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색-하양
하양의 '하'는 해(日)의 원어이다. 이 ‘해’ 는 모든 생명을 키워주는 일을 하(爲)므로 우리가 무엇인가 한다는 것은, 하 즉 해의 작용을 하는 것으로 ‘일하자’, ‘공부하자’, ‘한잔하자’, 등 ‘하다’, ‘한다’, ‘할 때’ 등 행위(行爲)시에 이 ‘하’ 를 쓰게 된다. 또 해가 원래 ‘하’ 이기 때문에 해의 색을 말할 때는 ‘하야하다(하얗다)’, 라고 말하고 여기서 모음의 아래아점 모음 혼동으로 ‘히’ 즉 ‘히다’ 라고도 한다. 이 해가 없다면 산 것은 태어날 수도 없고 단 한순간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리고 해는 ‘환한 것’의 원천임으로 ‘환나라’의 ‘환한님’, 즉 ‘한나라’의 ‘하나님’이고 ‘밝은 땅 임금’인 ‘밝달임금의 원천이 되며 위 ‘하’ 에서와 같이 ‘공부해라’, ‘해먹자’등 행위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데 해의 색갈인 흰색 역시 전에는‘해다’ 라고 했다. (다, 해다, 白 - 訓).햇빛은 희다
* 히 - ‘히’ 역시 ‘하’ 와 마찬가지로 ‘해’ 인데 우리말에서는 주로 ‘해’의 색갈인 흰색 을 말한다.
* ひ(히) - 역시 해(日)를 말한다. 이 역시 우리 한 아비들이 일본에 전해준 우리말이다.
* しらい(시로이) - 백색(白色)인데 ひ(히)가 し(시)로 변한 우리말이다.
* (힌白) - 머리 자거늘 머리 이샤 (월인상 49).
* 해맑다. 히맑다. 해말쑥하다. 히멀쑥하다. - 맑은 것이 해와 같다.
중세어의 ‘히다’는 뒤에 ‘희다’ → ‘허여ㅎ다’ → ‘하야ㅎ다’ 등으로 혼용되기 시작했다. 이 말이 본래 ‘ㅅ’-어두음에서 ‘ㅎ’-으로 변한 것이라는 것을 다음에서 알 수가 있다.(두시언해). 우리는 노인의 ‘白髮’을 보고 머리가 ‘셋다’고 한다.
‘白猫(흰고양이)’는 ‘센괴’로 문헌에 나와있고, ‘센 머리’→‘흰 머리’라는 표현은 지금도 넓리 쓰이고 있다. 일어(日語)로 ‘희다’의 대응형은 siro(白)이니 고대 문헌에서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는 어형이다. 역시 우리처럼 ‘ㅅ’과 ‘ㅎ’의 관계설정이다. 양주동 박사는 그의 《고가연구(古歌硏究)》에서, 해(日)의 고음(古音)을 ‘?ㅣ’ 라고 하였으며 백(白)의 훈(訓)인 ‘히다’도 ‘?ㅣ’와 동일어라고 하였다.
'ㅎ'은 이의 하늘을 상징하는 'ㅇ'에서 발달한 글자로 '하'+ 접미사 구조로 한 글자이며, '하늘, 하느님, 해',' 희다, 밝다 등 무려 20여 가지의 뜻에 쓰여진다.
또 이 ㅇ과 ㅎ은 (ᅌ,ᅙ은 생략) 반드시 '하늘과 같이 원융무해한 것' 에만 쓸 수 있다. 즉 하늘, 땅처럼 걸림이 있다거나 사람처럼 서는 것에는 ㅇ이나 ㅎ으로 시작되는 말은 없다 하양은 바탕색으로 내용의 질료까지 포괄하여 이해하려는 동양인들의 경향은 색중에서 가장 자연의 빛인 태양의 빛이므로 그러하며,오래된 경천사상과도 맞물려 하늘로 돌아가 내세를 소망하는 기원의 의미가 있다 할 것인바, 신계와 인간계의 사이 중간계 의식인 장례과정의 힌옷을 입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특히,우리나라는 그 시원 부터가 하늘과 광명을 으뜸으로 치는 역사의 여정이다 보니 흰색 선호사상을 가지게 되었고 가장 신성시 하는 색이다.하양색(白色系)의 물성 전국시대부터 풍화된 조개와 굴껍질로 만들어 썼던 호분(胡粉:蛤粉)과 아연을 산화시켜 만든 아연화(亞鉛華)와 탄산칼슘 성분의 방해말(方解末)과 도자기에 쓰이는 백토(白土) 등이 있다. 의복에서는 주로 옷감의 바탕재를 소색(素色)이라 하여 순도에 관계없이 흰 옷으로 간주했다.
옛날에는 자연광에 표백했기 때문에 순도가 높지 못하고 약간의 바탕색을 유지했으므로 소지색, 미색, 상아색, 유백색, 설백색(雲白色) 등으로 불려졌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백색을 말할 때 아주 희다는 뜻으로 순백(醇白, 純白) 또는 수백(粹白), 백정(百精), 정백(精百) 그리고 때로는 선명하게 희다고 해서 선백(鮮白) 이라고 표현했다.
