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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관점 ----- 1 2. 누가 전문가인가? ----- 3 3. 당사자들은 어떤 과제에 전념하고 있는가? ----- 6 4. 무엇이 수용을 촉진하는가? ----- 8 5. 환각과 망상을 수용해 주는 방법 ----- 11 6. 수용에 이르기 위해 당사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 ----- 14 7. 맺는 말 ----- 18 |
1. 새로운 관점
리커버리(recovery)는 흔히 회복이라고 번역되고 있지만, 나는 재기라고 번역할 것을 주장한다. 이 용어는 재기, 회복, 극복, 또는 성장이라고 번역할 수 있으며, 그 의미를 감안하여 의역한다면 “역경을 통한 성장”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합하다.
이 용어는 병에 관한 용어가 아니다. 이 용어는 인생과 관련된 용어이다. 인생의 재난, 즉 뜻하지 않은 너무나 크고 감당할 수 없는 인생사건을 겪으면서, 이전의 삶이 붕괴되고, 이전의 신념들이 붕괴되고,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인생의 시련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 관한 용어이다.
“재난으로부터 성공적인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를 했다는 것이 재난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 영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이 돌이킬 수 없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성공적인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는 개인이 변화하였다는 것을, 그래서 그러한 재난이 개인에게 주는 의미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난은 더 이상 그의 삶을 지배하지 못한다.” (William A. Anthony, Toward a Vision of Recovery, 1990)
조현병, 조울증, 그리고 심한 우울증 등은 현재 ‘정신질환’으로 분류되고 있다. 신체적인 병처럼 정신적으로 병이 들었다는 것이다. 현대의학에서는 뇌라는 신체기관이 정신을 관장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 뇌에, 좀 더 구체적으로는 ‘뇌의 신경전달물질 전달체계’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이상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약물을 처방하는데 이를 약물치료라고 한다.
과거에 비해 지금은 약물이 많이 좋아졌다. 즉 부작용은 줄어들고 약효는 늘어났다. 덕분에 활성기 환자의 80~90% 정도는 1개월 이내의 또는 2~3개월 정도의 약물치료만으로도 환청과 망상 등의 활성기 증상이 현저히 감소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약물만으로 쉽게 개선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는데, 예로써 대인관계 상황에서의 불편감과 불안감,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신감, 저하된 자존감과 자신감 부족 등의 문제들이다. 더욱이 질병이 만성화됨에 따라 사회적 역할의 상실, 경제적 빈곤, 대인관계에서의 고립 등의 문제들이 추가적으로 발생한다.
‘뇌의 병’으로 보고 약물치료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의학적 관점으로는 이 문제들을 다 해결해 내지 못한다. 즉 조현병, 조울증, 또는 심한 우울증을 의학적 문제로 간주하고, 의사들에게 문제해결의 주도권을 쥐어주고 있는 현재의 개입방식으로는 이 문제들을 다 해결해 내지도 못할 뿐더러, 제대로 해결해 낼 수도 없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 새로운 관점이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 관점이다. 이 관점은 자신이 직접 문제를 겪고 극복해내고 성장을 이룬 당사자들이 제안하는 관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현재의 의학적 관점이 너무나 단순하고 편협한 관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편으로는 생물학적 존재이지만, 또한 동시에 심리적 존재이며, 사회적 존재이고, 영적인 존재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을 생물-심리-사회-영성 모델(bio-psycho-social-spiritual model)이라고 한다. 현대의학에서도 정신질환 또는 정신건강이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여러 차원의 복합적인 문제라고 인정하고 있다. 예로써,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신건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정신건강이란 사회경제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며 정신질환이 없는 상태 이상의 것이다. 정신건강은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삶에서 발생하는 정상적 범위의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으며, 생산적으로 일을 하여 결실을 맺을 수 있고, 개인이 속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안녕의 상태이다.” (World Health Organization, Strengthening mental health promotion. (Fact sheet, No. 220). 2001, p.1)
2. 누가 전문가인가?
정신질환 또는 정신건강이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차원의 복합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전문가는 누구인가? 의사들은 조현병, 조울증, 그리고 심한 우울증에 대하여 그것이 여러 차원의 복합적인 문제라고 인정은 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이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생물-심리-사회-영성 모델을 채택한다면, 각각의 차원에는 각각의 전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인간에 대하여, 생물적 차원에서는 생물학, 신경학 등의 학문이 존재하며, 그 응용학문으로서의 의학이 존재한다. 심리적 차원에서는 심리학이 존재하며, 그 응용학문으로서의 임상심리학과 상담심리학이 존재한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사회학이 존재하며 그 응용학문으로서의 사회복지학이 존재한다. 영성 차원에서는 철학과 종교학이 존재하며 그 응용분야로서의 각각의 종교가 존재한다.
