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평행선
-기독교를 말한다-
정석준(법사)
도서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초가을의 짧은 해가 서편 하늘에 기우러져 있었다. 차를 세워둔 곳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추리닝 차림을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K였다. K와는 동기․동창인데다가 나하곤 막역한 사이다. 학창 시절에는 문예반 활동을 같이 했고, 금년 봄에는 취미삼아 4군자를 같이 배웠다. 그러고 보니 K하고는 취향 등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꽤 많은 것 같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그는○○○교회 장로이다), 나는 명색이 불자라는 점이다.
“도서관에서 나오는 모양이네?”
“그래, 운동하러 나왔니?”
“바쁜 일 없으면 같이 산책이나 하자?”
“그러자구나!”
집에 가도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쾌히 승낙했다. 그와 황성 공원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세계의 기원>
“기독교에서는 이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하는데, 불교에서는 누가 창조했다고 하느냐?”
그 친구는 기독교 창조설을 굳게 믿고, 불교의 견해가 무척 궁금했던 모양이다. 내게 그러한 질문을 한 것은, 내가 불교에 관한 책도 내고, 경주불교학생회ㆍ청년회 지도법사로서 활동해 온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교에 대한 식견이 상당한 줄로 알고(?) 그 같은 질문을 하였으리라.
친구의 질문을 받고 내가 반문했다.
“모래를 가지고 밥을 지으면 몇 시간이 걸리겠느냐?”
“모래로 어떻게 밥을 지어?”
“그렇지. 모래로 밥을 지을 수 없지?. 그런데도 모래로 밥을 지으면 몇 시간이 걸리느냐?고 하는 것은, 모래로 밥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질문이기 때문에 질문 자체가 성립돼지 않지. 마찬가지로 친구가 이 세상을 누가 만들었느냐?고 묻는 것은, 이 세상은 누가 만들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질문이기 때문에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야. 이 세상은 시작도 끝도 없이(無始無終) 그냥 존재할 수도 있으니까.”
“이 세상이 시작도 없이 존재한다니…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기독교에서는 시작과 끝, 창조와 심판이라는 일회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그러나 불교는 세계나 우주는 어떤 원인이 있으므로 관계가 일어나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라는 연기론적(緣起論的)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세계의 기원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유일신의 창조설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지.”
“너무 어렵군. 좀 더 부연 설명해 보게.”
“부처님은 브라만교의 하나가 변하여 많은 것이 되고 또 그 하나가 많은 것 속에 들어가 본질이 된다는 전변설(轉變說)이나, 생주신(生主神)이 우주를 출생시켰다는 설 등을 모두 부정하고, 연기설에 의한 우주 생성의 원리를 제시하였지. 연기설(緣起說)에 의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간적으로 고립하여 있지 않고 ‘더불어'있으며, 시간적으로 계기적(繼起的)인 관계에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관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그럴만한 조건이 있어서 생긴 것이며 그럴만한 조건이 없어지면 그 존재 또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공사상은 연기사상의 다른 표현으로, 연기는 곧 공(空)인 것이다. 존재론적으로 공은 모든 존재의 무자성성(無自性性)과 연기성(緣起性)을 의미하며, 인식론적 차원에서 볼 때 공은 얻을 것도 없고 얻어야 할 진리[法]라는 관념도 없는 세계이다. 이와 같이 불교는 일체 존재의 고정불변성(固定不變性)을 부정하는 사유 체계를 지니고 있지.”
“아무튼 이 세상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존재한다는 말에 나는 동의할 수가 없군.”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가모드가 밝힌 빅뱅(big bang)이론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아 왔지. 빅뱅설에 의하면 우주는 150억 년 전에 높은 진공에너지를 가진 고밀도의 한 점(특이점)에서 대폭발을 하여 지금까지 팽창을 하고 있다는 거야. 이 이론은 우주의 탄생 비밀을 밝히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특이점이 어디서 왔는지, 즉 빅뱅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못했지.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여 최근 새로 등장한 이론이 현재 우주 연구의 선두를 달리는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브 호킹(StephenW .Hawking)과 소련 출신 비렝킹(현재 미국 국적) 등에 의한‘양자 우주론'이 아닌가.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150억 년 전에 특이점이라는‘점'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없는‘무(無)’의 상태에서 갑자기‘뜨거운 불덩이'로써 태어났다(폭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무'의 상태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고, 소립자보다 작은 초극미의 무한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는 거야. 우주가 팽창해 가는 과정에서(나선형 모양으로 팽창) 은하계와 별이 태어났으며, 필요한 온도 등의 조건을 갖춘 행성에서는 생명체가 태어났고, 지금까지 공간도 팽창하고 시간도 미래로 늘어나고 있는데, 현재로는 우주가 영원히 팽창을 계속할 것인지, 다시 수축할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지. 만약 우주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해 빅뱅이 여러 번 있었다면, 이는 불교의 교설과 상통하는 것이다.”
