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8코스, 가진항, 북천, 거진항
1. 일자: 2024. 6. 22 (토)
2. 장소: 해파랑길 48코스
3. 행로와 시간
[가진항(11:20) ~ 가진해수욕장(11:35) ~ 남천(12:00) ~ 동호로해변(12:05) ~ 누볼라펜션(12:19) ~ (솔숲) ~ 풍차(12:40) ~ 남천/다리(12:43~13:05) ~ 솔숲 옆길(13:22~45) ~ 반암항(14:07) ~ 거진해변/식당(15:00~22) ~ 거진항(15:49) / 15.1km]
설레던 설악 홀림골 산행이 취소되고 그 대안으로 해파랑길을 신청했다. 탑승지로 사당 대신 복정역울 선택했고, 처음으로 차를 몰고 가 역 부근 공영주차장에 주차했다. 주차비는 하루 6천원인데(정산할 때 3천원을 지불), 오갈 때 시간 절약을 고려하면 그 가치가 충분하다. 그간 이 방법을 왜 몰랐는지, 늦게나마 새로운 시도가 기대된다.
토요일 아침, 긴 기다림 끝에 버스에 오른다. 화도까지 길이 많이 막힌다. 복정역 출발이 지연된 탓도 있지만, 여름이 되니 동해로 향하는 도로가 꽤 붐빈다. 양양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새 길이 뚫려 정체가 많이 해소될거라 한 얼마 전 당국의 예측이 무색하다. 잔득 흐린 날씨에 차창 밖은 잿빛이다. 그래도 더위 걱정은 안해도 되니 다행이다. 가진항에 도착하니 11시 20분, 늦은 출발이다. 해파랑 48구간은 가진항에서 거진항까지 약 13.5km, 4시간 거리로 바다와 마을과 도로가 이어지는 일명(내가 작명한) '가거길'이다. 동영상으로 미리 살펴본 길 사정은 다소 어수선하고 초반 절반은 별 특색이 없어 보인다. 도로를 꽤 많이 걷는 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일단 길에 다서면 긍정 마인드로 변해야 한다. 오늘 트레킹의 목적은 '초여름 바다에서의 생각 다스림'으로 잡아본다. 길이 호젓하면 생각이 들고 날 때 더 좋겠다.
날머리 거진항은 작년 봄 50~49구간 해파랑의 종점이라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늘은 시간 여유가 있으니 포구 주변도 구경하고 맛난 음식도 먹어야겠다. 가진항, 남천, 북천, 반암해변과의 인연도 기대된다.
< 가진항 ~ 북천 >
낯선 가진항 작은 포구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짧게 항구 주변을 흝어보고 도로로 올라선다. 한참을 걷다, 그래도 가진해변 구경은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마을을 가로질러 해안으로 내려선다. 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가족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멀리서 사진에 담는다. 해변의 모래밭과 바위가 꽤 근사하다. 짧은 바다와의 만남을 마치자 다시 도로로 올라선다. 바닷가를 따라 커다란 펜션과 카페가 줄지어 나타난다. 어인 일인지 해변으로는 아무도 들어서려 하지 않는다. 나도 그저 도로를 따라 걸었다.
12시 무렵 남천을 지난다. 바다와는 다른 강가 풍경, 바라보는 눈이 편하다. 동호해변은 역시 넓지 않았다. 해변을 돌아나와 마을 옆 좁은 길을 걷는다. 커다란 펜션(라볼라)을 지나 솔숲 옆으로 난 오솔길이 끊어질 듯 이어진다. 근사한 해송이 줄지어 서 있는데 출입을 어인 일인지 금한다. 비가 떨어진다. 메마른 도로에 빗물이 닿자 훅하고 먼지냄새가 위로 올라온다. 이럴 때 보면 내 코는 아직 제 기능을 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다행이다. 우산을 들고 걷는다. 우측 멀리 바다의 기별이 느껴진다. 군사상 이유로 해안 출입을 금하나 보다. 풍력발전소와 풍차에 파스텔톤의 색이 칠해져 있어, 단조로운 도로에 기분 좋은 변화를 준다. 바다가 나뉜다. 강물이 바다로 밀려든다. 북천이다. 사위가 고요한다. 호젖하다 못해 적막한 느낌, '여긴 어디, 난 뭘 하고 있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멀리 보이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제법 넓다. 한참을 더 도로를 걸어 다리 위에 선다. 이 다리 덕에 48구간의 거리가 약 2km 짧아졌다 한다. 다리 앞에는 한국전쟁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라는 안내가 있다. 과거는 어쨌건 새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마을과 산의 풍경이 무척 근사했다. 1시, 북천과는 이별이다. 경험한 강이 바다와 연결되는 풍경 중 최고였다. 갈 길의 절반을 온 것 같다. 길 주변은 여전히 고즈넉하다. 생각이 머물다 사라진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커진다. 빗소리가 리듬을 만든다. 잠시 걸음을 멈춘다.