생물-심리-사회-영성 모델을 채택한다면, 생물적 차원에서는 의사가, 심리적 차원에서는 임상/상담심리학자가, 사회적 차원에서는 사회복지사가, 영성적 차원에서는 성직자가 각각 최고의 전문가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더 덧붙여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이 인간 일반에 대한 것일 때와 고유한 한 개인에 대한 것일 때, 누가 그 전문가인지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인간 일반에 대한 것일 때에는 전술한 바와 같이 각각의 분야별로 그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연마한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고유한 한 개인의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상황은 달라진다.
예로써 신체적으로 건강한지 또는 질병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 각종 신체검사와 의료장비를 사용하여 검진을 하지만, 동시에 “어디가 불편한지? 몸의 상태가 어떠한지”에 대해 당사자에게 문진을 한다. 그런데 정신질환의 경우에는 문진의 비중이 더욱 커진다. 현대의학은 정신질환을 ‘뇌의 질환’이라고 가정하면서도 혈액검사나 소변검사, 기타의 신체검사, 또는 의료장비 등을 이용하여 그 증거를 찾아내거나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단지 일단 약물을 투여하여 그것이 증상을 경감시키는지 아닌지를 관찰하는 정도의 방법만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당사자 면담과 보호자 면담, 그리고 행동관찰을 통해 표면으로 드러나는 증상을 확인하고, 그 증상을 통해 ‘뇌의 질환’, 즉 ‘신경전달물질 전달체계의 이상’이 있을 가능성을 추론할 뿐이다.
정신질환이 단순히 생물학적 문제가 아니며, 생물-심리-사회-영성이라는 복합적 차원의 문제라는 점은 이미 설명했다. 생물학적 차원의 검진에 비해, 인간의 심리적 차원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진의 비중이 더욱 커진다. 한 개인의 복잡 미묘한 감정과 욕구, 사고, 가치관, 정체성, 자존감 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심리검사가 약간의 정보를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그것은 매우 피상적인 정보일 뿐이다. 한 개인이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그의 심리적 세계는 아무리 뛰어난 심리학자라 할지라도 그 속을 들여다 볼 방법이 없다. 오직 당사자만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으며, 그 당사자가 정직하게 답변을 해줄 때에만 그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심리상담 또는 심리치료는 거의 전적으로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대화하는 가운데 당사자의 자기탐색과 자기이해, 그리고 자기노출(자기개방)이 촉진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사정은 사회적 차원과 영성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어떤 사회적 상황 속에 있는지, 그 상황이 만족스러운지 아닌지, 대인관계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힘든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등의 사항들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전문가보다도 당사자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의사나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성직자 등은 단지 전체 집단으로서의 사람에 대해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아는 지식은 ‘일반적으로 이럴 수 있다.’ 하는 지식이지 ‘당신의 경우에 이것이 정답이다.’라는 지식은 아니다. 각각의 개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남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경험이 있고, 남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비밀이 있다. 자신의 몸에 대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자신의 사회생활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영적 체험에 대해, 각각의 개인은 자신만의 지식과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인생이란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펼쳐지는 드라마다. 즉 자신의 몸과 마음과 인간관계와 영성이 어우러져서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드라마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공연해온 드라마가 어떤 드라마인지, 앞으로 자신이 펼쳐보고자 하는 드라마가 어떤 드라마인지, 그 드라마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고, 자신이 펼치는 드라마의 중심에 서있는 주인공도 자기 자신이다.
의사가, 심리학자가, 사회복지사가, 성직자가, 그들이 아무리 유능한 전문가라 하더라도, 당사자 본인이 말해주지 않는다면 그의 드라마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설사 말해준다 하더라도 당사자 본인보다 그 드라마를 더 잘 이해한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당사자가 겪는 문제가 단순히 병의 문제라면, 의사가 최고의 전문가일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가 겪는 문제가 인생의 문제라면, 그 인생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는 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당사자 자신이다. 고유한 한 개인, 오직 그 자신만이 자기 자신과 자기 인생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이다.
조현병, 조울증, 그리고 심한 우울증은 단순히 ‘병’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문제이다. 따라서 그의 인생에 관한 중요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의사를 비롯한 각 분야별 전문가들의 역할은 자신이 아는 최선의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일 뿐, 그 인생을 살아가야 할 당사자 본인이 최종적인 선택자,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 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 관점은 당사자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며, 모든 면에서 그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증진시켜 주려고 노력한다. 또한 당사자 스스로가 자신의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3. 당사자들은 어떤 과제에 전념하고 있는가?
