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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 이공 만시〔小山李公輓〕
대산 이부자에게 大山李夫子
동생이 있었으니 바로 선생이네 有弟卽先生
기백은 규성의 광채를 나누었고 氣魄奎分彩
정신은 산악의 영기를 모았네 精神岳鍾靈
사자의 기상은 밀암의 그림에서 유래했고 獅從密庵畫
기린아는 목은 어른의 뜰에서 나왔네 獜出牧翁庭
온화하고 순수한 자질은 뭇사람 중에 빼어났고 溫粹資超衆
정밀하고 전일한 학문은 경전에 근본하였네 精專學本經
학문의 연원은 퇴계 어른에게서 찾았고 淵源尋退老
도의의 가르침은 형에게 강학받았네 道義講家兄
젊을 때부터 참공부를 독실히 하여 自少眞工篤
뛰어난 걸음을 멈춘 때가 없었네 無時逸步停
몸을 계칙함에 법도를 삼엄하게 하였고 飭躳森規度
이치를 완색함에 고명한 자질을 다하였네 玩理極高明
실질 공부에 항상 넉넉히 즐겼고 實地常餘樂
명성의 관문에는 일찍 생각을 끊었네 名關早斷情
은거하여 뜻을 구하니 평소의 소원을 이루었고 隱求終素願
고요히 성품을 기르니 마음의 정성을 쌓았네 靜養積中誠
삼분오전으로 삶을 넉넉하게 하였고 墳典饒生計
단사표음으로 세속의 영화를 하찮게 여겼네 簞瓢薄世榮
맑고 엄중한 나중소이고 淸嚴羅仲素
밝고 맑은 이연평이었네 瑩澈李延平
고절은 서리 맞은 솔의 무성함과 같고 苦節霜松茂
영명한 회포는 물에 비친 달처럼 밝네 靈襟水月晶
단정하고 응중함은 지경 공부를 체득함이고 端凝持敬體
간약하고 합당함은 타인의 글의 평가이네 簡當對書評
사도에 겸손하여 스승의 자리를 비워 두었고 師道謙虛席
문필은 거두었으나 숫돌에서 갈아 낸 듯했네 文鋒斂發硎
풍류의 모습은 담박함을 따랐고 風流從澹泊
태도와 안색은 순정하게 되었네 氣色轉純精
공부를 단련하여 쇠가 점점 빛나고 鍛鍊金冞耀
학문을 연마하여 옥이 더욱 굳네 磨礱玉更貞
도의 근원을 만남에 깊이 나아가 터득하였고 逢原深造得
덕을 말하자면 이른 나이에 성취하였네 語德早年成
아내가 죽는 애통함이 있은 뒤로부터 自抱琴亡慟
더욱 부지런히 공부하는 과정을 만들었네 益爲蛾述程
공이 유학을 실추시키지 않은 덕분에 斯文賴不墜
후학들의 바람이 더욱 경모하게 되었네 後學望尤傾
못이 조용하나 도리어 천둥으로 진동하여 淵默雷還動
암혈에 거처하였지만 벼슬이 절로 오네 巖居爵自嬰
임금 소명의 은혜가 여러 번 내렸지만 旌招恩則疊
몸이 늙어 가며 도를 편안히 행하였네 身老道安行
개울 꽃 곁에서 산책하고 散步川花傍
들판 백로와의 맹세를 그윽히 기약하였네 幽期野鷺盟
넉넉히 한가함은 만년을 풍족하게 하였고 優閒足晩境
복스러운 삶이 여생을 축복하였네 福履祝餘齡
어찌 산가지를 바다에 첨가해 주지 않고 曷不籌添海
갑자기 기둥 사이 제사 꿈을 꾸게 하였는가 翻敎夢奠楹
관직은 겨우 낭서에 그쳤으나 位纔止郞署
뜻은 백성들을 보호하는 데 간절하였네 志切庇編氓
성스러운 시대에 유일을 잃어버렸고 聖代亡遺逸
유문에서는 모범이 되는 이를 상실하였네 儒門喪典刑
조카가 또 죽고 말았으니 賢咸又逝去
애처로운 맏아들 더욱 외롭게 되었네 哀胤益伶仃
유풍여운을 누구와 함께 다스릴까 餘韻誰同理
은미한 말을 다시는 들을 수 없네 微言更莫聆
처량한 소호리의 집이요 凄凉湖上宅
적막한 학산의 무덤이네 寂寞鶴山塋
뒷날 방문하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不待他時過
말하자 눈물이 이미 떨어지네 興言涕已零
[주1] 소산(小山) : 이광정(李光靖, 1714~1789)의 호로 이상정(李象靖)의 동생이며 밀암(密庵) 이재(李栽)의 문인이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휴문(休文)으로 안동 소호리에 거주하였다. 이황(李滉)의 학풍을 계승하여 사단칠정(四端七情)과 《근사록(近思錄)》, 《심경(心經)》을 익혔다. 1783년(정조7)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임명되었으며 동몽교관(童蒙敎官)을 거쳐 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를 제수받았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1784년(정조8)에는 다른 영남의 학자들과 함께 《초계문신강의(抄啓文臣講義)》를 검토 교정하는 데 참여하였는데, 정조의 인정을 받아 특별히 6품직에 임명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사후 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저서에 《소산집》이 있다.
