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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걷어 아침을 맞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계령-백담사에서 가을을 보다
1. 일자 : 2011. 10. 1 (토)
2. 장소 : 설악산(1707m)
3. 행로 및 시간
[한계령(02:50, 920m) -> 지능선 안부(03:38) -> 09-04다리(04:08) -> (계단) -> 서북능선 삼거리(04:23, 끝청 4.2km) -> 이정표 09-07(05:05) -> (너덜) -> 1474봉(05:43, 돌길 끝) -> 이정표(06:02, 중청 2.6km) -> 나무개선문(06:26) -> 끝청(06:43) -> 중청대피소(07:21) -> (중식 -07:56) -> 소청봉(08:17) -> 소청대피소(08:29, 봉정암 0.7km, 백담사 11.3km) -> 봉정암(08:58) -> 사자바위(09:14) -> (너덜) -> 봉정골 입구(09:25) -> 쌍룡폭포(10:25) -> (용아/용손 등 수 많은 폭포) -> 수렴동 대피소(11:26) -> 마등령 갈림(11:44) -> 영시암(11:50) -> (산책길) -> 탐방안내소(12:47) -> 백담사(12:54) -> 셔틀버스 주차장(12:56)]
4. 동행 : 홀로
< 설악산 산행을 준비하여 >
산에 오르는 행위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산 정상에 서는 것일까? 험난한 세계에 도전하는 모험과 용기의 과시일까? 아니면, 뛰어난 기술과 체력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보람일까? 또 다시 설악 오름을 준비하며 어느 산꾼의 책에서 읽은 글귀들이 떠올랐다. 다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명언이나, 나름 산의 오름은 ‘자유의 추구이자 쉼’이라 정리한 터라 곁눈질 하지 않기로 한다.
설악의 가 보지 못한 길을 가려고 한다. 이번에도 들머리는 한계령이다. 날머리는 백담사이다. 한계령에서 소청산장까지는 걸어 본 경험이 있으나, 소청산장에서 봉정암을 거쳐 구곡담계곡과 수렴동계곡 길은 나로서는 처녀 길이다. 흔히들 고도 920m 한계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높이 1350m수준의 서북능선 삼거리까지만 고생을 하면 큰 무리 없이 중청까지 갈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두 번 산행 경험으로는 8km 가까운 거리에 굴곡 있는 능선길이 녹녹하지 않다. 한계령에서 중청까지 5시간을 예상한다.
사실 내가 금요 무박이라는 무리수를 두어 가며 설악을 다시 찾은 이유는 봉정암과 구곡담계곡에 대한 유혹이 컸기 때문이다. 설악산의 주요 등산코스는 정상 기준으로 오색-대청, 한계령-대청, 설악동-대청, 백담사-대청으로 대별되는데, 앞의 3개 코스는 올라본 경험이 있고 남은 한 곳이 백담사-대청 코스여서 늘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
새로 가는 길의 대강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 새벽 이슬을 뚫고 중청에 도착하면 아침 8시 무렵, 중청산장에서 아침 햇살에 빛나는 화채능선과 공룡능선 바라보며 아침을 거하게 (찌개거리를 준비해 끓여 먹을 계획이다.) 먹는다. 중청을 지나 소청으로 향하는 계단 길에서 다시 한 번 경치에 취하고, 봉정암으로 향하는 새 길로 들어선다. 구곡담계곡의 백미, 쌍룡폭포에서 늘어지게 쉬고 수렴동대피소를 거쳐 백담사로 가는데 까지는 또다시 5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쉬는 시간을 빼고 순수산행 시간이 10시간쯤 될 것이다. 끝청 이후로는 오르막은 없으니 체력적 부담은 예전 공룡능선 종주 때보다는 극심하지 않을 것이다.
중청과 소청에서 바라보는 풍경 만으로도 황홀한데, 구곡담계곡의 화려한 물길을 볼 생각까지 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지는 것, 그것이 등산의 또 다른 매력이다.
< 희망사항 >
주초 아침 출근 길에 느끼는 날씨가 지난 주와는 확연히 다르게 차더니 급기야 목요일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신 새벽 고도 1000m에 육박하는 한계령에 서려면 얕은 바람막이로는 안되겠다. 좀더 두꺼운 겉옷을 준비해야겠다.