“불교에 그런 이론이 있다니…믿어지지가 않는군.”
“부처님께서는 우주는 성(成, 생성)ㆍ주(住, 유지)ㆍ괴(壞, 붕괴)ㆍ공(空, 텅빔, 순수 에너지 상태)한다고 말씀하셨어. 지금은 주(팽창적 유지)의 상태라고 할 수 있지. 또한 불교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한 일월(日月)의 세계를 한세계라 하고, 한세계가 1천개 모인 것을 소천세계(小千世界), 소천세계가 천개 모인 것을 중천세계(中千世界), 중천세계가 천개 모인 것을 대천세계(大千世界), 소천ㆍ중천ㆍ대천세계을 합하여 3천대천세계, 또는 한 불찰(佛刹, 한 부처님이 교화하는 세계)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은『화엄경』에서‘불찰 미진수(微塵數)의 세계가 있다'라고 말씀하셨어.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우주가 얼마나 큰 것인가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음이 있으며, 인간이 과학 기술로 관측한 것은 불교적 우주의 극히 일부분임을 알 수 있지. 은하 같은 것을 다수 발견한 정도니까.”
“그런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야. 그러니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
“양자 우주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주가 시작도 끝도 없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는 것은, 신이 있다고 하여도 태초의 우주 창조에 전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스스로 열어가는 우주의 본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 이는 우주에는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것과 같은 창조주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아닌가?”
“알아듣기 쉽게 말해 보게나.”
“지난 봄 동기 산악회에서 현곡 구미산 산행을 갔었지? 그때 구미산 정상에 우뚝 쏫아 있는 거대한 바위를 보고 모두들 감탄했지?”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더군.”
“그런데, 그 바위가 천 년 만년, 아니 수억 년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 있을까?”
“그야 바위도 부서질 날이 있겠지.”
“바위가 부서지면 무엇이 될까?”
“큰 돌이 되겠지.”
“큰 돌이 부서지면?.”
“큰 돌이 부서지면 자갈이 될 것이고 자갈이 부서지면 모래, 모래가 부서지면 흙이 되겠지.”
“바위가 변하여 흙이 되고…물을 끓이면 수중기로 변하고, 수증기가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눈ㆍ비가 되지만, 질량의 총량에는 변화가 있을까 없을까?”
“그야 우리가 학창 시절에, 에너지는 그 형태를 바꾸거나 다른 곳으로 전달할 수 있을 뿐 생성되거나 사라질 수 없다는‘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배워서 알고 있지 않는가?”
“그렇지. 고전물리학에서는 에너지와 질량을 각각 분리해 놓고 보았는데,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에서는 질량이 곧 에너지이고 에너지가 곧 질량이므로 질량과 에너지는 서로 같다고 했지. 질량 전체가 에너지로 나타나고, 에너지 전체가 질량으로 나타나는 이런 전환의 전후를 비교해보면 전체가 서로 전환되어서 조금도 증감이 없다는 것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니 마땅히 부증불감(增價不減)일 수밖에 없지. 불교의 근본 원리인 불생불멸이 상대성이론에서 출발하여 현대 원자물리학에서 과학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어 버렸지. 이와 같이 모든 존재는 변화할 뿐 생멸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는 거야. 그런데도 친구는 왜 누가 만들었다고만 생각하는가?”
“성경(창세기)에 천지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까.”
