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晉)나라와 수(隋)나라 중간시대에 해당하며, 이 동안 중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어 각각 왕조가 교체해서 흥망하였다. 남조는, 한족(漢族) 왕조인 송(宋)나라의 문제(文帝)에서 시작되어 제(齊) ·양(梁) ·진(陳)의 4왕조가 교체하여 나라를 세웠다가, 589년 진이 수의 문제(文帝)에게 멸망될 때까지를 가리킨다. 북조는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혼란을 수습한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 때부터 시작되어, 이 북위가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분열하고 동위는 북제(北齊)에게, 서위는 북주(北周)에게 교체되었다가 북주가 북제를 멸망시키고 한때 화북지역을 통일하였으나, 얼마 못가서 외척 양견(楊堅:文帝)이 제위를 양위받고 건국한 수가 남조 최후의 왕조인 진을 멸망시키고 중국천하를 통일한 때까지를 말한다.
이 시대의 정치적 특징으로는 남조에서는 귀족정치의 번영이었고, 북조에서는 군주권의 강화였다고 할 수 있다. 남조의 귀족은 구품중정법(九品中正法)을 이용하여 항상 고급관리의 지위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왕조의 교체는 군사권을 장악한 무관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북조의 군주는 선비족(鮮卑族) 출신의 탁발씨(拓跋氏)로서, 군주권강화를 위하여 지배종족인 선비를 모든 군사담당자로 구성하였으며, 호적을 정비하여 인보제(隣保制)와 삼장제(三長制)에 의해서 체제를 지탱하였다. 또한 균전법(均田法)이 처음으로 시행되었으며, 부병제(府兵制)도 채용하였다. 이 북조의 군주권 강화를 위하여 실시된 정치기구가 뒤에 수 ·당(唐) 두 제국의 정치기구로서 완비되었다.
문화면으로는 유교보다 불교 ·도교(道敎)가 성하였다. 불교는 남조에서 불법존숭의 황제까지 나타났고, 북조에서는 국가불교적인 성격이 강하여 윈강[雲崗] ·룽먼[龍門]석굴과 마이지산[麥積山]석굴 등과 같은 대대적인 조불사업(造佛事業)이 성행하였다. 도교는 남조에서는 양의 도홍경(陶弘景)에 의해서 대성되었고, 북조에서는 북위 태무제 때의 도사(道士) 구겸지(寇謙之)가 천사도(天師道)를 대성하고 국가본위의 도교 종파를 이루어 중국 도교를 종교로서 확립되게 하였다.
문학은 남조에서는 진(晉)에서 송(宋)에 걸쳐 도연명(陶淵明)과 사영운(謝靈運) 등이 나타났으며, 그 경향은 귀족사회의 풍조를 반영하여 화려한 수사를 중용한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 문장이 널리 보급되었다. 양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의 《문선(文選)》과 서릉(徐陵)의 《옥대신영(玉臺新詠)》은 그와 같은 경향을 바탕으로 하여 편찬된 시문집(詩文集)이다. 이 같은 귀족적인 경향에 대하여 생생한 민간의 감정을 표현한 악부(樂府)가 있었는데, 남조의 악부는 연애감정을 노래한 것이 많았고 북조의 악부는 전쟁과 영웅을 노래한 용맹하고 웅장한 것이 많았다. 이 밖에 문학작품이 아닌 것으로, 북위의 여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注)》와 양현지(羊衒之)의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가사협(賈思勰)의 《제민요술(齊民要術)》, 안지추(顔之推)의 《안자가훈(顔子家訓)》 등이 주목받을 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