가을 등산의 백미는 단풍인데, 지난 7넌 간의 산행 기억을 다 꺼내어 보아도, 인상적인 단풍 산행의 추억은 없다. 봄 꽃, 여름 계곡, 가을 억새, 겨울 설화에 비할 때 단풍은 도심에서 쉽게 보는 자연현상인데, 이상하게도 난 산에서 만족할 만한 단풍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 좋다는 가을 내장산 단풍도 내가 찾은 2008년에는 가뭄으로 색이 형편 없었고, 그나마 2009년 십이선녀탕 계곡의 단풍이 인상에 남는데 끝물이어서 내세울 만한 것은 아니었다. 올해에도 늦더위에 다음주나 되어야 설악산에 단풍이 찾아 든다는 예보가 있어 아쉽기만 하다. 다만, 목요일부터 내리는 비로 인해 날씨가 급랭한다 하니 1600m 고지에는 성질 급한 잎들이 모습을 붉히는 광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여러 힘겨운 일을 겪고는 예전 세종에 관한 책을 읽다가 메모해 둔 글귀를 찾아본다. ‘호되게 힘든 일을 겪고 점점 더 거칠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모든 힘든 일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남을 받아 줄만큼 넉넉해지는 사람이 있다. 맹사성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 글을 읽고 후세에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맹사성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하는 부러움과 함께 나도 언젠가 그런 평가를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물론 가능성은 극히 낮고, 된다 해도 인격적으로 훨씬 더 성숙해야 하므로 나 같은 범인이 꿈꿀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 분기가 다가오니 여러 가지 일들이 쏟아진다. 미루어 놓았던 내키지 않는 일들도 마무리 해야 하고, 성과도 점검해야 하고, 내년 계획의 얼개도 꾸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팀원들에게 쓸데없이 거칠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힘든 일들을 넉넉하게 받아줄 여유와 덕을 쌓아나가는 수신(修身)을 생각한다.
이번 설악산 산행을 통해 수신은 몰라도 마음의 여유는 되찾아 와야겠다. 그간의 산행 경험으로 터득한 진리가 있다면, ‘완벽한 준비가 있는 곳에 언제나 승리가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행운이라 부른다. 준비가 불충분한 곳에 반드시 실패가 있다. 실패한 사람들은 이것이 불운에 기인한다고 변명한다.’는 것이다. 10시간이 넘는 산행이니 옷, 물, 음식, 랜턴, 배낭, 코펠 등 준비할 것이 많아졌다. 승리를 위하여 가일층 완벽의 노력을 기한다.
먼 길을 떠나는 이는 여정, 즉 길을 가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고 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금요일 밤을 기다린다.
(여기까지는 산행 전 준비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 한계령 가는 길에 >
금요일 저녁, 쌀쌀해진 날씨 덕에 올 가을 처음으로 등산용 자켓을 입고 길을 나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요일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의 첫 날을 느긋한 마음으로 맞는 늦은 저녁, 난 설악으로의 긴 여정을 시작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산악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붉은 글씨로 설악산의 눈/비 예정소식과 ‘아이젠 및 겨울장비 준비 필’이라는 경고 문구가 떠 있다. 젠장 이렇게 중요한 공지라면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도 알려 주었어야지, 난 어쩌란 말이냐? 산악회의 무성의에 화가 치밀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후부터 일기예보를 주시하고 있었다. 기관마다 정보가 달라 비 소식은 무시하고 있던 차에, 속초에 간 성우의 저녁 6시 즈음 ‘속초 하늘에 먹구름’이라는 메시지를 받은 후 긴장했는데, 다시 산악회의 경고 문구를 보니, ‘올 것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젠 별 수 없다 차라리 ‘눈이 오면 서설(瑞雪)이라 여기고 즐기지 뭐’ 하고 마음 가짐을 바꾸어 먹는다.
처음 타 보는 그 이름도 특이한 28인승산악클럽의 버스에 오른다. 널찍한 좌석에 앉으니 바로 출발한다. ‘1시 조금 넘어 설악 휴게소에서 정차하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바로 소등된다. 사위가 껌껌하다. 너무도 빠르게 진행되는 일들에 어리둥절해 하며 나도 눈을 감는다.