고유한 한 개인으로서의 당사자에게 조현병, 조울증, 또는 심한 우울증은 단순히 그가 살면서 경험하는 많은 질병들 중 하나의 질병에 해당하는 그러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 그가 경험하는 것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낯설고 두려운 사건들이다. 그는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스스로 납득하기 어렵고, 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는 충격과 혼란에 빠지며, 안전한 곳으로 도피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경험을 환청, 망상, 또는 음성증상 등으로 칭하며, 병에 걸린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그들의 설명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건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외부관찰자들 중 누군가의 의견일 뿐이다. 처음에 당사자들로서는 그 의견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데,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한 가지 이유는 이러한 설명방식이 기이하고 낯설고 충격적이고 두렵고 혼란스러운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고 납득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러한 설명방식이 수치심과 무력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특히 ‘뇌의 문제’라는 설명은 자존감을 심하게 손상시키며 ‘내 인생은 끝났다.’는 두려움과 충격을 가져다준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경험으로 혼란스러운 데다가, 이해할 수 없는 설명방식과, 자신에게 행해지는 부당한 처우들 때문에 더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진다. 이 시기의 그들에게 적합한 설명방식은 무엇인가? 이 시기의 그들에게 적합한 처우방식은 무엇인가? 분명한 점은 현재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고 있는 방식들, 즉 강제입원과 강제투약을 위주로 하는, 강제적이고 사무적이며 기계적인 방식들은 이 시기의 그들에게 적합한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종종 그들의 혼란과 두려움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폭시킨다.
첫 발병 이후 그들의 인생은 추락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심리적 붕괴와 사회적 붕괴를 경험하며, 점차로 고립되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철저히 고립된다. 이 시기에 그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풀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이 의문이 풀릴 때까지 그들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이 시기에 그들은 타인에게 관심을 보여주기도 어렵고,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기도 어렵다. 그들에게는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그들은 그 설명을 얻을 때까지 끝없이 고민하고 끝없이 추락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답을 얻는다. 즉 그들 나름의 설명에 도달한다. 그들의 답은 때로는 유용할 수도 있고 때로는 황당할 수도 있다. 그 답이 유용한 경우에 그 답은 새로운 적응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 답이 황당한 경우에는 새로운 적응에 실패하며 그들은 또 다시 고민에 빠지고 또 다시 추락한다. 그들의 고민과 끝없는 생각은 그들이 유용한 답을 얻을 때까지 계속 지속되고 계속 반복된다.
자기 자신과 자기 인생에 관한한 최고의 전문가인 그들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끝없이 생각한 끝에, 자신의 경험과 인생과 존재 자체에 대해 마침내 유용한 답을 얻게 되는 것, 이것이 수용이다. 즉 달리 말하자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설명방식을 획득하고 그것을 확신하는 것, 이것이 수용이다. 수용단계에 이르게 되면 당사자는 비로소 편안함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동안 끝없이 내부로 향했던 시선을 비로소 외부로 돌릴 수 있게 된다.
수용은 전환점이다. 당사자의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 과정은 수용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시기와 그 이후의 시기로 나뉜다. 흔히 수용 이전의 과정을 무너지는 과정이라 하고, 수용 이후의 과정을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라고 한다.
당사자의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 과정은 집짓기에 비유할 수 있다. 지진과 같은 끔찍한 재해로 인해 이전에 자신이 살던 집이 그 기초가 무너지고 벽에 금이 가서 살기에 불편하고 불안한 집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그 집을 간단히 보수해서 살아보려 하지만 불편과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마침내 그 집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새로운 집을 짓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이전의 집을 허물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초를 새로 다지고 그 위에 새집을 짓기 시작한다.
다니엘 피셔(Daniel Fisher) 박사는 “우리는 단순한 화학적 합성물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가 지닌 고유한 꿈과 열망을 기초로 자신의 풍성한 삶을 만들어가는 건축가이다.”라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집짓기에 비유할 때 약물은 단지 집의 기초가 되어줄 뿐이며 집을 짓는 건축가는 당신 자신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Daniel Fisher, A New Vision of Recovery, 2006)
4. 무엇이 수용을 촉진하는가?
