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학교’에서 영수를 만났다. 공소에서도 더 떨어진 아주 작은 마을에 본당이나 공소의 교사들이 파견 나가 아이들에게 하느님을 알려 주는 ‘사랑의 학교’에 나는 교리 교사로 있었다.
늘 세 동생과 함께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사랑의 학교’에 오던 초등학교 5학년 영수는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심성이 고왔다.
비가 내리는 날은 낡은 우산을 가지고 버스 정류장까지 막냇동생을 업고 나를 마중 나왔다. 더운 여름날에는 혼자 돌아가는 나를 위해 땀을 흘려가며 배웅해 주었다.
그러다 첫 부활절을 맞아 고학년 네 명을 본당 미사에 초대하게 됐다. 영수를 포함한 네 명의 아이들은 하얗고 뾰족한 성당 건물에 넋이 나갔다. 파란 눈의 외국인 신부님이 또랑또랑한 우리말로 이야기하시는 걸 보곤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미사가 끝나고 아이들은 부활 달걀을 받으며 더욱 신기해했다.
“이걸 부활 달걀이라고 하는 거야” “부활 달걀요?” “그래” “이거 먹어도 돼요?” “그럼, 삶은 거니까 먹어도 되지. 하지만 이렇게 예쁜 걸 누가 먹겠니~” “맞아요!” 영수는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두 개의 부활 달걀을 보물단지 숨기듯 주머니에 넣고 갔다.
그해 성탄절이 돌아왔다.
성탄 미사 후 아이들의 재롱잔치가 이어졌고, 내가 초대한 사랑의 학교 아이들도 같이 어울려 즐겁게 놀았다.
아이들을 버스 정류장에 데려다주면서 나는 직접 만든 성탄 카드를 선물로 주었다. 카드를 받은 아이들은 누구 그림이 더 예쁜가 훔쳐보면서 즐거워했다.
작별 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버스에 태우려는데 영수가 가방을 뒤져 자그마한 꾸러미 하나를 건넸다.
“선생님, 이거…” 포장지 대신 달력으로 싼 꾸러미가 내 손에 쥐어졌다. “이게 뭐야?” “크리스마스 선물이요” 영수는 무엇이 그리 쑥스러운지 대답을 마치고는 얼른 돌아서서 아이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나는 포장을 살짝 뜯어 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는 파랑, 빨강, 까망, 색색의 색연필로 그림이 그려진 부활 달걀이 10개나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얼른 버스에 올라 “영수야, 이거 부활 달걀 아니니? 그런데 왜 날 주는 거야?”
영수는 붉어진 얼굴로 “지난번 선생님이 주신 그 달걀이 너무 예쁘고 좋았어요. 저도 선생님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리고 싶어서 어젯밤 혼자 다락방에서 만든 거예요”
영수는 부활 달걀을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주어도 되는 귀한 선물로 알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부활 달걀은 부활절에만 주고받는 선물이란 걸 가르쳐주지 않았었다. 결국 내 실수였던 것이다.
나는 그 귀한 선물을 십 년 정도 가지고 있다가 어느 해인가 이사를 하면서 잃어버렸다.
영수가 준 성탄 선물은 그 어느 성탄 선물보다, 그 어떤 부활 달걀보다 내 가슴에 간직한 귀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