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때 나는 중학교 2학년, 대구 미8군 사령부 후문에 살았다. 미군 병사가 나에게 레이션(Ration) 1개를 주었다. 레이션을 열어보니 모두 맛있게 먹을 것들이었다. 흥부의 박을 연상케 했다. 그 중 하나는 은박지에 포장된 검은 고약 같은 진액은 써서 먹을 수 없었다. 그건 인스턴트커피 진액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전쟁을 하는 병사에겐 커피는 필수 음료이다.
지구상의 70개국에서 커피를 생산한다. 커피는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 회귀선(23.5도) 내에서 주로 재배하는 열대성 식물이다. 5m 정도 크기로 자라는 관목이고 상록수이다. 반음반양(半陰半陽)에서 자란다. 커피나무 종류는 40여종이 있으나 상업적으로 대량 재배하는 커피 종은 아라비카(Arabica, 60%)와 로부스타(Robusta, 40%)이다. 연평균 1,500㎜~2,000㎜ 강수량이 있고, 건기와 우기가 있는 사바나 기후가 적지이다. 재배기술이 발달하여 더 광범위하게 재배하고 있다. 커피는 기호식품이다. 커피를 안 마신다고 죽는 건 아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커피 소비는 급증했다. 매일 25억 명이 커피를 마신다. 세계 무역거래량도 석유 다음으로 많다. 농산물 중에서 가장 많이 유통된다. 커피는 과육이 조금 붙어있는 열매이다. 열매를 생두라고 하고 생두를 말려 볶아 갈아서 물에 끓여 마신다. 커피다.
커피 원산지는 에티오피아 고원 남부, 남수단과 접경하고 있는 카파(Kaffa)주이다. 커피(Coffee) 어원도 카파 주, ‘Kafa’에서 왔다. 커피 발견은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커피 안에 카페인이 들어있어 마시면 잠을 쫓고, 활기가 돋는다. 에티오피아 오로모 부족어로 ‘힘’이라 했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전 세계로 파급되어, 아프리카보다 중남미 아메리카, 동남아시아에서 더 많이 재배한다. 전 세계에서 1억 7천 500만(2020년)자루를 생산했다. 브라질(39.2%), 베트남(16.4%), 콜롬비아(8.1%), 인도네시아(7.0% ), 에티오피아(4.1%)순이다. 석유의 단위가 배럴이듯, 커피거래 단위는 자루 (1 sack, 60kg)이고, 자루 단위로 거래된다. 에티오피아 수출품목 1위가 커피이다. 에티오피아 1,600만 농민이 커피 농사에 매달리고 있다. 에티오피아 외환의 30%를 커피 수출에서 얻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30여 개국이 커피를 생산하고 있지만, 부자 국가는 하나도 없다. 커피 자작농은 적고, 커피 플랜테이션 농장의 농업 노동자들이다. 영화 <아웃 오프 아프리카> 여주인공 카렌이 운영하던 커피 농장이 전형적인 커피 플랜테이션이다. 농장주는 백인이고 부자이지만, 흑인 농업 노동자는 가난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커피를 많이 좋아하는 국민은 지구상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이다. 핀란드(12kg/1인당), 노르웨이(9.9kg), 아이슬란드(9kg), 덴마크(8.7kg), 네덜란드(8.4kg), 스웨덴(8.2kg), 스위스(7.9kg), 벨기에(6.8kg), 룩셈부르크(6.5kg), 캐나다(6.5kg)순이다. 한국은 커피 소비가 1인당 3.5kg이다.
커피는 성분에 카페인이 들어 있다. 카페인은 각성제로 잠을 쫓아내고, 기분을 뜨게 한다. 에티오피아와 근접한 아랍 국가들에 전파된 커피는 이슬람 수피 사제들이 기도할 때 애용했다. 밤 문화를 즐기는 이슬람권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대신에 커피를 마시면서 기도하고 토론하는 문화로 발전했다. 커피를 이슬람의 술(Wine of Islam)라고 했다. 커피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카페도 최초로 오스만의 수도 이스탄불에 등장했다. 커피는 전쟁 때 에피소드가 많다. 항상 긴장을 해야 하는 병사들에게는 필수품이 되었다. 오스만제국이 기독교 제국 비엔나를 포위 공격했을 때(1683년) 오스만 병사들은 커피를 마시고 전쟁을 했다. 1860년 남북전쟁 때 병사들의 편지에 나타난 어휘 중에서 가장 많은 단어는 어머니, 총, 대포가 아니라 커피였다. 6.25전쟁 때 레이션 박스 속 커피를 연상케 한다. 비엔나 포위는 결국 비엔나에 커피를 파급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오스만 제국의 영향 하에 있던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커피 권에 들어갔고, 식민지 역사와 함께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으로 파급되었다.
개화기 유길준의 서유견문록(西遊見聞錄, 1902)에 처음으로 서양 커피이야기가 있다. 고종이 커피를 즐겨 마셨다한다. 서울에서 손탁 호텔(Sontag Hotel, 1902)에서 커피를 팔았다. 일제 때 다방은 일본인이 운영했고, 주로 서울 의 한량들, 예술가 문인들이 드나들었다. 6.25전쟁으로 미군이 가져온 인스턴트커피가 시중으로 퍼져나갔다. 커피가 기호품인 이유로 한국사회도 유한계급, 예술가, 문인, 지식인들이 다방을 찾아 커피를 마셨다. 지난해 한국은 커피 293만 자루(176천 톤)를 수입했다. 전 세계에서 5위이다. 전국에 15,000개 카페가 있다.
스타벅스가 1991년 한국에 상륙하면서 커피문화는 대학생과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왔다. 한국은 지금 커피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페의 크기도 인테리어도 서빙 하는 메뉴도 옛날 다방과는 다르다. 학교 건물만한 대형 카페도 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하여 카페를 가는 게 아니다. 카페에 가기 위하여 카페에 간다. 도시만이 아니라 경치가 좋은 교외에서도 성업 중이다. 학생들은 도서관보다 카페에서 리포트를 쓰고, 청년들은 인터넷 영업도 카페에서 한다. 카페는 Wi-Fi 서비스가 필수이다. 점심 식사 후 직장인들은 카페에 들어 플라스틱 커피 잔을 들고 다니는 문화가 일상이 되었다. 커피문화는 서양에서 전래되었지만, 21세기 한국 카페문화는 서양의 것 이상이다. 21세기 초반 <한국 커피문화>에 대하여 합당한 해석이 필요할 것 같다. 지구상에 이런 나라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