자신의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 경험을 공개한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믿어주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 “인생의 난관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한 가지 공통분모는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곁에 그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에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를 믿지 않을 때라도 자신을 믿어 주었던 사람, 자신의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를 격려하면서도 강요하지는 않았던 사람, 언제나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고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던 사람에 관해 이야기한다.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는 진한 인간적 경험이며, 진한 인간적 반응에 의해 촉진된다.” (손명자, 배정규, 정신분열병과 가족, 2003)
누군가가 자신에게 보여주는 믿음은 자기가 자신을 스스로 믿을 수 있도록 촉진시켜준다. 누군가가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해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하기가 수월해진다. 믿어주고 수용해주는 사람은 판단하거나 지적하거나 충고하거나 지시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유 있고 친절하며 관대하고 너그럽다. 단점이나 결점은 모르는 척 해주며 스스로가 알아서 변화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들은 칭찬하기보다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준다.
그들의 이러한 태도는 당사자로 하여금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며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탐색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다. 또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자기노출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다.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 과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무너지고 있는 이 시기, 즉 당사자가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점점 혼자 고립되어가는 이 시기에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 시기에 당사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자포자기하고 있는 것 같아도 내면에서는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 즉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경험을 붙들고 그것을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 그들은 그 답을 얻는 과정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기만 하는 전문가들을 피해, 친구들을 피해, 가족들을 피해, 자신의 방에서 자기 혼자 자신의 과업에 몰두한다.
이 시기에 그들의 과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즉 그들의 ‘환각과 망상’ 경험을 헛된 것, 쓸데없는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의 해석이 엉뚱할 때,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왜 그렇게 해석하게 되었는지, 어디에서 해석이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그들 스스로 검토할 수 있도록 그 해석과정을 함께 따라가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어릴 때 산수 문제를 푸는 과정처럼 ‘그건 오답이야.’라고 나무라기만 하지 않고, 문제풀이 과정을 하나씩 따라가며 점검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점검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자기탐색과 자기노출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만일 전문가와 가족들이 당사자의 자기탐색과 자기노출을 억제하기보다는 촉진해주는 쪽으로 기능한다면, 그들의 자기이해가 촉진될 것이고, 그들은 보다 빨리 스스로 만족할만한 해답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시스템은 종종 그 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그들의 자기탐색과 자기노출을 도와주기보다는 억제시키고 금지시키고 처벌하고 있다. ‘이게 정답이야.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약이나 잘 먹고, 시키는 대로 해.’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그것은 ‘뇌의 오작동’ 때문이니, 고민할 필요 없이 약만 먹으면 된다고 한다. 심지어 심리상담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흔하다.
당사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데, 옆에서는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들이 결국 ‘회피와 고립’을 선택하고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도망가서 나오지 않으려 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적절한 적응방식이자 생존방식이다.
당사자가 얻고자 하는 답은 깊이 있는 ‘자기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당사자의 자기이해를 촉진시켜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에게 자기탐색과 자기노출의 기회를 최대한 많이 제공해줘야 한다. 자기이해는 자기탐색과 자기노출을 통해 촉진되기 때문이다.
‘믿어주는 사람’이란 바로 이러한 기회를 제공해주는 사람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사자 스스로가 정답을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사람이다. 당사자의 실수나 오답을 비난하지 않으며 또 다시 기회를 주는 사람이다. 재촉하지 않으며 시간여유를 갖고 당사자가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당사자 스스로가 답을 찾고, 스스로가 알아서 잘해나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상황이 절망적일 때라도 그 가능성을 믿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이다.
나무라거나 재촉하거나 지적하지 않고 믿어주고 허용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 잘난 모습만이 아니라 못난 모습까지도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 이러한 사람이 ‘믿어주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이 자신을 받아주는 경험, 그것이 수용경험이다. 타인을 통해 경험한 수용경험은 자신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된다.
5. ‘환각과 망상’을 수용해 주는 방법
다수의 전문가와 가족들이 당사자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지 못하고 있으며, 때로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그들의 환각경험과 망상경험을 수용해주지 못하며, 그들의 회피와 고립을 수용해주지 못하고 있다.
조현병과 관련하여 많은 증상들과 문제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내 생각에는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환각과 망상’이고, 또 한 가지는 ‘회피와 고립’이다. 외부인이 볼 때에는 그것이 그래서는 안 되는 문제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또한 그래야만 하는 문제이다.