12시 10분, 비몽사몽간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 정산 소리를 듣고, 혹시나 하여 위치를 확인하니 춘천이다. 믿기지 않았다. 복정에서 춘천을 40분 만에 주파하다니, 기사가 여자분이던데 놀라울 따름이다. 버스는 홍천을 지나 국도로 내려 앉더니 1시 10분 무렵 설악휴게소에 도착한다. 속초와 양양이 갈라지는 국도변, 싸늘한 날씨에 하늘엔 별이 촘촘하다. 그 놈의 일기예보 참. 기상청이든 사설 기관이든 이러고도 월급 받아 가는 것이 신기하다.
무려 40분 동안의 긴 휴식이 끝나고 버스는 다시 출발, 인솔자가 코스별 인원을 확인하고는 하산 시간과 버스 탑승 위치를 말하고는 곧바로 다시 소등. 이 산악회는 참 건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2시 10분 무렵 버스는 어둠이 짙게 내린 한계령에 도착한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어 어리둥절하다. 내 8번째 설악산 산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한계령에서 중청 >
한계령의 새벽은 차분하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동남쪽 하늘에 오리온자리 삼태성이 주먹만하다. 이럴게 많은 별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일기예보에 우롱당한 분한 마음은 맑은 하늘과 빛나는 별에 묻혀버린다.
문제가 생겼다. 한계령에서 설악루로 오르는 길에 나 있던 계단에 웬 족쇄가 채워져 있다. 3시나 되어야 문이 열린단다. 새벽 공기가 찬데 50분여를 기다릴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일단 돌담에 배낭을 올린 체로 자켓의 모자를 덮어쓰고 겨울잠 모드로 들어간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설악휴게소에서의 긴 휴식이 다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시에 문이 열린다는 걸 알았다면 이왕 쉬는 거 그곳에서 편히 쉬도록 배려 해 주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떨면서 한계령에 서 있으려니 배려라는 말과 함께 아쉬움이 남는다.
조용하던 한계령에 각 버스에서 토해내는 사람들로 등산로 입구는 발 디딜 틈도 없다. 바야흐로 단풍 시즌이 시작되나 보다. 입구에서 먼 곳에서 뒷짐지고 있다가 제때 출발선에 서 보지도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인파에 섞인다.
모든 이들의 눈이 한 곳에 집중된다. 계단을 막고 서 있는 나무 문, 그 문은 누가 어디에서 나타나 열까? 아마도 설악루에서 신선이 내려와 열고 가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상들 수준의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2시 50분 드디어 계단 위쪽에서 인기척이 있다. 공단 직원이다.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오더니 문이 열린다. 난 박수를 치다가, 조용한 주변 공기에 멋쩍어 한다. 그 만큼 기다림이 길었다.
< 새벽 한계령에서 / 들머리 풍경 >
계단으로의 긴
행렬이 이어진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설악루를 지나
탐방안내소의 철문을 지나 암릉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눈에 익을 한계령 길을 오른다. 헤드 랜턴의 긴
행렬이 마치 도로 위 차들의 질주를 연상시킨다. 오르면 본 하늘에서는 더 가까워진 거리에서 별들이 쏟아진다. 성운(星雲)이 선명하다. 은하수의 젓들이 흘러 넘친다. 감동 또 감동이다.
한계령에서 중청까지의 약 7.7km 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설악루에서 1km 거리의 지능선 안부까지는 다리가 산에 적응하는 시기에 계속되는 가파른 오르막으로 인해 누구나 사점(死點) 현상을 경험한다. 지난 두 번의 경험에서 동료들 모두 이 초반 30분 오르막에서 극심만 고통을 호소했었다. 오늘은 갑자기 쏟아져 나온 인파로 인해 속도가 느린 데다가 어둠과 싸늘한 기온으로 인해 크게 힘든지를 모르겠다. 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조심스레 걸음을 옮긴다. 물과 취사도구로 인해 평소보다 무거워진 배낭이 기우뚱, 어둠 속에서 중심잡기가 쉽지만은 않다.
