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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창고에서 피어난 문학
한현숙
문학회 지인들과 자유공원에 올라갔다. 바다와 인천역으로 이어지는 철로와 허름한 창고와 예술 공간들 옛 가옥들이 늘어선 전경이 어우러져 한눈에 펼쳐졌다. 마치 보물섬 지도처럼 문학으로의 여행을 부추기며 문학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달뜨게 한다.
창고를 개조한 근대문학관은 세련된 첨단 건축물이 주는 웅장함 대신 고향집에 온 것처럼 다정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창고의 외벽과 내부의 목조 천장에 내려앉은 세월의 투박한 흔적들에서 문학의 향기가 아련하게 묻어난다.
문학관 주변 옛 창고들은 무명 예술가들의 갤러리와 작업장으로 쓰이며 꿈의 무대로 탈바꿈해 있다. 시대의 역풍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던 인천 개항장 일대는 근대문화가 살아 숨 쉬며 짭쪼름한 갯내음을 풍기고 있다. 포구에 드나들던 선박들의 뱃고동소리와 철로를 달리는 기차들의 기적소리가 뒤엉켜 만들어낸 인천 사람들의 문화와 삶들이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며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부추긴다.
한국근대문학관에선 근대계몽기에서 해방기까지 한국근대문학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수장고와 사무실로 구성되었다. 1890년대 계몽기부터 1948년대 분단에 이르는 과정의 한국 근대 문학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전시장에서 눈에 띈 것은 학창시절에 교과서로만 만나왔던 문인들의 얼굴을 벽 전체에 모아 놓은 곳이었다. 별도의 앱을 다운로드하면 소설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근대문학사의 주요 사건과 시대상을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2층 체험공간에서 시대별 주요 작가의 모습이 새겨진 스탬프를 찍으며 시간을 추억하는 우편엽서를 먼 훗날의 나에게 부쳐 봤다. 한국 최초의 국한문 혼용서인 유길준의 '서유견문' 초판, 염상섭의 '만세전' 초판 등 빛바랜 희귀본들에서 켜켜이 쌓인 문자향의 기운이 배어 나오듯이 훗날의 내 삶에도 문학의 향기가 배여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전시실에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국 단편문학 에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와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단편 애니메이션 한 작품을 제작하는데 약 일 년 육 개월의 시간과 오만여 점의 작화가 모여야 완성된다고 한다. 에니메이터, 작가, 프로듀서, 음향감독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 다섯 편의 단편문학 애니메이션의 제작과정과 작품원화를 만났다. 소설 속의 문장들을 그림으로 상상하고 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세대 간의 따뜻한 공감과 잊고 있었던 기억을 함께 나눌 수 있었기에 더 정겹게 마음속에 와 닿는 추억이 묻어나는 전시였다.
아트 플랫폼 거리에 내려앉은 햇살사이로 옛 물류창고의 투박한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내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도깨비’ 촬영지 앞에서 방문객들이 앞 다퉈 인증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과거와 현재의 삶이 배어있는 것들은 모두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가 보다. 공유를 만난 것보다 더 행복한 함박웃음을 쏟아내며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도깨비 거리’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것을 보니.
세련되고 큰 규모의 외국 박물관들이 주는 문화수탈의 결과물들이 주는 웅장함을 어찌 빼앗겼던 들에 문학의 꽃을 피워낸 감동에 견줄 수 있으랴. 백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선 물류창고를 인문학적 관점의 문학관으로 조성한 인천시와 인천 문화재단의 큰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아트 플랫폼 거리를 따라 인근에 조성된 개항장 문화지구로 향했다. 자유공원 반대편 문화지구 골목길로 접어들자 일본풍의 아늑한 찻집이 눈에 띄었다. 당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옛 문인들이 시와 소설을 읊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삶의 부조리와 애환 속에서 새로운 민족문학의 씨앗을 틔워낸 문학인들의 얼이 서린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엿보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심훈선생이 떠 오른 것은 왜 일까. 백 여 년 전 선생은 황무지 같던 한국문학에 붓으로 밭을 일구셨다. 농촌계몽운동과 독립을 꿈꾸며 문화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온 몸을 붓 삼아 민족혼을 살리기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셨다. 이제 막 문학의 싹을 틔우고 있는 당진에서도 심훈 선생의 상록수 정신을 이어받아 문학의 꽃을 활짝 피어나가길 고대한다. 옛 창고를 복원해 문학의 향기를 피워내 듯이 황무지를 일궈 밭을 만들 듯이 나도 삶의 터전을 문학으로 일궈 나가야 하겠다. ‘심훈상록수기념사헙회’에서도 ‘그날이 오면’ 영화를 제작하며 상록수 정신을 되살린다고 하니 앞으로 당진이 문학의 새로운 메카로 자리매김할 것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