생물학적 입장이 아닌, 심리학적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세상살이 도중에 스스로의 힘으로 쉽게 풀어내기 어려운 심각한 상황, 즉 버거운 과제에 직면했다. 그 상황이 버거울 때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만의 세계로 도피한다. 이때 현실세계와 자신과의 사이에 공백이 생기게 되는데,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이 상상이다. 내 생각에 환각과 망상은 일종의 상상이다. 그것은 현실세계의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는 일종의 안전막이다.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환각과 망상’은 사실이 아니고, 불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사실이며, 꼭 필요한 안전장치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자신의 ‘환각과 망상’이 가장 중요한 이슈이며 관심사이기에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누군가와 나누기를 원한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와 가족들은 그들의 ‘환각과 망상’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며, 심지어는 그것에 관해 대화를 나누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관심사이며 고민거리인데 그것을 두고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들과의 관계는 피상적인 관계에 머물 뿐이다. 그들과 제대로 된 인간관계,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으려면 그들의 ‘환각과 망상’에 대해 기꺼이 대화를 해야 하며, 그것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줘야 한다.
‘환각과 망상’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아니다.’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당연하다. 그럴 수 있다.’라고 받아들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어봐야 한다. 그에게 어떤 불편함, 어떤 두려움이 있기에 그러한 ‘환각과 망상’을 경험하게 되었는지를 탐색해야 한다. 그가 자신의 불편함과 두려움이 무엇인지 자각할 수 있도록 탐색작업을 함께 해주어야 하며, 그러한 불편함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촉발자극이나 촉발사건이 무엇인지 뚜렷이 드러날 수 있도록 탐색작업을 함께 해주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황당한 ‘환각과 망상’이라 할지라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생생한 현실이고,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을 하고 그러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불안하고 두렵고 화나는 감정에 충분히 공감해줘야 한다. 즉 그 감정들 또한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감정이 아니라 충분히 그럴 수밖에 없는 감정들이라고 인정해주고,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해줘야 한다.
‘회피와 고립’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을 성급히 끄집어내려 하면 안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해줘야 하며, ‘회피와 고립’을 당연한 것이라고 인정해줘야 한다. 두렵고 무서운 현실세계로부터 도망칠 수 있어야 하며, 안전한 곳에서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한다.
그들에게 ‘안전기지’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가정이 그들의 안전기지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방이 그들의 안전기지가 되어야 한다. 부모가 그들의 안전기지가 되어야 한다. 부모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푸근해야 한다. 자기 방에 있으면, 그리고 집안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푸근해야 한다. 확실한 안전기지가 구축되고 그 속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되면, 그들은 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세상에 나가려는 의욕을 되찾게 된다.
확실한 안전기지가 구축되면 그들을 보호하던 안전막, 즉 ‘환각과 망상’은 점차 그 필요성이 줄어든다. 따라서 ‘환각과 망상’을 없애려고 씨름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환각과 망상’이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으로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인정해주고, 그것에 대해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고, 그 심정에 공감해주고, 대신에 ‘안전기지’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면 된다. 약물이 ‘환각과 망상’을 줄여주는데 도움이 되지만, 약물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안전기지’를 만들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 안전기지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자기노출을 통해 불편한 감정과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어야 한다. 전문가와 가족들이 믿고 기다려주면 당사자는 스스로 그 과업을 수행해낸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인데, 전문가와 가족은 여유와 끈기를 갖고 기다려주기만 하면 된다.
이렇듯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또한 그에게 ‘안전기지’를 만들어주고 기다려줄 때, 당사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과업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업이란 전술한 바와 같이, 자신에게 일어난 또는 일어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이해하는 일이다. 즉 자기 나름의 답을 찾는 일이다. 당사자는 끊임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답을 찾게 되는데 이를 ‘자기이해’라 한다. 당사자의 자기이해는 ‘자기노출’을 통해 촉진되며, 주변사람들의 허용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는 당사자의 자기노출을 촉진시켜 준다.
6. 수용에 이르기 위해 당사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
한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고 납득하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특히 자신이 경험한 일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일 때 우리는 자신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자신의 인생에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를 원하며,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자기 인생에 관한한 최고의 전문가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로서 우리는 납득되지 않는 타인의 설명에 만족할 수가 없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해답을 원한다. 그리고 그 해답을 얻을 때까지 끙끙댈 수밖에 없다.