첫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지능선 안부 09-02 이정표가 눈에 익다. (03:38) 고도는 1300미터 초반 수준 한계령에서 400미터 정도를 올랐다. 예전에 이 부근에서 길을 잃은 경험이 있어 주위를 잘 살핀다. 삼거리 길, 길은 좌측이 맞지만 우측 길도 정규 등산로 수준으로 넓다. 좌측 길로 내려선다.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걷기 편한 내리막과 산 허리 길이 이어진다. 어둠 속에서 만나는 내리막 비탈에 시간이 많이 지체됨을 느낀다. 기억에 없는 웬 계단이 나타난다. 힘겹게 오르니 다시 내리막, 예전 샘터가 있던 자리에 다리가 놓여 있고 그 위로 긴 계단 오르막이 이어진다. 계단 중간에 서면 소나무 그늘 밑으로 멀리 산들의 파노라마가 멋졌던 곳인데 지금은 어둠만이 남아있다.
어둠 속에서 걷다 보면 앞 사람의 불빛이 위안이 된다. 서로 말은 없어도 힘겨운 길에 벗이 되는 것이다. 흩어져 불안하면 기다렸다 인파에 섞이고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서북능선 삼거리에서 다시 모인다. 한계령에서 서북능선 삼거리까지의 길은 전형적인 ‘M’자 형이다. 50분 힘겹게 오르고 꺼졌다 다시 계단을 오르고 마침내 정점을 찍는다. (04:23)
한 고비 넘었다 생각하지만 이어지는 서북능 삼거리에서 1474봉까지의 1시간여의 길 사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10여분 간의 휴식을 끝내고 백두대간 길을 따라 중청으로 향한다. 초반 10여분은 룰루랄라 여유가 있다. 기억 속에서 부근의 멋진 풍광과 동료들과 추억을 끄집어 내어 홀로 즐거워한다. 첫 능선 길에서 맞는 것은 순해진 길만이 아니었다. 열린 하늘과 감당하기 어려운 빛이 바위 암릉 혹은 고목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광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둠만이 추억을 대신한다.
그런 여유도 잠시, 거친 돌 길이 나타난다. 바위 오르막을 오르고, 다시 내려선다. 어두워서 길의 흔적도 희미하다. ‘09-07’ 이정표가 나타난다. (05:05) 험난한 전투 속에서 우군을 만난 기분이다. 이제 길 사정이 좋아지겠지 하고 걷는데, 정반대다. 뾰족한 바위 너덜 길은 길 가는 모든 이의 신경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든다. 그 10여분 동안의 길이 오늘 산행에서 최고의 난코스였다. 잠깐의 방심은 큰 부상으로 이어질 형상이다. 너덜을 지나도 바위 오르막은 계속 이어진다. 홀로 뒤쳐진 아주머니로 인해 병목현상이 빚어진다. 그 분도 몹시 답답할 것이다.
반복되는 오르내림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칠 무렵, 죽어라 하는 법은 없는지 작은 평지가 나타난다. 1474봉이다. (05:43) 날씨 맑은 날 서북능선을 오르다 보면 산사태가 나서 돌이 무너져 내린 곳이 목격되는데 바로 이곳이다. 1474봉 우측으로 독주골로 향하는 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쇄되었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있는지 습기가 많아진다. 하늘의 별들은 하나 둘 쉼을 찾아 떠나간다.
1474봉을 지나고부터 길 사정은 한결 편해진다. 우선 된비알이 없어 좋다. 좌측으로 멀리 속초의 불빛이 아스라이 보인다. 어둠 속에서도 붉게 물드는 단풍이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낸다. 6시 즈음 이정표를 만난다. 한계령에서 5.1km를 왔고 중청까지는 2.6km가 남았다 한다. 길게만 느껴졌던 서북능선도 이제 2/3거리를 지났다. 한 고비 넘겼다 생각하니 졸음이 몰려온다. 잠 한 숨 못 자고 힘겹게 달려 왔으니 왜 아니 힘 들겠는가? 6시가 지나자 어둠이 저 만큼 물러가는 것이 보인다. 이에 맞추어 여명이 밝아 오고 있다. 노랗고 붉은 단풍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대로 된 단풍’이 희망사항만은 아닐지 모르겠다. 기대가 크다.