<창조론과 진화론>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면서 인간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고, 모든 것을 살아 숨 쉬게 하신다는 점을 그 핵심 주제로 삼고 있지. 이는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기독교의 창조설은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기독교의 전통에서는 구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창조의 이야기가 생명의 창조에 관한 절대적인 설명으로 간주되어 왔지. 그러나 이러한 창조설은 현대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들이 속속 그 베일을 벗어 감에 따라서 그 절대적인 권위를 잃게 되었다. 기독교의 창조설과 적대적인 입장을 보이는 진화론에 의하면, 생명은 역사적으로 어떤 시기에 무기 물질로부터 발전하였다고 본다. 이 이론은 생명의 출현을 어떤 외적인 힘이나 창조의 힘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고, 생명체가 적자생존의 투쟁을 통해 자연적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대략 150억 년 전에 우주가 형성되었고, 40억 년 전에 지구가 생성되었으며, 2억 년 전쯤에 포유류가 등장하고, 6500만 년 전에 공룡이 멸망한 다음 400만 년 전에 처음으로 원시 인류가 나타났으며, 불과 100만 년 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현재의 인간 종(種)이 나타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진화론은, 모든 생명을 설계하고 감독하는 절대자의 섭리와 의지를 불필요하게 만들기 때문에 기독교와 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의 원숭이는 왜 인간으로 진화하지 못했는지, 지금 원숭이도 나중에는 시간이 흘러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원숭이라는 동물에도 여러 가지‘종'이 있지. 익히 아는 침팬지나 고릴라, 오랑우탄, 긴꼬리원숭이 등등 별별 원숭이 종들이 있는데, 원숭이라고 해도 다 모양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고 종 자체가 다르다. 인간도 물론 원숭이 과에 속한다(유인원이라고 한다). 원숭이 과에 속하는 이런 동물들은 당연히 하나의 조상이 존재한다. 그 뿌리의 관점에서 보면 원숭이와 인간은 같은 조상을 두었다고 말 할 수 있지. 그러나 원숭이 세계에서도 침팬지와 고릴라처럼 서로 다른 종이 존재하듯이, 인간(인류의 조상이 되는 원숭이)이라는 종도 따로 존재하게 되며, 각각의 종 중에서 진화를 거쳐 어떤 녀석은 지금의 침팬지, 어떤 녀석은 고릴라, 어떤 녀석은 인간이라는 종으로 발전해 왔다는 거야. 다시 말해서 원숭이라는 종 자체의 원뿌리 는 같지만 여러 갈래로 수많은 변이 과정에서 비슷한 종이 출현하게 되고(사촌지간), 그 와중에 도태되어 사라지는 종도 있고 살아남은 종도 있으며(코끼리도 맘모스처럼), 살아남은 종 안에서도 우성과 열상인자로 유전 진화가 달라지면서 완전히 다른 종이 된 것이지. 지금 원숭이가 왜 사람이 안되는거냐고 묻는다면 지금 흑인이 왜 황인이 안되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처럼 인간계도 종이 다름이 존재하는데, 하물며 먼 친척(?)인 원숭이가 우리와 같아지려면 논리적 모순이 생긴다. 같아지면 인간이 되는 것이고 같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원숭이로 머물게 된다는 것이 진화론자들의 주장이다.”
“아무튼 난 원숭이가 사람의 조상이란 걸 받아들일 수 없네.”
“최근 생명공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1997년 영국에서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켜 세인을 놀라게 하였는데, 2003년 미국의 클로네이드사에서 최초 인간복제 탄생 주장으로 또 한 번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였지. 특히 인간을 하나님의 창조라고 믿는 종교인들에게 인간복제는‘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상으로 충격으로 받아 들여졌지. 기독교․이슬람교 등 신본주의 종교에서는 인간복제를 시간과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섭리적 자유에 반기를 드는 반신앙적 행위, 또는 하나님의 영역을 인간이 침범하는 행위로 보고 인간 복제를 강력하게 반대하였는데, 표면적으로는 인간 존엄성 파괴, 생명 경시, 그리고 윤리적인 문제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기독교의 역사관>
“나도 복제인간 탄생에 관한 기사를 본 바가 있는데…만약 그것이 사실이 사실이라면 지구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난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구약을 보면 노아의 후손들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하늘 높이 탑을 쌓으려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바벨탑이 무너졌다는 기록이 있거든.”
