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흐르고, 마음은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
주산 김영화
우리는 강물처럼 흐르는 삶 속에서 살아간다.
어제의 시간이 오늘로 흘러오고, 오늘의 시간은 다시 내일로 흘러간다. 한 번 흘러간 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듯이 우리의 삶도 한 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다.
상양의 한강을 바라보면서 나는 오래도록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물은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강은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물결이 흔들리고, 비가 오면 물빛이 달라지며, 햇살이 비치면 반짝인다. 그러나 어떤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물은 물이고, 강은 강이다.
문득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일을 겪는다. 기쁜 일이 있으면 마음이 즐겁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기면 마음이 흔들린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나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이 흔들린다고 해서 본래의 내가 흔들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강물 위에 물결이 일어난다고 해서 강의 깊은 물까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물결 아래에는 말없이 흐르는 깊은 물이 있다. 우리의 마음에도 그와 같은 깊은 자리가 있지 않을까.
그곳이 내가 돌아가야 할 본래 자리일 것이다.
젊은 날에는 무엇인가를 이루고 얻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남보다 조금 더 잘하고, 조금 더 많이 가지며, 인정받는 것을 삶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상대보다 내가 앞서야 한다는 마음도 생겼다.
하지만 칠십을 넘기고 삶을 다시 바라보니 조금씩 생각이 달라진다.
이제는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조금씩 나를 내려놓는 것이 편안하다.
내 생각이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고 싶다. 내가 말하기 전에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싶다.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먼저 인정해주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꼭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가려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나는 요즘 경청의 소중함을 더욱 생각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생각을 준비하기보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온전히 들어주는 것이다. 상대의 말이 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먼저 인정하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받아주는 마음이다.
그렇게 상대를 존중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내 마음도 편안해진다.
상대를 이기려고 하지 않으니 나 자신도 이길 필요가 없어진다. 남과 비교하지 않으니 내 삶의 걸음이 보인다.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으니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은혜가 보인다.
결국 마음공부는 남을 바꾸는 공부가 아니라 내 마음을 살피는 공부인지도 모른다.
경계가 오면 한 생각 돌리고, 마음이 흔들리면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알아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상대를 알아주고, 사랑받기를 바라기보다 먼저 따뜻한 마음을 건네며, 나의 이익만 생각하기보다 상대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
그 마음이 바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나를 살피면서 동시에 상대를 살피는 삶이다.
나만 편안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편안해짐으로써 다른 사람도 편안하게 하고, 내가 행복함으로써 주변 사람에게도 행복의 기운을 나누는 삶이다.
한강의 물은 높은 곳에 머물려고 하지 않는다. 낮은 곳을 찾아 흘러간다. 그래서 강은 많은 물을 품을 수 있다.
사람의 마음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나를 조금 낮추면 상대를 품을 수 있고, 나를 조금 내려놓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내 주장으로 가득 차 있으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공간이 없지만, 마음을 조금 비우면 세상의 많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래서 나는 칠십의 나이에 나를 내려놓는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
무엇을 더 가지려고 애쓰기보다 가진 것을 나누고, 무엇을 더 주장하기보다 먼저 듣고, 무엇을 더 인정받으려 하기보다 먼저 상대를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아가고 싶다.
누군가는 빠르게 가고, 누군가는 천천히 간다. 꽃마다 피는 계절이 다르고 나무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르듯 사람의 삶도 저마다 다르다.
그러니 이제는 남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지 않으려 한다.
내게 주어진 길을 내 걸음으로 걸어가면 된다.
상양의 한강을 다시 바라본다.
강물은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다. 수많은 사람과 도시를 만나면서도 물은 자신의 본래 성질을 잃지 않는다. 돌을 만나면 돌아가고,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아 흐른다. 그러면서도 끝내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뜻하지 않은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다시 나의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
상대를 존중하고, 귀 기울여 듣고, 서로를 인정하며, 누구와도 나를 비교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나의 작은 행복이 다른 사람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살아가는 사람.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에도 나름의 멋과 향기가 생기지 않을까.
젊음의 멋은 힘에서 나올 수 있지만, 나이 들어가는 사람의 멋은 내려놓음에서 나오는 것 같다. 많이 아는 데서 오는 향기보다 많이 이해하는 데서 오는 향기가 더 오래 남을 것이다.
이제 나는 그런 멋과 향기를 지닌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고, 함께 있는 사람에게 따뜻함을 남기고, 내가 떠난 뒤에도 작은 향기 하나쯤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강은 흐른다.
나의 삶도 흐른다.
그러나 흐르는 삶 속에서도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나의 본래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나를 내려놓고, 상대를 존중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가진 작은 것을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내가 칠십을 넘어서 다시 세우는 삶의 서원이다.
흐르되 본래 자리를 잃지 않고,
내려놓되 사랑을 놓지 않으며,
나를 살피되 남을 먼저 생각하고,
살아가되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작은 은혜가 되게 하리라.
오늘도 한강은 말없이 흐른다.
나는 그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한다.
강물처럼 흐르면서도 본래 자리를 잃지 않는 사람,
그리고 머문 자리마다 멋과 향기를 남기는 사람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