[주2] 사자의 …… 유래했고 : 소산은 밀암 이재의 외손자이니, 소산이 밀암의 장려와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다. 주희(朱熹)가 그의 사위 면재(勉齋) 황간(黃榦)의 아들 황로(黃輅)에게 자기 집 벽에 걸린 육탐미(陸探微)가 그린 사자 그림을 떼어 보내 주면서 “이 사자처럼 떨쳐서 울부짖어 온갖 짐승들의 골이 찢어지게 하기를 기대한다.[願他似此獅子, 奮迅哮吼, 令百獸腦裂也.]”라고 하였으니, 역시 주자가 외손자인 황로에게 그런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朱子大全 續集 권1 答黃直卿》 여기서도 밀암이 소산에게 그런 기대를 걸며 가르쳤다는 말이다.
[주3] 기린아는 …… 나왔네 : 기린아(麒麟兒)는 재능이 걸출한 인재를 빗댄 말이다. 이광정의 선조는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다. 이색은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자는 영숙(穎叔)이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주4] 은거하여 …… 이루었고 : 《논어》 〈계씨(季氏)〉에 “은거하여 그 뜻을 구하며 의를 행하여 그 도를 이룬다.[隱居以求其志, 行義以達其道.]”라고 하였으니, 은거하며 자기 평소의 뜻을 지켜서 이루어 나감을 말한다.
[주5] 삼분오전(三墳五典) : 삼분(三墳)은 삼황(三皇)의 글이고 오전(五典)은 오제(五帝)의 글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고서(古書)라는 뜻으로 쓰인다.
[주6] 단사표음(簞食瓢飮) : 대나무로 만든 밥그릇에 담은 밥과 표주박에 든 물이라는 뜻으로 매우 가난한 생활을 의미한다. 《논어》 〈옹야(雍也)〉에 “어질도다 안회(顔回)여!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먹으면서 좁고 누추한 거리에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거늘, 안회는 그 속에서도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回也.]”라고 하면서 공자(孔子)가 안회를 찬미하였다.
[주7] 나중소(羅仲素) : 나종언(羅從彦, 1072~1135)을 말한다. 그의 자는 중소, 호는 예장(豫章), 시호는 문질(文質)로 남검(南劍) 사람이며 양시(楊時)의 문인이다. 1130년에 급제하여 벼슬이 박라주부(博羅主簿)에 이르렀다. 그는 연평(延平) 이동(李侗)에게 학문을 전수하였고 이동은 주희에게 학문을 전수하였다.
[주8] 이연평 : 이통(李侗, 1093~1163)을 말한다. 그의 자는 원중(愿中), 호는 연평(延平), 시호는 문정(文靖)으로 나종언에게 수학하였다. 평생을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 몰두하였으며, 동문수학한 위재(韋齋) 주송(朱松)의 아들 주희(朱熹)에게 정자(程子)의 학문을 전수하여 송나라 성리학을 집대성하게 하였다.
