형용사는 주어의 속성이 허락하는 것만큼 오래 가는 기간을 표한다”37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공의”나 “무궁한 사랑”(렘 31:3)은 하나님만큼 영원한 것이다.
“나아만 의 문둥병이 네게 드러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올람] 이르리라”(왕하 5:27)고 선언한 엘리사 선지자의 저주는 본인의 게하시와 그의 자손이 존속하는 동아만 계속되는 것이다.
안식일을 공공연히 범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이렇게 선언했다.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 으로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 하리라”(렘 17:27).
과연 예루살렘은 예언 그대로 바벨론 의 침략을 받아 성전은 불타서 잿더미가 되었으며(대하 36:19~21). 타던 불도 꺼졌다. 불이 꺼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태울 것을 태우기 전에는 꺼지지 않는 심판의 불리요 그 결과가 영원함을 강조한 것이다(유 7). 이러한 뜻으로 쓰인 “꺼지지 않는 불”(사 66:24), 곧 심판의 불의 개념이 그대로 신약 성경에 옮겨서 “세세토록” 타오르는 “영원한 불”로 표현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악인의 마지막 운명에 대하여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올라”(계 14:11)가리라고 기록되었다. 이 표현은 이사 야가 34장 8~10절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남 에돔 땅이 역청과 유황의 늪이 되어 밤낮 꺼지지 않는 불이 붙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오를 것이라고 했다. 이 곳의 “끊임없이”는 히브리어 “올람”이다. 그런데 11~17절을 계속 읽어보면 그 땅에 다시 새들과 들짐승이 거하게 된다고 하셨다. 만약 유황불이 계속 타고 그 연기가 영원히 오른다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요한계시록의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결과가 영원한 것이지 시간이 영원한 것이 아니다.
꺼지는 영원한 불
성경은 실제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악인은 초개같이 사루어 져서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말4:1)이라고 했으며,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되어 없어지리”(시37:20)라고 선언되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심판의 결과로 유황블못, 곧 불덩이의 지옥으로 화했던 지구는 (게20:7-10 ; 벧후3:12, 13) 불로 정결케 된 후에는 “새 하늘과 새땅”이 될 터인데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21:1)질 것임을 명시했다. 그리 허여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오직 은유 한자는 땅을 차지하”(시37:10)리라는 예수 님의 산상 보훈의 허락이 마침내 성취될 것이다(마5:5)
자신의 선택으로 태어난 것도 아닌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어리석은 선택으로 범한 죄악 때문에 천년, 수백 만년, 수백억년, 아니 영원한 세월 동안 죽지도 못하고 펄펄 끓는 유황에서 고통받아야 한다는 영원 지옥설은 자비롭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속성에도 어긋나고 잔인 무도(殘忍無道)한 일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하고 생에 에서 체험한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이 결코 아니시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영원히 타는 유황불 못에서 고통 당하는 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시는 그런 하나님을 상상할 수 잇는가? 우주 한구석 어디 펄펄 끓는 유황 불못 구덩이에서 영원히 고통 당하는 구원받지 못한 부모행제, 혹은 남편과 아내, 자식들이 있을 환경에서 누리는 하늘의 영생복락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이처럼 부르짖음이 과연 그 무한한 사랑이신 하나님의 귀에 음악이 될 수 있을 것 이가?....이 영원지옥설은 바벨론이 온 세게 주민에게 마시게 한 ”진노의 포도주“라 고 하는 거짓 교리 중의 하나이다.”38
영원 지옥 설의 기원
이토록 비 셩경적인 영원지옥설의 근원은 어디인가? 중세 로마 카톨릭교 회의 기초를 놓은2세기말의 라틴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 3세기초의 키프리안(Cyprian), 4세기말의 어거스틴(Augustine)등은 모두 북아프리카 출신의 교부들로 알렉산드리아 를 중심으로 한 이집트와 헬라의 혼불멸사상에 깊이 젖어 있었다.
서방 교회에 영원한 형별, 영원지옥설 을 소개한 것은 터툴리안 으로 자신의 가르침이헬라의 철학자 플라톤의 영혼 불멸 사상에 근거했음을 천명했다.39이러한 터툴리안의 가르침은 어거스틴에 의하여 신학적 체계를 갖추었으며,40중세 로마 카톨릭교 회로 하여금 영원 지옥과 연옥에 관한 신앙을 굳히는 기초를 놓았다,41이러한 터툴리안 과 어거틴의 사상이 어떻게 16세기의종교개혁자 칼빈의 영혼 불멸과 영원 지옥 사상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뒤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하신다면 그분은 사랑과 공의 의 하나님이라 불릴 수 가없다,...그것을 가증한 교리이며, 무신론자나 회의론 자들의 총에 탄환을 제공해 준 엄청난 폐해를 끼친 교리요 하나님을 성실히 찾으려 한 많은 사람들을 돌아서게 한 교리이다. 죄인은 사망에 처해질 것이지, 고문(顧問)에 처해지지 않을 것이다....왜냐하 면 죄의 형벌은 사망인데 영원한 고통은 사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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