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응우옌 잡과 디엔비엔푸 전투
여러분 베트남의 보 구엔 지압을 기억하시는지요?
마오 쩌 뚱, 체 게바라와 함께 게릴라전의 대부로 알려진“아이스 볼케이노”보 구엔 지압 장군 말입니다.
얼마 전, 베트남 종전 30주년 특집 기사에서 보 구엔 지압 장군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요, 그는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보 구엔 지압의 전쟁이야기를 할까하는데요, 흔히 메뚜기와 코끼리의 싸움이라고 불리는 디엔비엔푸 전투입니다.
베트남 전쟁 중 디엔비엔푸 전투 (베트남 전쟁 제1기)
디엔비엔푸 전투는, 베트남군이 프랑스군을 상대로 1953년 겨울부터 1954년 5월까지 싸운 전투입니다.
보통 베트남 전쟁하면, 월맹군과 미군의 전투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요, 그것은 베트남 전쟁 중 2기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 디엔비엔푸 전투는 그보다 앞선 1기에 있었던 전투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베트남 전쟁 제2기에 국군을 파병했었죠.
이 디엔비엔푸 전투는 한마디로,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통치에 반대하여 벌인 민족독립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당시 프랑스군은 나바르(Henri-Eugene Navarre)장군이, 베트남군은 보 구엔 지압 장군이 총지휘를 맡고 있었습니다.
프랑스군의 계획
1954년 3월, 프랑스군은 디엔비엔푸에 만6천명의 병력과 대포 44문, 전차 10대를 투입하여 49개 거점으로 전면방어가 가능한 요새를 구축했습니다.
이는 북베트남의 근거지인 북부산악지대와 홍하델타지역을 분리하고, 북부라오스를 통한 호지명루투를 봉쇄하기 위해서였는데요, 디엔비엔 푸는 베트남과 북부 라오스로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중국에서 보낸 병참물자를 받는 보급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단숨에 북베트남군의 숨통을 조이겠다는 것이 바로 나바르 장군의 계획이었죠.
북베트남군의 힘
하지만, 희대의 명장, 보 구엔 지압 장군이 지휘하는 북베트남군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북베트남군은 프랑스군의 비행기 폭격과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1954년 3월초까지, 포병 1개 사단을 포함한 4개 사단이 500km이상을 도보로 행군하여 디엔비엔푸로 집결했는데요. 북베트남군은 대포 118문과 포탄 81만 여발 등도 운반하여 공격준비를 완료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프랑스군이 불가능 하다고 본 것으로, 북베트남군은 이미 전략적 기습을 달성한 것이지요.
1차 - 북베트남의 선공!
전투는 3월13일 야간에 북베트남군의 선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북베트남군이 며칠 전부터 은밀히 접근하여 철조망과 지뢰를 제거하고, 프랑스군진지 200m까지 침투하여 참호를 팔 때까지, 프랑스군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거죠.
기습에 성공한 북베트남군은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으로, 18일까지 3개 방어진지를 점령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북베트남군은 2,500여명의 희생을 내기는 했으나, 이미 점령한 3개 진지로 대공포와 야포를 추진시켜, 프랑스군의 공중보급과 항공지원을 교란시키고, 프랑스군 진지에 근거리 포격을 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차 - 이번엔 비행장 점령이다!
다음으로, 북베트남군의 2차 공격목표는 기지내의 비행장이었습니다.
3월30일, 북베트남의 보병 3개 사단이 총 공격을 실시했는데요, 이때는 프랑스군의 저항도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열세인 프랑스군은 밀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북베트남군은 압도적인 병력으로 포위망을 구축하고, 조여들어가 저항거점을 차례로 점령했습니다.
또한, 때마침 몬순계절이 시작되면서, 프랑스군의 보급사정은 더욱 악화되었고, 급기야 비행장이 북베트남군의 수중으로 떨어 졌습니다.
그리고 5월7일, 북베트남군이 마지막 남은 프랑스군 진지를 점령함으로써 마침내 디엔비엔푸전투는 프랑스군의 참패로 끝이 납니다.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북베트남군과 프랑스군의 결전, 디엔비엔푸전투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이 전투는 사실 싸우기 전에 이미 결판이 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손자는 그의 병서 제1절 시계편에서 전쟁의 승패를 미리 짐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했는데요, 道, 天, 地, 將, 法 이 다섯 가지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전쟁의 명분과 당위성, 국민의 항전의지와 이재,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국민적 분위기 등의 적시성, 지리와 지형적 여건, 전쟁 수뇌부와 간부들의 지휘통솔력, 그리고 군사조직과 제도와 규율 등을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우월한 편이 승리한다는 것인데요, 프랑스군은 이 다섯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도 북베트남군보다 나은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프랑스군이 어찌 패배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