< 북천 ~ 거진항 >
작은 산을 돌아든다. 사유지인가 보다. 산 전체가 소나무 숲이다. 모퉁이를 돌아들자 멀리 아주 긴 솔숲이 거대한 푸른 띠를 만들며 끝없이 이어진다. 이제껏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모습에 걸음이 빨라진다. 도중에 좋은 바위 위에 산악회 일행들이 쉬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이 정겨워보여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는다. 도찰은 불법이고 범죄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젠 인물사진은 양해를 구하고 찍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다. 긴 소나무 숲을 걸을 거란 기대는 출임금지 철망을 보며 허무하게 사라졌다. 1km를 훨씬 넘게 솔숲 옆 도로를 걸었다. 흙이 아닌 도로걷기는 아내 지친다. 한참을 걷다 파도소리에 유혹을 끌려 바다 풍경이 보고파 작은 터널 위를 애써 올랐다. 멀리 반암 포구와 등대가 연무 속에서 아득했다. 2시 무렵 반암포구 인근에 도착했다. 솔숲걷기와 바다출입을 금지한 것에 대한 반항인 냥 해변에서 분풀이하듯 사진찍기 놀이를 했다. 가진항에서부터 한번도 안 쉬고 내쳐 걸었다. 시간 여유는 무척 많다. 방파제가 바라다 보이는 포구 난간에 주저앉는다. 사진을 보고 정리하며 잠시 숨을 고른다. 내겐 이 시간이 작은 호사이자 쉼이다. 그것도 잠시 5분도 채 안 되어 다시 걷는다. 조바심과 관성을 이끌리는 것도 병이다. ㅋㅋ
포구 골목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린다. 혹 발길을 끄는 곳이 있으면 들어서려 했는데 아쉽게 그런 곳은 없었다.
해파랑길이 국토종주자전거길과 만난다. 작은 언덕을 올라 돌아보는 포구는 아득하지만 근사했다. 작은 새 두 마리가 바다 위에 솟은 바위에 앉아 있기에 서둘려 카메라를 들이대니 그 새를 못 참고 날아가 버린다. 빈 바위를 찍는 손이 잠시 허전했다.
저 멀리 거진해변이 보인다. 서둘러 걸어 해변으로 내려선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해변에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에 이끌려 가다보니 해변이 강에 막혀 끊어진다. 마침 들이닥치는 파도에 건널 엄두가 나지 않는다. 호기심과 지름길울 찾으려는 욕심은 긴 해변을 다시 돌아가게 만들었다. 길에서 서투른 꾀는 화를 불러온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보는 눈에 영화 촬영 현장이 내려다 보인다. 해변에 사람들이 웅성거린 이유였다. 거진리해변을 따라 걷다 '명태장칼국수' 란 글에 이끌려 음식점 안으로 쑥 들어갔다. 영화촬영본부 역할을 하는 곳인가 보다. 주인은 혼자냐고 물으며 반긴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주인은 자기가 개발한 신 메뉴라며 명태와 내장과 알 위에 쑥갓이 올려진 음식의 맛 평가를 구한다. 약간 짜긴 했지만 칼칼한 게 맛났다. 이래서 강원도 장칼국수 맛울 알게 되었다. 먹고 나니 걸음에 한결 힘이 난다. 홀로라는 핑게로 쉬지 않고 걷는 건 일종의 자기학대이다. 다시 해변을 따라 걷는다. 웬 차박족들이 이리 많은지, 코로나19로 인한 한때 일거란 예상과 달리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왕이면 더 고급지고 깨끗한 환경에서 가족과 함께 즐기는 건전한 문화로 발전했으면 한다. 15:45 거진항 입구에 들어선다. 응봉산에서 이어지는 언덕 위 낯익은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봄의 기억을 떠올린다. 힘겨웠지만 지나고 나면 옛일은 과장되고 미화되나 보다. 응봉산 산세가 근사해 보인다. 트랭글 종료 버튼을 누른다. 주차장에 서 있는 산악회 버스를 확인하고 안도한다. 오늘 트레킹은 날씨 덕을 톡톡히 보았다. 4시간 넘게 길을 걸으며 덥다고 느끼 적이 없다.
< 에필로그 >
거진항에 도착했다. 포구 주변이 눈에 익다. 백섬해상전망대로 이동한다. 15km 넘게 걸었어도 이곳은 꼭 들려야 한다는 생각을 출발 전부터 했었다. 바다와 파도와 바위가 어우러진 풍경이 예술이다. 기대보다 훨씬 좋은 풍광에 놀란다. 거진항 제 1일의 명소는 백섬전망대이다. 밤에 잠을 설칠 수 있다는 불안이 엄습했지만 알싸한 신맛과 매력적인 향기에 이끌려 커피 한 잔을 샀다. 잠시 테라스에 앉았다 커피를 들고 바다로 향한다. 테트라포트와 바다 넘어 백두대간으로 향하는 산줄기가 조망되는 방파제 앞에 선다. 하루 종일 바다만 보다 산을 바라보자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래, 산을 보면 흥분하는 난 산꾼이다. 오후 6시, 버스에서 산행기 초안을 기록하는 사이에 차는 양양을 지나 인제 땅에 들어선다. 비가 내리고 어둠이 내려앉고 았다. 잠시 눈을 감고 오늘 걸었던 길과 보고 느꼈던 일들을 복기해 본다. 낯선 풍경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해파랑길 48구간 트래킹은 기대보다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