< 다시 만난 나무개선문 >
나무개선문을 다시 만난다. 고목이 활처럼 휘어진 모습이 길을 가로지른다. 언제 보아도 멋지고 특이한 풍경이다. 힘겨운 길을 걸어온 보상이라 생각하니 더욱 소중해 진다. 개선문에서 끝청까지는 다시 고도 150미터 정도를 치고 올라야 한다. 방전된 체력을 감안하면 몹시 고된 길이다. ‘조금만 더’를 수 십 번 외친 끝에 고도 1610미터 끝청에 당도했다. (06:43) 당초 목표했던 4시간 보다 조금 덜 걸렸다. 힘겨운 길은 거의 끝났다는 안도감이 온 몸을 감싼다. 준비한 사과 한 쪽을 베어 문다. 달콤한 과즙이 기분을 맑게 해 준다. 행복하다. 고생 끝에 낙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 끝청 부근의 단풍 / 숲에서 맞는 아침의 빛 >
끝청에서 중청 길은 지나온 길에 비하면 ‘꽃 길이다’. 여명이 아침으로 변한다. 새빨간 단풍이 눈 길을 끈다. 흔치 않은 제대로 붉은 색을 내고 있다. 부근으로 색색의 단풍잎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당초 흐릴 것이라는 날씨는 연무가 있으나 점차 걷히고 맑아지고 있다. 바람이 안개란 놈과 힘겨운 한 판을 벌이고 있다. 결국 이겨낼 것이지만 그 과정은 힘겨워 보인다.
잠시 시간 여유를 내어 사과가 장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과일임을 확인했다. 숲에서 맞는 아침의 빛을 확인했다.
< 중청 부근에서 본 설악의 정상부 풍경 >
중청을 향해 내딛는 길. 언덕에 오르자 대청으로 향하는 길이 눈에 들어온다. 안개와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바람이 전투에서 승리한다. 그 틈에 사진 하나를 건진다.
< 중청 가는 길의 풍경 >
‘카메라는 결국은 눈에 보이는 것을 담아주는 도구일 뿐, 사진은 장비보다 어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가 더 중요하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잡은 구도가 멋지다. 스스로가
사진에 좀 더 일가견을 갖는 것 같아 대견스럽다.
이제 바야흐로 제대로 된 아침을 맞는다. 우선 빛의 농도가 다르다. 카메라를 자동에서 풍경 모드로 바꾼다. 근접 모드로 각시투구꽃을
촬영했다. 그 이름이 영화 제목으로도 채택된 화려한 보랏빛 꽃이다. 겉
모습은 새색시 같으나 속은 전사의 이미지를 품고 있는 독이 든 꽃이다. 그 고결한 아름다움은 늦여름
초가을을 대변한다.
< 각시투구꽃 / 고사목과 함께 >
이어지는 길에서 멋진 고사목과 만난다. 화려한 각시투구꽃과 회색빛 고사목을 보며, 식물이 움직이지 못한다는 생각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 닫힌 단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의 움직임이란 한 알의 씨앗이 숲으로 바뀌어 가는 것과 같은 거대한 흐름이기도 하지만, 낮과 밤 그리고 사계절에 따라 변하는 숲의 표정 같은 것 일지도 모른다. 초가을 이른 아침 난 숲에서 식물의 삶과 죽음 숲과 함께 하는 그들의 표정을 읽는다. 값진 수확이다.
중청 영마루에서 보는 하늘이 멋지다. 바람이 분다. 나무 가지가 한쪽으로 쏠리고 풀이 눕는다. 중청의 ‘탁구공’도 잠에서 깨어나려 한다. 산에서 새벽을 걸어 아침을 맞는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
드디어 중청에 도착한다. (07:23) 안개란 놈의 기세가 드세다. 바람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멋진 풍광을 기대했는데 안개로 사위가 희미하다. 중청대피소 일대는 추워 보이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 틈에 나도 자리를 잡는다. 오늘 여정의 반을 성공리에 마쳤다. 스스로에게 축하를 보낸다.
배낭에서 취사도구를 꺼낸다. 김밥과 김치찌개. 환상의 조합이다. 대피소 앞 평상에서 화채릉을 반찬 삼아 ‘중청에서의 아침을’ 즐기려 했는데, 아쉽다. 그래도 한기를 느끼는 몸에 따듯한 국물이 들어가니 살 걸 같다. 이 맛은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이다. ^^.
< 중청에서 봉정암 >
‘중청에서의 아침을’의 만찬은 30여분 만에 끝났다. 배 속에 든 것이 많아지니 힘이 난다. 무거워진 다리를 앞세우며 다시 발걸음을 내딛으며, 새 길에 대한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다.