조현병, 조울증, 또는 심한 우울증을 보이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상황 속에 처해 있다. 그들이 겉보기에 ‘환청과 망상’을 보이고,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회피와 고립’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시간낭비를 하고 있거나,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거나, 쓸데없는 과업에 몰두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에서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난해하고 심각한 의문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해답을 얻기를 바란다. 그들은 해답을 얻을 때까지 그 과업에 매달린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에게는 인생의 그 어떤 문제보다도 가장 절박한,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답은 ‘자기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기 인생의 문제이고,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과의 관련성‘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업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과업이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 즉 좋은 전문가와 가족들은 비록 그들이 최고의 실력과 지혜와 애정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과업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그들은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당사자가 자신의 문제를 잘 풀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하지만 당사자가 수행해야 할 ‘자기이해’라는 과업을 대신 해줄 수는 없다. 그들은 단지 안전기지를 만들어주고, 자기탐색을 촉진시켜주는 대화를 나눠주며, 자기노출을 허용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줄 수 있을 뿐이다. ‘자기이해’를 해나가는 과업은, 그리고 궁극적으로 스스로가 만족할만한 해답을 얻어내는 일은 바로 당사자 자신이 직접 해내야 하는 일이다.
‘자기이해’는 개인의 과업이지만, 이 과업을 혼자의 힘으로 해나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혼자서 이 과업을 해나가다 보면 수시로 함정에 빠지고 오류에 빠진다. 또한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지 않는다. 더딘 작업이며 오답을 얻고도 그것이 오답인지 모르고 오랜 세월을 보내게 된다. 따라서 보다 현명한 방법은 ‘믿을만한 타인’과 함께 이 작업을 해나가는 방법이다.
누구라도 좋다. 최소한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 부모님이라도 좋고, 형제간이라도 좋다. 또는 믿을만한 친구라도 좋다. 누군가는 있어야 한다. 내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자기노출이다. 자기탐색을 위해서는 자기노출이 필수적이다. 비유하자면, 짐정리를 할 때 밖으로 꺼내어 눈에 보이게 늘어놓아야 효율적으로 짐정리를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내 생각과 내 감정을 밖으로 꺼내놓아야 비로소 제대로 된 것과 잘못된 것을 구분할 수 있으며, 그것이 상황에 적합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자기노출을 할 대상으로 일차적으로 추천할 만한 사람은 같은 문제를 경험하고 나보다 앞서가고 있는 동료선배들이다. 즉 ‘환각과 망상’을 경험한 사람, ‘회피와 고립’을 경험한 사람, 자신의 문제와 씨름하느라고 세상으로부터 낙오되고 심리적 붕괴와 사회적 붕괴를 경험했던 사람,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을 잘 겪어내고 나름의 해답을 찾아내어 현재는 사회 속에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면서 나름대로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동료선배들, 그들을 만나야 한다. 그들 중 누군가를 선택하여 자신의 멘토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동료상담 또는 동료지원이다. 힘든 시기에 앞서가는 동료선배를 멘토로 삼아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잘 겪어내고, 나름의 해답을 얻고 나면, 이전의 자신처럼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있는 동료후배에게 멘토가 되어줘야 한다.
자기노출을 하는 방법으로 그 다음 추천할 만한 방법은 심리상담을 받는 방법이다. 유료심리상담도 좋고 무료심리상담도 좋다. 개인상담도 좋고 집단상담도 좋다. 심리상담교육이나 심리상담워크숍도 좋다. 아무튼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심리상담은 자기노출의 기회를 제공해주며 자기탐색을 촉진시켜준다. 이것이 자기이해로 가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심리상담자들 중에는 자기노출과 자기탐색을 촉진시켜주기보다는 저해하는 상담자도 있다. 자존감을 높여주기보다는 자존감을 훼손시키는 상담자도 있다. 이때는 과감히 그 상담을 종결시키고 새로운 상담자를 찾아야 한다. 심리상담자들만이 아니라 정신과의사도 사회복지사도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끊어내야 한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점은 어떠한 전문가든 자신을 도와주는 전문가가 최소한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전문가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전문가에게 믿음을 갖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글쓰기도 좋은 방법이다. 무엇이든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표현적 글쓰기라고 한다. 비교적 빠른 속도로 가급적 검열 없이 생각하는 대로 글을 써나간다.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생각, 감정, 욕구 등이 글 속에 비교적 솔직하게 잘 드러난다.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는 자체가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정화하며 욕구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에 어떤 생각과 목소리가 있는지를 알아차리게 된다.
남들이 보지 않게 혼자만 글쓰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용기를 내어 인터넷 카페에 자신의 글을 올리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렇게 할 경우 타인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때로는 악성댓글이 달려서 마음고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인터넷 다음(daum)카페 ‘사라의 열쇠’는 내가 카페지기를 맡고 있고, 조현병, 조울증, 그리고 심한 우울증을 지닌 분들과 그 가족들이 주로 활동하는 카페이다. 용기를 내어 자신이 쓴 글을 이곳에 올려보기를 권한다.
