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인권 역사 교육 - 소녀상이야기’
강의안구성 5차
▣ 2018년 10월 2일 10:00~12:00
▣ 장소 : 본 센터 교육실
▣ 내용 : 영화 [허스토리] 시청 및 소감 나누기
▣ 작품소개
"이겨야죠! 이겨야 할매들 분이 안풀리겠습니까?"
1992~1998 6년의 기간, 23번의 재판, 10명의 원고단, 13명의 변호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 재판부에 당당하게 맞선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1992~1998년, 일본을 발칵 뒤집은 관부 재판 실화!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서 재판을 이끈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
영화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오직 본인들만의 노력으로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선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담았다.
관부 재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처음으로 보상 판결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을 발칵 뒤집을 만큼 유의미한 결과를 이룬 재판이지만 지금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역사 속에서 잊혀져 왔다. 1990년대 후반 당시 동남아 11개국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재판 소송 중이었으나 유일하게 관부 재판만이 일부 승소를 거두고 국가적 배상을 최초로 인정 받았던 귀중한 재판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 볼 수 있다. 앞으로 이어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논쟁에서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될 관부 재판을 소재로 만든 <허스토리>는 6년에 걸쳐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재판을 이끌어간 사람들의 가슴 뜨겁고 치열한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깊은 울림과 짙은 여운을 선사.
뿐만 아니라 올해 개최된 제71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허스토리>는 상영 당시 객석을 가득 메워 전세계 바이어들의 높은 관심을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권, 중화권 관계자들의 눈물을 자아내며 아낌없는 극찬을 받는 등 영화를 향한 전세계의 뜨거운 호응을 실감했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전세계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긴 <허스토리>는 올 여름, 더 이상 그녀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로,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 관객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관부 재판 실화를 영화사상 최초로 스크린에 옮긴 민규동 감독은 “90년대 초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의 행동은 내 가슴 속에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달아주었다. 그 무게감을 어떻게든 이야기로 표현해보고 싶었지만, 매번 좌절 속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긴 시간 마음의 빚으로만 남았었는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허스토리>를 연출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시아 전역에서 벌어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궤적을 쫓아가며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작업하던 중, 인생을 바쳐가며 할머니들과 함께 싸웠던 관부 재판의 이야기를 새로이 발견한 민규동 감독은 ‘그 잊힌 작은 승리의 흔적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커다란 의지의 서사를 찾아낼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바로 영화 작업에 돌입했다.
역사적인 관부 재판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제목 <허스토리>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민규동 감독은 “흔히 역사를 말할 때 his와 story가 결합된 이미지의 ‘히스토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herstory’는 ‘그녀의 이야기’라는 맥락을 넘어 ‘히스토리’의 대척점으로 사용되어온 언어적 응용이다. 이 영화에서는 남성들의 사관인 히스토리가 아니라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써내려간 역사 이야기 '허스토리’를 통해, 집단의 고통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개별 여성들의 생생한 아픔을 다루고 싶었다”며 제목에 숨겨진 의미를 전했다.
이렇게 카피이자, 슬로건이기도 한 ‘not history, but HERSTORY’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지나가는 역사가 아닌, 뜨거운 용기로 단 한번의 역사를 이뤄낸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애쓴 사람들의 연대와 공감의 이야기를 담아내겠다는 감독의 작의를 담고 있다.
치열했던 6년의 재판, 그 속에서 수많은 시련과 역경을 뜨겁게 마주했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여성의 시선에서 담담하게 그려낸 민규동 감독은 <허스토리>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내며 관객의 마음 속에 큰 울림을 만들어 새로운 ‘허스토리’를 써내려갔다.
HERSTORY’S STORY
#1. BEHIND_STORY
실제 관부 재판 기록을 토대로 6년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다!
실화를 스크린에 옮기기 위한 숨은 노력!
<허스토리>는 관부 재판이라는 역사적으로 귀중한 실화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상세한 과정과 그 속에 숨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아내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실제 재판 당시 원고단을 지원했던 후쿠오카 후원회는 6년에 걸친 재판 과정을 담은 소식지를 발행하고 일본 내에 배포하여 재판의 정당성과 지지를 호소했다. 또한 김문숙 단장은 재판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를 기록한 ‘관부 재판의 기록’을 발간하여 역사적 진실을 묻히지 않도록 하였다. 제작진은 이 일어로 된 소식지 전부를 확보하여 번역하였으며, 관부 재판의 기록물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시의 진실을 찾아가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기록물 등에는 시모노세키로 향하는 뱃값과 식비 영수증을 비롯해, 재판장으로 이동하는 차에서 벌어진 에피소드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민규동 감독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활용해 시나리오를 더욱 풍부하게 재구성할 수 있었다.
#2. FACT_STORY
- 1991년 10월 19일,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가 부산 지역에 ‘정신대 신고 전화’(당시 명칭)를 개설했고 1991년 10월부터 12월까지, 부산 신고 전화로 8명이 신고했으며 그 중 4명이 관부 재판에 참여했다.
- 1993년 12월에 5명, 1994년 3월에 1명의 원고가 추가로 소장을 제출하여
총 10명의 원고단이 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인, 근로정신대 피해자 7인이었다.
- 극중 이상일 변호사는 관부 재판에 참여했던 재일 교포 이박성 변호사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이박성 변호사는 현재 일본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실제로 태평양 전쟁 유족회의 사죄 소송에서 무료로 변호한 바 있다.
- 시모노세키에서의 재판 당시 김문숙 단장은 할머니들을 위해 결혼 예단 이불을 직접 들고 출국한 적 있다.
- 원고단 할머니들은 재판장과 숙소를 오가는 차 안에서 일본 군가를 부르곤 했다.
- 원고단은 재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증인을 찾기 위해 일본 신문에 광고를 냈다.
- 실제 재판에 참여한 박소득 할머니의 4학년 때 담임 선생님 ‘수가야미 도미’가 법정에서 증언했다. 지인을 통해 재판 소식을 듣게 된 ‘수가야미 도미’가 후원회로 연락했고, 이후 박소득 할머니와 49년만에 재회했다. ‘수가야미 도미’는 당시 진행됐던 전후 보상 재판 사상, 실제 사건과 관계된 일본인의 첫 증언이었다.
- 재판 당시 결성된 후쿠오카 후원회는 관부 재판을 지원하는 일본 후원 단체로 매 재판마다 숙식, 항공료 등 일체의 체류 비용을 지원하고, 재판의 과정을 담은 소식지를 발행하여 각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등 다방면으로 재판에 큰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