안개란 놈의 기세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중청에서의 풍광을 포기하고 소청봉을 향해 길을 나선다. (07:56)
< 중청의 아침 풍경 / 안개에 젖은 소청봉 가는 길 >
소청봉 가는 길. 길은 온통 뿌옇다. 재작년 이곳에서 본 노을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데 오늘은 연무만이 존재하고 있다. 긴 나무계단을 서서히 내려 간다.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떼지어 몹시도 시끄럽게 떠들며 내려 오고 있다. 최근 가뜩이나 외국인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은데 우리 산에서 예의 없이 떠들어 되는 그들을 보며 ‘참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청봉을 지난다. 시끄럽게 재잘거리던 트레이닝 복 차림의 ‘서양 돼지’는 희운각 방향으로 사라졌다. 소청산장으로 길을 튼다. 예전 늦은 진달래 꽃이 멋지게 피어 있던 곳이다. 안개가 걷혔다. 풍경은 여름 그대로 인데 날씨가 꽤 쌀쌀하다. 바람이 안개를 거두어 간다. 멀리 산등성이 보인다. 지나는 산꾼들의 걸음은 무언가에 바쁘다. 문뜩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해 가고 있고 나의 삶의 걸음은 항상 느리다.’는 생각이 든다. 소청대피소로 향하는 산기슭에 알록달록한 관목들을 보면서 변하는 숲과 함께 세월의 흐름을 읽는다. 가을이 깊숙이 내 삶 속을 파고들 것 같다. 누구 말대로 올 해는 가을을 타지 말고 행복하게 잘 지내야 할 터인데……
< 소청봉 부근에서 >
소청대피소에 도착했다. (08:29) 소청은‘대피소’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산장이다. 대여섯 명이 자면 알맞은 방에 20여명의 뒤엉켜 새우잠을 자던 날이 생생한데 지금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어떻게 올라 올 수 있었는지가 궁금한 포크레인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 새롭게 변한 소청대피소를 볼 날을 기대해 본다.
< 봉정암 가는 길의 용아장성릉 풍경 >
소청대피소를 지나며 본격적으로 ‘처녀 길’과 관계를 맺는다. 10여분 가파른 돌 길을 내려간다. 밑에서 70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올라 오신다. 놀라운 일이다. 백담사에서 출발하셨으면 족히 6시간을 넘어 걸었을 텐데…… 안쓰러움과 함께 일행들이 미워진다. 분명 말렸어야 했다. 힘겹게 대청에 올라도, 그 먼 길을 어찌 내려올 수 있단 말인가? 봉정암을 지날 때 헬기 소리를 들으며 문뜩 그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 생각에 잠시 젖어 걷는데, 하늘이 열린다. 나뭇가지 사이로 우람한 암릉이 자태를 드려낸다. 힘 센 장사를 연상시킨다. 그 거무틱틱한 색체는 더욱 힘을 느끼게 한다. 용아장성릉이 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첫 만남의 신기하고 서먹한 감정은 곧 친근하게 변한다. 내려서는 걸음마다 암릉의 모습이 변한다. 주변 나무의 단풍이 한창인 긴 계단을 내려서자, 상어 모양의 암릉이 시야를 끌더니 그 뒤편으로는 우뚝 솟은 바위가 모습을 뽐낸다. 용의 이빨들이 본 모습을 드러낸다.
단풍의 색깔들이 곱다고 느끼며 걸어 내려간다. 봉정암 절집 지붕이 나를 반긴다. (08:58) 1424미터 고지에 위치한 국내 최고의 적멸보궁을 품은 봉정암에 당도했다. 용아들은 부처님 전신사리를 지키는 사천왕들인가 보다. 절 집 뒤편으로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봉정암을 호위하고 있다.
< 봉정암에서 / 사자바위 보습 >
계단을 올라 적멸보궁을 들여다 본다. 불상 자리를 부처님의 몸이 친히 대신한다. 그 숙연한 분위기에 잠시 젖는다. 돌아 내려오는 길 단풍이 물들어 가는, 새벽에 지나 온 서북능선이 보인다. 내가 지난 온 길을 올려 다 볼 수 있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다만 봉정암 사리탑 바로 위 용아릉 목덜미에서 보는 공룡릉 일대의 내설악 풍광이 볼만하다고 했는데 사리탑은 찾질 못했다.
