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家詩(천가시)/全唐詩(전당시)]1-4.洛陽道(낙양도)/洛陽道五首獻呂四郎中(낙양도5수헌여사랑중) - 儲光羲(저광희)
<낙양의 거리>
洛陽道(낙양도)
洛陽道五首獻呂四郎中(낙양도5수헌여사랑중)
儲光羲(저광희)
大道直如髮(대도직여발),
春日佳氣多(춘일가기다)。
五陵貴公子(오릉귀공자),
雙雙鳴玉珂(쌍쌍명옥가)。
큰 길은 곧기가 머리카락 당긴 듯 반듯하고
봄날이라 화창한 날 많구나.
오릉(五陵)의 귀공자들
쌍쌍이 말방울 소리 울리며 다니네.
<원문출처> 洛陽道五首獻呂四郎中/作者:儲光羲
全唐詩·卷139-42
洛陽道/千家詩/卷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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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洛陽(낙양) : 당나라 때에는 수도가 장안(長安)이었으며 낙양(洛陽)을 동도(東都)라 하였다.
○ 佳氣(가기) : 화창한 날.
○ 五陵(오릉) : 장안성(長安城) 북쪽에 있는 한(漢)나라 제왕(帝王)의 묘역(墓域). 고제(高帝) 의 ‘장릉(長陵)’, 혜제(惠帝)의 ‘안릉(安陵)’, 경제(景帝)의 ‘양릉(陽陵)’, 무제(武帝)의 ‘무릉(茂陵)’, 소제(昭帝)의 ‘평릉(平陵)’이 있다.
○ 玉珂(옥가) : 말굴레에 옥으로 만든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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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천가시> 및 <전당시>에 실려 있으며, <천가시>에는 ‘낙양도(洛陽道)’, <전당시>에는 ‘낙양도오수헌여사랑중(洛陽道五首獻呂四郎中)’의 제목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광희가 낙양에 유람 와서 낙양 거리의 번화함과 귀공자들이 유람하는 모습을 지은 시로 ‘낙양도오수헌여사랑중(洛陽道五首獻呂四郎中)’ 중 제 3수이다. 낙양은 당나라 때 동도(東都)였으며 도성인 장안과 함께 대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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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全唐詩/卷139-42
洛陽道五首獻呂四郎中
洛水春冰開,洛城春水綠。
朝看大道上,落花亂馬足。
劇孟不知名,千金買寶劍。
出入平津邸,自言嬌且豔。
大道直如髮,春日佳氣多。
五陵貴公子,雙雙鳴玉珂。
春風二月時,道傍柳堪把。
上枝覆官閣,下枝覆車馬。
洛水照千門,千門碧空裏。
少年不得志,走馬遊新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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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광희(儲光羲) : 당나라 윤주(潤州) 연릉(延陵) 사람. 조적(祖籍)은 연주(兗州)이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14년(726) 진사가 되고, 중서시문장(中書試文章)과 사수위(汜水尉)를 지냈다. 나중에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했다가 다시 나와 태축(太祝)에 임명되어 세칭 저태축(儲太祝)으로 불린다.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옮겼다. 안록산(安祿山)이 장안(長安)을 함락했을 때 협박으로 관직을 받았기 때문에, 난이 평정된 뒤 귀양 가 영남(嶺南)에서 죽었다. 원래 문집 70권이 있었지만, 이미 없어졌다. 현재 <저광희시(儲光羲詩)>가 전해오며 <전당시(全唐詩)>에 시 4권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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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千家詩(천가시)/全唐詩(전당시)]1-4.洛陽道(낙양도)/洛陽道五首獻呂四郎中(낙양도5수헌여사랑중) - 儲光羲(저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