지금까지 자기노출과 자기탐색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설명했다. 여기에 정말 중요한 한 가지 사항을 덧붙이고자 한다. 제대로 된 ‘자기이해’를 위해서는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의 원인과 책임을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자신을 비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자신과의 ‘관련성’에 주목하라는 의미이다. 즉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기여한 자신의 가치관, 욕구, 생각, 감정, 태도, 습관 등이 무엇인지, 그 연결고리를 찾아내라는 의미이다.
누구도 탓해서는 안 된다. 탓하거나 변명하거나 비난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두고 부모 탓을 하거나, 환경 탓을 하거나, 가난 탓을 하거나, 친구 탓을 하거나, 전문가 탓을 하거나, 운이 없었다고 탓하거나, 병 때문이라고 탓하는 것은 ‘자기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방식은 일시적인 위로와 기분전환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자신의 발전과 인격성숙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은 시각을 바깥으로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시각을 바깥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로 향하도록 하여 자신을 살펴보는 것, 그것이 자기탐색이다. 자신의 생각, 감정, 욕구, 가치관, 태도, 습관 등을 살펴보는 것, 그것이 자기탐색이다.
자기탐색과 자기노출 이 두 가지가 병행될 때, 자기이해가 촉진된다. 즉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되면 자신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이때 비로소 이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 납득할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해 그러한 일들이 왜 자신에게 일어났는지,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보다 더 정확하게 알아차리게 된다.
7. 맺는 말
당사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정신질환’이나 ‘병’, ‘뇌의 질환’ 또는 ‘신경전달물질체계의 이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생물학적 존재이지만 또한 동시에, 심리적, 사회적, 영성적 존재이다. 이것이 정신질환과 정신건강에 대한 생물-심리-사회-영성 모델이다.
생물-심리-사회-영성적 존재로서, 이 모든 영역들을 종합하여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연출하는 드라마의 연출자이자 주인공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에 관한한,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관한한 최고의 전문가이다. 우리는 그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정신질환의 문제는 단순히 ‘병’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문제이다. 따라서 그 인생의 주인공인 당사자의 자율성과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당사자가 자신과 관련된 모든 주요한 문제들의 최종의사결정권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 관점에서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인생에 관한한 최고의 전문가인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일들과 용납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단순히 병이라고 설명하는 의학적 설명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을 찾고자 한다. 그는 그 답을 얻을 때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는 답을 찾을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답을 찾기 위한 그의 노력은 한편으로는 ‘자기이해’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지지’와 ‘자기노출’이 크게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당사자의 ‘자기이해’가 심화될 때 당사자는 그토록 원하던 해답을 얻게 된다. 그 해답이 적응에 유용한 해답일 때 당사자는 비로소 편안해지며, 자기 자신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실수와 실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수용이다.
수용에 이르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는 ‘믿어주는 사람’이다. 전문가와 가족들, 또는 주위 사람들 중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해답을 찾기를 열망하는 그의 고민을 이해해주고, 그가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그 과정을 지켜봐주면서, 그에게 자기탐색과 자기노출의 기회를 제공해준다면, 그의 자기이해 과정은 점차 깊어지게 되며, 그는 결국 유용한 해답을 찾게 된다.
‘믿어주는 사람’의 도움이 필수적이지만, 당사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도 있다. 그 첫 번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에게 자기노출을 하는 일이다. 특히 믿을만한 동료선배를 찾아내어 그를 멘토로 삼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또한 이후에 자신도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주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심리상담을 받거나, 표현적 글쓰기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유의사항은 당사자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두고 누구도 탓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원망과 비난을 멈춰야 한다. 자신의 인생에 일어난 일들은 모두 자신의 선택과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 그래야만 정말로 깊이 있는 자기이해가 가능해지며, 그때에야 비로소 충분히 만족할만한 유용한 해답에 이르게 된다.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 과정에서 수용은 전환점이다. 흔히 수용 이전의 과정을 무너지는 과정이라 하고, 수용 이후의 과정을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라고 한다. 당사자의 리커버리는 헌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는 과정에 비유되는데, 이렇게 비유할 때 수용은 헌집을 다 허물어낸 상태, 즉 새집을 짓기 위해 땅의 기초를 다지는 상태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수용을 전환점으로 하여 그는 새로운 신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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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촛불 님 * * * 이 글을 ~* 읽으면서 , 내 마음을 ~* 너무나 * 잘 이해해주는 * *
이토록 * 공감이 ~* 가는 이글을 * * 읽으면서 , 가슴속이 * * 시원하고 ~*
마음이 * * 후련해짐을 ~* 느꼈어요 * *
어떻게 * 그동안 겪어온 * * 내 마음이 ~* 이렇게 * 잘 표현될수 있을까 ~*
한편으로 * * 신기하고 , 가슴이 벅차고 * * 위로 많이 ~* 받았어요 * *
그리고 * 왠지 모르게 * * 힘이 나고 * 용기와 * * 희망이 ~* 생겼어요 *
촛불 님 * * * 이렇게도 * 좋은글 * * 진심으로 * 감사드립니다 ~***
우와~ 커피향님~ 힘이 나고 용기와 희망이 생겼다니 정말 좋아요. 저도 힘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아직 무너지고 있는 과정에 있나봐요.