“서기 2,000년 새해 벽두, 세계의 저명한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 천년을 회고하는 대담을 가졌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세계의 석학들은 지난 천년 동안 가장 큰 변화를 가져 온 것은‘신으로부터 인간해방'을 들었고,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 소동은‘예수 재림 사건'을 꼽았지. 예수의 재림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난 이유는 예수의 메시지가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의 설교 요지는“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받으라."(마태 1:15)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속히 오리라는 귀절은 구약에서는 1840곳, 신약에서는 300회 이상 된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예수의 재림은 그 시대를 살고 있던 그들의 생전에 이루어졌어야 했다.”
“기독교의 역사관은 처음과 마지막, 즉 창조와 심판이 있는 직선적 사관으로서 언젠가 종말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일반 역사가들에 의하면 인류역사는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발전된다고 한다.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어떤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는 인간 개개인의 성공과 실패는 물론 인류의 역사 또한 하나님의 섭리로 본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한다면 인간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며(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므로), 사람이 죄를 인간이 죄를 지을 때 그 죄의 책임도 당연히 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 죄도 신의 뜻에 의해 지어졌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에게 죄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모순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우리 인간이 어찌 알겠는가? 다만 믿고 따를 뿐이지.”
<신의 존재 문제>
“신(하나님)의 존재 문제에 대해서 20세기 최대의 석학자로 손꼽히는 버트란트 러셀은‘나는 왜 기독교이 아닌가?'라는 주제의 강연에서‘우리가 볼 수 있는 이 세상 만물들은 다 원인이 있으며, 이 원인의 고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마침내 제1원인에 도달한다. 이 제1원인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모든 것에 원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 하나님도 원인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처럼 원인이 없이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면, 세계도 원인이 없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여 서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친구는 럿셀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경(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 모세에게 스스로 밝힌 이름은‘나 여호와'는‘스스로 있는 자(Iam who Iam)'라고 하셨지.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원인 없이 존재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니까 원인 없이 존재할 수가 있는 분이시지.”
“종교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그 문화의 여명기에는 자연과학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다신교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기독교의‘여호와'나, 이슬람교의‘알라신'도 처음부터 유일신이었던 것이 아니라 다신교에서 출발하여 유일신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유대교의 야훼신은 원래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믿고 있던 부족신이었는데, 모세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그들 민족을 구출하면서 민족의 힘을 하나로 묶기 위하여 야훼신을 그들 민족신으로 삼았다고 한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에게 받았다는 십계명의 첫 번째가‘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였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라는 것은 유대 민족이 여호와 신만을 믿은 것이 아니라 여러 신을 믿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 학계에서는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은‘바빌론 유수(留囚)'가 끝나고 난 이후에나 정립되었음을 정설로 삼고 있다. 기원전 586년 유대왕국의 멸망으로 유대인은 바빌론의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가 살았다. 기원전 538년 고레스 왕이 일어나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메도-페르시아 왕국을 건설했다. 히브리어 성경에 따르면 고레스 왕은 유대인을 해방시키고 유대인에게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허락한‘메시아'였다. 고레스왕과 그 제국은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였는데, 자연히 조로아스터교는 유대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포로 이전에는 천사장ㆍ사탄ㆍ육체부활ㆍ심판ㆍ낙원ㆍ지옥ㆍ세상 종말 등의 개념이 없었는데, 포로 이후에 쓰이거나 편찬된 문헌에는 이런 것이 등장한다. 그리고 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관(唯一神觀)은 그대로 유대교에 받아들여져서 부족신이든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 온 인류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으로 그 성격이 바뀌어 졌으며, 능력 또한 점점 더 커져서 마침내 천지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유일신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신학(神學)의 역사는 시대의 진보와 발맞추어 신의 개념에 수정을 가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앙을 떠나 역사적으로 관찰할 때 인간은 부단히 신을 창조해 왔다고 할 만하다. 그리고 그 작업은 이후에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친구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내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신의 존재문제는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지.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갖은 방법과 비유를 들어 신의 존재를 규명하려고 하였으나 논증 가능한 해답을 내 놓지 못하였다. 18세기 후반 칸트(Kant)가「순수이성비판」에서 신의 존재는‘논증불능(論證不能)’이라하여 철학의 연구대상에서 제외하여 버렸고,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Friedrich N-ietzsche)는‘신은 죽었다’고 말하여 서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 주었지.‘죽었다'는 말은 그 전에는 살아있었음을 전제로 한 것인데, 마치 신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듯한 말은 사실 우스운 이야기이지. 본디부터 없던 신을 있는 것으로 잘못 믿어 오다가 뒤늦게나마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았다면 그 전까지의 잘못된 믿음을 버리기만 하면 될 터인데 말이다.”