[주9] 숫돌에서 …… 듯했네 : 옛날 유명한 백정[庖丁]이 오랜 세월 동안 소를 잡았는데도 그 칼을 보면 무디어지지 않고 항상 숫돌에서 금방 꺼낸 것과 같았다.[刀刃若新發於硎]고 하였다. 《莊子 養生主》
[주10] 도의 …… 터득하였고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군자가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함은 자득하고자 해서이니 자득하면 처(處)하는 것이 편안하고 처하는 것이 편안하면 자뢰(資賴)함이 깊게 되고 자뢰함이 깊으면 좌우에서 취함에 그 근원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득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則居之安, 居之安則資之深, 資之深則取之左右, 逢其原, 故君子欲其自得之也.]”라고 하였다. 여기서 모든 곳에서 근원을 만난다는 것은 모든 주변의 사물에서 도의 근원을 만날 수 있다는 뜻으로, 마음의 거울이 밝아져서 모든 사물의 이치를 환히 알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주11] 아내가 죽는 애통함 : 부인은 의성 김씨(義城金氏)로 이광정이 죽기 33년 전인 1756년에 죽었다. 부부간에는 금슬(琴瑟)을 연주하면서 즐기기에 아내의 죽음을 포금망(抱琴亡)이라 하였다.
[주12] 부지런히 공부하는 : 원문 ‘아술(蛾述)’의 아(蛾)는 개미이고 술(述)은 조술(祖述)하여 익힌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학기(學記)〉의 “개미는 수시로 흙을 물어 나르는 일을 배워 익힌다.[蛾子時術之]”라는 말에서 왔다.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서 “개미는 작은 벌레이다. 개미의 새끼는 수시로 흙을 물어 나르는 일을 조술(祖述)하고 배워서 큰 개밋둑을 만든다. 이것으로 배우는 자도 오랫동안 학문을 쌓아서 큰 도를 이룸을 비유한 것이다.[蟻子小蟲, 蚍蜉之子, 時時術學銜土之事, 而成大垤, 以喩學者由積學而成大道也.]”라고 하였다.
[주13] 못이 …… 진동하여 : 《장자(莊子)》 〈재유(在宥)〉에 “시동(尸童)처럼 가만히 있으나 용이 나타나듯 사방 천지에 그 도가 빛을 발하고, 깊은 못처럼 말이 없으나 천둥 치듯 온 천하에 교화가 미친다.[尸居龍見, 淵默雷聲.]”라고 하였다. 연묵(淵默)은 자신의 함양을 나타내고 뇌성(雷聲)은 도의 실현으로 남에게 알려짐을 나타낸다. 소산이 은거하여 수양에 힘썼지만 학덕이 밖으로 널리 알려져 벼슬에까지 임명되었다는 말이다.
[주14] 백로와의 맹세 : 백로를 벗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세상일에 간여하지 않고 강호에 은퇴하여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주15] 산가지를 바다에 첨가해 : 장수를 상징하는 말로, 소식(蘇軾)의 《동파지림(東坡志林)》 권7에 “세 노인이 있었는데 서로 만나서 나이를 물으니, 한 사람이 ‘바다가 뽕나무 밭이 될 때마다 나는 산가지를 하나씩 놓았는데 지금까지 10칸 집에 그 산가지가 가득 찼다.[海水變桑田時, 吾輒下一籌, 爾來吾籌已滿十間屋.]’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주16] 기둥 …… 하였는가 : 위인의 죽음을 가리킨다. 공자(孔子)가 두 기둥 사이에 앉아서 제사 드리는 꿈을 꾸었는데[夢坐奠於兩楹之間], 이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예지하고는 와병 7일 만에 세상을 떠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禮記 檀弓上》
[주17] 낭서(郞署) : 낭관(郞官)으로 5품 정랑(正郞)과 6품 좌랑(佐郞)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6품)를 말한다. 만년에 정조가 6품직을 명한 것을 말한다.
[주18] 유일(遺逸) : 조정에 등용되지 않고 초야에 남아 있는 훌륭한 인재를 말한다.
[주19] 조카가 …… 되었네 : 원문 ‘현함(賢咸)’은 남의 조카를 높여서 일컫는 말이다.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에 속했던 완적(阮籍)과 그 조카 완함(阮咸)은 서로 숙질간이었는데, 이 때문에 남의 숙부를 완장(阮丈)이라 하고 남의 조카를 함씨(咸氏) 또는 현함이라 한다. 소산의 조카는 대산 이상정의 아들 간암(艮菴) 이완(李埦, 1740~1789)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를 지냈지만 일찍 죽었다. 소산의 아들은 면암(俛庵) 이우(李㙖, 1739~1810)이다.[
[주20] 학산(鶴山) : 소산의 묘소는 군위군 소보면 모로동(毛老洞) 큰골말냉산에 있는데, 큰골말냉산을 학산이라 한 듯하다.
