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에서의 일출, 장경사 고드름, 눈과 구기자로 기억될 남한산성 종주
1. 일자: 2015. 12. 5 (토)
2. 장소: 남한산(522m)
3. 행로 및 시간
[남문(07:30)
-> (동문) -> 정경자(08:40)
-> 여장(09:11) -> (북문)
-> 국청사(10:00) -> 서문 전망대(10:04)
-> 수어장대(10:19) -> 남문(10:38)]
지인들에게
남한산성에 가자 하면 ‘그게 뭔 산이냐. 유원지지’하는 반응이 온다. 그건 제대로 가보지 못한 사람들의 선입관에서 오는
반응이라 생각한다. 해발 522미터의 남한산의 둘레인 산성
성곽을 종주하는 산행, 그것도 겨울 산행은 생각보다 멋지다. 그
길에 오늘 나서려 한다.
대간 동기들과의 정기산행이 소백산으로 결정되었고, 저녁에 선약이 있는지라 졸지에 홀로 집에 남게 되었다. 궁리 끝에
당초 계획한 대로 남한산성을 찾기로 했다. 마침 지난 목요일 수도권에 큰 눈이 왔으니 성곽에 쌓인 눈을
보며 산행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7시 30분, 어둠이 거칠 무렵 남문을 출발한다. 성곽에 붙은 눈이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작은 비탈을 올라 마주하는 성곽 뒤로 해가 떠올라 있다. 조금만 일찍 왔으면 일출의 순간도 목격할 수 있었으리라. 아쉽고도
반갑다. 붉게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뜻하지 않은 행운에 기뻐한다. 흰
눈과 태양, 앙상한 겨울나무 뒤로 느껴지는 붉은 기운 그리고 길게 이어지는 남한산성…. 지금 목격한 풍경만으로도 오늘 산행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지난 눈을 고스란히 지붕에 인 성곽이 내리막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인적이
드물었는지 순백의 길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햇살을 받은 산줄기들이 중첩되며 기지개를 편다. 아침이 밝아온다. 멀리 산 중턱에 절 집 지붕이 선명하다. 이상타, 남한산 중턱에 사찰이 있었나? 하고 신기루 마냥 보이는 절을 향해 나아간다. 제법 긴 오름을 올랐다
내려선다. 도로를 건넌다. 동문이 나타난다.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어수선함을 피해 얼른 다시 성곽에
올라 붙는다. 고도가 높아진다. 쉽게 믿지 않겠지만 남한산성의
고도는 500미터가 넘는다.
눈 덮인 성곽 풍경이 시큰둥해 질 무렵 널따란 공터가 나오고 그 뒤로 장경사가 보인다. 눈에 익은 풍경이다. 맞다, 오면서
멀리서 보이던 절이 바로 이곳이다. 평지지만 고도는 꽤 높다. 아침도
먹을 겸 경내에 들어선다. 유리로 창을 만든 대웅전보다는 그 옆 나무 집 그대로의 멋을 품은 건물에게로
눈 길이 간다.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라’글귀와 함께‘장경사(長慶寺)’라는 커다란
현판 위로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흔치 않은 멋진 풍경에 취해 한참을 바라본다. 단아하고 반듯한 대칭미가 느껴진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길 잘했다.^^
북문으로 향하는 긴 오름 끝, 작은 평지에는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뜻하는 여장(女牆)이 나타나고 그 뒤로 여러 군포지가
있는 동장대를 지난다. 이제부터 남한산성 최고의 풍경이 펼쳐진다. 키
크고 잘생긴 소나무가 군락 지어 서 있다. 멀리 연주봉과 수어장대의 지붕도 보인다. 길은 널찍한 대로로 변한다. 간간이 눈을 머리에 인 소나무가 눈
길을 끈다. 개인적으로는 큰 눈 온 다음날 이곳에서 보는 설송(雪松)을 남한산성 최고의 풍경으로 여긴다. 편안한 눈 길을 따라 가다 국청사에
잠시 들렀다가 이내 서문에 당도한다. 서문 역시 공사가 한창이다. 성문
뒤로 나가 전망대에 선다. 서울의 동남부와 하남 땅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롯데월드 신축 건물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다. 색다른 풍경이다.
수어장대로 향하는 길, 성곽 담장 위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작은 눈사람이 햇살에 녹아 내리고 있다. 그 뒤로는 서울의 마천루가 아스라하다. 셔터를 누른다. 근사한 사진 하나가 완성된다. 수어장대에 오른다. 햇살에 빛나는 망루가 오늘따라 늠름해 보인다. 한가함이 묻어나는 토요일 오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도로 길을
따라 남문으로 내려온다. 구기자 나무 가지에 흰 눈이 붙어 있고, 그
밑으로 아직 떨어지지 않은 붉은 열매들이 요염하게 산꾼의 발 길을 붙든다. 그 풍경에 취해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
남문의 지붕이 보인다. 회귀에 감사해 한다.
< 에필로그 >
근거 있는
예상을 했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기대보다 멋진 풍경을 보고 감동하는 게 여행의 묘미다. 눈 덮인 성곽
풍경을 기대하며 나선 길에, 고산에서나 볼 수 있다고 여기던 일출의 감동을 맛보았다. 절 집 지붕에 매달린 커다란 고드름과 잔 설을 머리에 인 구기자 나무의 붉은 열매들도 예기치 않은 행운을 내게
선물해주었다. 토요일 아침. 길을 나서지 않고 따스한 침대에
머물러 있을 핑계 수 없이 많다. 그 유혹을 떨친 자에게 행운이 있었다. 게을러지려 하는 마음이 들 때, 마음에 그려 볼 근사한 풍경들 여럿을
안고 남문을 뒤로 한다.
첫댓글 산도락? 부지런, 한치도 놓치지 않는 치밀함, 항상 산을 바라는 마음, 역시 산도락이 맞는 것 같으이.
무슨 과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