<인류역사를 이끈 것은 기독교 문명?>
“친구가 아무리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해도 세계 선진국은 대부분 기독교 국가이고, 인류 역사를 이끈 것은 누가 뭐래도 기독교 문명이 아닌가?”
“기독교를 믿는 국가가 선진국이라면 일본은 기독교 신자가 1%도 안 되는 데도 선진국에 속하므로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미래학자들은 2030년이 되면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고, 21세기 중반에는 동양 3국(한국ㆍ일본ㆍ중국)이 세계의 중심 국가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볼 때 중세 유럽은 기독교가 지배하던 사회였다. 중세 천년을‘문화의 암흑기'라고 하는데, 중세 때에는 성경에 배치되는 여하한 사상이나 학문이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가 발전할 수가 없었다. 중세 때 성서에 배치되는 여하한 사상이나 자연과학을 주장하면 가차없이 종교재판에 회부하여 처형하였는데, 16세기에만 십자가에 매달아 분형(焚刑)에 처한 사람이 30,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러한 중세사회가 무너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십자군 원정의 실패가 그 단초를 제공하였다. 11세기 후반 로마교황 우르반 2세는 셀주크 투르크의 지배하에 있던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하여 십자군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유럽의 수많은 군중과 기사들은 저마다 성지 회복을 위하여 가슴에 붉은†자 표지를 달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났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십자군원정은 그 후 13세기 후반까지 약 200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이 전쟁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십자군 전쟁의 실패는 단순히 전쟁의 실패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와 함께 로마교황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봉건지주 계급이 몰락하였으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등 사회 전반적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지. 르네상스 이후 자연에 대한 새로운 태도와 종교나 신학적 권위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탐구정신은 새로운 사상과 학문, 과학을 낳아 인류역사는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서양이 세계 선진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 문명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신으로부터 인간을 되찾았기 때문에-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충혼탑 뒷길을 지나 시민운동장 정문 앞에 이르렀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
“기독교인들로부터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은 무조건 주시는‘아가페적인 사랑'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친구도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그럼, 하나님은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고,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셨으니 이 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구약을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못하지. 하나님은 인간의 시조인 아담ㆍ이브가 사탄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자 에덴동산에서 추방해 버렸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좋아하는 여자로 아내를 삼자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않는다고 하시며, 인간의 수명을 120년으로 제한해 버렸으며, 인간이 타락하고 교만해 졌다는 이유로 노아와 그 가족 외에는 홍수로 쓸어 버렸고,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시켰으며, 바벨탑을 부수고 온 민족이 흩어져 살게 만들었지. 그리고 걸핏하면 유대 민족에게 다른 민족과 싸우도록 명령하였고…하나님이 직접 또는 유대인을 시켜 살육한 수가 9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이러고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은 그렇다손 치고, 신약에 나오는 예수님의 사랑은 과연 아가페적인 사랑인지 한 번 살펴볼까?. 예수님의 말씀 중에‘원수를 사랑하라', ‘악에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한 말씀은, 기독교인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를 읽어 본 사람은 예수님이 사랑과 용서의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지.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온 것은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했으며, 성령(聖靈)을 욕되게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이에 대한 용서를 받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또 예수는 자기를 믿어야만 구원이 있다고 했으며, 믿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고 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조건부 사랑이라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성경의 설명대로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신의 피조물이다. 천사도 신의 피조물이요, 악마도 신의 피조물이다. 이 세상에 신의 피조물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악한 사람이 더 잘 살고, 착한 사람이 어렵게 살아가는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본다. 어떤 어린 아이는 아무런 잘 못도 없이 불구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십대에 요절하고 만다. 만약 신이 존재하고 있고, 또 그가 전지전능하고‘최고의 선’자체라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물론 선하게 만드셨지. 그런데 최초의 인간인 아담ㆍ이브가 사탄(뱀)의 꼬임에 빠져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악이 들어 왔지.”