< 봉정암에서 백담사 >
산은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의 전경을 보여 준다. 일망무제의 산 파노라마는 편협한 인간의 시각을 교정하는데 더없이 좋은 스승이다. 용아능을 따라 설악의 초가을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다, 다시 길을 나선다.
사자바위를 지난다. (09:14) 해발 1180미터이다. 사자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기묘한 현상의 암봉이 늠름한 자태로 서 있다. 사자바위부터 본격적인 내리막이 시작된다.
굽어보는 풍광이 때론 시원하게 또 때론 오밀조밀하게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길은 너덜 길이다. 무거워진 다리를 조심스럽게 움직여 내려온다. 봉정골 입구를 지나자 물 소리가 들린다. 검고 긴 바위 밑으로 물의 흔적이 느껴진다. 작은 다리를 지난다. 암릉 사이로 가로로 줄기를 뻗은 특이한 모습의 나무가 가지와 잎을 띄우고 있다. 그 놀라운 생명력에 경이를 표한다.
< 가로로 뻗은 나무 / 단풍으로 물드는 산 >
이어지는 길은 그야말로 계곡과 폭포의 진수란 표현이 적격인 풍경이 한 없이 이어진다. 그 정점에 쌍룡폭포가 있었다. (09:25) 그 조금 위로 거대한 폭포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쌍룡폭포 앞에서 그 절정을 과시한다. 두 곳에서 내리꽂은 물 길이 만나 깊은 소(沼)를 이룬다. 감동스러운 모습에 넋이 나간다.
< 쌍룡폭포 전경 >
봉정암에서 쌍룡폭포까지는 45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쌍룡폭 밑으로 용아, 용손, 만수폭 등 이름난 폭포들이 이어지는데 모두 다 모습이 뛰어나 그 이름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 구곡담계곡과 용아장성릉 >
구곡담계곡은 청룡폭포를 지나며 모습이 더 화려해 진다. 용아능성은 거대한 암릉과 뾰족한 이빨을 뽐내며 계곡을 따라 흘러 내린다. 능선과 계곡, 폭포를 함께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간이 10시를 넘어 가고 있다. 산에 오지 않았으면 평온한 휴일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 터인데, 그랬으면 구곡담계곡에 이토록 아름다운 폭포와 소가 얼마나 많은지, 용아릉의 형상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편안함을 새로운 모험과 맞바꾸는 것이 진정한 등산인의 자세라 하겠다.
< 구곡담계곡 풍경 1 >
구곡담계곡의 특징은 좁은 지형을 폭포를 이루며 흐르면서도 거의 모두가 깊은 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간혹 특이하게도 ‘수평폭포’도 목격되는데 좁은 협곡지역을 빠른 물살이 지나는 모습이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10시 50분 무렵 백운동 이정표를 지난다. 서북능선의 물줄기가 백운동계곡을 이루어 내려오다가 이곳에서 구곡담계곡과 합류하고, 구곡담계곡은 수렴동에서 가야동계곡과 합류하여 수렴동계곡을 이루다가, 대승령에서 흘러내린 흑선동계곡과 합해져 백담계곡을 이룬다 한다. 산 봉우리에서 조금씩 흘러 내린 물들이 모여 제각기 이름의 계곡을 형성하고, 하류에 이르러 보다 큰 계곡을 만들고, 이것이 다시 모여 강이 되고, 그 물은 다시 바다로 흐르는 프로세스의 일부분을 목격하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흐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물도 흐르고, 하늘의 구름도 흐르고, 시간도 흐르고, 시간이 모인 세월도 흐르고……
< 구곡담계곡 풍경 2>
11시가 지난다. 계곡에 돌아 많아진다. 계곡이 합류한 까닭에 물살이 세어지니 물 길을 따라 떠내려 올 돌들도 많은 데다 지난 여름 폭우의 흔적도 목격된다. 무너져 복구의 엄두를 못 내는 다리가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다. 좌측으로 하늘과 맞닿은 능선은 귀때기청에서 대승령으로 향하는 것이리라. 문뜩 다음 번 설악산 행선지는 한계령에서 귀때기청봉을 지나 대승령과 십이선녀탕으로 내려오는 남교리 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곳이 미지의 영역이기에 마음은 자꾸 그리로 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계곡의 이름도 수렴동계곡으로 바뀌었다. 계곡 우측으로 길가란 평지 다리가 자주 목격된다. 강폭이 넓어지고 폭우가 내릴 때를 대비한 안전대책일 것이다. 가을 빛을 한껏 품은 숲이 밝게 빛나고 있다. 여름과 가을의 이 아름다운 공존은 그러나 오래지 않을 것이다. 그 밝음이 그래서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아무리 화려한 계곡도 지나치게 길어지니 흥미가 반감된다. 봉정암에서 수렴동대피소에 이르는 계곡은 5.9km의 긴 길이다. 그 화려함에 끝에는 수렴동이 있었다. (11:26) 길은 점점 넓어지고 부드러워지고 있다. 청룡폭포에서 수렴동대피소까지의 길은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 여정이었다.