* 삼국사기에 태종 무열완 때에 우수주(牛首州)에서 흰 사슴을 왕에게 바쳤다는 내용을 비롯하여, 성덕왕 때는 청주에서 흰 매와 흰 참새를, 그리고 경덕왕 때는 무진주에서 흰 꿩을 나라에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 영국의 인류학자 J. W. Turnner가 말한 것과 같이 백색은 흑색이나 적색과 함께 인류의 아주 원시적인 상징의 하나였으며, 흑색이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상징인 것에 반하여, 백색은 늘 수용적이고 긍정적인 심볼로 여겨왔다.원시족의 백색의 상징으로서는 건강, 순수, 행운, 불사, 권력, 생명, 웃음, 계시, 원숙, 청결, 선행 등이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보면 타르타르(Tartars)인들은 새해를 맞으며 황제를 비롯해서 모든 시민들이 모두 흰 옷을 입는 습관이 있으며, 그들의 생각으로는 백색은 행운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이 일 년간 행운이 계속하여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바라는 뜻에서 흰 옷을 입는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마이바스 지방(인도의 남부)의 토인들은 피부가 검은 것을 미의 극치라고 존중하기 때문에 인공적으로 검게 칠하며, 반대로 악마는 희게 칠하며, 모든 악마는 모두 빛깔이 흰 것으로 주장 한다고 기록했다.
소색(素色)은 백색의 바탕백색에 대한 한국인의 기호는 지금도 대단하다. 태어나서 부터 일상 에서,죽어서 흰옷을 입는다. 이 흰 옷은 무색, 소색의 이미지이며 모든색을 포용하는 자연색이기 때문이다.한국인은 자기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나타낸다는 것은 점잖지 못한 것으로 여겨왔으며, 하고 싶어도 하고 싶지 않은 체하는 본능 억제력이 아주 강하다. 본능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얼굴색이 푸르락 붉으락 하다는 것은 일종의 색이 있음을 뜻하며(유채색) 이것은 점잖지 못함에 속하고, 심지어 부도덕적인 인격으로 인식한다. 즉 본능의 억제를 겸양지덕으로 비약시킨 것이다.
실이나 옷감의 색에 관해서는 표백 기술이 발달되기 이전까지는 백색을 소색이라고 했으니 현실과는 그다지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소(素)자는 흰 소 또는 순백 소라 하여 빛깔이 흰 옷을 소의(素衣)라 했으며 겨울의 흰 눈을 소설(素雪), 흰 얼굴을 소안(素顔)이라 쓰기도 했으며, 가을을 음양오행의 백색이므로 소추(素秋)라 했다. 옷감을 짜기 전의 실의 원사를 모양이나 염색을 하지 않은 바탕대로의 상태를 소지(素地)라 하며, 결국 표백이나 착색의 기술도 색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본래의 바탕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인류의 색채문화의 근본은 소색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색채의식
태양의 빛이 내려 쪼이는 대낮을 백주(白晝)라 한다. 이 백주의 自然光과 같이 가시범위의 모든 파장의 빛을 고루 포함하고 있는 빛은 보기에 전혀 색을 느끼지 못하는 무색의 빛이며 「白色光」이라 한다. 白色光을 그대로 완전히 반사해버리는 물체의 표면색이 바로 이상적인 백색이라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사율이 100%라 하는 완전한 순백의 물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색까지를 백색이라는 이름의 범위는 아무래도 지역별 관습적인 것으로 된다.백색에 해당되는 다른나라 어원으로 인도나 유럽어에서는 빛나다, 비치다 라고 하듯 물체의 표면에 대한 지각을 나타내는 뜻으로만 한정되지 않은 것 같다.
청구영언(靑丘永言)dpn 실린 옛 詩들에는 백색이 붙는 낱말로 흰 달, 흰 눈, 흰 꽃, 흰 옷, 백일,백지, 백발 등 지나칠 정도로 많이 나오고 있으니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 겨레의 의식 저변의 깨끗한 마음을 나타내어 읊은 것이다. 영어의 화이트도 결백한, 죄 없는, 공명정대한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조선복색원류고」(1940)에는 인간의 욕구는 유색 옷 즉 염색을 한 옷을 입기를 바라지만 옛 문헌에 나와 있는 백의를 입게 되는 원인들을
*예문숭상(禮文崇尙)에서 인간의 감정생활 억제와 효용면에서 위엄을 표현하는 군복은 찬란한 짙은 색을 사용하기로 하고, 고려말에는 玄色을 지존색(至尊色)으로 알고 이것과 혼동되지 않기 위해 회색과 옥색을 금했으나 고려가 망한 사실을 감안하여 이조 국초에는 이러한 색들은 미신적이라 해서 금색(禁色)이 되었으며, 세종 때는 존비등위(尊卑等威)를 밝히기 위해 관리는 색의 옷으로, 서민은 염색하지 않은 옷을 입게 했고, 사대주의 사상과 천자색(天子色)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신하는 현색, 황색, 자색의 사용을 금했다.(臣子不得服 玄色黃色禁色)
그리고 이조의 부국책은 식산흥업(殖産興業)에 두는 것보다 근검절용에 있기 때문에 없으면 더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덜 쓰면서 견디겠다는 뜻이 있었다. 따라서 복식용의 염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면서 때대로 절약령 내지는 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 금제(禁制)는 백성의 소모를 걱정하는 것도 있지만 사치를 억제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 금령에 따라 짙은 농염(濃染)은 옅은 담염(淡染)으로, 담염은 백지(白地)로, 혹은 농염에서 백지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반면에 염색한 옷감은 대개가 유독성이 강한 염료를 사용해서 침염(侵染)하기 때문에 방부효과와 제충효과가 있으며 금목상극(金木相剋)의 오행설에 의한 동방 청색을 권하기도 했었다.