언제까지 어디까지 무너지려는지.....
한줄기 희망이 보이길 기다릴 뿐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시아님~ 읽어봐 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혹 무너지는 과정에 계시다 하더라도 그 또한 새롭고 보다 만족스럽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힘든 시기 잘 견뎌내시길 바랍니다.~~
수용하는 자세 또 한 그러한 일련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 그런 것들이 진정한
리커버리가 아닐까요 자!!! 이제 뛰어가요 다 함께 더불어 자 가자 레츠고~~~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해요.
다시 시간날때 정독해볼려구요
예. 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5.30 18:1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5.30 18:21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5.30 18:35
부모로써 안전기지 역할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기는 더 어려운것 같아요
대학병원의사선생님도 뵙기가 어렵고...
상담 선생님도 어떤분을 만나야 할지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도 교수님 글 읽어 보니까 자기 이해와 자기노출을 하고 있는 과정 인것 같습니다
가까이 계시면 한번 찾아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안전기지 역할을 하고 있고, 자기이해와 자기노출을 하고 있는 과정이라 하시니 반갑고 좋습니다. 그대로 상황 상황마다 당황스럽고 어려움을 느끼실 때가 많으시리라 짐작됩니다. 꿋꿋이 견뎌내시다 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편안한 날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힘든 가운데에서도 늘 웃으시며 생활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촛불님 정말 글 너무나 좋습니다..당사자의 마음을 들어가 본 것처럼 정확하게 보고 있음을 인정합니다.....속이 다 후련해졌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늘의 천사님께서도 꾸준히 좋은 글 올려주고 계셔서 늘 감사드려요.
좋은글 잘 읽었읍니다 ,많은 내용에 동의 합니다 ..의학 보다는 심리 영성 인생문제에 답이 있다고 저역시 동의 합니다 참으로 새집을 짓기 위해선 옛집이 완전히 부숴져야만 합니다 , 낡고 비새는 집을 인간은 본능적으로 놓치 않으려 하니 거기서 막힘니다 옛집이 완전히 부숴지면 새집이 순간적으로 옵니다-- 그 옛집은 수리가 안됩니다 마치 나방이 누애고치에서 나오듯----, 다른세계로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날아 다니면 됩니다 그러나 그 나오는 그과정은 힘든 정도가 아니랍니다--- 그래야 날개가 제 구실을 한답니다 ..
"나방이 누에고치에서 나오듯, 다른 세계로 나온다." 좋은 비유네요. 감사합니다.~~
촛불님 감사합니다
글을 읽고 힘이 났어요.
읽고 또 읽어서 리커버리 철학을 굳게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아니면 자꾸 위축되고 우울해집니다
하연맘님~ 감사합니다. 댓글 읽고 저도 힘이 나네요.
자기 삶의 자체라는 글에 공감 합니다. 그리고 전문가는 다만 당사자 삶을 보조 하는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당사자 삶은 그 자체가 모든 책임은 스스로 모두 책임을 가는 길 이고 그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이라고 저는 봅니다.
동의합니다.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이지요. 그게 리커버리의 핵심이고 당사자들에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 남겨주시어 감사합니다.~~
@촛불 (대구) 리커버리의 수용에 대해 전적으로 절실하고 바람직한 마음가짐이 아닌가 하고
많은 부분 배우고 공감하고 또 절박하다고 봅니다 감사하고 고맙고 건강하세요 홧팅!!!!!
주옥같은 글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글을통해 현재 제아이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특히 4,5번 내용은 당사자 가족인 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함을 다시한번 실감 했습니다. 믿어주고 기다려주기 힘들지만 실천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소중한 글 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힘든 시기 잘 견뎌내시길 바랍니다.
귀한 글 잘 보았습니다~^^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