< 영시암 모습 / 백담사 주변 보습 >
등산 시작 후 8시간 30분이 지났다. 몸은 점점 더 고단해지고 마음도 지친다. 오세암 갈림을 지나고 중창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영시암도 지나 백담사로 이어지는 길은, 걷기에 편했지만 긴 거리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백담사계곡은 아름다웠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봉정골을 계곡의 기점으로 잡는다면 10km가 넘는 물길이 이어졌다. 이 정도면 평지였어도 2시간 반이 넘는 긴 길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질림을 새삼 확인한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봉정암으로 향해 오르는 사람들로 인해 좁은 길에서 엉킴 현상이 잦아진다. 나이든 여성분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들의 목적지가 봉정암이라면 그 고된 길을 어찌 감당할까 걱정이다. 하산 하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혹 인파에 밀려 셔틀버스를 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아는 것이 병이 되고 있으나 셔틀을 놓쳐 7km를 넘는 거리를 걸어갈 생각을 하니 끔찍해 진다.
12시 44분 만난, 백담사 버스 정거장 500m란 표시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포장도로 길이 이어진다. 백담탐방안내소를 지나 마침내 1시가 조금 되기 조금 전에 백담사에 도착했다. 10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다. 강 수준의 너른 계곡을 건너 백담사의 절 집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가 무엇을 위해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물가에 수 많은 돌탑들이 쌓여지고 있었다. 비가 오면 금방 씻겨갈 위험을 안고 있기에 더욱 눈 길이 간다.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불교유신론과 님의 침묵을 집필한 곳이며, 그의 승려생활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만약 정거장에서 버스가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면 절에 들려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을 것이지만, 이번에도 그 놈의 조바심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 에필로그 >
숨 돌린 틈도 없이 표를 사고 버스에 오른다. 막 1시가 지난다. 버스에는 나를 포함해서 6명 정도가 타고 있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은 백담사를 둘러 보지 못한 것으로 후회막급이다. 용대리로 향하는 계곡 길은 좁고 길었다. 마주 오는 버스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7.2km의 거리를 15분만에 주파한 버스를 날 용대리에 내려 놓았다. 주차장 셔틀 버스 정거장의 긴 행렬을 보고 잠시 후 도착한 백담사발 버스에 사람들이 꽉 들어찬 광경을 목격하고는 백담사에서의 이른 출발이 어쩌면 현명한 것이었을 것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일찍 산을 내려와 버린 까닭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기다림으로 소모한다. 산행을 준비하며 희망했던 사항들을 복기해 본다. 혹시나 했던 단풍은 비록 최고 절정기는 아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산정(山頂)의 것을 원 없이 목격했다. 그 붉고 노란 기운이 지금도 느껴진다. 새벽의 여명 속에서의 경험이라 앞으로도 쉬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고마울 따름이다.
호되게 힘든 일을 겪고도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픈 바램은 이번에도 희망만으로 그쳐 버렸다. 아쉬울 따름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여유를 갖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가 보다.
토요일 오후 4시 저기 산악회 버스가 들어온다. 집으로의 긴 여정이 다시 시작된다. 길었던 설악산행을 마치며 또 다른 작은 희망을 빌어본다. ‘올 가을은 없는 듯 행복하게 지나갔으면’.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또 다시 네게 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