<자유의지의 문제>
“그럼 하나님은 아담ㆍ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을 줄 알았을까 몰랐을까? 만약 선악과를 따먹을 줄 몰랐다면 전지전능한 신이라 할 수 없고, 뻔히 알면서도 그런 시험을 했다면 이는 인간에 대한 기만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기계나 로봇처럼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 먹고 안 따먹고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린 것이며, 따라서 그 책임도 당연히 인간에게 있는 것이지.”
“인간의 세계에서 기근ㆍ태풍ㆍ홍수ㆍ질병ㆍ정신병ㆍ전쟁ㆍ야만성 등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간과 세계의 운명을 주관하는 자비로운 신의 섭리와 같은 것에 대하여 회의하도록 만들지 않은가?. 우리는 대중 매체를 통하여 자주 죄 없는 사람들이 고통 받거나 죽어 가는 것을 목격한다. 만일 전지전능하고 자비로운 신이 있다면, 이런 것들이 발생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릴 만큼 처참한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기독교에서는 신은 인간에게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자유의지'를 주었기 때문에 선택에 대한 책임은 그 선택을 한 인간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도덕적 악'은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의 행위의 결과로 생기지 않은 지진ㆍ홍수 등과 같은 ‘물리적 악'은 설명하지 못하지. 이 세상에 어떤 형태로든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한, 신의 본질과 악의 존재를 양립시키지 못하면 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이론적인 유추에 의해 증명하지 않고 곧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지. 따라서 믿는 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가장 완전한 증명이 되고 있지. 나도 그 증명의 한사람이고.”
“그 말은 믿지 않는 자에게 있어서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가장 좋은 증거가 되지 않은가?”
우리는 충혼탑 앞을 지나 목월 시비가 있는 독산 앞길을 걷고 있었다. 어느새 하루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구원의 문제>
“교회 앞을 지나다 보면 간혹‘예수 믿고 구원받자',‘예수 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대형 간판의 글귀를 보게 되는데, 친구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사도행전에 이르기를‘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하였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예수님을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받기 위함일세.”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가톨릭의 입장과 개신교의 사뭇 입장이 다르고, 개신교 내에서도 의견 일치가 되지 않고 있지. 가톨릭에서는 전통적으로 하나님을 믿고(영세를 받고) 선행을 하면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지. 이에 반하여 루터는‘선행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며, 인간은 신의 은총을 통해서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죄 많은 인간은 자신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의 사랑에 의해서 의로워진다'고 주장하였고, 캘빈은‘인간의 구제 여부는 전지전능한 신의 자의에 의하여 미리 예정되어 있으며, 어떠한 인간행위로도 그것을 변경할 수 없다'는 예정설(豫定說)을 내세웠지. 16세기 초,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반발을 계기로 벌어진 이 논쟁은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서며 종교 전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지. 우리나라 개신교 중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하는 장로교는 캘빈신학 계통인데,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캘빈의 주장을 따르지 않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하니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네그려. 교도소에서 제일 인기 있는 종교가 기독교라고 한다. 불교는 윤회설과 후생에 전생의 업을 이어간다는 교리 때문에 인기가 별로 없고, 기독교는 무슨 죄를 지어도 예수를 믿으면 무조건 천국이 보장된다고 가르치므로 가장 선호한다는 것이다. 사형수가 사형 당하기전에 가장 많이 개종하는 종교 역시 기독교라고 한다.”
“기독교의 요지(要旨)는 인간의 시조인 아담ㆍ이브가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原罪〕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되었는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해 죽음으로써[代贖],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죄를 대신하여 죽을 수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럽거니와, 죄를 대신해 죽었다면 인간이 그 전과는 뭔가 좀 달라져야 할 텐데 인간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오히려 인간은 점점 더 사악해져 가고 있는데,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난 납득이 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예수님의 언행이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는 4복음서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었다는 기록은 눈을 비비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다. 다만‘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절규만이 있을 뿐이다.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예수의 죽음을 미화한 사실의 왜곡이요 날조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예수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운명하셨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친구가 뭐라고 하던 나는 성경의 가르침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드리고 있네.”
