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담키즈와 원산키즈의 역할을 기대하며
蟬巖 위옥량(32世, 재경청장년회장)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 프로골프선수는 맨발로 호수에 빠진 공을 쳐 결국 우승하게 되었다. 이를 본 1985년생 전후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골퍼선수가 되고자 결심했다. 이들은 초등학생시절부터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훈련되어 세계무대에서 연달아 우승하면서 대한민국을 골프 잘하는 나라로 변모시켰다. 이를 일컬어 우리는 박세리 키즈(kids)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문중에서도 이와 흡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대종회 창립 27년, 松潭(자형) 대종회장 재임 9년차 접어든 2018년 현재 청장년회는 창립 7년차를 맞아 베이비부머들을 앞세워 1950년~1970년생들이 문중에 대거 유입되어 활동하는 형국이다. 또한 씨족문화연구소 圓山(정철)소장을 중심으로 문중의 문화와 씨족의 역사를 연구하고 홍보하는 풍토가 불일 듯 일어나고 있다. 이를 송담키즈와 원산키즈현상으로 표현해도 주저함 없이 대부분의 종친들이 공감하리라 본다.
송담대종회장은 특유의 민주적 리더십으로 문중중흥의 기반을 닦았다. 汎谷(찬호) 前대종회장의 유산인 장학회와 씨족문화연구소를 기반으로 미발협, 청장년회, 위씨골프회, 장원봉산악회, 문예협 등 여러 상설기구와 동호회를 창설했다. 이는 종친회는 나이가 들어서가는 기존 관념을 파괴하고 여러 종친들이 대종회에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서로 대화하고 함께 지내다보면 자그마한 일이라도 하게 되어 피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 내가 문중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내가 잘하는 재능을 찾아 문중에 봉사할 수 있겠다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를 송담 대종회장은 미리 간파한 것이다. 한마디로 일자리 창출에 앞장선 셈이다.
더 나아가 총회, 시제, 재경야유회, 수련회로 총칭되는 4대 메이져 행사에 대전효문화축제와 존재기념일을 추가하여 문중내외에서 종친들이 활동하도록 길을 터준 셈이다. 이를 통해 많은 젊은 종친들이 문중의 역사를 배우고 익히며 여러 종친들과 친교를 가져 결국 문중중흥의 자산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원산소장은 존재공 이후 불모지나 다름없는 씨족의 역사를 탐구하여 저술하는 일에 20년 동안 몰두했다. 문중의 역사를 집대성한 종합백과사전 ‘장흥위씨요람’과 1,400년 씨족 지성사의 체계를 잡은 ‘장흥위씨 천년세고’ 등 문중관련 저서 10여권을 저술하기에 이르렀다. 文의 전통을 잇는 연장선에서 거시적 문중역사의 체계를 세웠다. 한마디로 원산소장은 존재공 탄생과 그 위대한 업적이후 두 번째로 높은 문중의 저술업적을 이루었다고 사료된다. 더 나아가 홈페이지, 밴드, 카페 등의 SNS를 통해 종친들에게 씨족역사를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문중의 100년 미래를 설계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또한 상시교육,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을 문중에 도입했다. 이를 본받아 씨족문화연구위원을 중심으로 원산키즈들이 원산소장을 벤치마킹하여 아직 미비하고 부족한 문중의 미시적인 역사 탐구에 진력하고 있다.
통상 가치는 value로 실체가 지닌 실질적 근본을 뜻하고 가격인 price는 현재 시중에서 평가되는 금액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문중의 가치를 높이면 자연히 가격은 가치를 따라 상승하기 때문에 문중의 가격곡선도 올라가게 마련이다. 원산키즈의 탄생은 문중의 가치를 높이는 숭고한 현상으로 문중의 미래가 밝다는 단적인 증거로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우리 청장년회는 4인 총무제와 부총무제도를 정착시키고자 한다. 총무진은 우리 문중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주로 1957년부터 1968년까지 총무로 수고하고 있는데 재무총무, 기획총무, 동원총무 및 홍보총무로 구분한다. 2년 정도 총무를 하다보면 단체장을 보좌하고 종친들을 많이 알게 되고 대종회 6대 메이져 행사를 통해 문중의 일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또한 부총무제도를 도입하면 1970년대 생들이 문중에 들어와 몇 년 후에는 자신감있게 봉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이다. 모양은 있으나 내실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내실있는 청장년회가 되려면 첫째도 둘째도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봐야한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다’고 한다. 우리 문중도 송담키즈와 원산키즈를 소중하게 키워 문중중흥을 앞당겨야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기회가 있는 법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얻기는 어려운 것이 자명하다.
나이 한 살이라도 젊고 건강할 때 나라 일은 못해도 문중의 일을 많이 해서 장흥위씨 후손들이 번창하길 소망한다. 정년퇴직을 하니 밥사는 동료, 술사는 사람이 때론 그립다. 그래서 흔히 말하길 박사위에 밥사, 밥사위에 술사, 술사위해 봉사라고들 한다. 우리 청장년들은 송담키즈, 원산키즈라는 닉네임에 자부심을 갖고 문중을 위해 봉사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훌륭하신 선조들의 얼을 되살리는 것임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존재公께서 병중에 계실 때 지으신 한시 한수 ‘병중에 우연히 읊조리다(病中偶吟)’를 소개하면서 오늘 글을 마치기로 한다.
신분이 빈천하기에 농사일만 하면서 / 身貧且賤服耕耘
남들 속일까 근심하다 병마저 심해졌네 / 憂慽欺人病又殷
바닷가 백성의 삶이란 모두 싫어하는 것이니 / 海曲蒼生衆所厭
하늘은 나를 옥으로 만들려 은근히 괴롭히네 / 天何玉汝苦慇懃
종보 제24호에서(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