또,일반 서민들이 백의를 고수하게 된 원인은 「결국 생활의 경제적 문제로 귀착시키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고, 이조 복색에서 염색해서 아름답게 하려는 의욕과 아름다움을 위한 자유로운 예술적 행위의 역사적 산물이 아니고 대개 국가, 사회의 요구에 의한 기계적 부산물이라고 했다.처음에 청색을 나라 색으로 했을 때에는 염색함에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여 딱한 고비도 있었다. 대홍(大紅)을 좋아했을 때는 단목(丹木)의 구매로 나라의 재정이 감소되고, 심초록을 좋아할 때에는 값이 뛰어 올라서 모든 폐단이 생겼다. 이같이 염료 지원이 말할 수 없이 빈약하였다.
따라서 서민으로는 경제적인 흑백 두색 밖에 없어 그들의 가장 친한 백색을 입게된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는 그 염료의 천연자원이 결핍하였고 숭검거사(崇儉袪奢)를 국시로 삼고, 금기절이(禁奇絶異)를 내세운 나라였으며, 이외에 오행사상이니, 사대주의니, 금치(禁侈)정책,존비구별(尊卑區別)이니 하는 것으로 복색의 자유를 철저히 제약한 것이다.신의 색 흰색 우리의 하나님의 상징이 환한 빛님 이듯이 위대한 성인 석가모니의 탄생은 석가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상아 여섯개를 갖은 큰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 꿈으로 예시를 했고,
제우스는 하얀 황소의 모습으로 유럽에 나타났으며 레디는 백조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성령은 하얀 비둘기의 형상으로 나타나며 그리스도는 흰 양이다. 흰 외뿔소는 마리아의 처녀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동물이다. 천사들도 흰옷을 입고 하얀 날개를 달고 있다. 반면 서양 악마는 검은 날개, 대개는 박쥐의 날개를 달고 있다.
하얀 동물은 신의 현신이 아닐 때에도 신성한 것과 관련을 갖는다. 인도에서는 흰 소를 빛의 화신으로 여기며 중국에서는 흰 두루미와 흰 따오기를 불멸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새로 믿는다. 크고 흰 새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행운의 사자이다. 여기서 흰 황새가 아기들을 세상에 데려온다는 믿음도 생겨났다.서양의 흰색은 여성적이고 고귀하지만 연약한 색으로, 상징적으로 흰색과 반대되는 색은 권력과 힘의 색인 검정과 빨강이다. 흰색의 심리적 반대색은 갈색으로 흰색과 갈색이 나란히 배열된 색조는 없다. 어느 것도 순수한 동시에 더러울 수 없으며 가벼운 동시에 무거울 수 없기 때문이다.
흰색은 조용한 색이다. 흰색-분홍-회색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듯한 인상을 풍긴다.중국의 색채 상징에서 흰색은 여성적인 음에 속한다. 점성술에서도 흰색은 여성의 상징인 달에 속하지만, 태양이 금색이듯이 달에도 흰색보다 은색이 더 잘 어울리므로 대부분은 점성술사들은 흰색을 은색으로 대치하고 있다.
심리적 흰색
사회적인 기호, 또는 정신적인 상징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과 결부된 공통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빨강이나 파랑 등 유채색을 고를 때에는 희로애락 등 일상적인 감정이 반영된 것이 많다. 그런데 흰색이나 검은색 등 무채색의 경우에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거나 또는 放棄(방기)하는 상황이 많다. 특히 흰색의 경우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는 말처럼 감정이나 의식이 표백된 것 같은 비일상적인 상태와 더불어 일컬어진다.
물론 이것이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충격으로 인해 생각할 수 없는 상태도 있을 것이며, 초심으로 돌아가서 무심한 상태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방기와 新生(신생). 이 양극의 심리 상태에 있을 때 사람은 흰색을 추구하는지 모르겠다. 세계 사람들이 대부분 이 흰색을 성스러운 상징으로 삼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극한의 심리 상태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