친구와의 대화는 한 치의 간극도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성경무오설>
“그 성경은 누가 쓴 것인가?”
“성경은 사람이 쓴 것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쓴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지. 그러므로 일점일획의 오류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라네.”
예수의 처녀 탄생, 대속적 죽음, 육체적 부활, 임박한 재림, 구원과 심판은‘성경무오설(聖經無誤說)'이 포괄하는 핵심 교리이다.‘성경무오설'은 유대인의 창세 신화와 종교, 역사와 전설을 담은 구약도 무오류이므로, 신약의 예수에 관한 종교를 이스라엘의 민족신 야훼의 종교와 결합시켰다. 그런데 구약을 보면,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했으며, 최초의 인간은 선악과를 따 먹은 죄[원죄]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다.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6천년에 불과하며, 아담은 흙을 빚어 만들었고,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탄생했다. 지구를 뒤덮었다는 노아의 홍수는 4300년 전에 발생했다.
성경무오설이 얼마나 오류투성이인지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를 할 때 첫째 날에 빛과 낮ㆍ밤을 만들고, 둘째 날에 하늘, 셋째 날에 육지와 바다ㆍ식물, 넷째 날에 해와 달ㆍ별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상식으로는 지구는 하루에 한바퀴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 이때 태양의 빛을 받는 때가 낮이며, 태양빛을 받지 못하는 때가 밤이다. 그런데 성경은 첫째 날에 빛과 낮ㆍ밤을 만들고, 넷째 날에 해ㆍ달ㆍ별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성경에는 셋째 날에 식물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식물은 태양의 빛을 받아 탄소동화 작용을 하여 생장(生長)하고 있으므로 태양이 없으면 하루도 생존 할 수가 없다. 이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다. 그리고 넷째 날에 만든 해와 달과 무수한 별들을 지구 장식품으로 궁창에 메달아 놓았다고 했는데, 이러한 창세기의 기록을 근거로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는 천동설(天動說)이 나왔다.
기독교의 천동설은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며, 태양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고, 지구는 그 둘레를 자전하면서 공전한다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지동설(地動說)에 의하여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천동설을 축출한 지동설(태양중심설)도 그 자리를 오래 유지하진 못했다. 갈릴레오가 죽은 지 3백년 후에, 태양계는 은하수의 한 변방에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우주에는 우리가 속한 은하수 같은 은하계가 수백억 개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경 기록은 과학ㆍ역사적 사실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근대 서구에서 성서를 신도의 삶과 신앙생활의 표준으로 받아들이되, 역사ㆍ문화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 그 의미를 찾아야 하는 텍스트로 읽는 흐름이 우세해진 건 이런 까닭이었다. 근본주의 교회들은 이런 자유주의 신학을 이단시했다. 현재 이처럼 꽉 막힌 기독교는 유럽이나 미국 동부에서는 보기 드물고, 오로지 미국에서도 교육수준이나 경제상태가 저급한 남부 일부지역, 그리고 이 지역출신의‘꽉막힌 선교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한국ㆍ아프리카 등 일부 피선교 지역에서나 서식하는 기현상이다.
친구에게 성경무오설에 대하여 논박(論駁)하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종교 간의 대화는 수용하려는 자세가 없는 한 아무런 소용없는 일이다. 친구는 친구 나름대로 기독교 신앙에 확신을 가지고 있고, 나 또한 내 믿음에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쟁(論爭)은 자칫 잘못하면 서로 간에 감정만 상하게 할 뿐 부질없는 짓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간 고불 제22호)
정석준/ 자유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수필가)ㆍ대한불교 조계종 法師 품수. 저서로 불교교양대학 교재/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수필집)/ 불교의 체계적 정립/ 세계종교의 이해)/ 새로운 비교종교론 등이 있다.
수용자 교화유공으로 법무부 장관상과 교정대상/ 고속전철 경주유치 유공으로 경주시장 감사패/ 청소년불자 지도 및 육성 유공으로 대한불교조계종 포교대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